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아주아주 오래 자고 일어났더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곳이 미국이라고 하더군요. 마음은 한걸음에 한국으로 달려갈 것 같습니다. 그저 자동차로 몇시간 운전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엄두가 나지 않네요. 착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언제나, 시간도 뛰어넘고 공간도 압축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노래를 전합니다.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고국을 그리며.. / Small World - 윤상
비행기에서 아주아주 오래 자고 일어났더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곳이 미국이라고 하더군요. 마음은 한걸음에 한국으로 달려갈 것 같습니다. 그저 자동차로 몇시간 운전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엄두가 나지 않네요. 착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언제나, 시간도 뛰어넘고 공간도 압축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노래를 전합니다.
신앙의 한걸음 / 한걸음더 - 윤상
아주 오랜만에 운동을 했습니다. 작은 운동장 트랙을 도는데, 겨우 몇바퀴 걷는데 적잖이 힘이 들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운전을 해야하는 이곳에서는, 다리 힘이 약해지기 십상입니다. 한걸음씩 힘들게 내 딛는 저의 다리를 보면서, 신앙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논리를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유익하고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나의 신앙의 한 걸음을 내 딛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합니다. 감정의 기복과, 죄의 유혹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나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는 현실과 싸워야 합니다. 그 한걸음이 참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도 함께 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힘을 내실 수 있기를.
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하나님께 모두 드리리 / Amore Dei - 박종호
신학하는 모든 과정도, 눈물 흘리며 성경을 읽었던 시간도, 내가 봐야 했던 수 많은 책들도, 그 결론의 끝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셨고, 나는 그분을 발견했다. 그 흔들릴 수 없는 확신과 기쁨. 인생은 여전히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의 배경과 현실 속에 계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가장 매력적인 분이시다. 참된 크리스천은, 현실의 고통속에서도, 이제는 도저히 그분을 부인할 수 없을만큼 그분에게 빠져서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에게 마음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분을 알고자 노력했던 과정들은 고통스럽고 아팠지만, 어느 정도 지나온 이 시간에 이르러, 그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시간이었고, 이제 또한 더욱 주님을 알기를 원한다. 나는 일반은총의 영역 속에서, 대중적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지만, 그러나 그분을 노래하고 그분을 바라는 음악은 비교될 수 없을 만큼의 가치와 특별함을 가진다. 영혼을 다해 부르는 나의 영웅 박종호씨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은, 수십번 수백번 반복해서 들어도, 언제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따뜻하게 한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다함없는 그품, 내 마음 모두 드리리..
2011년 12월 27일 화요일
소통을 위한 성숙 / 벽
내가 고집불통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를 만나고 알았다. 내가 집에서 누군가와 이야기 할 때에, 컴퓨터를 쳐다보고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고서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다는 것도, 아내를 만나고 알았다. 그리고 사랑의 핵심은, 결국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에 들어주는 것임을, 아내를 만나고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키는 나에게, 아내가 먼저 성경 읽고 기도하라고 조언했다. 부끄럽고 감사하다. 아주 오랜만에 진지하게 성경을 통독하고 기도하는데, 신비하고 새롭다. 어쩌면 나의 평생을 통틀어 언제나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겠지만, 그러나 좀더 내 마음을 하나님께, 나에게 늘 말을 건내는 아내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잠깐의 순간에 쏟을 수 있기를.
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우린 모두 격려가 필요하다 / 괜찮아 - verandah project
인생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좀더 어렸을 때 부터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때론 가진다.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기적적인 간증들, 몇마디 조언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 처럼 생각하게 하는 설교들, 그 안에는 진짜 인생이 없다. 며칠 동안 영어로 작문을 하면서, 부르트는 입술을 보면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쉽지 않은 모든 과정들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인생에 쉬운 것은 없고, 신앙은 쉬운 것이 아니기에, 그누구에게라도 사실은 격려가 필요하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좀더 힘을 내라고. 몰아치는 채찍은 누구라도 휘두를 수 있지만, 인내 안에서 참된 사랑의 조언과 격려는, 진실로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것임을, 요즘들어 깨닫는다. 나는 주의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격려가 필요하다. 어쩌면 성경은 태초부터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부족한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주의 은혜와 사랑, 그것이 오늘따라 그립고 소중하다. 어쩌면 복음 그리고 성화가 그런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주제를 담은 CCM을 듣지 못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김동률의 목소리 속에서 위로를 경험한다. 극단적인 비판을 가하자면 이 노래의 끝이, 그저 긍정적 마인드의 결과물로써, 부흥신학에 비교될 만한 이단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 노래의 시간을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연장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성도라도, 인생의 실패와 좌절은 없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오직 주의 격려와 위로만 남는다. 그래서 행복.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크리스마스, 주님을 향한 경배의 고백 / O Holy Night - IL DIVO
이 땅에 오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모든 것의 창조주 되시며,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신 주님께서, 친히 낮은 곳으로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주님이 오실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영원 전부터 작정하신 주님의 그 계획 안에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이땅에 임하심으로,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참된 주의 사랑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무한한 주님께서 유한을 입으셨고, 무한의 거룩이, 가장 연약한 모습을 입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주본적이 없었지만, 오늘 우리 모든 인간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만지고, 주님을 경험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주님을 버렸지만, 주님은 친히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움을, 그 구원의 성취를 오늘 바라봅니다. 오 사랑스런 예수님, 제 마음을 다해 주님을 경배합니다. 보잘것 없는 제 마음과 몸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의 오심을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구원의 성취를 위해 수천년을 기다려온 주님의 사람들이 당신을 기뻐합니다. 이땅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러 오신 주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당신의 성부 하나님을 향한 대속과 순종을 통하여, 감히 죄인이 의를 입고 구원을 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십니다. 이 거룩한 밤 기쁜 밤, 주님을 제 온 마음을 다해 높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평생 주를 더 사랑하게 하시고, 주를 위해 살게 하시고, 주와 동행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원합니다. 주의 나라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오직 주께만,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하늘의 사랑을 맛보기 /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Christmas in Bossa
크리스마스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
겨진다. 물론 비판하자면 끝이 없다. 주의 날이 인간의 날로 변질된 그 아픔은, 분연히 일어나 힘써 싸울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오심을 기억하고 누리고 감격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좀더 넓혀 볼 일이다. 크리스마스처럼 아름다운 날이 있을까? 우리의 소중한 마음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표현하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가장 순수한 사랑이 가진 그 아름다운 속성은, 나의 필요가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에 민감해지고, 나의 행복이 아닌 그 사람의 행복을 채워줌으로써 나 역시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것이, 이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가장 순수한 사랑의 그림자라고 부른다면, 지나친 논리적 과장일까? 소중한 시간들은 때론 덧 없이 흘러가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 그리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은, 진심으로 언제나, 영원에 닿아있는 듯하다.
Winter Wonderland - naomi & goro
이제 조금 나이가 드니, 과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신경쓰지 않았던 '편안함'에 대해서 좀더 마음을 쏟게 된다. 물론, 복잡하고 섬세하고 날카로운 것이 종종 큰 힘을 발휘하지만,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것은 결국 편안함이 남는 듯 하다. 만나서 편안한 사람, 들어서 편안한 음악, 잠시 추억에 잠기더라도 마음이 행복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편안함. 모든 것에서 떠나 잠시 먼곳에서 지내다보니, 나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나는 과연 그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었을까? 아주 오랫동안 쓸데 없는 것으로 아내를 불편하게 했고, 집요한 논리들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었고, 의도적인 침묵들을 사용함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던, 그런 과거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앞으로 나의 인생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마음에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내에게,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에 관한 것에서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아야 하겠고, 나의 모든 지성과 용기를 동원하여 싸워야겠지만, 그러나 그 외의 모든 시간들은 그저 환한 웃음으로 편안함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행복이 아닐까.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O Holy Night - NSYNC
중고 CD가게가 유행하던 한때, 자켓에 남자 4명 정도만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가슴이 떨려 무조건 구입하던 때가 있었다.(물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음악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정말 아쉬운 것은, 함께 나누고 싶은 크리스마스 곡들을 골라보지만, 사실 마음에 썩 드는 곡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음악적인 식견이 좁은 것을 탓해 본다. 구관이 명관일까? 대중적이지만, 그러나 오랫동안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 주는 NSYNC 앨범 중에서.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처음만든 작은 트리 /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Beegie Adair Trio
오늘 아내와 아주아주 작은 트리를 샀다. 조그마한 장식 방울들과, 밝힐 작은 등들, 그렇게 트리를 꾸미고 나서 나는 알았다. 이 트리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든 트리라는 것을. 교회를 위한 일로서가 아닌, 그저 나를 위해서 나의 가족을 위해서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해본다. 생각해 보면, 뭐가 그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었을까? 많은 토론들을 했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지나보면 결국 아름다운 추억들이 남는다. 오늘따라, 늘 시도때도 없이 심각한 이야기만 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가장 심각한 모습이 아닌, 가장 여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가장 편안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저 두팔을 벌리고, 주님 오심을 기대할 수 있기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 Beegie Adair Trio
누구에게나 한해가 지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어린 아이조차도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는 시대, 모든 역사가 쉬운 때가 없었지만 특별히 어려운 요즘, 적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지금 만큼은 마음에 평안으로 쉼으로 맞이하고 싶다. 언젠가부터인가 연주곡이 참 좋아졌다. 경쾌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주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 He's Born - The First Christmas
IMF 이후에, 그토록 화려하던 크리스마스의 거리의 장식들이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나라가 어려워지고 마음이 흉흉해지자, 실용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던 그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크리스마스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의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그분의 오심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고 영원히 찬양받아야 한다. 오직 깊은 절망 속에서 신음하던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이땅에서의 가장 슬픈 마음이라도, 그분을 통해 약속받은 구원과, 미래와, 그분의 자녀됨과,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감격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다. 그분은 구원자이시며 구원이시다. 아름다운 만남은,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것 처럼, 사랑스러운 음악은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인간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악기가 있을까? 아카펠라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놀랍게도 우연히 찾은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그토록 수 많은 캐롤이 있었지만, 이 한곡이야 말로 주님을 말하고 높이고 바라보기에 합당할 만큼 너무 아름답다. 주의 날을 기다리며 소망하는 작은 나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일까..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CFNI 다이어리 36 - 신장 결석,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안 좋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소변이 잘 안나와서 약간 이상하다 느꼈는데,
역시나 한달 전에 신장 결석의 고통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은근히 아프기 시작해서
급하게 진통제 두알을 먹고 버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쯤에 작은 한국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운전해서 가려고 하다가(40분 정도 걸립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귀한 승록 전도사님께 운전을 부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전도사님이 태워주셔서
병원으로 향하다가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숨이 쉬기 힘들고, 진통제가 전혀 듣지 않는지
배를 칼로 찌르는 것 처럼 계속 아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방향을 틀어
예전에 갔던 베일러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어리버리 영어로 설명했습니다.
신장 결석 같다, 예전에 왔다, 너무 아프다.
진통제가 안 듣고 소변을 잘 못본다. 등등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혈압은 151까지 올라갔습니다.
진통제가 안 듣는다를 이야기를 듣고,
몰핀을 놓는데 지난번 보다 훨씬 많은 양을 놓았습니다.
몸이 찡하고 기분 나쁜 안락감,
이미 아침 밥 부터 먹지 못했기에
점심이 넘어간 시간에 강한 약은 저의 속을 뒤집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몰핀도 듣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픈 통증, 정신은 어지럽고 몸은 떨리고,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몇시간 동안 앉아 있고,
저는 몇번 잠깐 잠들었지만, 어지러움에 다시 깼습니다.
낮 2시반쯤 들어가서,
10시가 넘어서 검사가 끝났습니다.
결과는 똑같이 신장 결석,
하지만 저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작은 희망은 돌이 조금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귀한 승록 전도사님 부부가 잠깐 돌아갔다가
병원으로 저희를 다시 데리로 왔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추운 밤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아픕니다.
진희가 열손가락 열발가락을 다 땄습니다.
검은 피가 나오고, 화장실에서는 다시 토를 하고,
먹은 것도 없이 약 때문에 체했는지 속이 정신을 못차립니다.
마음이 천사같은 승록 전도사님 사모님이
죽과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의 12시간을 저를 살폈던 진희는 너무 지쳐 잠이 들고,
이제 저 혼자 남았습니다.
돌이 움직이려면 물을 먹어야 되는데,
체해버려서 물을 못마십니다.
물을 못마시니 돌이 움직이지 않아 고통이 멈추지 않습니다.
고통이 멈추지 않는데, 너무 피곤해서 뛸 수도 없습니다.
한발로 쿵쿵 뛰다가,
잠시 앉아서 잠들었다가
다시 아파서 일어나서
다시 뛰고 움직이다가,
그렇게 몇시간을 지나
소파에 머리를 뭍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주여..
그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니
돌이 많이 움직여졌나 봅니다.
이제 놀랍게도 몸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절대 안가던 병원을
미국 온지 네달만에 두번을 갔습니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다시 먹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어제의 힘든 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소중합니다.
언젠가 결석의 아픔이, 산통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12시간 정도 쉬지 않고 고통을 겪으면서,
주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아픔의 연속입니다.
적어도 어제 그 순간 만큼은 너무 힘들었고,
이곳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큰 병원에서도 해줄 수 없는 일이 있고,
결국 내 안에서 주님이 해결하셔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와 위대한 탄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흠 많은 멘토들도, 그렇게 자기 멘티라고 위하고 돌봐주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이겠는가? 그분은 내 아버지이신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실 수는 없습니다.
최고의 멘토 밑에서 교육 받더라도,
결국 노래는 자기가 해야하는 것 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의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련이고 어려움이고 고통입니다.
얀시의 명저,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의 내용처럼,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결국
안개 속을 걷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이미 나에게 충만히 부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오늘은 회복되었지만,
또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릅니다.
그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루에 감사하고 하루에 기뻐하고 하루에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갈 때 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유지되길 바랍니다.
그분의 우리의 아버지 되심과,
나와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과,
모든 인생의 굴곡과 아픔들 조차도
그분의 사랑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처음 그들을 만난 날 / 텅 빈 거리에서 - 015B(윤종신)
아주 아주 오래전에,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던 밤이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가는 우리의 차 유리창으로, 나무들은 팔을 뻗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승용차 뒷자석에서 흐르던 라디오 소리가, 따뜻하지만 쓸쓸한 빗소리와 섞여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나오고 몇초 흐른 후에, 사랑하는 동생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노래가 너무 감동적이라는 소리 없는 싸인을 보냈다. 그날이 내가 o15b를 처음 들은 날이었다.
당신을 향해 찾아갑니다 /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 015B
생각해보면, 이 노래가 나왔을 때에는 모두가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가는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다. 테잎은 원래 조금씩 잡음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친구가 좋은 노래라며 복사해줬던 이 테잎은 유달리 잡음이 더 들어갔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그저 공부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때였지만, 이 노래는 언제나 그렇게 절실했었다. 아주 복고적인 신디 사운드가, 절절한 보컬의 노래가, 리버브가 잔뜩 들어간 드럼 소리가 함께 어울려서, 어리고 어렸던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이제는 거의 누구도 테잎으로 음악을 듣지 않지만, 나는 놀랍게도 세월을 뛰어넘어 이 노래를 추억한다. 어쩌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세상은 이렇게 넓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걸음에 그 사람에게로 달려가고, 또 사람들은 노래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부른다. 나는 생각한다. 주님의 본성인 사랑이 인간에게 부어졌기에, 인간은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아직 그 본질과 목적이 희미한 그 사랑이 참된 사랑의 모습은 아니다. 인간은 결국 깨닫는다. 오직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참된 평화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 넓고도 안전한 그 사랑이 우리에게 안식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안식을 가진자만이, 이제는 모든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인 주님의 마음으로, 참된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고.
시간이 흘러서도 사랑하기를.. / 우리 아름다운 시간은 - 루시드 폴
언젠가 어르신 한분이 교회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은퇴하신 이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신 목사님이셨다. 소파에 마주 앉아 차 한잔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마치 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나의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일종의 환상을 느꼈다. 얼마 안되는 구제금을 받으시고는, 나를 위해서 해 주시는 축복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눈물 겨운지.. 언젠가 젊은 시절은 훌쩍 지나가고, 언젠가 몸에 힘이 떨어져 걷기가 힘들어지고, 언젠가 날카로운 지성도 무뎌지겠지만, 그 날이 두려움으로 찾아올 것인지, 혹은 새로운 마음과 희망으로 찾아올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사회는 늙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교회 조차도.. 이미 사회는, 동안, 성형, 몸짱등으로 늙음에 대하여 패배와 실패로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교회 조차도 젊은이 중심의 목회를 외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나의 미래를 얼핏 보았다. 고음을 보이지 않아도, 편안하고 따뜻한 몇 안되는 목소리 루시드폴의 노래가 흐르고,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제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아내를 향한 사랑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더욱 깊어지기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데울 수 있기를, 인생의 모든 슬픔과 아픔과 기쁨을 겪은 후에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은 포기하지 않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조금더 커져서 내 마음에 남아 있을 수 있기를.
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 Furious - Bethel Church
정말 복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다시 풀어 설명한다면, 정말 하나님의 furious한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신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부끄럽지만 몇권의 책들을 보면서, 결국 나는 교회사에 두가지 흐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음이라고 말하며 실제로는 율법을 설명하는 자들이 있고, 복음을 복음되게 설명하는 자들이 있었다. 주의 '절대적'인 사랑을 설명하고 전하며 설교함으로, 결국 죄인이 돌아오며 변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주의 절대적 사랑이 아닌, 인간의 신을 향한 최고의 합당한 태도만을 설명함으로 인간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겨우 서른 둘의 목사가 어떻게 이들을 다 판단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주 조금은 이해한다. 그들의 마음을, 내가 설교를 준비할 때, 내가 강단 앞에 서면, 바로 내가 그 마음이니까. 주의 복음, 주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하면, '절대로' 사람들이 안변할 것 같고,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다양한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바를 힘을 다해 이야기할때 사람들이 변할 것 같다는 바로 그 마음이, 내 마음안에도 충만하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드러난 본문을 설교하면서, 내 마음이 떨렸다. 이렇게 설교해도 되는가?... 이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 이러한 담대한 가사가 놀랍고 부럽다. 그분의 furious한 사랑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고백. 내 인생을 변화시킨 첫 책이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바로 그 책이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그 책을 읽은 것이 1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책 언저리 어딘가에 머물리 있는 듯 하다. 여전히 복음이다. 결국 거기에 달려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2011년 12월 10일 토요일
CFNI 다이어리 35 - 부흥회 1
아내와 함께하는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는,
같이 은혜받은 시간들을 이야기 나누는 것입니다.
정말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몇 교회들이 함께 모여 가진 부흥회에서
아내와 같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고민하던, 신학과 심리학의 평행선과 같던 그런 느낌들에 대해서
거의 결정적인 해답을 얻었다는 현실적인 기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깨달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저 깊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고난을 지나가고 넘어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복음이 자신 속에서 움직였던 과정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눈물로 설교하신 오늘의 시간은,
심리 혹은 상담에 대해서 어설픈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저의 마음을 겸손케 했고,
참된 설교자가 가져야 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정말 참된 설교자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설교학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습니다.
설교에서의 핵심은, 예화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교의 내용이 진실로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정말 넓습니다.
주님이 귀히 쓰시는 목회자들이 참 많다는 것을 확인하니,
참 부럽기도 하고, 많이 놀랍고,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귀한 목회자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성도님들을 생각하니,
그들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맘이 행복한데,
주님은 얼마나 더 행복하실까 생각이 듭니다.
저도 좀더 성숙해 질 수 있기를,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깊이가 좀더 더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 하루 누군가가 저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좀더 경험할 수 있기를
조심스래 바래 봅니다.
그래서 행복.
2011년 12월 8일 목요일
크리스마스의 놀라운 기쁨을 맛보다 / The Gift of Christmas - Prestonwood Church
나는 극단적인 경험부정주의자이다. 어쩌면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 때문에,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멀리해왔다. 오직 지성으로! 이것이 나의 모토였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영지주의, 이원론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주님은 언어로 지성으로 존재하시지만, 그는 실제로 나를 만지시고 대화하시며 진실로 함께 하신다. 그는 나의 영혼을 충만케하시는 구원자이시지만, 그는 나를 오늘도 치료하시고 호흡케하시며 나에게 육체적인 힘을 주신다. 주님은 그런 편향되고 연약한 나에게, 이곳 먼 땅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게 하신다. 귀한 승록 전도사님 부부와 함께 Prestonwood Baptist Church 의 The Gift of Christmas 라는 공연을 보고 왔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mega church. 넓고 넓은 미국 땅에, 진실로 풍요로운 디자인으로 세워진 교회였다. 두시간의 공연 시간 동안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완벽한 조화.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의 가장 높은 수준의 공연이었다. 주님이 주신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능력 '창조성'을 통해 보여지는, 예술과 복음에 대한 이해와 표현은, 진실로 내가 이곳에 온 댓가를 갚고도 남을만큼 감동적이었다. 나는 대형교회에만 복음이 있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모든 대형교회가 이단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나는 멀티 미디어에만 복음이 있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멀티미디어로는 복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나는 언어로만으로는 복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언어 안에만 복음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인간의 몸짓이, 영상과 소리가, 영감이 하나가 되어서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이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너무나 아쉬웠던 설교, 그렇게 화려한 공연은 결국 마지막 calling의 시간을 위해서 존재했지만, 그러나 그 calling이 너무나 계면쩍었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그리스도가 오심을 들으며, 그렇게 우리가 눈물 흘리는 것은, 그토록 인간의 삶이 죄로 인해 아프고 절망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공연에는, 주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너무나 강력했지만, 당신이 죄인이라는 메시지는 너무나 희미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그분은 사랑을 구걸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는, 우주의 왕의 인간이 되심이며, 그분에게 전혀 의무가 없지만, 그럼에도 부으시는 그분의 주권적 사랑이다. 우리가 받을 자격이 진실로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복음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가장 화려한 예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가장 깊은 말씀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존재해야하고, 결국 그 두가지가 만날 때에, 일반은총은 일반 은총의 아름다움이, 그리고 결국 그것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주의 은혜와 말씀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장로교 신학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넘어서는 큰 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런 교회를 꿈꾼다. about this video ○ Copyright(c) 2011 Prestonwood Church. All rights reserved
2011년 12월 3일 토요일
The Time Has Come - Hillsong United / Today! it's all or nothing
한학기의 배움을 바탕으로 찬양을 구성하라는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올린 찬양 곡들을 쭉 들어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반신반의하며 정리한 것들... 그러나, 이곳에서의 공부가, 결국 이곳의 찬양을 기억하며 올린 영상들과, 함께한 나의 짧은 단상들이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원히 기억하리라. 이곳에서의 생활과 찬양과 감격을.. 이곡은 너무 강렬한 가사와 열정이 담긴 찬양이다. 기독교 인에게는 언제나 그분을 향해서 서고 싶은 간절한 결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내가 가장 포기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포기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거는 바로 그것이다. today, it's all or nothing. 그분에게 모든 것을 걸아라! 그분에게 모든 것으로 찬양하라!
주님의 위대하심, 나는 주의 것입니다 / Rooftops - Jesus Culture
집에 돌아와 다시 한번 이 찬양을 들으면서, 나는 또 한번 경이에 사로잡힌다.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벽하게 이어지는 신앙의 고백,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나는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한다. 내가 나의 것이라며 나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고백, 평생동안 이것만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또 행복하다. I'm yours.
진정한 찬양을 드립니다 / The Heart of Worship
꼭 기록해 놓으리라, 그날의 감동을. 모든 찬양 인도자들이 가지는 강박관념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다이나믹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악기들이 동원되고, 키를 올리고, 목소리를 높이고, 손을 들고. 충분히 모든 것이 의미가 있지만, 그러나 자칫 그러한 상황 속에서 찬양이 결국 내 영혼의 고백이라는, 가장 내면의 은밀하고 잠잠한 곳의 고백이라는 것이 간과되기 쉽다. 그런면에서 가브리엘은 언제나 탁월하다. 가장 강렬한 찬양은 강렬하게, 그러나 가장 섬세하게 내면의 고백을 필요하는 곡은 가장 잔잔하게 소화할 수 있다. 그의 손에는 그저 기타 한대가 들려있을 뿐이지만, 다른 모든 악기가 함께 하는 그 어떤 영감을 뛰어 넘는다. 모든 악기의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그의 기타의 아르페지오와 목소리만 남았을 때,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그의 기타 소리조차 사라지고, 모두가 오직 목소리로만 함께 이 고백을 할 때, 나는 진정한 찬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경험했다. 이곳은 음악이 있는 곳이다, 가장 수준 높은 현대적인 워십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곳은 음악이 없는 곳이다. 모든 음악이 사라지더라도 전혀 상관 없는 곳이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사랑, 그것만이 충만한 곳이다. 그래서 행복.
성령님, 당신을 환영합니다 / Holy Spirit - Bryan & Katie Torwalt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의 회중 찬양 가운데, 함께 부를 성령에 관한 찬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오직 그분을 알리시기고 깨우치시며, 바른 성경 이해와 주해와 설교로 우리를 끊임 없이 교정해나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께서 우리의 영혼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감동시키시며 인도하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악한 영들의 역사를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하면서도,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씀을 읽는 그 순간, 혹은 설교를 듣는 그 순간' 에서만 한정짓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슬픈 일이다. 오늘 눈을 감고 손을 들고 찬양하는 조나단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그는 음악 속에 있었지만, 그는 기도하고 있었다. 그 진지함과 간절함. 수줍게 그러나 담대히 하나님을 향해 올린 그의 손, 부끄럽지만, 나는 흉내도 내본적 없는 그런 간절함. 나도 이 찬양을 들으면서 함께 간구한다. let me become more aware of your presence. let me experience the glory of your goodness
영원히 주를 향한 사랑을 노래하리 / Sing My Love - Kim Walker
어쩌면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고백받고 확인하는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역사 이래, 수 많은 사랑 고백의 표현들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누구도,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인류사에 허다 없이 고백된 그 사랑 고백을 진부하게 다시 표현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의 표현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 때문이 아닐까? 참된 신앙인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잣대는,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이다. 그것이 있다면, 그 무엇도 그 사람을 막을 수 없다. 사랑은 환란도, 공포도, 수고도 뛰어넘는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끊임 없이 표현되는 우리의 찬양, 이 사랑의 고백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가사가 있을까? can't hold my love back on you! 지금 당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하기를..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