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CFNI 다이어리 34 - Song Writing


이곳에서 얻은 유익을 손으로 꼽자면,
이미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중에 특별히 Song Writing이 마음에 남는다.

이곳에 오기전에 이미 나는
CCM을 향한 많은 비판들을 알고 있었다.
얕은 가사와 반복되는 멜로디와 몇개 안되는 빈약한 코드
청중의 감정만을 자극하는 분위기 위주의 구성 등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주님을 향한 열심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함을
아주 조금은 배우게 된다.

곡의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조나단의 열심은 정말 대단하다.
강의 중에 언뜻 들은 한 단어 'polish'
(If you polish something, you put polish on it or rub it with a cloth to make it shine.
(콜린스 코빌드 사전))
그날 이 단어를 이렇게 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러분의 곡의 가사를 끊임 없이 polish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자작곡을 들고나와서 부를 때 마다,
비록 혹시 그 멜로디와 화음이 부족하더라도,
조나단은 늘 그 가사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백하건데,
그 가사들 중 많은 부분이,
나의 혼신을 다한 설교문보다
문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뛰어나다.

이곳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쉬운 멜로디와 반복적인 음악적 갈고리(hook)를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나는 이것에 다소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인 논의를 넘어서서,
마치 클래식이 더 좋은 음악인가,
아니면 대중음악이 더 좋은 음악인가라는 논쟁과 비슷하다.

나는 클래식을 사랑한다.
일반적인 소양 수준에서 클래식을 듣고 사랑하며,
아내의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갈망하며 존경하며,
클래식 칸타타를 통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음악적인 수준에 있어서도 클래식이 월등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적인 소양이 깊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찬양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CFNI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흐름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가운데 있다고 믿으며,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단순화와 얕음에 저항하기를 원한다.

햄버거를 사먹으며
짧은 시간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진심으로 차가운 무서운 냉소 그리고 지옥의 정욕을 보았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안무와, 사단의 집회를 연상시키는 무대 연출,
인간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해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구성등은
진심으로 나의 영혼을 얼어붙게 했고, 가슴을 냉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무서웠다.

오늘 수업 시간에,
조나단이 2년 동안 polish하고 있는 노래를 들었다.
아직도 완성중이고 마음에 품고 있다고 한다.
내 안에 주님을 향한 노래가 있네. 라는 가사의 곡,
솔직히 너무 감동적이라 울컥해서 눈물이 났지만, 참았다.
혼자 울면 너무 민망하니까...

어쩌면 그 외형적인 모습은 동일할지 모른다.
열광, 감동, 감정, 흥분,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하든지 간에,
그 외형적인 모습은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그 열정을,
어떤 이들은 그저 감정주의라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내 지성 뿐만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주심을,
내 감성이 지성을 부드럽게 녹여, 사랑의 고백을 주님께 할 수 있음을,
그분을 향한 찬양이 조나단의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이 감성이 뜨거움이,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표출될 수 있음을,
악한 영적인 세력의 차갑고 죽음으로 이끄는 영향력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품으시고 보듬으시는 봄날의 햇살과 같은 성령님의 따뜻함 속에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그래서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CFNI 다이어리 33 - Audio Production


초등학교 때, 선장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KENWOOD 오디오 세트를 사 오셨다.
빛나는 검은 빛의 육중한 몸매, 그러나 각 모서리를 아름답게 라운드로 처리한,
심플한 로고에 아름다운 빛이 들어오는, 정말 단 한번의 눈빛만으로 나를 매혹시킨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는, EQ라고 적혀 있는 파트가 따로 있었다.
이퀄라이져, 아름다운 음악이 시작되면 현란하게 LCD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 소리를 조각할 수 있는 신의 도구였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다.

오디오 앞에 그렇게 앉아서 조작하던 시간도,
온갖 MP3 player를 구입해서 들었던 것도,
이어폰 헤드폰을 가리지 않고 사고 팔았던 것도,
그렇게 스피커에 집착했던 것도,
결국 그 끝에는 소리에 대한 집착, 사랑, 그리고 열망이 있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론 설교와 찬양과 기도와 영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사운드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육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 없다.
그러나 단 10명의 사람 앞에서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전기적인 시스템을 이용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소리가 조각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도,
인간의 마음을 울릴 설교도,
가장 뛰어난 악기 실력도,
소리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학기의 audio production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행복 그 자체였다.
전문적인 교육이 없었던 나에게
음향에 대해서, 소리의 특징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은
존의 호주 영어라는 정말 어려운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께서 더 큰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음향 전문가이신 승록 전도사님을 통해
한글로도! 추가 수업을 배우게 하신 것이다.
겸손하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승록 전도사님이 그런 분이다.
이런 축복이 또 있을까?

거기다가 오늘 마지막 시간으로,
실제로 미국 필드(field)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가 특강을 해주었다.

난 그의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음악을 향한 열정,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다짐,
자신의 손 끝을 통해 나오는 소리의 조합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 마음,
자신의 수고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겠다는 그 타는 마음,
찬양팀을 어떻게든 섬기고 말겠다는 그 열심.

그를 통해,
진정으로 소명을 받은 엔지니어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
가슴에 깊이 남을 만큼 배웠다.

오랫동안 고민은,
다양한 악기와 많은 목소리들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에,
어떤 선에서 찬양팀의 볼륨을 조정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오늘 특강은 아주 훌륭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볼륨과 주파수간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주파수를 아주 거칠에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인간의 목소리가 그 중간 영역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간 주파수 영역 안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들어가 있다.
만약에 우리가 특정한 악기 혹은 목소리를 더 부각시킴으로 잘 들리게 하고 싶다면,
같은 주파수 영역에 있는 악기 혹은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오늘 강의하신 그 분은 중간의 동그라미 친 영역을 nest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서 리드 보컬이 부각되어야 한다면, 다른 어커스틱 기타나 일렉기타나 백그라운드 보컬을 줄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기타 솔로가 부각되어야 한다면, 다른 메인 보컬이나 기타나 백그라운드 보컬을 줄이라는 거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나는 수 없이 많이 보았다.
절제되지 못한 볼륨과 방향을 잡지 못하는 믹싱으로 망쳐지는 수많은 집회를.
모든 악기와 목소리를 다 키운 어이 없는 믹싱으로,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시간을,
최소한의 음향에 대한 이해와 엔지니어의 열심만 있다면
더 은혜롭게 될 수 있었던 아쉬운 경우를.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익히고 적용하고 싶다.

소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한다.
천국은 틀림없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너머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클래식들이,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현대적인 찬양들이
함께 공존하며 울릴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도 함께 손을 들고 힘껏 목소리를 더할 것이다.

마치 C.S.루이스가,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며 천국을 그리는 것 처럼,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음악과 소리와 예술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이해하고 바라본다.

그래서 행복.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 / 나비효과 - 셰인


아내와 함께 셰인의 노래를 들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감격의 탄성을 질렀고,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아... 이런 보컬이 세상에 있구나. 아름답고,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어쩌면 이 곡의 아름답고도 애절한 가사가, 셰인의 목소리 속에서 드디어 그 진정한 그 빛을 드러내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하는 모든 음들은, 절묘하게 피치가 떨어지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조차 기술이고, 그것조차 감성으로 들리는 것을... 셰인의 첫 솔로 곡이 발표된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그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내 인생의 명작 / 주성치의 서유기


내가 열심히 유투브를 뒤져서 찾은 영상을 보자마자, 진희는 웃지만, 나는 꿋꿋하게 올린다. 왜냐하면 이 영와는,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이니까. 주성치의 서유기, 일곱번을 보았지만, 부족하고, 영상으로 소유했지만 허전하다. 아마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영상을 클릭하고 10초 정도 안에 눈물을 흘렸으리라. 인간이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웃기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슬프고 가장 마음에 남는, 이미 예술의 반열에 오른 영화이다. 3류 특수 효과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그 스토리는, 진실로 복음에 아주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가장 뛰어난 설교라고도 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박영선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남자로서, 사랑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진실하게 배웠다.

시간을 넘은 사랑 / 시월애 - Must Say Goodbye


당신이 나와 같은 감성을 가졌다면, 어쩌면 이 영화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시간을 넘는 사랑 이라는 제목의 '시월애'. 제목은 must say goodbye. 김현철의 목소리도, 그의 음악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곡만은, 나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평범하지 못한, 시간을 넘어서야만하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 그리고 그 시간조차 극복하게 되는 아름다운 결말까지. 아주 오래전에 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영화로, 음악으로 남아 있다.

참된 사랑을 엿보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우연히도 이 명화를 군대에서 보았다. 며칠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리던지..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소유' 해야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이 영화는 한줄기 빛과 같다. 영화 속에서 한석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면, 자신의 행복을 접고 차라리 홀로 남는 것을 택한다. 아마 한국 영화사에 남을 영화이리라. 이 영화를 보고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한석규의 진실한 연기와,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노래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Who is there like you?


오늘도 탁목사님은 세련된 곡으로 선곡해 오셨다. 비록 부르기는 수월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곡이다. 약간 느린 미디엄 템포의,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잘 불러보지 못한 분위기다. 특별히 후렴이 너무 아름답다. 약간 끈적한 백코러스의 느낌도 좋다. 꼭 이 찬양을 부를 때는, 반드시 손을 높이 들고 함께 고백해야 할 것 같은, 아주 경쾌하면서도 적극적인 마음을 들게하는, 좋은 찬양이다. 오늘도 아름다운 곡을 알게 하심에 감사. ^-^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CFNI 다이어리 32 - Wings Field's Burger


버거라고는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밖에 몰랐던 나에게,
이곳은 신세계임이 틀림없다.

온갖 종류의 버거들이, 무한 경쟁속에서,
자신들의 자태를 자랑하며
오늘도 소비자들을 열렬히 부르고 있다.

그리고 결국 진희와 나는,
이곳 CFNI 근처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Wings Field's Burger 를 먹고자 하는 결심을 했다.

이 버거집에 대해서 딱 두마디를 들었는데,
'가게가 엄청 좁다' 그리고 '엄청 맛있다'

기대반 의심반으로 네비를 찍고 갔다.

그런데,
우리의 여정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네비가 우리를 으쓱한 동네 골목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진심 무서웠다.
사실 이곳 CFNI 근처는 우범지대이다.
밤에 집에 있으면 9-12시 사이에 끊임 없이 싸이렌이 울린다.
낮에 혹은 밤에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다가 여기는 총기가 휴대 가능한 나라 미국 아닌가?

그렇게 골목길을 달리다가,
조금 허름한 건물을 발견했다.
5평 정도 남짓한 건물에 쇠문 하나만 달려 있는 작은 건물이다.
역시나 유명한 집 답게 그 앞에는 차들이 빽빽히 주차되어 있다.

조금 주저하다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으악!
덩치 흑인 형님, 누님들 여섯 분 정도가 줄을 서서 꽉 차 있다.
그 뻘쭘함이란... (진실로 이곳에서 내 덩치는 아주 아담한 수준이다 ㅡ.ㅡ;;)

더군다나
그곳의 분위기는 정말 '영적'이었다.

가게 왼쪽 벽의 삼성 tv 에서는
마이클 잭슨 현역 시절의 강렬한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고
(진심으로 악한 영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 차가운 탁월한 잔인한 음악성이란..)
오른쪽에서는 큰 철판에 소고기가 지글지글 끊임 없이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진희는 형님 누님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아.. 그 뜨거운 분위기...
잭슨의 노래와 고기 굽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어 마치 흥이난 지옥과 같은 ㅡ.ㅡ;;

그러나
이것이 어려움의 끝이 아니었다.

보통은 진희가 다 주문하지만
엉겹결에 이때는 내가 주문하게 되었다.
슬프게도 주문받는 사람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흑인!
(발음 때문이지, 결코 흑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메뉴판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two meat burger, 진희는 one meat cheese burger
그리고 우리 둘을 위해 프렌치프라이, 콜라

난 용기를 내어서
"두장 고기 버거와 한장 고기 치즈버거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가씨가
"어쩌고 저쩌고 mus 어쩌고" 라고 한다.

으악!!! 도대체 무슨 말이야?
"sorry?"

또다시 아가씨가
"어쩌고 저쩌고 mus 어쩌고"

으휴..
"I'm sorry. I don't know what's that!"

갑자기 아가씨가 옆으로 가더니,
크고 긴 칼 같은것에다가
(길이가 최소 50cm는 되는, 보는 순간 흠칫 놀랐다)
머스터드 소스와 샤워소스(흰색같은 그것)를 묻혀서 보여준다.
아하.. 소스 뭐하냐 물은 거였군.
"둘다 머스터드로 주세요!"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흑인 형님 누님들 속에서 겨우 숨을 쉬며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어쩔 수 없이 경배하고 있을 때,
우연히 가게 오른쪽 고기 굽는 곳을 주의 깊게 쳐다보게 되었다.

오홋!
놀라운 고기의 크기여!
진희 주먹만한 다진 고기를 눌러서 굽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두장 고기 버거가 미스였다는 것을...

그렇게 10분이 지나 드디어 우리 것이 나왔다.
봉지를 받아들었는데, 진심으로 무거웠다. ㅡ.ㅡ;;

허겁지겁 차에 타서
(흑인 형님 누님들과 동네의 분위기로 부터 도망나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식탁위에 버거를 폈을 때,
나는 드디어 미국의 버거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아..
이것이 미국 버거의 최고봉인가?
빵 안에 고기를 넣었다는 표현이 어색한,
오히려 가히 스테이크에 빵을 가미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정말 거대한 버거,

나와 진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
다시 한번 '풍요(?)의 미국'을 확인했다.

그래서
배부름. >.<


CFNI 다이어리 31 - 영어? 으악!


대학교 입학했을 때 쯤인가,
한창 유행하던 영어 책이 있었다.
'영어 공부 절대로 XX마라'

그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열심히 죽도록 들으면, 들릴 것이다!'

그 책을 믿었던 나는 정말 눈만 뜨면 엉어를 듣고 다녔다.
영어 뉴스, 성경 등등

거의 3년을 듣고 다녔지만,
그러나, 영어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3년 동안 얻은 것이라고는
나빠진 귀와(음악을 크게 들어서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ㅡ.ㅡ;;)
영어에 대한 처절한 절망 뿐,

대학교 4학년 때 쯤 학교 도서관을 다 뒤져서
영어 공부에 대한 책을 다 찾아 보았다.

'절에 들어가서 공부했다'라는 무협지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영어 공부에 두 부류의 문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스닝 파' 와 '그래머 파'

어떤 이들은 죽도록 들으면 들린다는 논리를 폈고,
또 어떤 이들은 완벽한 문법 이해가 영어의 왕도라고 주장했다.

결국 나는 이 둘을 결합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열심히 들으면서 열심히 문법을 익히는거야!

그렇게 시간은 흘러 거의 서른살이 다 되었다.
물론 일상적인 회화 정도는 가능하고, 약간의 독해도 가능했지만,
뭔가 마음에 뿌듯한 마음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절망했던 것은
바로 '토플 공부'를 하면서이다.

토플 리스닝 파트를 혹시 들어보았는가?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사는 어떤 동물의 특성에 관한 강의를 7분 정도 읽어주고,
나는 10문제 정도의 듣기 지문을 맞추어야 한다.

하.. 그 절망감이란.
7분동안 강의를 듣고 나면, 정말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소한 30점 만점에 20정 정도는 맞춰야 한다는 현실,

나는 IBT 토플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내 영어의 인생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방법으로는
도저히! 영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처절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유학을 가더라도 이 상태로는
전혀 강의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미국까지 와서 강의를 이해못하면
그게 무슨 절망이란 말인가? ㅜ.ㅡ

어떻게 해야하나..
처절한 검색이 시작되었다.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 그 길!
내 인생을 구원해줄 유일한 그 길!

그리고 나서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 길을...

'기본적인 문법을 이해한 상태에서,
 영어 발음기호의 특징과 발음을 완벽하게 익히고,
 모든 영어 단어의 발음과 악센트를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연습하고,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계속 소리내어서 읽어라!'
(아, 이 한마디 한마디 금과옥조와 같은 내용이여!!)

이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진심으로 영어 잘한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방법,
이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 영어의 왕도!

미국에 오기 전,
지난 1년 동안 사전을 갖고 다니면서,
미친 사람처럼 발음에 매달렸다.

얼마나 황당했던가?
universe 가 유니벌스가 유너벌스라는 것을 알았을 때,
no 가 노 가 아니라 노우 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소위 기본적인 단어의 발음은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절망감... 그리고 이제 시작이라는 환희...

나는 오늘도 단어를 찾는다.
혼자서 초등학생 처럼 떠듬떠듬 영어를 읽는다.

그리고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지만
(마트 가면 진희가 다 해결한다! >.
여전히 영어를 고민하는 진희에게도
이것이 왕도임을 설득시켰다.

굉장히 더디다. 더디어서 속이 뒤집힌다.
어떻게 보면 미국까지 와서 내가하는 것은
한국에서 내가 하던 공부 그대로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단어를 찾고, 정확한 발음과 엑센트를 말로 익히고,
계속 책을 읽는 것,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가끔씩은 서글퍼도,
그래도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아주 조금씩 더 강의가 들리는 기쁨이 위안이 되어,
나는 오늘도 영어의 길을 간다.

이곳 미국에서...
그래서 행복.

p.s.1 신대원 시절, 천재적인 한성진 교수님이, 영어의 왕도에 대한 이 방법의 단초를 제공하였으나,
        무지한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호라! 나의 무지여!!

p.s.2 호주 영어? 안들린다. 영국 영어? 안들린다. 흑인 영어? 더 안들린다.
      why? 나에게는 겨우 일반적인 미국 영어의 발음기호 밖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다른 영어를 익히려면 그 발음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눈치 코치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 >.
      ex) audio production 클래스의 호주 아저씨 존과의 첫 만남에서 " ... 샌드 보드 ... "
            으잉? 그게 뭐지? 모래 보드인가?
            역시 눈치 빠른 진희가 알려주었다. sound board!! 오 마이 갓!!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참 행복 / Here in your presence


예배가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진 것은, 외로운 군대의 시간을 지나고나서 부터이다. 제대하고 나서 처음 공예배 시간에 앉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마치 따뜻한 누군가의 품 속에 안긴 것 처럼, 마치 군대에서 가장 높은 상관 앞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긴장하고 앉아 있는 그런 것 처럼,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것 처럼, 그렇게 내 마음이 은혜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예배 시간에 그렇게 서둘러 갔고,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았고, 내 옆에서 예배 중에 떠드는 누군가가 그렇게 미웠고, 온 마음과 정신과 생각이 오직 말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오직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in his presence) 안에 있을 때에, 그분을 예배하는 순간 속에서, 나는 언제나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주가 이기게 하시리 / Overcome


이 찬양을 함께 부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감격 그 자체이다. 하나님을 함께 높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온 세상의 권세와 능력이 주님께 속했다고 고백하는 순간은, 우리는 마음에 벅찬 감격을 준다. 세상의 고민과 근심, 걱정과 어려움, 전쟁과 환란 속에서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분,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든 권세가 주님 안에 있고, 모든 역사가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성도가 고백할 수 있기에 오늘도 모든 상황을 견뎌본다. (영상을 확대하신 후에, 오른쪽 하단에 'cc' 버튼을 클릭하시면 자막이 나옵니다. ^-^)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CFNI 다이어리 30 -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조나단과의 대화


CFNI의 school of worship의 교제는 생각보다 훌륭합니다.
비록 조나단 이전의 디렉터가 썼고, 각주도 없지만,
제 소견으로는 신학교 교양 수업 수준 이상은 충분히 됩니다.

웹상에는 CFNI에 대한 글이 불행히도 거의 없습니다.
혹시 관심은 있는 분들 위해서
수업 중에 있었던 좋은 내용들을
글로 남깁니다.

오늘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워십 리더인 조나단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찬양과 설교의 포커스를 설명하는 부분은
아주 흥미롭고 또 감동적이었습니다.

영어 울렁증(ㅜ.ㅡ)이 있어서 왠만하면 질문하지 않지만,
끝나고 조나단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나 : 조나단, 너가 아까 수업 시간에, 예전에는 학사 학위 정도만 있으면 좋은 직장을 구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석사 학위 그리고 그 이상을 배우려고 한다라고 말했잖아.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너가 그 말을 왜 했는지 요점을 놓쳤다.

조나단 : 물론 배움은 좋은 것이고 계속 되어야 한다. 너가 말한대로 과거에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학사 학위를 가지는 정도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석사 학위 그리고 그 이상을 배우려 한다. 그것은 사람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배움의 내용에 확신을 얻지 못하고 계속 더 배우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나 : 고맙다. 한가지 질문이 더 있다. 너의 워십 시간에 곡 선곡을 잘 살펴보면, 인간의 감정 행동의 주제보다는 하나님의 주권, 진리 등의 주제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그 주제는 사실 장로교의 메인 주제이다. 너도 아는 것처럼 CFNI는 오순절 신학의 바탕에 있고, 너 역시 오순절 바탕의 교회에서 자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거냐? 이것은 너만의 특별한 성향인가? 아니면 CFNI의 전체적인 흐름인가?

조나단 : 글쎄, 내가 생각할 때에는, 그것이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청중이 초신자이거나 할 때에는 더욱 진리 중심으로 곡을 선곡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나는 균형잡힌 크리스쳔이 되려고 하는 것 같고 그 결과로 그런 선곡이 나오는 것 같다.


오늘 조나단과의 대화 속에서 두가지를 확인했습니다. 한가지는 그 교단과 상관 없이,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강하게 다가옴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개혁신학의 방향과 굉장히 성향이 비슷해 진다는 것이고(리차드 마우 : 칼빈주의 라스베가스 공항을 가다 - 성경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개혁주의자라 부를 수 있다.(책이 한국에 있어서 각주 첨부 불가 ^-^;;) 또 하나는 우리의 배움에 있어서 진리를 기반으로 한 분명한 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고민은, 사람들은 많은 책을 보지만 왜 성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일까? 혹은 왜 방향이 잡히지 않고 더 혼란스러워 하는 것일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늘 그 이유에 대한 단초(端初)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지식을 담을 혹을 쌓아갈 기둥 혹은 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중요한 것은,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나의 지식과 인생을 지탱해줄 큰 틀을 담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행복.

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CFNI 다이어리 29 - 한미 FTA의 비보(悲報)


미국은 참 좋은 나라 입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은,
바로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이지만,
사실상 절대로 미국에 비할 바 못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뼈져리게 느낍니다.
평생 먹어도 다 맛보지 못할 종류의 마트의 과자들 앞에서,
행복이 아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비단 저 뿐일까요?

미국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의 디렉터 조나단은 그 어떤 사람보다 따뜻하고 실력이 있고,
내 친구 스티븐은 나를 구했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나 실력이 다 뛰어나서,
자칫 내 자존감이 많이 낮아질까 두려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슬픈 나라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진통제 두종류와
아주 간단한 이뇨제 한종류를
'할인'해서 7만원에 구입하면서,
조금 심한 병이라도 걸린다면
돈이 없어서 죽는 상황이 바로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가
정말 절실하게 피부에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저의 유학의 목표는
'아프지 않고' 잘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FTA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었습니다.
저는 여러 글을 읽어 보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보수적인 언론들이라도
이제는 다국적 기업의 복제약을 쉽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약값이 폭등'할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가격표가 의심스러울 만큼 값싼 곡물이 들어가서
'한국의 농업을 파괴'할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두렵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없는 이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많은 이들이 인생에 더 큰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의 적그리스도를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행정학을 전공하면서, 그리고 조금씩 생각이 깊어지면서,
결국 조직이 가진 힘은 그 제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국적 기업이 가진 무한한 탐욕을 제한할 틀이 없어지고,
한 국가의 국내법이 그 조직의 힘을 막지 못할 때,
그것의 피해는 결국 가지지 못한 자들이 당할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결국 그 무한한 권력과 힘은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혹은 이미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슬퍼집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생각은 더 깊어 집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진실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저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여러가지로 오늘은,
매우 슬픈 날입니다.

주께 모든 것 드립니다 / Pour My Love On You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한 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분께서 그것을 기뻐 받으신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비록 정확하진 않지만, 언젠가 기독교 강요 속에서 보았던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한 없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받으신다'라는 칼빈의 말이 기억난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감격하게 하시고, 우리는 가장 기쁜 마음으로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린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모습을 아름다운 문학적인 묘사를 통해 그려낸 이곡은,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독보적인 곡이다. 특별히 후렴이 너무너무너무 아름답다. 오늘 이곡을 알게 되어서, 그리고 함께 부를 수 있어서 행복.

주님을 묵상하라 / Stay amazed - Gateway Worship


세상에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에게 퍼져있는 놀라운 선입견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을 누리는 것이, 별로 대단치 않다는 선입견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피상적인 신앙 피상적인 찬양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을 향한 감격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또한 대단히 불행한 사실이다. 그분을 이해하면 할 수록, 그분을 가까이 할 수록, 내가 아는 혹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충만하시며 감격적인 분이라는 것을 온 지성과 감성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찬양은 참으로 독보적이고 아름답다. 우리의 모든 부분이, 세상의 모든 부분 속에서, 하루하루 지날 수록 그분을 발견하고 감격할 수 있기를, 진정한 참된 행복과 감격을 매일 새롭게 누릴 수 있기를..

나를 향해 부어진 주님의 사랑 / Your Love is Extravagant - Casting Crowns


Extravagant-someone who is extravagant spends more money than they can afford or uses more of something than it reasonable.(어떤 이가 extravagant 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거나 혹은 합리적인 정도보다 더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 이 찬양을 처음 들으면서, 정말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어로 낭비하는 혹은 사치스러운으로 해석되는 extravagant를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으로 설명한것은 참으로 합당하고 아름답다. 그분의 사랑은 받을 가치 없는 나를 향해서 부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신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신앙의 성숙의 진정한 척도가 바로 이 내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나와 이 글을 읽으며 곡을 듣는 당신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당연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음을 인식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사랑은 진실로 extravagant 하다. 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그 놀라운 은혜가 기억되고 또 기억될 수 있기를..

no reason to hide - hillsong united


원래 나에게 hillsong의 분위기는 별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cfni에서 여러번 부르기 때문에 함께 참여하며 은헤를 누린다. 사실상 이 곡의 전체적인 가사, 특별히 1절의 가사는 가슴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아직 곡이 낯설어서 그럴까? 그러나 한편으로 중요한 부분은, 곡의 흐름 속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점이다. 사도행전 속에서 제자들의 설교의 핵심은 부활이었다. 그분의 부활하심이 그들을 변화시켰고, 그토록 담대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에게 역시,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고 확신이고 소망이다. 그런면에서 주님의 부활을 강조하고 소망을 불어넣는 찬양은 더욱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또 불려져야 한다.

나를 붙드시는 주의 은혜 / Your Grace Is Enough - Chris Tomlin


내가 이해하기로 개혁주의의 장점은,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변화시키심을 받아들이고 강조하고 감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섭리 혹은 계획을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찬양은 아주, 아주, 아주, 놀랍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고, 죄인의 마음을 흔드시는(wrestle with the sinner's heart)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나오고, 그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고백까지, 어떤 의미에서 개혁신학이 갖추어야 하는 모든 요소를 단 한곡 속에서 담고 있다. 너무 은혜롭다. 너무 감격스럽다. 그분은 오늘도 나의 마음을 흔드시고 붙드시고 그분께 가까이 가게하시고, 그분의 은혜가 나의 마음 속에 부어지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은혜를 찬양하라! Your Grace is Enough!

Forever - Chris Tomlin



지극히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가지신 영원이라는 속성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다. 그분은 영원히 신실하시고, 영원히 거룩하시며, 영원히 함께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자녀됨으로, 그분의 영원하심 속에 참여하게 된다. 함께 찬양을 불러보면, 하나님만이 가지신 특별한 속성들을 주제로한 찬양들은 놀라운 힘이 있다. 그저 나의 소견으로는, 그 찬양의 가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영혼 가운데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영원하신 그분을, 영원히 찬양하라!

Give Thanks With A Grateful Heart


이 곡을 진심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십을 감사한다는 전반부의 가사가, 영혼으로 충분히 공감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and now로 이어지는 후렴구를 내 고백으로 받아들이며 부를 수가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 이 곡을 그렇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리스도를 나에게 주심이 너무 감사하다는 전반부의 가사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바로 어제, 함께 찬양하면서 이 곡이 내 영혼으로 들어왔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그리고 그분만으로 내 영혼과 인생에 충분하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감격적으로 다가 왔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Jesus, Lamb Of God


익숙하게 불렀던 찬양이지만, 새롭게 감격하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 음미하면서, 그렇게 들어보고 고봭해 본다. 가볍게 그리고 세련되게 부르는 창법이 너무 마음에 든다. Jesus, you are my all in all!

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사랑이란 그런 것 / 내가 되었으면 - No Reply


사랑이란 결국,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 가기 싫고, 외롭고 힘들때 생각나고 같이 있고 싶고. 그냥 그런 것. 그저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공감을 가지는 것, 맨 처음에 진희를 보았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왠지 이 사람과 같이 있고 싶다. 위로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댓가는 처절했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나 혼자만의 착각속에서 살던,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시간동안 뼈져리게 경험했어야 했지만, 어쩌면 지금에 와서야 아주 조금은, 오빠가 있잖아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래서 감사하다. 아, 이 노래 정말 가슴 저미게 너무 좋다. 행복.

너를 가까이.. /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 No Reply & 타루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어떻게 이렇게 이쁜 가사를 썼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겼을 때, 혼자서 고민하면서 일기를 써본 것은,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추억이자 아름다운 현재가 아닐까? 두렵지만, 조금씩 친해지면서, 점점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 설래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따뜻함, 그 이쁜 마음이 녹아 있다. 진희를 알게 된 것이 어느 새 8년이지만, 나는 아직도 진희를 알아가고 있고, 나의 선택에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에 대해서 조금씩 천천히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서야 조금은, 사람이 되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행복.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You Made A Way


시간이 지나 이곳에 익숙해지면서, 이곳이 얼마나 진지한가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사실상 조나단은 그의 영혼 깊숙히, 하나님 앞에 죄인된 인간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고, 그런 맥락에서 워십을 가르친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며, 그분을 높인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찬양이 너무 진실하다. 단순히 나의 결단이나 열심을 노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하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감격할 수 있기를. 언제나..

찬양의 감격을 맛보라 / You Are Holy, Lord


성령의 역사, 찬양의 영감은, 작은 영상으로 작은 스피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 감격, 그 감동은 진실로 너무나 강렬하고 뜨겁고 소중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무섭도록 탁월한 뮤지션들을 통해서 그 가치를 드러낼 때 그 벅찬 마음을,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cfni곡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곳에서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It's Your Love - Hillsong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표현 중에 하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고, 그분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고 아름다운 곡과 가사를 주시고, 그것을 통해 찬양 받기를 즐거워하신다. 사실 가만히 따져보면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는 곡인데, 이상하게도 좋다. 그저께 아침에 미국팀이 찬양할 때 처음 이 곡을 들었다. all the praise and glory to God! 이 부분을 부를 때 가슴이 벅차고, 표현하기 어려운 따뜻한이 마음에 가득하다. 이것이 찬양의 힘일까? 이것이 주님의 기름부으심일까?

주님을 높입니다 / Hosanna - Hillsong United


이곳에서 처음 접하게 된, 그리고 이곳에서 불렀던 찬양 중 가장 아름다운 곡이다. 이곡을 같이 부를 때는, 마음을 다잡아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펑펑 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하시는, 존귀하신 그분에게 온 맘을 다해서 손을 들고 영광을!

주를 향한 간절한 외침 / Rescue


남자에게 있어서, 군대는 특헤와 같은데, 모든 신앙의 내용이 새롭고도 진지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군대에서 병장을 단 이후, 첫 훈련이었다. 부대에서 가장 큰 훈련을 하는 기간이었고, 모든 군인들은 비밀 암호와 같은 것으로 서로 중요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것은 훈련 속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내 앞의 담당자까지 확인했던 암호표가, 내가 담당한 시간에 없어졌다. 소대가 발칵 뒤집혔고, 나는 영창을 가야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정말 진심으로 주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구해주시길 기도했다. 어쩌면 그 기도가 내 인생에 가장 진지한 첫 기도였을까? 그리고 감사하게도 암호표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이시지만, 나는 매 순간 어려운 순간마다, 주님께 손을 들고 기도한다. 구해주시기를, 구원하시기를, 이 어려움에서 전능하신 아버지의 권능을 발휘해 주시기를.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당신은 인생을 후회합니까?.. / Replay - 김동률


요즘은, 복음이 복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복음이란 뭘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죄사함을 핵심으로 한, 인생 전반을 향한 복된 소식이다. 세상에 후회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 노래의 제목처럼 rewind시키고 싶은 수 많은 순간들, 고통스럽고 아팠던 시간들, 가장 소중한 사랑을 잃어버렸던 순간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아픔이 있다. 역시나 뛰어난 아티스트 김동률은 그 아픔을 다시 끄집어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너무 아름답다.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이 노래에는 이런 슬픈 인생을 돌이켜줄 아름다운 복음은 없지만, 그러나 이 노래 자체만으로도 너무 훌륭하고 아름답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나를 포함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김동률에 열광하고 사랑하고 그의 음악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는 우리의 인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어쩌면 사람들이 현대적 교회에 실망하는 이유는, 전혀 내 삶을 설명하지 못하는 동떨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지쳐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잊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의 인생은 이 노래처럼 슬프고 아프고 아쉽고 어리석지만 그래서 때로는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내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 그래서 복음이다.

홀로가는 인생이지만 / 고독한 항해 - 김동률




아주 어렸을 때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거장의 숨결이 녹아 있는 그 아름답고도 생생한 소설 속에서, 인생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비록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분명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을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고독한 항해, 비록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소망을 붙잡는 아름다운 노래, 내가 느끼기에는, 어떤 의미에서 타이틀 곡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는 인생이 늘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라지만, 인생은 결국 고독한 것이고, 그 고독 속에서 천국을 바라보게 된다. 만약 인생이 온전히 행복만 있다면, 그 누구도 천국을 바라지 않으리라... 그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한걸음을 걷는다.

신구의 조화가 필요하다 / You shall love the Lord


세상에는 많은 어려운 주제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것은 바로 '신구의 조화'이다. 그것은 찬양 인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당연히 모든 예배는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고, 그 연령층이 함께 은헤를 누리도록 곡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것은, 사실 예술의 경지에 가깝다.(경험과 음악적 센스와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면에서 탁목사님은 아주 탁월하시다. 모던한 곡과 찬송가와 올드한 스타일의 곡을 적절히 배열해서 하나의 콘티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시다. 그래서 늘 주일 찬양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이번주 첨으로 이 곡을 영어로 불러보면서 굉장히 감사했다. 특별히 후렴 부분 for all the things you are(큰일 행하셨네) / for all the things you do(존귀하신 주님) 이라는 부분은, 작사자가 얼마나 고심하고 고심했는지 보이는 부분이다.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불행히도 한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 ㅠ.ㅠ 진심으로 오랜만에, 정말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찬양했다.

2011년 11월 15일 화요일

CFNI 다이어리 28 - 스티븐, 나를 구하다. (Steven saved my life!)


저번주 수요일 아침 7시 20분,

샤워하기 위해서 욕실로 갔는데,
갑자기, 오른쪽 아랫 배가 너무 아팠다.

너무너무 아파서, 바닥에 엎어졌고
몸을 펼수가 없었고 끙끙거리는 신음만 나왔다.

진희는 아파하는 나를 보고 당황하고,
내 머릿속에는 한국 병원까지 차로 30분이라는 것과,
그 병원은 그저 동네 의료원 수준이라는 것과,
그리고 혹시 맹장일 경우 그곳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닥쳤다.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운전은 도저히 못하겠는데...
미국 병원가도 영어에 자신없는데...

급하게 보험사와 연계된 병원을 겨우 검색하고,
스티븐에게 바로 전화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내는 확신이 없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전화하면 바로 올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티븐, 배가 너무너무 아프다. 맹장인거 같다. 미국 병원가야될 것 같아.
와서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괜찮냐? 많이 아프냐? 지금 당장 가야되냐? ok!'
(나중에 물어보니 스티븐도 당황했다고 한다. 농담으로, 헬기를 불러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는)

감사하게도 정말 10분만에 와 주웠다.
그리고 이곳 달라스에서 두번째로 큰 종합병원까지 15분만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에 계속 스티븐은 증상을 물어보고
(아마도 도착하면 의사에게 바로 설명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끙끙거리며 계속 대답하고,
진희는 나를 격려하고
(많이 놀랐을 텐데, 진희가 생각보다 훨씬 담대해서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들어가서
이름 말하고 주소 적고
혈압재고 맥박재고 피뽑고

모든 것이 답답한 미국인데,
감사하게도 기본 검사하고 ct까지 찍는데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 병원에서 영어는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의사가 물어보고 스티븐은 쉬운 영어로 다시 설명하고 나는 대답하고,
스티븐이 없었다면 검사나 제대로 받았을까?...

의사는 신장 결석으로 의심하고
바로 수액 같은 것과 몰핀을 주사를 놔줬다.

약(?)에 완전히 취해서 몽롱한 상태로 기분이 좋아져
아내와 스티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스티븐이 프로그래머로 3년을 일했다는 것도 이날 첨 알았다.
 도대체 겨우 22살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경험을 했을까?)
의사가 결과를 알려주었다.

역시나 신장 결석,
미국에서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혹은 너무 물을 안마셔서 그런지,
3mm 정도 되는 결석이 있다고 말해줬다.

의사는 여러가지 상황 설명을 하며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엄청 많은 말을 했지만
나는 한참 듣는 척(?) 하다가 스티븐에게 물었다.

'Steven, could you understand?'

내가 알아듣는 줄 알고 열심히 말하던 의사는 당황해서 나가고,
(사실 좀 미안하기도 했다)
나와 아내와 스티븐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사 처방전을 가지고 퇴원했다.

다시 학교쪽으로 와서 동내에 있는
wallgreen이라는 미국 약국 체인점으로 갔다.
그런데 약값이 무려 120불!
놀랍게도! 한국에서 들어온 보험은 약값은 커버가 안된다.

스티븐이 학교 보험(학생은 의무 가입)이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한다.
(스티븐이 안가르쳐줬으면 당연히 그냥 지불했겠지)
식사 후에 학교로 가서 보험 카드를 받고
다시 약국으로 가니 감사하게도 70불 정도가 나왔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오니,
거의 다섯시가 다 됬다.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운전해주고, 기다리고, 통역하고, 챙겨주고...

같이 있으면서
연신 고맙다고 너 덕분이라고 이야기할 때
스티븐이 하는 이야기

'any time any where'

오늘 운전해서 너무 피곤하지 않느냐고 하니
연신 빨개진 눈을 비비면서 하는 이야기가

'this is the adventure!'

과연 내가 미국인 스티븐 입장이었으면,
외국인인 누군가를 그렇게 잘 도와주었을까?
내 일처럼, 내가 아픈 것 처럼,
언제든지 부르라며 여유롭게 말하고,
또 모험이라고 재치있게 격려할 수 있었을까?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비록 피부 색도 언어도 음식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쌓을 수 있어서,
그리고 그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Steven, you saved my life!
You are me and my wife's angel!
Thank you for your kindness and grace for us! :)


p.s. 외국 병원을 처음 간거라 비용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보험과 연계된 곳이고 스티븐이 확인까지 해주었지만
       사실 미국은 믿을 만한 시스텝이 거의 없습니다. :)
       혹시라도 보험이 적용이 안되면 최소 200만원 정도가 예상됩니다.
       모든 비용이 보험사에서 잘 처리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때론 한곡만으로 충분하다 / You Are God Alone


하루라는 시간 동안, 아름다운 찬양 한곡을 알게 되고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충분한 것이 아닐까? 오늘 이 찬양을 처음듣고 함께 부르면서 너무 행복했다. 어쩌면, 인간과 그 어떤 부분에서도 비교될 수 없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수록, 그분을 더욱 높이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마이클 호튼과 박영선 목사님의 중요한 입장이기도 하다) 정말 아름다운 찬양이다. 진심으로 이 곡을 지은 사람은 존경스럽고 훌륭하다. 이 곡에 대한 많은 수식어 보다, 그저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이 곡을 함께 부른다면, 그분을 높인다면, 그것으로 진심으로 충분하다.

지상 최고의 아카펠라 / Biggest Part of Me - Take 6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고 아름다운 아카펠라 그룹인 take6는, 사랑하는 영전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크리스쳔이고, 최고의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가스펠 그룹이다. 한국에 왔을 때 tv에서 방영했는데, 분위기가 완전 부흥회 ^0^;;; 그런데 그들의 신앙 고백의 멘트는 절대 자막으로 띄워주지 않는 센스!! ㅡ.ㅡ;; 모든 take6의 곡이 이쁜 화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곡은 아름답다. 따뜻하다. 겨울이 되면 내가 늘 듣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곡, 혹시 여력이 되시면 가사를 찾아보시길, 정말 사랑스러운 가사이니까... ^-^

Let My Praises - Trinity Church


가사가 있는 영상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다. 전반부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을 높이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이루어진, 균형잡힌 찬양, 그리고 세련된 찬양이다. 오늘 이 찬양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Forever Reign- Hillsong United



늘 이곳에서 부르는 워십송이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아주 많이 어색한 영어, 그리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던락이라는 장르는, 듣고 있으면 때론 나를 지치게 한다. 끊임 없이 새로운 것, 혹은 깊은 것만을 원하는 지식의 교만 때문에 그런 것일까? 때로는 모든 가사의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찬양을 지켜보고 참여하고 배우는 것은 언제나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오늘 새롭게 배우게 된 곡.

2011년 11월 7일 월요일

엄마에게.. / A Song For Mama - Boyz II Men


어렸을 때 기억이 거의 나지 않지만,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손을 잡고 시장으로 함께 걸어가던 그 길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래서 스무살이 넘어서도, 항상 어머니 손을 잡고 어디 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벌써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에게 나는 소중한 아들이고, 무엇이든 더 해 주고 싶은 그런 유일한, 정말 세상에서 유일한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다. 처음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 mama, you are the queen of my heart, your love is like tears from the stars라는 가사 속에서 눈물 흘렸다. 세상의 모든 자녀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이다. 자녀는 어머니로 부터 그분의 모든 것을 받고, 다시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갈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될 모든 딸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찬양이 감성을 적시고 주를 경험케 하다 / Wrap Me In Your Arms - Lisa Gungor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나의 마음 속에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이다. 비교적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친밀하다는 말은 아직도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거기다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장로교 입장에서, 부드럽고 피부에 닿고 깊이 있기 보다는, 추상적 논리로 이루어져 피상적으로 흐르기 쉬운 설교 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친밀함을 강조하는 이곳에서 함께 찬양하다보면, 그래서 참 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오늘 함께한 찬양은 특별히 의미가 있었다. 비록 모던락 분위기라 나와는 잘 맞지 않았지만, 그 가사와 마음만은 너무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다. wrap me in your arms를 반복하고 묵상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껴본다. 장로교 목사로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한다는 것은 평생에 잡고 가야할 중요한 맥락이지만, 그러나 그 만남은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임에 틀림 없어야 한다는 것 역시, 평생에 잡고 가야할 중요한 진리이다.

2011년 11월 6일 일요일

달라스 식물원


귀향 - 김동률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처음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심도있게 배웠을 때에, 왜 죄를 지은 사실 자체를 없애주지 않으시는가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 아주 이상한 질문에 대해 혼자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우습게도, 겨우 미국 온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가끔씩, 과연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있었던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미래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노력할 뿐, 이 노래는 과거를 다룬다. 그리고 그 과거는 변하지 않는 과거이다. 눈만 감으면, 그 향기까지 맡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과거이다. 그 속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다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비록 내가 지금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내 마음속에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그렇게 '기억'하라고 했던 것일까? 미래는 불완전하지만, 과거의 하나님은 언제나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계시고, 그분을 기억할때 우리는 미래를 확신할 수 있다. 오늘도 아름다웠던 사랑과 만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억해본다.

원곡을 다시 발견하다 / Draw me close to You - hillsong


오늘 함께 찬양팀으로 섬기면서, 이 곡을 영어로 첨 불러 보았다. 역시 탁병진 목사님은 선곡이 너무 탁월하시다. 너무 좋았다.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용의 절반이 생략된 것을 발견했고, 원곡의 가사를 충분히 음미하면서 부를 때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you're all i've ever needed!!! 가사 한절 한절이 너무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주님께서 늘 나를 붙드시고 가까이 인도하시고 놓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찬송가의 재발견 / Jesus Paid It All (O Praise the One)



찬송가는 진부하지 않다. 다만 부르는 사람이 진부하게 부를 뿐이다. 조금의 리듬의 변화로도 찬송가의 깊이가 감동적으로 드러난다. 감사하게도 school of worship 코리아 찬양팀이 이 곡을 불러주셔서 알게 되었다. 너무 감동적이다. 가사를 잘 보면, 역시 원곡 가사가 너무 좋다. Jesus paid it all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원곡에 이어지는 새로운 파트는 얼마나 절묘한가? 이 곡을 알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좋다.

주님을 향한 갈급한 마음 / I Will Search - Israel & New Breed




어떤 의미에서 가사의 특별함 보다는, 멜로디와 분위기가 아름답다. 전체적인 곡의 중점은 후렴에 I will search for You And I will find You 로 이해된다. 이곳에서는 금요일마다 목회전공자들이 찬양팀으로 섬긴다. 흥미롭게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 곡을 부르면서 후렴 부분에서 전체적인 회중의 영적인 힘이 급격히 힘이 떨어졌다. 왜 그럴까? 내가 노력할 때에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부분에서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일까? 어떤 의미에서 이 곡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약간 가사의 의미에서 부조화스럽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전반부), 나의 열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 한분 그분에게 달려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곡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힘이 없어지는 것일까? 아직은 다 알 수 없다.

부족한 가사의 아쉬움 / No Chains on Me - Chris Tomlin


이곡도 상당히 자주 부르는 곡으로 굉장히 훌륭한 곡이다. 역시나 이러한 리듬을 소화하려면 찬양팀의 모든 파트가 정말 실력이 뛰어나야된다. 힘있는 멜로디와 분위기이지만, 아쉬운 점은, no chains on me라는 가사가 약간 공허하게 들려진다는 점이다. 무엇으로 부터의 자유인지,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가 찬양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깊은 부분까지는 설교에서 커버되어야 함이 분명하지만, 자칫 단순히 찬양과 신앙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다분하다. 그렇게 박수를 치고 부르짖지만, 과연 우리는 무슨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있는가? 오늘도 고민해본다...

You Won't Relent- Misty Edwards


어떤 의미에서 곡의 멜로디나 분위기는 전혀 나와 맞지 않지만, 그리고 한국 회중 찬양에서 불려질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cfni에서 자주 하는 찬양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가사가 굉장히 아름답고 한국에서 잘 불려지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전반부에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의 자녀의 마음을 완전히 다 가지시기 전까지 만족하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주님과 하나가 되고픈 자녀의 마음(오해의 소지는 있다)과 그분이 내 안에 불로 임하여 주시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나온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분의 열심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이 찬양은 굉장히 독보적이고 힘이 있다.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토모미카하라, 그녀의 노래에 빠지다 / I'm proud - 華原朋美




고등학교 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처음으로 싱글 시디(정규 시디가 아닌 작은 사이즈에 3곡 정도 들어 있는 시디)를 보게 되었다. 핑크색 옷을 입은 아가씨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쟈켓, 이거 나 빌려줘. 그리고 그날이 tomomi kahara에 빠지게 된 날이 되었다. 나는 여자 가수를 별로 좋아히지 않는다. 여자 배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유일하게 토모미 카하라만 좋아한다. 이 노래는 일본에서 정말 엄청 히트를 친 곡이고, 모델로 시작한 토모미 카하라는 가수로 발탁되어 이 한곡으로 최고의 여가수로 등극한다. 그리고 결국 일본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 곡의 프로듀서와 공개 연인이 된다. 그러나 역시나 사랑에 이별은 찾아오는가? 결국 둘은 헤어지고 토모미 카하라는 자살 소동을 포함해 추락에 추락을 거듭해, 이제 더 이상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큰 화면으로 보고 있는데 진희가 난리다. 일본 노래는 별로라고. 나도 동감한다. 사실 이상하다. 그리고 다른 가수는 모른다. 근데 이 가수만 좋다. 왜일까?... 잘 들어보면 노래가 음도 안 맞고, 지나치게 날카롭게 부른다. 하지만 매력있다. 끝음에서 살짝 음 높이가 떨어지는 그 맛이, 그리고 뭔가 목소리에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 느낌이 좋다. 내 페이스북 친구 중에 과연 이 가수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기술의 힘을 입어 추억을 남겨본다.

너무나 이쁜 사랑 노래 / I'm In Love


세상에는 수 많은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있지만, 언제나 이 노래는 독보적이다. 아름답다. 평범하지 않다. 가장 아름다운 누군가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그 마음을, 이것보다 더 이쁘게 캐치 할 수 있을까? 재미 있는 것은 라디라는 이 가수는 단지 1집만 냈을 뿐인데, 독보적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이런 목소리 이런 감성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감성을 가진 ccm 가수는 없을까? ㅠ.ㅠ 오늘도 들으며 행복에 빠진다.

CFNI 다이어리 27 - 미국, 과연 아름다운 곳인가? 스티븐과 홀치킨


* 에피소드 1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큐멘터리 몇편을 본 이후로
(sicko를 비롯한 마이클 무어 시리즈 and food inc)
나는 첨부터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오히려 무서웠다.
과연 그곳에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두렵게도,
내가 우려하던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확인한다.



* 에피소드 2

미국인 친구 한명을 학교에서 만났다. 이름은 스티븐,
22살이다. 한때 방황의 시절을 보냈지만,
큰 사고 이후로 주님을 뜨겁게 만난 착한 친구다.
우연히 학기 초에 아내와 셋이 이야기를 하면서 친하게 되었다.

진희 "스티븐! 오빠는 맥도날드 좋아한다!"

스티븐 "오노! 맥도날드는 악마의 음식이다!(정확한 번역 ^0^;;) 절대 먹으면 안된다!"

진희 "진부! 봐봐, 맥도날드 안 좋다잖아"

진부 "오 진짜?(나는 누가 말하면 이 말 밖에 못한다. ㅡ.ㅡ;; really?)
          나는 맛있던 걸?"

스티븐 "안된다. 미국 음식 최악이다. 음식에 약품 쓴다.
             쉐비(미국 자동차 메이커, 한국에서 쉐보레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쉐비라 부름)는
             자동차 손잡이가 그냥 빠지고
             심지어 달리다가 핸들이 뽑힌다!"

진부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 오 진짜?(ㅡㅡ;;) 미국 제품이 그렇게 최악이냐?"

스티븐 "진짜다, 나는 미국 제품 다 싫어한다! 야채만 먹는다!"



* 에피소드 3

아내가
일취월장한 요리 실력을 발휘하게 위해서,
코스트코(costco)에서 치킨을 샀다.
진짜 한국 대비 무지막지 거대한 코스트코를 뒤져서 닭을 샀다.
두마리가 한꺼번에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름이 너무 좋다. ^0^ 영 홀 치킨!(young whole chicken!)
어리고 토막내지 않은 치킨이란 이야기!

근데...
도대체 왜 이렇게 큰거야? ㅡ.ㅡ;;
이건 닭이 아니다 꿩이다 꿩!

집에 와서 진희가 닭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에 있다가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아뿔사, 진희가 영 홀 치킨의 다리를 붙들고 용을 쓰고 있다.
다리가 너무 두꺼워서!
아무리 칼을 넣고 힘을 써도 다리가 뜯어 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억지로! 뜯음.

천상의 솜씨로
닭도리탕을 해서 맛있게 먹긴 했는데,
기름은 넘치고(그렇게 진희가 걷어 냈는데)
가슴살이 너무 많고, 다리는 너무 크다 ㅡ.ㅡ;;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



* 에피소드 4

오늘 스티븐에게
닭 요리 해 먹은 이야기 했다.
스티븐이 속사포처럼 많은 말을 했지만,
이 세마디만 반복적으로 들렸다.

스티븐 "치킨(chicken), 케미컬(chemecal), 인젝션(injection)!!"

닭에다가 화학 약품을 집어넣어서 몸이 엄청 크다는 것!! ㅡ.ㅡ;;

스티븐 "계네 닭들 약먹고 가슴살 너무 커서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저 주저 앉아서 사료만 먹는다!"

오 마이갓!

역시 미국은...
무서운 곳이다! >.<

2011년 11월 2일 수요일

진희의 오징어 볶음

지금까지 진희는 인생을 정말 성실하게 살았다. 피아노, 학교 공부, 교회 섬기는 것들을 쉬지 않고 성실히 감당했다. 진희가 성실한 사람이라 너무 감사하다. 지금까지 바빠서 본격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던 요리들을, 요즘에 도전하고 있다. 놀랍게도 오늘은 오징어 볶음!!! 이곳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튀긴것, 짠것, 단것 밖에 없기에, 진희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오징어 볶음에 도전했다. 손질되지 않은 냉동 오징어를 사서, 녹이고, 손질하고 양념하고... 맛? 아... 천국의 맛이다. 한국의 맛이다.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솟아 나온다!! 진희 최고!! >.<


전설속에 누군가처럼


눈만 뜨면 음악을 듣던 젊은아이가, 군대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그곳은 음악이 충만한 곳이다. 군가! 나라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네박자에 담아 힘차게 걸어보지만, 그 허전한 마음이란... 4주 기본 훈련을 마치고 헌병 특기를 훈련 받기 위한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식사를 하기 위해 사병 식당에 발을 들려 놓는 그 순간, 바로 이 음악이 흘러 나왔다. 군가가 아닌 진짜 음악이!! '전설 속의 누군가 처럼' 식당 벽을 따라서 쭉 붙어 있던 열댓개의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때, 아...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음악의 신이 땅으로 내려와서 불러주는 듯 했다. 그때의 감격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들어본다.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이별이란 없는 거야


사실 조규찬이 노래를 탁월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힘이 있다. 그가 진심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까? 원곡을 존중하며 1절을 원곡대로 그대로 부른 그는 2절에 들어가 자유롭게 그의 스타일과 편곡을 가미하는데, 너무 아름답다. 이 좁은 하늘 아래에 이별이란 말은 없다는 가사는, 그 어떤 이별도 아픔도 헤어짐도 힘을 잃고 무색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즐기기 위해서, 또 어떤 이들은 등수를 높이기 위해서 노래를 하지만, 그는 그저 열심히 노래를 한다. never say goodbuy 그래서 그가 좋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시절에 들었던 노래가,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낯선 서울에 올라와, 아무런 희망 없어 보이는 학교 생활 속에서, 그저 집이 좋았던 나에게 학원이라는 큰 짐이 지워졌을 때, 나는 오고가는 어두운 차 맨 뒷자석에서 전람회를 들었다. 영혼을 토해내는 듯한 독보적인 김동률의 보컬에 실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불려진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분명히 교회에 나갔는데, 신앙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또 어떤면에서, 가장 문학적이고 절실하고 아름다운 한곡의 노래가 내 영혼에 위로를 주었다면, 주님의 일반 은총의 은헤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랑 노래가 바로 주님을 향한 간절한 고백으로 들린다면, 그것이 과장된 것일까?...


초등학교 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듣고 그의 팬이 된 이후로, 단 한번도 이승환이라는 가수의 궤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비록 넓은 음역대를 내지는 못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감성의 발라드로 신승훈과는 다른 또다른 그만의 길을 걸어왔다. 감사하게도 나는 동시대에 그와 살고 있고, 그의 노래를 통해 세상을 보았고 사랑을 보았다. 신앙이 없는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앨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어떤 절대자 혹은 낙원에 대한 동경을 바라는 곡이 있다. 다른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감성과 멜로디 그리고 영상, 노래의 가사의 내용은 사랑하는 이에게 꽃이 되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을 위해 꽃이 되어줄, 자신을 바쳐 모든 위험을 막아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수백번은 족히 들었을 이 노래는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그리고 신앙과 인생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나가수에서 이소라가 등장해서 이 노래를 부를 때까지, 나는 이 노래를 알지 못했다. 단 한마디의 노래를 들었을 뿐인데, 이 가수의 마음과 가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많은 가수들이 열창을 했지만, 오직 이소라만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마음, 그리고 이제 공허해져버린 그 마음을, 어쩌면 절대자를 잃어버린 모든 인간의 허전한 그 아쉽고도 절박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리라. 진심으로 바라기는, 우리가 가진 복음이 주님의 사랑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채우고 만족시키고 넘칠 수 있기를...

언제나 나의 감성을 적시는 노래 / Friend You Give Me a Reason



한국에 nothing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로 알려진 glenn medeiros의 곡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이 곡을 알게 되었다. 영어와 불어로 추정되는 언어가 섞여 있기에 단지 friend you give me a reason 이라는 짧은 가사가 들릴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남녀의 화음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고, 아무리 들어도 아련하다. 지금이든지 혹은 과거이든지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마치 꿈속에서 잊혀져 있던 가장 소중한 그 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언제든지 행복하게,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사랑한다.

CFNI 다이어리 26 - 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곳 CFNI에서는 CCM에 관한 철학적인 입장 등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미 교회 안에 깊숙히 들어온 CCM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하면 오순절 교파의 입장에서 잘 적용하고 사용할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보여줄 뿐이다. 감사하게도 3년 전쯤에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어쩌면 언제나, 서점에서 주님의 은혜가 임한다. 잊지 않고 이 책을 미국에 가져와서 이제 거의 다 보았다. 미국에서 음악 선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라는 점에서, CCM을 사랑하지만 비판과 격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학적인 충분한 각주와 성실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탁월하고 또 유익하다. 사라졌던 회중 찬양을 회복시킨 루터의 관점을 통해서, 디아포라와 아디아포라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학자들의 입을 빌어 현대의 CCM을 조명한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음악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조금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유익이 있었다.

CFNI 다이어리 25 - 궤적


나는 궤적이 없는 사람이다.
바로 어제의 일도 다 잊어버린다.
어제 치킨을 먹고는 까맣게 잊고,
오늘도 먹자고 한다.

그런 나에게 페북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이 다이어리들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를 향해,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삶에서 지나가는 짧은 단상들 속에서,
이제는 무엇인가 조금 기억하고 싶고,
그리고 이제는 조금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 대상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나를 더 느끼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태어날,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나를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혹시라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잠시 마음에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페북에
나의 인생의 한줄의 궤적을 이어 그린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CFNI 다이어리 24 - 한 사람


존경하는 조나단이
셋째 아기 출산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서,
사이먼이라는 이곳 졸업생 출신 강사가
잠시 우리를 가르친다.

불행하게도
그는 정통 영국인이며 영국 영어를 구사하기에,
나의 수업은 더욱 힘들어졌다.
사실상 거의 안들린다.

그러나 사실 더 아쉬운 것은,
조나단의 탁월한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것과
한가지 더 크게 깨달은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것은 동일하고
단지 강사 한명이 바뀐 것 뿐인데,
놀랍게도 모든 것이 변했다.

아무리 좋은 교재와 시간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풍성하게 만들고 일구어가는 것은
결국 한사람의 몫임을,
지금의 시간을 통해서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내가 있는 곳에서,
결국 나 한사람이 중요하고,
결국 나 한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 한사람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가,
내가 속한 조직의 삶과 죽음을 가른다.
그래서 한 사람을 잘 교육하고 성숙시키는 것이,
사실상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과 동일하다.
조직과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나를 갈고 닦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결국 이것이 관건이다.

오늘 깨달은 이것을,
잊지 않기를,

오늘도
행복.

CFNI 다이어리 23 - 박영선


마음이 다소 힘들어서,
아내와 함께 박영선 목사님 설교를 듣고,
같이 울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분을 묘사할 때
설교자라는 말이 어울릴까?

어쩌면,
진지한 신앙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의 고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설픈 논리와 행복론으로 덮지도 않는다.

가장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인생 앞에서,
신앙인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그리고 절망 속에 우리가 가진 복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자신이 바로 그렇게 고민했음을, 바로 그 내용을
사람들 앞에 담담히 풀어 놓는다.

얼만큼 더 노력해야,
그분을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는지
방법도 모르겠고, 능력도 없다.

하지만
한번 사는 인생 속에서,
닮고 싶은 유일한 한 사람을 찾았다면,
그리고 그분의 설교를 듣고 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행복.

CFNI 다이어리 22 - 영혼의 의사


외국에서 지낸 짧은 시간이지만,
가장 마음이 덜컥 할 때는 아내가 아플 때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났다.
훈남은 아니시지만, 따뜻하게 생기신,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듣고,
신기하게도 어디가 아픈지 파악하고서는
금방 처방전을 써주신다.
괜찮은지 약이 잘 듣는지,
전화도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아내 몸이 많이 좋아져서
한번 더 병원에 갔는데,
부인으로 생각되는 간호사 선생님은
마치 자기 병이 다 나은 것 처럼
우리보다 더 좋아하신다.
아무래도 이분들 크리스천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따뜻한 분들을 만나고서는,
마음에 한 단어가 생각났다.

'영혼의 의사'

당연히 목사라면,
영혼이 아픈 곳을 살펴주고,
그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서 방법을 알려주고,
잘 낫고 있는지 관심도 가져주고,
또 치유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야하는데,
과연 내가 그러했는가?
그리고 과연 내가 그럴만한 능력이 되는가?

곰곰히, 그리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아픈 마음으로 생각했다.

주님께서 나를 선하게
이끌어 주시기를..

CFNI 다이어리 21 - 책의 고통


때론, 아주 가끔은,
마음의 번민과 고민이 너무 심해서
마음을 심하게 다친다.

책을 많이 보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

요즘 아주 가끔,
차라리 내가 읽었던 책들과 배웠던 내용들을
한 10년 후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떤 이의 이야기든지
듣자마자 바로 분석이 되고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고
이 사람은 이것이 문제이고 이렇게 해야 해결이 될 것 같고,
혼자서 그 말을 마음에 두고 마음에서 싸우고,
그렇게 진을 다 빼버리는 나는
어쩌면 정말 불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더 큰 고통과 책임감을 동반하는 것이리라,

그저
위대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는,
그분의 보혈을 사랑하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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