어느날 요셉이 꿈을 꿉니다. 그리고 굳이 형들에게 그 꿈을 말합니다. 형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단번에 의미를 알아챕니다. 꿈은 요셉이 형들의 왕이 되고 다스리게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형들은 말도 안되는 꿈이라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며 동생을 책망합니다. 형들은 그 꿈을 듣고 더욱 요셉을 미워합니다.
또 요셉이 꿈을 꿉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요셉이 심지어 부모님을 포함하여 온 가족을 다스리는 의미입니다. 그 꿈이 정말 이루어지겠냐고 야곱이 요셉을 책망합니다. 창세기에서 지킨다는 말이 여러번 등장하는데, 창세기 37장에서 마지막으로 이 말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왜 야곱이 요셉을 혼자 형들에게 보냈는지는 여전히 궁금한 부분입니다. 요셉은 확실히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형들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형들은 홀로 남겨진 그에게 본색을 드러냅니다.
형들의 목적은 단순히 요셉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요셉의 꿈 자체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과연 요셉이 존귀한 자가 되어 부모와 자신들을 다스리는 위치가 될 것인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천연덕스럽게 음식을 먹습니다. 잔인함이 극에 달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유다의 개입으로 인해서 요셉은 생명을 잃지 않고 형들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버립니다. 형들은 마치 짐승에게 죽은 것 처럼 꾸미고 야곱을 속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것으로 인해 깊은 슬픔 속에 빠집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스스로 꾼 것이 아닙니다. 스터디 바이블의 설명처럼, 그의 꿈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열방을 축복하고 왕을 낳는 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선택하시고 그리고 축복을 이루어나가십니다.
놀라운 것은, 그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인간의 눈에 보기에 단 하나의 희망도 없어 보일 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요셉이라면 저 같으면 절대로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이야기를 굳이 하여서 화를 자초합니다.
하지만 이루어질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과 "그 꿈에 대한 비난과 조롱" 입니다. 형들도 그리고 심지어 야곱도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 그리고 앞으로 이루실 우리의 온전한 구원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하나님의 일하심은 전혀 우리가 알아챌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며 다스리시는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비난은 둘째 치더라도 나 스스로조차 전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찾아옵니다. 요셉이 구렁텅이에 빠져서 울부짖었던 것 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게 절망할 때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결국 다시 한번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 가장 깊은 수준에서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과연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축복과 계획은 저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