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0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8) - 끝없는 사랑

 


1. 가사 살펴보기

하늘보다 높은 주의 사랑
하늘에서 주 자비 내려
영원한 사랑 알게 하소서
너무도 깊은 주의

끝없는 사랑 흐르게 하소서
주 사랑 더 알게 하소서
나에게 부으소서
끝없는 사랑 원합니다

 

2. 곡 소개

곡은, 다윗의 장막의 끝없는 사랑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을 지금 보다 더 충만하게 알고 경험케 해달라고 간구하는 찬양이다. 반복되는 선율과 가사 속에서, 끝없는 주의 사랑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도록 의도된 깊은 수준의 신앙을 갈망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12 You will roll them up like a robe; like a garment they will be changed. But you remain the same, and your years will never end."

1:10–12 The context of Ps. 102, from which these verses are taken, clearly indicates that the LORD is the One who would appear in the future to Israel and the nations (see Ps. 102:12–16). Thus the psalm can only refer to Jesus, the Second Person of the Trinity, the only One who would become incarnate. Jesus is God become man. The universe will perish (see 2 Pet. 3:10–13; Rev. 21:1), but the Son will remain forever. The universe will be changed, but the Son will remain the same (13:8). 말씀이 인용된 시편 102편의 문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해 나타나실 분이심을 분명히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는 삼위일체의 2 이시며 성육신하실 유일한 예수님만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는 멸망할 것이지만, 아들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실 것입니다. 우주는 변할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동일하게 계실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10–12.

예레미야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31:3 The LORD appeared to us in the past, saying: "I have loved you with an everlasting love; I have drawn you with loving-kindness.

31:3 You is feminine singular, referring to the whole people (cf. v. 4). everlasting love. God’s love was always based on grace (Deut. 7:6–11), and even the involvement of the majority in Israel’s rejection of that love cannot cause this covenantal, relational love to cease (Hos. 1:10–11; 2:14–23; 11:1–9). 라는 것은 여성 단수로서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그 사랑을 거절하더라도 이 언약적, 관계적 사랑은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428.

시편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103:17 But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the LORD'S love is with those who fear him, and his righteousness with their children's children—

103:17 everlasting to everlasting. Appears three other times in the Psalter (41:13; 90:2; 106:48). In both 90:2 and here, it contrasts the Lord’s nature and character with humanity’s transience. love. Related to covenant keeping (see notes on 6:4; 107:1). fear. Properly recognize the Lord’s nature and character (vv. 11, 13; see note on 19:9). 영원부터 영원까지 라는 표현은 시편에 세번 등장합니다. 말씀에서는 주님의 본성과 성품을 인간의 무상함과 대조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언약을 지키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경외하는 것은, 주님의 본질과 성품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99.

에베소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8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9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3:18–19 Paul’s main petition is for Spirit-given strength in our inner being (v. 16). The specific nature of this strength is the ability to comprehend the incomprehensible love of Christ (vv. 18–19). We will not be fully mature until this love is planted in our hearts. We will not live as God’s holy ones until we know that we are first of all his beloved ones. We will not treat our neighbors with mercy until we apprehend Christ’s mercy toward us. We do not know anything about Christianity until we know the love of Christ that surpasses knowledge. 바울 사도의 주된 간구는 우리의 속의 존재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힘의 구체적인 본질은 그리스도의 불가해한 사랑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심겨질 때까지 우리는 완전히 성숙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 받는 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자비를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이웃을 자비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Kevin DeYoung, “Ephesian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589.

 

4. 찬양에 대한 묵상

깊이 생각해 본다면, “끝없는이라는 표현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단어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끝없는 사랑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다. 그분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스스로 알리시기를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원한 존재이신 사랑의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끝없이 사랑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다. 그분은 창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어 그분의 주권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죄인을 살리신다. 죄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목적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자녀의 성장에 결정적인 것처럼, 성도의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고 그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수도 없이 넘어지며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셨다. 가장 존귀한 예수님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통하여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것이 영적인 생명의 원동력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의 가치를 매 순간마다 마음에 새기고 붙들어야 한다. 그 사랑 안에 깊이 거할 때에 세상의 그 어떤 고난도 능히 이기는 것이며, 지금 걸어가는 삶 속에서 그리고 다가올 미래 가운데 더욱 큰 확신과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모든 이들의 심령 가운데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간구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9월 8일 금요일

2023 예찬 집회를 앞 두고

 



무엇인가 이룬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는 과정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전하기 보다는 차라리 정체되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체된 사람은 얻을 것도 없지만, 잃을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인생이 이런 것이겠거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찬양팀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특히 예찬 집회가 그렇습니다. 단순히 나 혼자서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을 이룬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누군가와 하모니를 이루며 한시간 이상의 찬양 집회를 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사람은 두가지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본능적인 외침입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에, 우리는 자기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의 목소리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사람들은 격려의 말을 하기 보다는 남을 폄하하는 말을 훨씬 쉽게 합니다. 대부분 그 일을 해보지도 않은, 그 사람의 노력에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죄악된 본성에서 나오는 질투의 표현입니다. 

팀 그로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다수 사람에게는, 도전의 길을 향하여 노력을 기울일 용기가 없습니다. 용기 없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예찬 집회와 같은 도전적이고 위대한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위대한 목표를 끊임없이 바라봐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연습과 정신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강인한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찬팀은 인내와 실력과 마음을 갖춘 분들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 왔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든지 간에, 심지어 내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라고 하든지간에, 우리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오늘 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쓸데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쓸데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연습과 노력에 집중하시고, "오늘 내가 무엇을 해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무대는 "우리의 무대"입니다. 하나님의 무대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무대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에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시간은 각자의 삶에 가장 큰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쁨의 무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매번 설교 때 마다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설교합니다. 찬양 인도도 그렇습니다. 인생에 마지막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이끌어가겠습니다. 전혀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것은 언제나 드렸던 말씀 그대로입니다. 

싱어분들은 가급적 편안한 목소리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마음으로 부르더라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냉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발음"을 빨리해서 노래가 쳐지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악기보다 절대로 느리게 부르지 않게 부르겠다" 라고 결심하면서 끝까지 부르시면 좋겠습니다.

악기팀 그동안 참 수고하셨습니다. 악기들이 합을 맞추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라도 합을 맞춘 부분이 틀리더라도 절대로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고 마지막까지 집회를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준비한 만큼 하시면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집회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귀한 팀에서 인도를 맡은 것은 저의 삶에 가장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큰 축복입니다. 오늘 집회 가운데 잘 부탁드리고 최고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또 성도님들과 나누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76 -2
/ 라이브 투트랙을 마스터링 해보자 (2023 예찬 찬양 집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9/76-2-2023.html

2023년 9월 6일 수요일

새로운 크리스천 북클럽을 시작하며 with "하나님 나라의 도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깨끗한 종이를 손에 쥐고 무엇을 그릴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것이 이 작은 우리의 손에 기적처럼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림은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비록 종이와 크레파스는 들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쉼 없이 갈망하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려 놓은 종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그것을 겨우 흉내내어 따라하는데 급급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북클럽을 원합니다. 저는 북클럽 안에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북클럽을 탁월하게 아름답게 운영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북클럽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성경적인 유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쉼 없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청년 시절 그저 행복했던 그 시절의 북클럽을 지나 이제는 어엿한 목회자로, 그리고 크리스천 북클럽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거기에 걸맞는 학위를 가진 사람으로 서 있습니다. 

아마 대략 3년 만에 북클럽을 다시 열었습니다. 이 북클럽을 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추진을 시작하고 열리기 까지 거의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이 한 번을 위해서 많은 것을 조율하고 기다리고 또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설래던지.. 다시 한번 꿈을 이루는 저의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직접 인도한 북클럽은, 거의 실패가 없었습니다. 가장 철저한 준비로 준비하였고 최선을 것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또 그것에 걸맞는 결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롭게 준비하는 모임은 더욱 마음이 쓰였습니다. 오시는 분들에게 더욱 더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에 초대하기 위해서 연세가 드신 분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무형의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항상 젊은 이들 그리고 청년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목회의 중요한 동역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칠십이 다 되신 분들이 여전히 교회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십니다. 과연 현재의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자리를 채워줄 것인가? 저는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노년에 계신 분들을 위한 좋은 양육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어르신들이 무슨 북클럽을 하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오랜 시간 신앙의 연륜을 쌓아오신 그들이야 말로 북클럽에 최적화된 준비된 분들입니다. 믿음으로 부터 흘러나온 삶의 연륜와 경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인내심과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적인 능력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스스로는 부끄러워하시지만 그래서 더욱 인도자의 격려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제가 섬기는 두 반은, 오십대 초반에서 칠십대 중반까지 입니다. 저의 형님과 같은 그리고 이모님 어머님과 같은 분들이십니다. 예전에는 감히 제가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실제로 교제하면서 느낀 것은 그분들은 마치 소녀와 같은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꿈이 있고, 여전히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여전히 삶을 진실한 목표를 찾고 싶어 합니다. 

저는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포스터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특징은, 주관적인 판단과 가치의 파괴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클럽을 권면은 하지만 억지로 시키지는 않습니다. 결국 자발성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북클럽에 찾아오는 분들이 참으로 귀합니다. 각자 경험하는 크기는 다르겠지만 가치를 알아보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숙을 위한 마음을 품고 스스로 발걸음을 옮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전과 오후를 다 합쳐서 스무분 정도입니다. 저녁 반에 열세분은 북클럽으로는 넘치는 숫자입니다. 거기다가 그 중의 대부분이 북클럽을 처음 시도해보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섬세한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정성으로 준비하였습니다. 각자 소개를 하였습니다. 자신이 이 모임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북클럽의 철학과 그 진행에 대하여 제가 간단하게 소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북클럽을 간단하게 진행하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만드는데 마음이 벅찼습니다. 아마 이십년 전에 저는 이렇게까지 준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준비가 된 저는 망설일 것이 없었습니다. 북클럽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들을 소개하고, 그리고 북클럽 대화의 방향에 대해서 설명해드렸습니다. 논문으로 이미 정립한 내용이고, 이제 몇년 안에 책으로 나올 내용입니다.

대부분 북클럽을 해보신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북클럽의 교제인 "하나님 나라의 도전"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 가운데 실제로 북클럽을 경험해 보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본격적인 첫 모임에 대한 감을 잡고 스스로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을 자료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존파이퍼 목사님의 Daily Devotional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번에 읽어내기에 적당한 분량, 그리고 깊이 있고 성경적인 묵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링크를 한글과 영어로 보내드리고, 제가 정리한 글도 함께 보시도록 지도하였습니다. 

* SOLID JOYS 묵상 01
/ 새해를 위한 은혜 (Grace for the New Year)

함께 글을 읽은 다음에는 제가 만든 포멧에 따라서 간단한 요약, 간단한 느낀점, 그리고 간단한 적용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마음도 두근거렸습니다. 과연 처음 해보시는 분들이 어느 정도로 해내실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첫 모임의 나눔은 저의 기대를 훨씬 뛰어 넘었습니다. 북클럽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분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것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북클럽은 가장 고급 수준의 교육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자로서 이끌어가는 것 역시 높은 수준의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내용과 모임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만, 상대방을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경청과 이해와 순발력, 그리고 삶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과 겸손이 함께 필요합니다. 

이렇게 북클럽 안에서 인도자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득이 저를 더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는 오히려 저의 역할을 더 감추었습니다. 오고 가는 이야기가 성경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서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섬세하게 도와드렸습니다. 제가 모임의 모든 흐름을 이해하고 충분히 조율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오히려 잠잠히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저의 역할을 조절하였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에게는 평생 처음일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 제대로 읽고 나누고 감동 받는 경험을 처음 해보는 것은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입니다. 함께 하시는 분들의 얼굴을 통해, 그리고 그분들의 눈 안에서 그 기쁨을 보았습니다. 저도 행복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이 인용했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어딘가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온전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한 권사님은 일찍 오셔서 인도자인 저와 모임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던지, 인간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그 실제의 본질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함께 모인 믿음의 가족들의 그 소중한 결심을 이루어주시기를, 우리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양육 모임에 오지 않는 분들의 태도를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분들 역시 지쳤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랫동안 교회의 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반복해서 무너지고 그것이 학습 효과가 되어서 굳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의미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진, 수준 낮은 교재를 놓고 시간을 때우는 수준에 불과한, 목회자 혼자 이야기하는 너무나 지루한,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만 사용하는 나의 실제의 삶과는 괴리된 그런 모임에 지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더 잘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실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한번의 모임을 놓치는 인도자는 모든 모임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북클럽의 모임마다 새롭고 강력하고 풍성하여서, 평생에 남을 시간으로 성도님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첫 모임이 너무 좋았기에, 또 기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전"이 결코 쉬운 책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의 인생에 있어서도 새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이 도전이 가치 있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백성을 위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8주간의 여정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2023년 9월 4일 월요일

목회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누구일까? 양심에 화인 맞은 자?



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그래서 대화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저 이상으로 교육과 미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알려줍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알려준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시는 박상미 교수님의 영상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되면 그분이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꼭 살펴봅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공부하신 이력이 좋았습니다. 저에게 삶의 큰 의미를 준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분은 오랫동안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서 심리 치료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 저의 관심을 사로 잡았습니다. 절대로 교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다름 아니가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거짓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특징은 "여전히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기를 치면서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착각에 빠져 살며,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속이면서 어울리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목회에서 동일한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적인 경험의 결과입니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놀랍게도 어떤 성도님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잘하고 있고 충분히 선하고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인 저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너무나 어리고 부족한데, 자신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목회적인 조언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였고 그래서 신앙의 여러 언어들을 구사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합니다. 자신은 의롭고 다른 이들은 악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에 힘을 씁니다. 남들을 비난하는 바로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합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된 상태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성격과 도덕적인 수준에서 문제가 있으며 그것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 생활의 기간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분들 중에도 혹은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 중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깊이 존재하는 죄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바꾸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은 겸손해져 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가까이 대할 때에 따뜻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적으로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조언이 그 가치를 발현합니다. 변화의 소망이 존재합니다. 사실상 이런 분들은 영적으로 탁월하게 성장하며 무한히 뻗어나가게 됩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바꾸자면, 성령님께서 활발히 역사하심으로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힘있게 일하십니다.

이 짧은 영상을 보는데, 양심에 화인 맞은 자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된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일대일로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았다라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태로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 속으로 실제로 진입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의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2 Such teachings come through hypocritical liars, whose consciences have been seared as with a hot iron. (NIV)

4:2 The consciences of the false teachers have been seared (that is, desensitized and rendered ineffective) by their rebellion against the gospel. 거짓 교사들의 양심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서 화인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양심이 무감각해지고 무력해진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4:2 The consciences of those peddling demonic doctrines have either been “branded” by Satan to show his ownership of them or “cauterized,” leaving them unfeeling and unable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악마적인 교리를 선전하는 사람들의 양심은 사탄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보여주기 위해 낙인을 찍혔거나 혹은 화인을 맞아서 옳고 그름에 무감각해지고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074.

이 말씀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의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사실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신앙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의 문제가 바로 진짜 문제이며, 그것은 그 사람의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아닌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다른 분들을 비난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죄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위선적인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어떻게 해서 든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상황이 된다면 결국 나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될 것입니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죄성이 나를 완전히 뒤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말씀으로 양심을 깨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 자신과 성도님들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그 사람의 양심을 깨워야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목회의 중요한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2023년 9월 2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7) - 모든 걸음 되시네

 

1. 가사 살펴보기

주님 내 길 아시네
흔들린 그 길에도 함께해

주님 내 일 아시네
멈춰진 나의 삶에도 늘 함께해

나의 힘이 되신 주
항상 같은 곳에서
주가 나의 도움 되시네

나의 길이 되신 주
변함없으신 계획
주가 나의 모든 걸음 되시네

 

2. 곡 소개

곡은, 예람워십의 “Won’t Stop Now”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성도의 삶을 온전히 붙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고백을 담고 있다. 나의 삶이 흔들리고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신실한 계획 가운데 주님의 자녀를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6:9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16:9 A PERSON’S HEART PLANS HIS WAY. God’s sovereignty over our lives should not discourage us from planning and setting goals. Rather, it gives us reassurance that the outcome is not ours alone. Someone much bigger is watching out for us.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은, 결코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을 낙담 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가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시고 계십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001.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3:19 God is not a man, that he should lie, nor a son of man,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Does he promise and not fulfill?

23:19–20 Unlike the gods of Mesopotamia, who were depicted often as whimsical and easily manipulated through sorcery and divination, Balaam could not change what the God of Israel had instructed him to proclaim—blessing for Israel, God’s chosen people.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이, 마술과 점술로 쉽게 조종되고 변덕스러운 것으로 종종 묘사되었던 것과는 달리,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포하라고 지시하신 ,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을 변경할 수 없었습니다. 

R. Dennis Cole, “Numbers,” in KJV Study Bible (WORDsearch, 2012), Nu 23:19–20.

예레미야 애가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3:22 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3:23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3:22 God’s steadfast love (his “covenant mercy” or beneficial action on his people’s behalf) never ceases, even in the face of Judah’s unfaithfulness and the resulting “day of the Lord”. mercies. Or “compassion.” This type of mercy replaces judgment with restoration. never come to an end. God is willing to begin anew with those who repent.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 혹은 언약적인 자비는 심지어 유다의 불성실과 그로 인한 여호와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비는 심판을 회복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과 함께 기꺼이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075.

히브리서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10:23 Let us hold unswervingly to the hope we profess,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10:23 We are to hold tightly to the hope we affirm, that Christ’s death is effective in winning us right relationship with God. 우리는 우리가 믿는 소망,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얻게 하신다는 것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Heb 10:23.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개역개정) 13: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NIV)

13:8 the same: The unchanging nature of the Son was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this book (1:12). yesterday: Christ gave His grace to the former leaders who trusted Him (see v. 7). today, and forever: Christ’s grace is presently and permanently available to all who believe in Him. 성자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본성은 히브리서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되었습니다. 어제 :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신뢰했던 과거의 지도자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그리고 영원히 :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지금 그리고 영원히 유효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3:8.

13:8 Though the community was facing new challenges, Jesus Christ is the same, and his Good News does not change. • yesterday: Jesus was the Father’s agent in creation (1:2, 10). • today: Jesus currently sits at the Father’s right hand (1:13; 7:26–28; 10:12). He will rule the universe forever (1:8, 10–12). 비록 공동체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시며 그분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 예수님은 현재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우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Heb 13:8.

 

4. 찬양에 대한 묵상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가 어떻게 조화롭게 움직이는가 라는 것은 신비에 속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 그분의 자비와 인도하심에 대하여 확고하게 선언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다. 그리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회복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지 완전한 성숙과 결단은 여전히 가지지 못한 존재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을 위로하신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구원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심으로 그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죄인은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고, 열심을 다하여 삶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그 걸음을 인도하시고 약속하신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삶은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뜻하는대로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안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용기를 가지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매 순간마다 약해지는 마음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붙들어야 한다. 이 찬양을 통해서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흔들릴 수 없는 소망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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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1일 목요일

"복음이 울다" 북 리뷰 - 더 높은 참된 사랑으로의 부르심


하나님이 그분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더 높은 사랑으로
나를 부르고 계심을 깨달았다.
내 모든 종교적 배움이나 종교적 책임감을 초월한
새로운 종류의 사랑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종류의 사랑으로,
내 인생이나 가족, 미래를 위해 세웠던 계획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드는 종류의 사랑으로

- "복음이 울다" 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 지드는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책 한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입니다.   

오래 전에 "래디컬"이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울다"가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래 영어 제목은 "Something Needs to Change"입니다. 번역한 출판사에서 한글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마음을 깊이 있게 드러낸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눈물이 탄식으로 흘러나올 때에, 그 사람은 변화를 꿈꾸며 변화하게 됩니다. 

플랫 목사님은 소위 말해서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그는 뉴올리언즈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지적으로 탁월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겨우 스물 여덟 살의 나이로 미국의 대형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가 꿈꾸는 그런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삶을 고민합니다. 자신의 설교가 편안한 강대상 뒤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고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 중에 그는 자신의 친구 애런의 예기치 못했던 제안으로 히말리야 산맥 트래킹을 떠나게 됩니다. 애런은 플랫 목사님에게 자기 고향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간단한 약품이 없어서 한쪽 눈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 콜레라로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부인의 자살 이후에 절망에 빠진 남자, 딸들을 성적인 노예로 팔 수 밖에 없는 비참한 마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랫 목사님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 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속 신앙과 힌두교 신앙 속에서 영적으로 억눌린채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깊은 산 속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한 사람"을 향한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심한 설사와 구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은 다섯 살 프라딥의 죽음은 플랫 목사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그 지역에 성적으로 착취 당하는 어린 소녀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겨우 소수의 소녀들만이 도움을 얻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플랫 목사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비참한 삶의 현실들 속에서 좌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합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를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이야 말로, 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이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영혼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짙은 어둠으로 뒤 덮인 그곳이었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빛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가정 교회 성도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다양한 연령층에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입니다. 두 시간이 넘는 산 길을 걸어와서 작은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플랫 목사님은 자신도 그 교회에 속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염려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깊은 산 속에서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깊은 산맥의 성도들의 삶은, 섬기는 삶입니다. 그들은 깊은 산 속에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하여 희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의료, 농업 그리고 교육 기술을 총동원해서 어려운 이들을 돕습니다. 

플랫 목사님은 이들의 삶과 섬김을 보면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깊게 묵상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것을 드리고자 결심합니다.

이제 그는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그는 누가복음 16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필요에 연민을 가지고 도우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자를 모른 척 하는 자들을 정죄하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참된 믿음은 어려운 이들을 위한 행위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합니다. 그는 누가복음 17장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재림과 자신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생생한 절박함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리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고, 지금 당장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저는 항상 절박한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책은 단순히 지적 유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거울이며, 저의 삶을 다듬어가는 채찍이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결단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논리를 풀어가는 차가운 책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따뜻한 책을 좋아합니다.

안타깝게도, 똑똑하지만 차갑고 공감 없는 크리스천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이란,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것이고, 아픔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그 안에서 드러내는 것이며, 나를 기꺼이 희생하여 함께 위로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이 울다"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한동안 희미해졌던 복음에 대해서 깊이 경험하였고 플랫 목사님의 진실한 마음이 저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플랫 목사님은 가장 높은 수준까지 공부하였지만 그에게 복음은 그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온전히 살아있는 실체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이 저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그의 곁에서 의미있고 진실한 히말라야의 여정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깨달은 모든 것을 책으로 기록하고 실제의 삶과 사역에서 그 결심대로 그대로 전진합니다. 복음이 그저 자신의 개념 속에 존재하던 사람으로부터, 복음이 실제로 삶에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도 저의 마음 안에도 복음이 울고 살아 움직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이제 신앙 생활을 시작한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이미 신앙의 연륜이 깊은 성도님들에게 모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복음의 본질과 그 내용과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보면서 제 자신과 저의 목회를 깊게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목사인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가? 한 사람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었는가? 나의 설교는 그저 합리적인 구조를 갖춘 논문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나는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함으로 더 진실하게 변하고 성장하는 사람인가?

이제 글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곧 심방을 나갑니다. 갑자기 연락 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을 만나고 위로하고 또 섬기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은 오직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발걸음을 주저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랫 목사님의 질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절박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변해야 할까? 이 질문을 고민하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하라."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지금, 그리고 아마도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을 책들

집사님께서 "제가 감동 받은 책 세권 정도 추천해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감동 받은 책이라고 해서 꼭 집사님의 삶에 유익을 준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용기로 이 글을 써서 집사님께 전해드리는 것은, 책이 주는 유익 때문입니다. 집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책은 누군가와의 만남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만남과 나눔을 통해서 우리는 한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말씀드리면 좋을까 조금 고민이 들었습니다. 신학책으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책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책이 출판되고 이후 5년 동안,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해서 목회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힌 탁월한 책입니다. 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번 읽었지만 새롭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지 못하면, 사실상 신앙 생활은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지금 저는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습니다. 모두 귀한 책들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도 그렇고,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의 책 "히트 리프레쉬"도 정말 새로운 내용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좀 지루했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그가 "공감"을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얻게 되었다는 것은 저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읽은 책들을 무조건 누군가에게 강하게 추천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때를 허락하시고,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또 좋은 변화들을 만들어가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가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신학은 모든 것을 말하지는 못한다" 입니다. 신학책과 경건 서적은 삶의 근본과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넓고, 다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전체를 조망하고 배워간다는 점에서는 폭 넓은 독서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을 책 몇권을 보여드립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s://ridibooks.com/books/969000280

집사님께서 이 책을 읽고 계셔서 마음에 많이 기뻤습니다. 유익을 많이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책입니다. 제가 삶이 많이 어렵고 침체되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에 견고한 유익을 주었습니다. 

집사님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다시 펴서 잠깐 읽어보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수용소라는 가장 이기적인 장소에서, 인간됨의 의미와 희망과 삶을 논하는 기적의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은 아니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의 갈망이며, 이것을 붙들 때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분입니다. 

굳이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의 삶 자체가 이기심의 충족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나의 것을 반드시 지키려는 이기심, 적극적으로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가 살고자 하는 이기심, 그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한 귀한 책입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04)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6.html




* 골든아워

https://ridibooks.com/books/745000113

아마 누군가가 저에게, 일반 서적 중에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그리고 나중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북클럽을 할 때에 무슨 책으로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골든 아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책은, 한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목사를 영혼의 의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과연 이국종 교수님 만큼의 마음과 열정과 투지와 사랑을 가지고 목회를 했는가를 정말 돌아보게 만든 책입니다. 감히 제가 이분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저는 이국종 교수님과 같은 마음과 삶으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의술에 대한 책은 아닙니다. 한 거대한 조직의 중간 관리자로서 그분이 가진 고민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쪽 눈을 잃어야만 했던 그의 처절한 상황 조차도 저에게 큰 통찰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며칠에 한번은 꼭 펴서 읽어봅니다. 만약에, 이분과 같은 마음으로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온 성도와 교회가 실천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 골든아워 - 이국종 / 목사로서의 삶과 다짐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06/blog-post_18.html




* 멘탈리티 
https://ridibooks.com/books/2189000240

목사 안수를 받고 얼마되지 않아서 새벽 설교를 준비할 때입니다. 늦은 밤까지 설교를 쓰고 자려고 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혹시 이 본문으로 어떻게 설교하셨을까?" 마침 찾아보니 그분의 설교가 있었습니다. 딱 1분 듣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호랑이라면, 저는 고양이라고 느꼈습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 자세, 이해 등등 모든 것이 그랬습니다. 바로 설교를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정말 탁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까요? 예를 들어서, 설교의 기술에 대해서 정리한 책은 많지만, 정말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어느 정도의 열심으로 어느 정도의 절박함으로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은 많지 않습니다. 단순히 설교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의 자세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비교할 만한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정도입니다. 

NBA 최고 선수들을 개인트래이닝하는 팀 그로버의 이 책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시대에 가장 앞서가는 사람들의 그 마음가짐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마치 보물 지도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내면의 어두움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 탁월함에 이르는 길을 잘 제시한 책입니다. 저는 조금씩이라도 반드시 하루에 한번씩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내면을 정리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8) - 멘탈리티 (팀 그로버)
/ 최고들의 정신 세계, 바로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되게 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6.html

* “멘탈리티”와 함께 한 100일의 기쁨




*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요? 우리는 평소에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것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아마 이 책은, 제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책인 듯 합니다. 

인문학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전공을 바꾸었고 탁월하게 자신의 업적을 쌓아가던 의사가 암 투병으로 삶의 모든 것들을 잃어갈 때에, 그가 경험한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남긴 기록입니다. 어쩌면,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하루가 저와 집사님의 마지막 하루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약 20대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내 인생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이런 책은 강제로라도 청년들에게 읽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은 단순히 성공담을 적은 책이 아닙니다.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한 책도 아닙니다. 일반은총의 측면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성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성숙을 일구어낸 기적과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삶을 지혜롭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가장 실제적인 지도와 같습니다. 깊은 독서를 바탕으로 책을 적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굉장히 균형잡혀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린 책이네요. 자기 계발의 측면에서 그리고 리더십의 측면에서도 탁월했습니다. 충분히 기독교인들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https://ridibooks.com/books/2171000070

이 책도 매우 실제적으로 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입니다. 누군가가 10년만 더 저에게 이런 책을 빨리 소개시켜줬더라면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더라면 제 인생이 더 좋아졌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아주 작은 목표"를 정하게 그것으로 "습관"을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행동이 그 사람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을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성경적인 전략입니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 크리스천의 작은 습관 그리고 실천의 중요성

저는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정보의 습득은 단순히 지적 유희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고 익힌 방향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자 마자 저는 꼭 실천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고, 네이버 밴드로 전략을 짜서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14개의 "하루 한번" 네이버 밴드
- 나의 "오늘 하루"를 의미있고, 진실하고, 꾸준하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2.html

저에게 의미있는 책들을 집사님께 몇권 추천드렸습니다. 이미 집사님께서 좋은 신앙 서적과 신학 책들을 충분히 읽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책들 중에 혹시라도 관심 가는 것이 있다면 읽어보시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죄와 은혜의 지배"는 읽지 못했고,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는 목사로 삶을 결단하기 전에 저에게도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이미 집사님께서 그렇게 하시고 계시겠지만, 읽으신 책들에 대해서 아주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읽고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내가 정리하고 요약하고 느낀 점을 적을 때에 내 마음에 그것을 내면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책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담이지만, 자녀 양육 때문에 고민이라는 분의 집사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집중하거나 강박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건강한 나 자신이 필요한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의 성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성숙입니다. 

저야 아이들이 어리지만, 아마도 부모로서 경험하는 것은 동일한 듯 합니다. 은혜에 대한 이해와 깊이, 그리고 나의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고, 아주 긴 성숙의 길입니다. 

결국 성숙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혹시라도 집사님께서 그분을 도와주실 수 있다면 좋은 책을 읽고 함께 그분과 나누면서 마음을 만져 주시면 어떨까요?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저의 단순한 생각입니다. 

바라기는, 집사님이 읽으시는 귀한 책의 내용들을 나눌 사람들이 옆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히 다른 이들에게 읽은 내용을 나누셔서 더 그 깊이를 더하시면 좋겠고, 또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집사님의 삶이 좋은 책들을 통해서 그 풍성함이 더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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