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음악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당신 / 사랑이란 - 윤상



아주 어렸을 적,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던 전축은 언제나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언제나, 어린 저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외로울 때도, 힘들 때도, 그리고 기쁠 때도 언제나 음악은 저의 곁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함께 찬양을 부르며 위로를 얻고,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아픈 마음의 치유를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음악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 속에서 그분의 위대하심을 듣고, 세상의 노래 가운데에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쩌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진실로 그들의 영혼을 채워줄 유일하고 참된 사랑에 대해서 갈망하며 노래하는지도 모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혹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것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저 역시 너무나 좋아하는 그 음악을, 비록 부족하고 얼토당토 않더라도, 저의 감성과 생각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CFNI에서 컴퓨터 음악 기초 과정을 배웠습니다. Pro Tools 라는 아주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배우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내가 누르는 건반이 피아노가 되고, 기타가 되고, 드럼이 되는 것이 신기하고 또 짜릿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곡이 4곡도 안되고, 비록 저의 길이 전문적인 음악가의 길도 아니고, 그리고 그럴만한 실력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저의 노력으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는 그리고 성도님들이 함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곡을 만들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음악을 하는 원동력입니다.

컴퓨터 음악(혹은 홈 레코딩 - 집에서 혼자 하는 컴퓨터 음악 혹은 레코딩을 통칭함)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적지 않은 금액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듭니다. 자칫 취미가 마땅히 해야 할일들 보다 앞설 위험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있는 꿈을 위해서 우리가 작게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 인생은 더욱 행복할 것 같습니다. ^-^

최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가가 읽으면 아마 피식 웃으실 것입니다 ^-^;;; 너무 쉬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당신에게는 유용한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어쩌면 이제 처음, 저처럼 작은 꿈을 가지고 홈레코딩에 관심을 가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저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다른 많은 분들의 자료를 통해서 배움을 얻었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또한 나눌 수 있다면 그 배움을 갚을 수 있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먼저, 컴퓨터 음악은 무엇일까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건반을 통해서 컴퓨터로 신호를 넣고, 그 신호가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가상의 악기를 작동시키면, 그 악기로 부터 소리가 만들어져서 스피커로 출력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호를 MIDI 신호라고 하고, 이러한 신호를 받기 위한 프로그램을 보통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라고 하고, 신호를 받아서 소리를 내 주는 악기를 가상 악기 VSTI(Virtual Studio Technology instrument)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악기를 제외한, 다른 이펙터 종류들은 그냥 VST라고 부릅니다.

1. 미디 신호를 컴퓨터로 입력하기 위해서는, 물론 마우스로 일일이 찍을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건반이라도 하나가 있다면 아주 편리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것은 M-Audio Keystation Mini 32 입니다. 건반 터치감도 별로이고, 따로 피아노 페달을 사용할 수도 없지만, 언제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입니다. 만약에 집에 어느 정도 공간이 있고, 자신이 건반을 어느 정도 칠 수 있다면 M-Audio Keystudio 49-key 정도도 괜찮습니다. 둘다 USB 형식으로 그냥 컴퓨터에 연결하면 됩니다. ^-^ 참고로, 건반 자체에 소리가 없는 것들을 마스터 키보드 라고 합니다. 어떤 건반들은 기본적인 몇개의 소리(피아노, 일렉 피아노 등)를 가지고 있고, 자체적으로 소리를 만들고 합성까지 가능하다면 신디사이저라 부릅니다. 위에 두 모델은 건반의 기능만 있는 마스터 키보드 입니다.

2. 이 미디 신호를 받아서 해석하고 종합해 주는 DAW프로그램으로는 REAPER를 추천합니다. 보통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Pro Tools(전문 스튜디오에서 많이 사용)나 큐베이스 혹은 로직(맥 컴퓨터 전용) 을 많이 사용하지만, 정품 프로그램이 너무 비싸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높은 벽입니다. REAPER는 평가판 프로그램을 일정 기간동안 테스트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고, 개인 사용자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대로된 DAW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개인이 장기적으로 거대한 프로젝트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정말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하고 싶다면, 다른 상용 프로그램을 꼭 구입할 것을 추천합니다. ^-^ 왜냐하면 프로그램간에 작업 파일은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REAPER에서 작업하던 곡은, Pro Tools 에서는 불러올 수 없습니다.

3. 이러한 건반에서 누른 신호가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서 악기와 만나야 하는데, 여기서 또 문제는 도대체 가상 악기(VSTI)를 어디서 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Pro tools 같은 경우는 가상 악기가 VSTI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AUDIO SUIT 어쩌고 ^-^;;), 다른 형식이라서 제외한다고 해도, 큐베이스 혹은 리퍼 등에서 많이 쓰는 VSTI는 들어본 악기들은 다 고가가 대부분입니다. 비쌀 수록 소리도 좋고 실제로 리얼한 느낌을 많이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은, 감사하게도 무료 가상악기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찾아본 결과 리얼 기타, 그리고 리얼 일렉트릭 기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악기를 무료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본인이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더욱 많은 악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가상 이펙터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 목소리가 굉장히 건조하게 들릴 때에, 촉촉하게 울리는 소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REVERB와 DELAY가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먹먹한 소리를 좀더 맑게 하기 위해서는 EQ(EQUALIZER)가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VST라고 합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VSTI와 VST를 찾아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 부분에서 꼭 기억할 분이 국내에 계신데 바로 '방구석' 님 입니다.(방구석님과 페북 친구라 영광입니다. ^-^) 제가 이해할 때에 REAPER를 이용해서 무료로 음악을 하는데 선구자적인 분입니다. 그분의 블로그는 이곳http://seeno.tistory.com/ 입니다. REAPER의 기본적인 설명부터, 다양한 무료 가상 악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귀한 블로그입니다. 저 역시 모든 글을 읽어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가상 악기에 대한 자료 혹은 컴퓨터 음악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큐오넷, 미디유저넷 등 거대한 사이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회원 가입이 쉽지 않고 또 강의 등은 점수제도 등으로 운영되기에, 사이트에서 지속적 활동이 필요해서 저의 경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국 사이트로 눈을 돌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외국 사이트들은 좀더 개방적이고, 자신의 노하우를 좀더 많이 공개하는 듯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이트는 이곳 http://www.kvraudio.com/ 입니다. SEARCH 항목으로 들어가서 검색 옵션에 PRICE FREE로 검색하면 정말 엄청난 양의 가상 악기 그리고 이펙터 들이 등장합니다. 어느 정도 유명하고 잘 정리된 사이트는 네곳 정도가 있습니다. http://www.vst4you.com/ 그리고 http://www.vst4free.com/ 그리고http://www.pluginboutique.com/ 그리고 http://www.gersic.com/plugins/index.php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이트는 이곳 http://bedroomproducersblog.com/free-vst-plugins/ 입니다. 사실 무료 가상악기 이펙터를 받다보면, 이들 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나뉩니다. 수천개의 플러그인(VST나 VSTI를 통칭해서 PLUGIN이라고도 부릅니다)들 속에서, 개인이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추천드린 마지막 사이트는 항목별로 가장 괜찮은 플러그인들을 추천하고 있고 간단한 리뷰까지 적혀 있습니다. 또한 구글에서 BEST FREE VSTI, BEST FREE VST 등을 검색하면, 주옥같은 글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구글 검색이 중요한 것은, 개인이 다른 사이트에 올리지 않고 본인 홈페이지에만 무료 플러그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매우 많기 때문에, 결국 구글을 통해서 검색해야 더 많은 플러그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무료 플러그인 경우도, 해당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구입 형식으로(가격은 0) 구입하고, 이메일 인증을 통해서 시리얼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검색에 검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무료 플러그인(물론 샘플러이지만)으로 실제 홈페이지에서 받아야 하는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여기http://pro.magix.com/en/independence/independence-free.1013.html
그리고
http://www.ikmultimedia.com/products/sampletank/index.php?pp=sampletank-2-xl-versions
입니다.

저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 플러그인들을 다 테스트 해 보고, 어느 정도 선호를 고르는데 까지 3-4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검색하고 찾아서 테스트 해 보고, 결국 어느 정도 우열을 가릴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유료 프로그램을 쉽게 사서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

여기서 꼭 적고 싶은 팁은, VST 중에 리버브와 딜레이는 각 트랙이 아니라 따로 두 트랙을 만들고, 그곳으로 모든 악기들의 신호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좀더 공간감 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피아노 트랙에 리버브를, 그리고 기타 트랙에도 따로 따로 리버브 VST를 사용할 수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은, 따로 채널 하나를 만들어 거기에 리버브 VST를 걸고(혹은 설치하고 ^-^;;), 피아노 그리고 기타 트랙의 신호를 새로 만든 리버브 트랙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컴퓨터 자원을 아낄 수 있고, 신호를 일관되게 묶어서 굉장히 편리합니다. ^-^ 사실 이 부분은 CFNI에서 배운 것인데, 아마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지만, 점점 공부하시면서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그냥 기억만 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DAW안에서 신호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소리들은 방향을 가지고 있고, 그 소리를 다양한 VST들을 거쳐서 결국 최종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 이것만 기억하셔도 컴퓨터 음악을 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4. 이제 VSTI와 VST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면(사실 피아노 한개와 리버브, 딜레이 이펙터 두개만 있어도 음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DAW안에 넣어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플러그인들을 DAW안에서 동작시키기 위해서는 일반 컴퓨터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안된, 컴퓨터 음악의 모든 동작들을 원활하게 해 주는 특별한 장치가 하나 더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디오 인터페이스' 입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좋은 사운드카드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마이크 혹은 악기를 입력할 수 있는 입력 단자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단자, 그리고 헤드폰을 연결하는 단자 정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제가 알기로는 ASIO라는 특별한 음악 작업에 특화된 컴퓨터 드라이버를 통해서 작동 됩니다. 그래서 건반을 누르는 즉시 악기 소리가 나고(반응이 빠를 수록 레이턴시가 낮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엄청난 수의 악기가 한꺼번에 DAW안에서 나와도 모두 처리해 줍니다.

물론 이 부분도 무료로 커버는 가능합니다. ASIO4ALL 이라는 드라이버를 컴퓨터에 깔면, 비록 오디오 인터페이스 까지는 아니지만, 간단한 수준에서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도 나는 꼭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일단 ASIO4ALL을 사용해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또 이제부터가 어렵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사야 할까요? 아마존에 검색하면 아마 수십종의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자기가 최고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료로 음악을 하고자하는 우리라면 현실적인 금액의 제약이 언제나 큽니다. 제가 오랫동안 검색하고 고민해본 결과, 그래도 최소한의 퀄리티를 넘기기 위한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추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Focusrite Scarlett 2i2 그리고 M-Audio M-Track 2-Channel Portable USB Audio and MIDI Interface 그리고 M-Audio Fast Track C400 정도 입니다. 마지막 C400을 제외하고(단종 수순인지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비싸 졌습니다) 대부분 100-200불 사이입니다. 물론 70-80불 정도 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USB1.0(혹은 USB FULLSPEED)을 지원해서 레이턴시가 높거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입니다. 과거에는 FIREWIRE 형식을 많이 썼고, 현재는 USB2.0 형식이 많이 나오고 또 대중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꼭 고를 때에는 USB2.0 지원 제품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위의 제품들은 메이저 회사들 제품이고, 제가 찾아본 결과로는 사용자들의 평들도 괜찮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본인의 검색이 최선의 선택을 가져옵니다. ^-^)

5. 물론, 본인이 악기를 가지고 있다면(피아노, 기타 등) 직접 마이크를 통해 녹음해서 DAW에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추가해서 마이크를 구입해야 합니다(당연히 마이크 선도 ^-^;;). 마이크는 다이나믹과 컨덴서로 나뉩니다. 다이나믹은 보통 무대에서 공연때 쓰는 마이크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컨덴서는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아주 민감한 마이크(숨소리까지 민감하게 들어가는)입니다. 만약 집 어느 공간이라도(예를 들어 옷방) 소음을 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컨덴서 마이크가 훨씬 유용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집안에 소음이 너무 많다면 결국 컨덴서 마이크보다는 다이나믹 마이크를 써야 합니다.(녹음 품질은 좀더 떨어집니다) 다이나믹 마이크의 영원한 강자는 SM58입니다. 컨덴서 마이크는 엄청난 선택의 폭이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에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Audio Technica AT2020 정도가 최선이라 보여집니다.

6. 자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컴퓨터 음악을 하기 위해서, 음악의 신호를 입력하기 위한 건반을 소개 했고, 그 신호를 받아들여서 해석하고 종합하는 DAW에 대해서 설명했고 또 그 신호를 받아서 실제로 소리를 내고 효과를 주는 VSTI와 VST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혹은, 직접 마이크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연결해서 녹음한 뒤에 DAW에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 소리를 다시 스피커로 혹은 헤드폰으로 들어야 하는 단계입니다.

사실 컴퓨터 음악에서 모니터(최종 결과물을 듣는 것을 보통 이렇게 부릅니다)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신이 애써 만든 결과물이,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된 스피커에서 들었더니 엉망으로 들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음악하는 분들은 고가의 모니터링 스피커를 통해서 음악을 만들고 믹싱(악기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까지 합니다. 이렇게 해야 어느 곳에서 들어도 균일하고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니터 스피커의 핵심은, 평탄한 응답 주파수(쉽게 이야기해서 음악을 이루는 주파수의 어떤 부분도 과장되지 않은 상태, 더 쉽게 이야기하면 약간 심심하게 들리는 상태)를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베이스에 아주 치중된 저가형 컴퓨터 스피커로는 사실상 모니터링이 어렵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좋은 스피커 혹은 헤드폰을 살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한국에 수입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결론은 스피커는 Fostex PM0.4W Powered Studio Monitors 그리고 해드폰은 TASCAM TH02 입니다.

놀라운 것은, 소위 저가형 모니터 스피커라고 불리는 것들이, 한쪽 스피커 밖에 앰프(입력된 소리를 증폭시키는 가장 중요한 부품)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컴퓨터 스피커 처럼 한쪽 스피커에만 앰프를 넣고(쉽게 이야기해서 전기를 넣고) 한쪽은 그냥 그 소리를 다시 받아서 소리를 내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모니터 스피커는, 양쪽 스피커에 전원을 다 연결하고(앰프가 각각 달려 있기 때문에) 일반 얇은 스피커 선이 아닌, 악기 잭(보통 55잭이라 합니다)으로 위에 말씀드린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연결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각각 좌우 스피커가 독립된 앰프를 달고 있고, 동시에 악기 잭 단자를 가지고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연결할 수 있는 스피커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저가형 중에는 가장 유일한 모델이 Fostex PM0.4W Powered Studio Monitors 입니다.(현재 200불 정도 이지만, 아주 아주 가끔 130불 정도에 할인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쓰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는, 비록 저음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정도 수준이면 홈레코딩은 가능하다 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에게는 이 모델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가족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밤에 음악을 크게 트는 것은 피해를 줍니다. ^-^;; 혹은 스피커를 구입할 형편이 못되어, 헤드폰으로만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래서 부득이, 모니터링 헤드폰이 필요합니다. 유명한 메이커(소니, 젠하이져, 슈어)들은 이미 수 많은 모니터링 헤드폰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피커 가격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감사하게도 3개월 전쯤, 그래도 일본에서 꽤 지명도 있는 TASCAM에서 모니터링 헤드폰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격은 27불 정도입니다. 평은 더욱 놀랍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모니터링 헤드폰입니다.

7. 마지막 단계는 믹싱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만드는 곡이, 그저 피아노 연주곡이라면 사실 믹싱은 별로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의 곡에 적어도 2개 이상의 악기 혹은 목소리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믹싱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믹싱은 각 악기들이 조화롭게 들리도록 전체 밸런스를 잡는 것입니다.(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각 악기 별로 이큐를 통해 조절하는 것도 믹싱의 개념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어쨌든, 믹싱은 쉽게 이야기해서 볼륨을 그리고 좌우 조절을 하는 것 입니다. 각 악기들은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오른쪽 왼쪽(소리가 나는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는 좀더 오른쪽에 치우치게, 기타는 왼쪽에 나오도록, 그리고 피아노 크기는 느낌상 80 정도라면 기타는 60 정도로 조절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화로움이 더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이큐를 통해서 소리를 조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는 모든 음역대(복잡한 이야기는 최대한 단순히 넘어가겠습니다 ^-^)의 소리가 다 나기 때문에, 다른 악기와 많이 겹칩니다. 그럼 상식적으로 피아노 소리의 어떤 부분들을 이큐로 조절해서(깎아 내든지 혹은 올리든지) 겹치는 부분을 빼 줘야 합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일단 모든 악기 가운데 가장 저음의 영역대는 어느 정도 잘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더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문장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적어도 당신은 믹싱의 고수입니다. ^-^)

그리고 모든 악기들의 밸런스를 맞춘 다음에, 마스터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마스터링은 일종의 양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악기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전체 통로(전문 용어로는 마스터 트랙이라 합니다)에다가 VST들을 걸어서 음식에 마지막 양념 살짝 치듯이 음악에 양념을 치는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서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도움을 얻은 블로그는 이곳
http://atoragon.blogspot.com/2011/12/basic-chain-for-good-mastering-with.html
입니다. 어떤 식으로 무료 마스터링 VST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플러그인 추천까지 되어 있습니다. ^-^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컴퓨터에, 오디오 인터페이스 혹은 ASIO4ALL 드라이버가 설치된 상태에서 REAPER를 설치했습니다. 방구석님 블로그를 보고 REAPER 사용법을 배우고 그 안에 트랙을 만들어 무료 가상 악기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내가 건반을 누르면 드디어 악기의 소리가 납니다. 혹은 트랙 속에서 나의 진짜 악기를 마이크를 통해서 녹음 한 것이 스피커로 혹은 헤드폰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각 트랙의 볼륨 혹은 이큐를 조절하면서 조화롭게 소리를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저와 당신의 소박한 꿈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적고 싶었지만, 아주 개괄적으로, 그리고 당신이 컴퓨터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첫 단계 정도를 적어 보았습니다. 각 플러그인들에 대한 설명(예를 들어 리미터, 컴프레서, 리버브, 딜레이 등등)도 적기에는 사실 저에게 시간도 실력도 부족합니다. 마지막 믹싱 단계에서 트랙 오토메이션이라는 기능도 혹은 무료 사운드 폰트에 대한 설명도, 그리고 각 트랙마다 VST를 생각보다 많이 사용해야 하고(쉽게 이야기해서 이펙터를 많이 써야 하고), 결국 그것은 자기 귀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적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해 못하시는 내용이겠지만, 혹시라도 노파심에 조금 더 적어 본다면, 최근에 저는 무료 가상 악기에 한계를 느껴서, 샘플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악기의 소리를 파일에 담아 놓았다가, 그 소리를 사용하는 VST입니다. 위에 언급드린 사이트들에서 FREE SAMPLER VST를 검색하시면 좀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소리라는 것은, 자신의 창조성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이펙터들을 어떻게 그 악기와 결합시키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 다른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파일을 혹 당신이 보신다면 너무 복잡해서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은, 저 역시 거의 5년 이상을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에서야 깨닫는 것은, 나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숲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거창한 것을 만들려는 조급함 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나씩 준비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선율을 만들고 리듬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컴퓨터로 곡을 만들려고 하면, 너무 많은 작업량에 마음이 눌려 버립니다. 한음 한음, 악기 하나 하나에 신경써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에 기가 질립니다. 모든 악기의 특성과 주파수 대역을 파악하지 못하면, 곡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힙니다. 물론 그 한음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더 리얼한 악기 소리로 표현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곡을 쓰고 그 곡의 전체적인 느낌을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실제로 곡을 만들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가 프로 뮤지션은 아니지만, 음악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선물이며, 그리고 이 시대야 말로, 저와 당신처럼 작은 꿈을 가지고 음악을 향해 수줍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가장 축복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시작한 저와 당신이 음악을 통해서, 언제나 음악의 주인이시며, 그것의 최종적인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3년 5월 9일 목요일

함께 / 이게 사랑일까? - 커피소년




마치 시간을 압축해서 한걸음에 달려 온 것 같습니다.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인데, 여간 힘이 들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눈부신 봄이 되고 나서야, 
고되었던 학기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첫학기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두번째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수업 계획서를 받아들고 긴장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심히 두려워하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거짓말처럼 오늘, 모든 과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지만
지나고나니 놀랍게도 마음이 담담합니다.
그저,
포기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던
반복된 순간들만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제가 책을 본다는 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을 쓴다는 것은,
아내가 가정 안에 모든 몫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연약한 아내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가정을 돌보았기에,
저의 학기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유학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의 희생과 격려로 채워나가는 것임을
더욱 절실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격려와 칭찬은,
제가 아니라 마땅히 아내가 받아야 합니다.

교수님의 칭찬보다 더 기쁜 것은,
마음에 담기에도 벅찬 훌륭한 수업보다 더 기쁜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든이와 함께
우리 가족 함께, 두번째 학기를 이겨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휴식입니다.
계절 학기를 앞두고 있지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읽어야 할 책들이 있지만,
그래도 잠깐 숨을 돌립니다.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이 가족이고,
성적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인생이고,
결과보다 더 소중한 것이 과정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주님께서 앞으로도 신실하게
저희 가정을 인도하시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3년 4월 7일 일요일

주님 앞에 성역(聖域)은 없습니다/ 특별한 바램- J Rabbit



근래에 있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크게 떨어트린 사건을 보며 생각이 많아 집니다. 사실 가장 먼저 불쌍히 여겨진 분들은, 표절 시비에 걸린 분의 학교 동문들입니다. 어떻게 그분이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는지는 그 전모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분과 다르게 정직하게 힘을 다 하여서 자신의 과정을 밟고 있는 분들에게, 그분이 큰 누를 끼쳤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그분과 학교 동문임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리고 자신의 학위가 바로 그 학교에서 얻은 것임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학위 역시 거짓으로 얻은 것이라 의심 받을 것이 틀림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동안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그분에 대한 분노, 혐오, 실망, 좌절를 보고 동감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본질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이 문제에 대해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저의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의 결론은, 주님 앞에 '성역(聖域)' 을 만든 것, 바로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죄인입니다.(죄를 감싸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떻게 목사가 저런 죄를 지을 수 있는가 라는 맥락에서만 비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목사에게 더욱 특별한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사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도 종종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죄인이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성역화' 시켜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직함과 명성이, 성도의 수가, 교회의 규모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건축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잣대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거론 할 수 없는, 그가 죄를 짓든지 말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그러한 분위기가 바로 가장 큰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져 버린 사회 속에서, 이러한 사고가 굳어져 버린 듯 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 그러나 언제나 회개해야 하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자기 인식이 아니라, 다른 이보다 우월한 지위, 재산, 외모를 가진, 월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 인식이 교회에 조차 팽배한 듯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태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하나님 앞에 특별하게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밝히 드러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나 자신만은 이미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 자신'조차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 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저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 자꾸 주성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집니다. 그의 3류 같은(어쩌면 정말 3류 일지도 모르는) 영화가 언제나 행복한 것은, 그는 인생의 아픔을 감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성역을 가진 인간은 없습니다. 모든 등장 인물들이 인생의 아픔과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 속에서 감추지 않고, '웃음' 이라는 코드로 드러날 때에,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영화를 보는 이의 마음 속에도 기쁨이 찾아옵니다.

성경이 인간의 죄를 감추지 않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위대한 인물 들 조차,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드러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감추지 않고, 설령 자신이 인간들 속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 할 지라도, 하나님 앞에 영원히 그분을 경배해야할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성역화 시킬 만한 뛰어난 인물들도,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인 듯 합니다.

결국 오늘도, 저를 돌이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성역화 시키고,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마치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 하나님 앞에서 조차 당당하기를 서슴치 않는 저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분 역시,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난 성역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을 하루 빨리 벗어나,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모든 죄인인 인간이 의지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그분이 깊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그때서야 추락한 한국 교회의 위상이, 그리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이름이, 회복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

2013년 4월 4일 목요일

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합니다 :)


사랑하는 이든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저와 아내에게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줄 줄 알았지만,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바꾸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년의 거의 절반을 겨울로 지난다는 것은, 저보다 아내에게 더욱,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혹독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길고 긴 겨울을 지나, 이제 이곳 미시간에도 봄이 찾아옵니다. 혹 이든이가 아플까봐 바람 쐬는 것도 멀리 가기를 염려하는 아내의 마음이 애틋합니다. 잠시 우리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가집니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처럼, 주님의 은혜가 늘 우리 가정에 넘치기를, 이곳에서의 모든 과정을 은혜 가운데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과연 루터는 교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까? The Question and Answer System of Luther's Small Catechism - A Special Method to Aid the Laity In Understanding the Contents / Purified - Michael W. Smith



깊은 고민 끝에 유학을 결심하고, CFNI(Christ For The Nation's Institute)에 대해서, 그리고 Worship and Technical Major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준비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았지만, 알게되는 정보들이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입학하는 방법등의 정보가 아니라, 그곳에서 배우는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목회적인 고민이 궁금했지만 한국에서 그것에 대해서 알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때 인터넷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알려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이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1년반이 지나면서, 이곳에 오기 전에 저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과연 그것은 어떤 곳일까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것이고, 또 그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 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여력이 없어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한가지를 계속 제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소자와 같은 제가, 유학 오기 전 저처럼 동일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CFNI의 생활과 배우는 것들은 지금까지 정리한 글들을 읽어본다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떤가요? 

지나간 한학기와 그리고 절반의 학기를 돌이켜 볼 때에,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페이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한국은 레포트라고 하지만 여기는 페이퍼라고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바로 제 페이퍼 안에 이곳에서의 모든 고민과 생각과 열정과 눈물이 녹아 있습니다. 저의 미래의 목회를 생각하며, 또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흘린 땀과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이곳을 졸업하게 된다면, 저에게 가장 남는 것은 아마도 저의 글들일 것입니다. 사실상 이곳 칼빈에 온 목적은, 깊은 고민 가운데 이 글들을 정리하여 쓰기 위함이며, 어떤 의미에서 이곳에서 경험한 모든 것의 정수가 바로 저의 글들안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쓴 페이퍼들을 블로그에 공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쩌면 매우 부끄럽기도 합니다. 과연 유학 온다고 나와 있는 제가, 거기에 합당한 열매들을 맺고 있을까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 유학까지 나간 제가 이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고 저를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을까요?

저의 기분은 굳이 비유를 한다면, 마치 여성에게 있어서, 화장을 하지 않고 중요한 외출을 하는 것과 같은 마음 입니다. 저의 페이퍼들은 화장하지 않은 저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부끄럽습니다. 교수님과의 은밀한 비밀로 남기고 싶습니다. 과정은 깊이 숨겨두고, 칼빈을 졸업했다는 기쁜 명예만 가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차원을 넘어서서, 뭔가 좀더 교회에 유익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가 고민했을 때에, 제 글들을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저의 결심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유학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분들에게, 유학의 결과물을 저의 페이퍼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발견하는 것과, 저의 글들을 읽음으로써 제가 고민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유익을 얻고 소통하는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편 정도의 페이퍼를 썼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모든 글을 그 배경과 저의 고민 그리고 교수님의 평가와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 읽으시는 이 글이, 그러한 저의 결심의 첫번째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 페이퍼와 관련된 글은 "칼빈 신학교 페이퍼" 라는 태그를 걸겠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로 사역할 때에, 아이들에게 교리 교육을 처음 시도했습니다. 교리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한, 저의 아주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시중에 나온 어린이 교리 교육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서 많이 부족함을 느꼈고, 두눈이 반짝이는 아이들 앞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는 교리 교육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적게 듣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것을 "암기" 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교리 교육의 목표이고 과정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미 교리 교육의 역사 가운데, 지나친 암기에 관한 부작용들은 확인되었고, 이제 더 이상 외부적인 권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는 현대의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이제는 교리 교육이 거의 사리질 지경인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칼빈에서 첫 학기는, 논문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전공 가운데서 주제를 잡고, 그것을 가지고 교수님의 지도(역사 신학 전공)를 받으며 글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저의 고민이었던 교리 교육을 가지고 주제를 잡았고, 교수님 밑에서 글을 완성 하였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평생에 잊지 못할 만큼 고되고, 또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리 교육에 관한 글들을 찾아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쟁점이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고민해왔던 바로 그 내용인데, "어떻게" 교리 교육을 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많은 개신교의 교리는 질문과 대답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학자들은 그것은 바로 암기를 위해서 개발된 도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하여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굳이 암기 자체가 목적이라면, 왜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태를 도입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요?

개신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고, 교리 교육을 확장시킨 대표적인 인물인 루터를 통해서 그 대답을 찾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원하던 주제를 가지고 탁월한 학술적인 글을 쓴 사람들은 사실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학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적어도 결론을 맺으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루터는 교리 교육에 있어서 질문과 대답 형식을 쓴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그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루터만의 방법이 아니라, 사실은 교회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교리 혹은 성경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루터는 교리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이 있었고, 그리고 그 가운데 사용된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태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방법론을, 그가 성도들을 위하여 쓴 그의 가장 소중한 작품 소요리 문답 가운데 적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하여 모든 것을 종합한 저의 페이퍼의 제목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The Question and Answer System of Luther's Small Catechism - A Special Method to Aid the Laity In Understanding the Contents"

저의 글 가운데 제가 이해할 때에 가장 탁월한 논리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루터가 소요리 문답에 사용한 질문과 대답 형식은 우발적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이미 그는 소요리 문답 이전에 출판한 글에서, 질문과 대답을 통한 교리 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암기를 넘어서서(루터는 기본적인 교리를 암기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도가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중요한 방법임을 루터 스스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는 루터가 이미 기존에 고민하고 알고 있던 부분을 자신의 소요리 문답의 틀로 의도적으로 적용하였다고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다른 학자들이 눈여겨 보지 않은 부분이고, 제가 어느 정도 독창적으로 이해한 부분입니다.

첫학기를 마무리하며 제 모든 과정을 함께 한 교수님은 이런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A- 를 받았지만, 교수님은 확실한 A-를 위해서는 좀더 노력해야 한다고 평가해 주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 글의 수준은 B+ 와 A-의 중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흥미 있는 주제라고 평가해주었지만 이 분야에 대한 결정적인 페이퍼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통찰력을 준다고 코멘트 해 주었습니다.

이곳 칼빈은 페이퍼에 대한 영역별 점수를 메기고 종합하는 형식입니다. 각 영역별 척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5 = Exceptional 4 = Meets Requirements 3 = Needs Improvement 2 = Significant Concerns 1 = Unsatisfactory 그것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제가 받은 점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Focus : Is the writing unified around a central, significant idea and does it advance a clear thesis? 4 1/2

2. Argument : Do the arguments support the central idea or thesis? Given the audience, are the arguments persuasive? Are arguments supported with evidence (e.g., facts, examples, analysis)? Given the audience of the writing, is the analysis and development of the central idea superficial or too deep and technical?) 4 1/2

3. Clarity : Is the writing clearly organized? Is the central idea or thesis developed with clear progression? Do grammar, sentence structure, paragraphing, and transitions contribute to the clarity of the writing? 4 1/2

4. Engagement of sources : Are appropriate sources used? Are the ideas or others (e.g., of the biblical text, of other scholars) correctly understood or superficially engaged? Are the ideas of others presented charitably, truthfully, and insightfully? Given the genre of the writing, are supporting details documented properly? 4

5. Style : Does the writing demonstrate and awareness of the audience? Does it hold the audience's attention? Is the tone appropriate? Is it persuasive? Does it demonstrate the power to move the mind, affections, and will of an audience (if applicable)? 4 1/2

Total : Generally speaking, a passing assignment should receive 15 or more points. 22

기술의 발달로, 도서관에서도 찾기 어려운 자료들이 구글을 통해서 많이 검색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http://books.google.com/ 에서 과거의 자료 가운데 스캔된 유용한 자료들을 많이 찾았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구글이 자체적으로 스캔한 책은, 검색어를 통한 내부 검색도 가능합니다. 비록 전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한국에 계시더라도, 구글 검색을 통해 제 각주를 추적하셔서 원본 소스를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많은 글들을 봅니다. 제가 모르는 분야에서, 관심있는 분야에서 소중한 각주 하나를 찾을 때의 그 큰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저의 글을 통해서, 제가 느낀 기쁨들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대가 되어서, 소중한 교회와 성도님들을 좀더 잘 섬길 수 있게 돕는다면, 제 인생에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를 위해서 고민하고 헌신하는 많은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P.S. 링크를 클릭하시면 페이퍼 원본을 보시고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ox.com/s/j1j8a790i0xz9vgujq8c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꿈을 가슴에 품고 - 사랑하는 요한이에게 / DreamMaker - Gentle Rain



요한아, 너의 글이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리고 너의 짧지만, 또 짧지 않은 글에 대해서 며칠 동안 곰곰히 생각했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 또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 교사로, 우리는 정말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초등부 교사를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스무살 바로 그 때, 눈이 반짝이는, 그리고 굉장히 수다스러운 아이들 다섯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고,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지. 아이들은 늘 모든 것이 궁금했고, 모든 것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했어. 그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생각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였어. 그런데 돌이켜 보면 참 그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구나. 

중등부 교사 때는 더 쉽지 않았지.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그저 바닥을 바라보기만 했고, 나는 뭔가 가르칠 것은 많았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은 언제나 무엇인가 조금은 나에게 이야기하길 원했고, 자신들의 고민을 알아주길 바랬고, 지금도 내 마음에 남은 것은, 그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그 순간들이 행복했다는 것, 비록 지금은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지만, 그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구나. 

네가 그런 것 처럼, 나 역시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다. 교육의 본질은 뭘까? 사실 나는 교육학 이론이나, 사상이나, 점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눈여겨 보고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답이 아님을 알고 있지. 물론 그런 것은 중요하겠지, 그러나 너와 나의 인생에, 그리고 우리가 다루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인생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전하고 다루는 목표와 꿈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과, 그리고 그것이 정말 우리의 삶에 적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의 결론은 "질문" 이야. 우리는 질문해야 해. 그리고 질문을 받아야 해. 물론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질문은 아닌걸 너도 알꺼야.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함으로써 듣는 이가 무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바랬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가기를 바랬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우리 안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언제나 답은 하늘로 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희미한 답의 조각들만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확증하고 수정하는 것은 결국 말씀, 하나님의 뜻이지. 

그런면에서 나는 교리 교육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초보적인 배움의 단계에서는, 언제나 기초적인 지식과 암기가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만약에 암기에만 그친다면, 그리고 그것을 점수화 시키고 요점을 정리하고 하는 과정에서만 그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절반의 과정만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력해.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초단위로 변하는 매우 급격하게 변하는 다변화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가지의 교리를 암기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괄호에 정답을 넣었다고 그것으로 교육이 끝난 것일까? 당연히 아닐꺼야. 왜냐하면, 모든 이들은 결국 "삶의 실제" 앞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그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다양성 앞에서, 그 교리를 혹은 진리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지. 

요한아, 나는 이것을 단순히 "적용"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그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협소하게 들리기 때문이야. 말씀과 적용 이라는 두가지 카테고리는 마치 신앙 지적인 내용과 체계 자체와, 그것을 우리 삶에 펼쳐내는 것이, 서로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지. 지식적인 배움 혹은 암기 습득 을 통해서 배운 것과 삶 자체를 괴리시켜버릴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 

우리가 칭의에 대해서 배울 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라는 것을 배울 때에, 하늘 아버지라는 것에 대해서 배울 때에, 그것이 진실로 우리의 내면과, 삶의 순간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닐꺼라고 생각해. 

함께 읽었던 얀시가 좋았던 것은, 그는 삶 속에서 진리를 고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에게 교리는 진리이고, 진리는 삶 속에서 확증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 아마 얀시 책 처음에 나오는 내용이지? 한 몸을 파는 여인이, 교회에 가봐야 수치심만 더해지는데 거기 가서 뭐하겠냐는 내용..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칭의가, 그리고 참된 교회의 역할이, 이 여인의 삶과 말 속에서 의미를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저 우리가 괄호 넣기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존귀함을 다루는 것임을, 우리는 그때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 같구나. 

네가 이야기한 것처럼, 바른 지식을 전수하고, 그 지식에 기반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 그것은 교회 교육의 아주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 나는 거기에다가 살을 덧붙여서, 결국 "한사람의 개인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 가운데 펼칠 수 있는 통찰력과 지혜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과 근원을 만들어주는 것" 이 교회 교육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싶어. 

그것은 한 개인의 관점에서는, 교육학적으로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개체가 되도록 해 주는 것이겠지. 말씀을 스스로 이해하고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 속에서 펼쳐질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고, 교리의 삶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언어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 자체라고 생각해. 우리는 언제나 충분히 말씀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의 진리가 가슴에 심기고, 그리고 그것 앞에 자신의 생각, 고민, 육체, 정신 그 모든 것이 평가 받아야만 하지. 

그리고 또한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바로 그런 통찰과 지혜가 전수되어야 할꺼야. 그것은 사실상 가족을 통해서 전수된다고 생각해. 마음 아프지만, 지금의 교회는 가족이 점점 해체되고 있지. 전문화된 교육 부서가 부모의 권위를 위임받고, 그들에 의해서 종교 교육이 행해지는 현실이지.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교회에 명령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야. 우리의 지혜의 전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통찰과 순종, 인생에 대한 펼쳐냄은 가정을 통해서 전수되고. 그리고 그 정점에는 아버지가 있지. 

내일 수업 시간에 볼 다큐멘터리를 오늘 미리 한번 보았어. 단순히 영어가 부족해서 한번 미리 보고 갈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마음에 큰 은혜가 되었구나. 인본주의 교육학으로 망가진 교회 교육, 그리고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격려와 도전을 보았어. 네가 말한대로, 모든 사람들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그것에 기반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배워야 할꺼야. 그리고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가정" 이야. 

네가 느끼는, 하나님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 그리고 내 자신이 그 앞에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대화를 통해서 나눠진다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겠지. 나는 혹시 선생님들이 결석하실 때, 그 반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한가지 질문만 했어. "오늘 목사님 설교 듣고 무슨 생각했니?" 놀라운 것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 중에서는 아주 탁월한 것도 있다는 것이지. 나는 약간의 교정과 그리고 많은 격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을 의탁하는 기도를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드렸어. 그때 아이들의 얼굴이 밝았던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언젠가 성경 일독학교 강의를 하고 났을 때에, 어떤 성도님이 격려해 주셨어. 목사님이 강의하시면 하나도 모르는 저도 알 것 같아요. 나는 다른 어떤 말보다 그 말이 너무 기뻤어. 세계 최고의 강사가 되지 않아도 좋아. 가장 지혜가 없는 이들이 지혜를 얻는다면, 그리고 그 지혜를 얻는 길에,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길에 함께 설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것으로 족해. 

사람은 언제나 교만해지지. 그리고 그 교만한 입장에서 책을 쓰는 것을 보게 되. 누구나 자신의 책에 "고대 근동" 이라는 외계어를 쓰지만, 나는 맥그라스의 책을 보기 전까지 정확히 고대 근동이 어디인지 몰랐어. 그는 친절해. 그는 자신이 그 단어를 인용하면서, 나에게 고대 근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지. 천재로 추앙 받는 맥그라스이지만, 그야 말로 약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나의 꿈은 너무나 단순해. 함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싶어. 성도들이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험한 길을 나누며 함께 가고 싶어. 단순히 암기와 일방적인 배움과 납득 되지 않는 가르침에 대한 강요로 지친 이들에게, 공감과 질문과 고민이 있는 목회를 하고 싶어. 그리고 나 자신 뿐 아니라 함께 가는 이들도, 그 고민 끝에 하나님 앞에 순복하고 싶어. 하나님 당신만이, 우리의 전부이며 목적이며 진정한 아버지시라고..

가족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어. 가족 간에도 화목하지 못하고, 시기와 분쟁과 분노와 인내하지 못함이 가득한데, 그런 가족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 안에서 부서를 나누고, 망가진 부모님들이 다시 주일 학교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이 그들에게 위탁되는 현실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 정말 이것처럼 악순환은 없을꺼야. 세상은 바쁘고 힘들지만, 부모들은 삶의 급박한 현장에, 생존을 향해 몰리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책임과 특권은 여전해. 그것은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야. 나는 그런면에서, 이 시대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하기 위해서는, 장년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또 절실하다고 생각해. 결국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신앙은 전수되고, 또한 그들을 통해서 주일 학교 아이들이 신앙을 배우기 때문이야. 

요한아, 나는 이제 아버지가 되었구나. 그 벅참, 감격, 기쁨 그리고 그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를 다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아들 이든이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경험할 꺼야. 나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어떤 태도를 갖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배울 꺼야. 그래서 나는 너무나 긴장되고, 또 동시에 가슴이 너무 벅차구나. 

세상에는, 하나님 외에는 완전함이 없구나.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불완전하며 연약하지. 그러나 요한아, 우리 마음에 꿈을 품고 살자. 네가 돌보는 순원이, 성도가,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리가 교리로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드러나기를 바란다. 너의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기를 바라고, 너의 죄 가운데 하나님의 칭의를 붙드는 간절함이 드러나길 바란다. 우리가 치열하게 복음의 내용들을 삶 속에 반추하고 그것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어떠한 질문에도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꺼야. 

무형의 교육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교육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에게 맞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수준높은 교육이지. 나는 오히려 참된 교육자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가장 필요한 말을 가장 적실할 때에 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다고 생각해. 

놀랍게도, 무지한 사람일 수록 교만함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그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지. 결국 우리에게는 그들을 지치지 않고 설득하려는 용기와 실력도 필요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요한아, 우리를 준비하자. 그 준비는 고민하는 거야. 그리고 그 고민으로 우리의 현실을 사는 거야. 삶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장 탁월한 책들을 함께 읽자. 그리고 그것으로 고민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자. 왜냐하면 결국 지혜는 먼저 배우는 것이고, 그 이후에 나의 것으로 내면화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내세우거나, 이름을 드러내거나, 혹은 그 어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직 한가지 이유만으로.. 지금 그리고 또 언제나, 우리를 필요로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감사하게 미천한 우리를 사용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늘 격려하시고 용기 주시기를. 

- 너를 사랑하는 진부 목사가 - 


P.S. 네 글을 보고 함께 읽고 싶은 문단이 몇군데 생각이 났다. 함께 읽고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볼께. 


- Divided the Movie : a Youth Ministry Documentary Film

http://vimeo.com/26098320


- Torrance, Thomas F. , The school of faith : the catechisms of the Reformed Church. xxxvi

아마도 뉴욕 리디머 처치(Redeemer Church) 팀 캘러(Timothy keller) 목사님이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것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찾아낸 인용문이야. 

Christianity is above all the question the Truth puts to man at every point in his life, so that it teaches him to ask the right, the true questions about himself, and to form on his lips the questions which the Truth by its own nature puts to him to ask of the Truth itself that is may disclose or reveal itself to him. Now the Catechism is designed to do just this, and it is therefore an invaluable method in instructing the young learner, for it not only trains him to ask the right questions, but trains him to allow himself to be questioned by the Truth, and so to have questions put into his mouth which he could not think up on his own, and which therefore call into question his own preconceptions. In other words it is an event of real impartation of the Truth. 


- 전성수,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 77-79.

최근에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에 비해서 책이 내용이 많이 부족해. ^-^ 그래도 아직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만큼 다룬 책을 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너무 소중한 책이야.

"물고기를 잡아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일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의 격언이다. 이 말은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얻는 방법과, 지식을 창조하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지혜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은 아이에게 단순한 지식보다 현명한 지혜를 쌓게 하는 데 주력한다. 지혜는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로운 자만이 지식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지혜가 뒤지면 모든 것에서 뒤지며, 지혜가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생각한다. 

사고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 나름의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곧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숱한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지적인 성자은 그런 의문들을 풀기 위해 무수히 질문하고 더 넓고 깊이 사고하는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질문은 인간을 진보시키는 길잡이이자 지성의 출발점인 셈이다.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루저(Loser), 희망을 노래하다 / I Look to You - Whitney Houston




첫학기가 시작되고, 클래스의 학생들에게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마음에 드는 논문을 찾아서, 그 논문에서 논문 주제문 열개를 찾아오세요." "음, 별로 어렵지 않은 걸?" 의기 양양하게 주제문을 찾아서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교수님으로부터 그 중에 일곱개에 물음표(?) "진부, 이것들은 주제문이 아닙니다."

약간 당황했습니다. "음 그럴 수도 있지." 다시 찾아오라는 숙제에 더욱 성의를 다해서 일곱개를 찾아갔습니다. "ㅋㅋ 이제 제대로 했을꺼야." 수업 중 쉬는 시간에 교수님이 저를 부릅니다. 일대일로 이야기하는데 교수님 표정이 조금 심각합니다. "진부, 네가 제출한 것 중에 다섯 개가 여전히 아닌걸?"

식은 땀이 났습니다. 부끄러운 것도, 당황스러운 것도 둘째였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의 영역에 대한 좌절감, 이것이 칼빈에서의 저의 시작이었습니다.

좌충우돌, 첫 학기는 논문을 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지나갈 줄 몰랐습니다. 주제를 잡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학자들의 의견으로 힘을 실어서 저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은, 아..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학기의 삼주 정도가 지나, 드디어 주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교수님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진부, 너는 드디어 너의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를 제대로 잡았고, 그런 면에서 큰 진보를 이루었다" 마음에 날개를 단 것 처럼 기뻤습니다.

저의 한학기 동안의 주제는 "교리 교육" 이었습니다. 교리 교육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리 교육 교제는, 당연스럽게 암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금방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대부분의 교리는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무슨 의도가 있을까요? 특별히 교리 문답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루터는, 왜 자신의 소요리 문답을 그러한 형식으로 만들었을까요?

도서관의 오래된 책 냄새가 행복했습니다. 필요한 책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비록 독일어는 알지 못하지만, 영어로 번역된 루터의 글들을 읽으며, 그의 달콤하고도 힘 있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적어도 교회사 가운데, 성경의 진리를, 단순한 암기가 아닌 이해라는 목적을 가지고 교육하는 흐름을 발견했고, 루터 역시 그러한 줄기 안에서 자신의 소요리 문답을 작성했다는, 저만의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이곳의 점수를 채점하는 기준은 아주 세분화 되어 있고 철저합니다. Focus, Argument, Clarity, Engagement of Sources, Style 학기가 끝나고 마지막 페이퍼를 돌려 받는 날, 저의 페이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진부, 너의 주제는 Th.M. 수준에서는 조금 쉽다고 느껴지고, 좀더 확고한 점수를 위해서는 좀더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했다."

교수님의 평가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의 출발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헤매고, 당혹스러울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아주 냉정하게 제 점수와 각 영역별의 교수님의 평가를 분석해 보면, 저는 평균은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탁월함에는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힘에 진하게 공부하고 나서, 결과물을 받아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특별히, "교육" 그리고 "배움"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곳의 과정의 표면적인 목표는, 그 분야에 학자를 배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평생"이 바로 "교육의 과정"이며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궁극적으로 경험하고 발견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교육"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이곳의 과정의 본질은 결국, "논리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세상을 분별하고, 그 말씀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인생을 전진할 수 있는 것" 제가 이해할 때에 이것이, 이곳의 교육의 내면적인 목표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의 공부는, 표면적으로는 학자를 만드는 과정일 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내면과 궁극적인 목표는, 훌륭한 인간혹은 성도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기르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학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과정을 포기해야 할까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과정을 통해서 혹 표면적인 목표를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내면적인 진실한 목표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니다. 저는 매 순간 "배울" 것이며 "성장"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순간 순간 "교육의 참된 목적"을 잊어버립니다. 때론 본말이 전도되어서, 학위가 그 목표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점수가 목표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목표의 표면은 될 수 있겠지만, 목표의 본질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학위나 점수가 목표가 되어버리면, 공부라는 것이 혹은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학자가 되기 위한, 혹은 아주 머리가 뛰어난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전유물" 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의 가장 큰 우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선입견 혹은 포기" 입니다. 공부란,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과정을 통과해서 학자가 되기 위한 것이고, 교육이란, 평범한 사람들은 그 학자를 우러러보며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그것은 결국 수동적인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어떠한 발전도 성숙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조정당할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고통 받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미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글을 쓰고, 똑똑한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타고난 머리를 가져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학원에 불러 놓고서는, 우리 학원 덕분에 훌륭한 대학에 갔다고 현수막을 거는 것은, 사실상 모두를 기만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나 그런 결과를 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똑똑한 사람이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 학자가 되는 것은, 일반인들의 인생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물론 그들의 역량이 넓은 의미에서 일반인들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도 없이, 똑똑한 사람이 소정의 과정을 거쳐 학자가 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들만의 일"로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배움이 성숙이 그리고 교육이, 상위 몇프로 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 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한 교육은, "여러모로 부족한 그 어떤 사람이, 성숙해 가는 것 그 자체" 라고 생각합니다. 탁월한 사람이 성적을 잘 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특정인이 정상에 올라가 우매한 모두를 다스리는 형태가 아니라, 부족하고 가망이 없어보이는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숙해져가는, 그래서 일반인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추구하는 것은 좀더 보편적인 교육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두려운 것은, 교회 역시 때로는 "엘리트 교육" 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똑똑한 이들에게 집중하여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족한 이들이 교육을 통해서 희망을 발견한다면, 루저가 교육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노래할 수 있다면, 사실 그것이야 말로 정말 어렵고, 또 그것이야 말로 가장 갚지고 숭고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의 유학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너무나 뛰어난 분들을 많이 봅니다. 제가 그분들보다 지적으로, 통찰력으로 한참 부족하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저의 길을 묵묵히 가겠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저의 과정은, 지식과 교육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 평범한 사람들 혹은 루저라고 불리는 이들을 위한, 정말 부족한 저의 작은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한학기를 이겨냈습니다. 다음 학기는 어떨까요? 다음 학기 실라버스를 확인하니, 첫 학기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두번째 학기 시작을 며칠 앞두고, 큰 긴장감과 그리고 동시에 설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루저의 노래" 를 부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든이를 잘 보살피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목적이 제 인생과 저희 가정 안에서 충만히 펼쳐지기를 원합니다.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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