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1일 목요일

"복음이 울다" 북 리뷰 - 더 높은 참된 사랑으로의 부르심


하나님이 그분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더 높은 사랑으로
나를 부르고 계심을 깨달았다.
내 모든 종교적 배움이나 종교적 책임감을 초월한
새로운 종류의 사랑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종류의 사랑으로,
내 인생이나 가족, 미래를 위해 세웠던 계획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드는 종류의 사랑으로

- "복음이 울다" 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 지드는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책 한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입니다.   

오래 전에 "래디컬"이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울다"가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래 영어 제목은 "Something Needs to Change"입니다. 번역한 출판사에서 한글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마음을 깊이 있게 드러낸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눈물이 탄식으로 흘러나올 때에, 그 사람은 변화를 꿈꾸며 변화하게 됩니다. 

플랫 목사님은 소위 말해서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그는 뉴올리언즈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지적으로 탁월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겨우 스물 여덟 살의 나이로 미국의 대형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가 꿈꾸는 그런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삶을 고민합니다. 자신의 설교가 편안한 강대상 뒤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고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 중에 그는 자신의 친구 애런의 예기치 못했던 제안으로 히말리야 산맥 트래킹을 떠나게 됩니다. 애런은 플랫 목사님에게 자기 고향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간단한 약품이 없어서 한쪽 눈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 콜레라로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부인의 자살 이후에 절망에 빠진 남자, 딸들을 성적인 노예로 팔 수 밖에 없는 비참한 마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랫 목사님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 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속 신앙과 힌두교 신앙 속에서 영적으로 억눌린채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깊은 산 속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한 사람"을 향한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심한 설사와 구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은 다섯 살 프라딥의 죽음은 플랫 목사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그 지역에 성적으로 착취 당하는 어린 소녀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겨우 소수의 소녀들만이 도움을 얻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플랫 목사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비참한 삶의 현실들 속에서 좌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합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를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이야 말로, 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이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영혼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짙은 어둠으로 뒤 덮인 그곳이었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빛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가정 교회 성도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다양한 연령층에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입니다. 두 시간이 넘는 산 길을 걸어와서 작은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플랫 목사님은 자신도 그 교회에 속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염려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깊은 산 속에서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깊은 산맥의 성도들의 삶은, 섬기는 삶입니다. 그들은 깊은 산 속에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하여 희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의료, 농업 그리고 교육 기술을 총동원해서 어려운 이들을 돕습니다. 

플랫 목사님은 이들의 삶과 섬김을 보면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깊게 묵상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것을 드리고자 결심합니다.

이제 그는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그는 누가복음 16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필요에 연민을 가지고 도우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자를 모른 척 하는 자들을 정죄하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참된 믿음은 어려운 이들을 위한 행위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합니다. 그는 누가복음 17장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재림과 자신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생생한 절박함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리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고, 지금 당장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저는 항상 절박한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책은 단순히 지적 유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거울이며, 저의 삶을 다듬어가는 채찍이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결단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논리를 풀어가는 차가운 책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따뜻한 책을 좋아합니다.

안타깝게도, 똑똑하지만 차갑고 공감 없는 크리스천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이란,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것이고, 아픔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그 안에서 드러내는 것이며, 나를 기꺼이 희생하여 함께 위로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이 울다"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한동안 희미해졌던 복음에 대해서 깊이 경험하였고 플랫 목사님의 진실한 마음이 저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플랫 목사님은 가장 높은 수준까지 공부하였지만 그에게 복음은 그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온전히 살아있는 실체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이 저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그의 곁에서 의미있고 진실한 히말라야의 여정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깨달은 모든 것을 책으로 기록하고 실제의 삶과 사역에서 그 결심대로 그대로 전진합니다. 복음이 그저 자신의 개념 속에 존재하던 사람으로부터, 복음이 실제로 삶에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도 저의 마음 안에도 복음이 울고 살아 움직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이제 신앙 생활을 시작한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이미 신앙의 연륜이 깊은 성도님들에게 모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복음의 본질과 그 내용과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보면서 제 자신과 저의 목회를 깊게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목사인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가? 한 사람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었는가? 나의 설교는 그저 합리적인 구조를 갖춘 논문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나는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함으로 더 진실하게 변하고 성장하는 사람인가?

이제 글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곧 심방을 나갑니다. 갑자기 연락 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을 만나고 위로하고 또 섬기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은 오직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발걸음을 주저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랫 목사님의 질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절박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변해야 할까? 이 질문을 고민하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하라."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지금, 그리고 아마도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을 책들

집사님께서 "제가 감동 받은 책 세권 정도 추천해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감동 받은 책이라고 해서 꼭 집사님의 삶에 유익을 준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용기로 이 글을 써서 집사님께 전해드리는 것은, 책이 주는 유익 때문입니다. 집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책은 누군가와의 만남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만남과 나눔을 통해서 우리는 한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말씀드리면 좋을까 조금 고민이 들었습니다. 신학책으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책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책이 출판되고 이후 5년 동안,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해서 목회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힌 탁월한 책입니다. 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번 읽었지만 새롭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지 못하면, 사실상 신앙 생활은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지금 저는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습니다. 모두 귀한 책들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도 그렇고,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의 책 "히트 리프레쉬"도 정말 새로운 내용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좀 지루했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그가 "공감"을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얻게 되었다는 것은 저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읽은 책들을 무조건 누군가에게 강하게 추천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때를 허락하시고,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또 좋은 변화들을 만들어가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가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신학은 모든 것을 말하지는 못한다" 입니다. 신학책과 경건 서적은 삶의 근본과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넓고, 다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전체를 조망하고 배워간다는 점에서는 폭 넓은 독서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을 책 몇권을 보여드립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s://ridibooks.com/books/969000280

집사님께서 이 책을 읽고 계셔서 마음에 많이 기뻤습니다. 유익을 많이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책입니다. 제가 삶이 많이 어렵고 침체되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에 견고한 유익을 주었습니다. 

집사님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다시 펴서 잠깐 읽어보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수용소라는 가장 이기적인 장소에서, 인간됨의 의미와 희망과 삶을 논하는 기적의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은 아니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의 갈망이며, 이것을 붙들 때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분입니다. 

굳이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의 삶 자체가 이기심의 충족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나의 것을 반드시 지키려는 이기심, 적극적으로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가 살고자 하는 이기심, 그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한 귀한 책입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04)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6.html




* 골든아워

https://ridibooks.com/books/745000113

아마 누군가가 저에게, 일반 서적 중에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그리고 나중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북클럽을 할 때에 무슨 책으로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골든 아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책은, 한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목사를 영혼의 의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과연 이국종 교수님 만큼의 마음과 열정과 투지와 사랑을 가지고 목회를 했는가를 정말 돌아보게 만든 책입니다. 감히 제가 이분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저는 이국종 교수님과 같은 마음과 삶으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의술에 대한 책은 아닙니다. 한 거대한 조직의 중간 관리자로서 그분이 가진 고민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쪽 눈을 잃어야만 했던 그의 처절한 상황 조차도 저에게 큰 통찰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며칠에 한번은 꼭 펴서 읽어봅니다. 만약에, 이분과 같은 마음으로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온 성도와 교회가 실천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 골든아워 - 이국종 / 목사로서의 삶과 다짐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06/blog-post_18.html




* 멘탈리티 
https://ridibooks.com/books/2189000240

목사 안수를 받고 얼마되지 않아서 새벽 설교를 준비할 때입니다. 늦은 밤까지 설교를 쓰고 자려고 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혹시 이 본문으로 어떻게 설교하셨을까?" 마침 찾아보니 그분의 설교가 있었습니다. 딱 1분 듣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호랑이라면, 저는 고양이라고 느꼈습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 자세, 이해 등등 모든 것이 그랬습니다. 바로 설교를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정말 탁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까요? 예를 들어서, 설교의 기술에 대해서 정리한 책은 많지만, 정말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어느 정도의 열심으로 어느 정도의 절박함으로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은 많지 않습니다. 단순히 설교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의 자세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비교할 만한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정도입니다. 

NBA 최고 선수들을 개인트래이닝하는 팀 그로버의 이 책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시대에 가장 앞서가는 사람들의 그 마음가짐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마치 보물 지도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내면의 어두움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 탁월함에 이르는 길을 잘 제시한 책입니다. 저는 조금씩이라도 반드시 하루에 한번씩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내면을 정리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8) - 멘탈리티 (팀 그로버)
/ 최고들의 정신 세계, 바로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되게 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6.html

* “멘탈리티”와 함께 한 100일의 기쁨




*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요? 우리는 평소에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것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아마 이 책은, 제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책인 듯 합니다. 

인문학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전공을 바꾸었고 탁월하게 자신의 업적을 쌓아가던 의사가 암 투병으로 삶의 모든 것들을 잃어갈 때에, 그가 경험한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남긴 기록입니다. 어쩌면,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하루가 저와 집사님의 마지막 하루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약 20대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내 인생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이런 책은 강제로라도 청년들에게 읽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은 단순히 성공담을 적은 책이 아닙니다.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한 책도 아닙니다. 일반은총의 측면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성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성숙을 일구어낸 기적과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삶을 지혜롭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가장 실제적인 지도와 같습니다. 깊은 독서를 바탕으로 책을 적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굉장히 균형잡혀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린 책이네요. 자기 계발의 측면에서 그리고 리더십의 측면에서도 탁월했습니다. 충분히 기독교인들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https://ridibooks.com/books/2171000070

이 책도 매우 실제적으로 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입니다. 누군가가 10년만 더 저에게 이런 책을 빨리 소개시켜줬더라면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더라면 제 인생이 더 좋아졌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아주 작은 목표"를 정하게 그것으로 "습관"을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행동이 그 사람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을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성경적인 전략입니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 크리스천의 작은 습관 그리고 실천의 중요성

저는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정보의 습득은 단순히 지적 유희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고 익힌 방향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자 마자 저는 꼭 실천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고, 네이버 밴드로 전략을 짜서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14개의 "하루 한번" 네이버 밴드
- 나의 "오늘 하루"를 의미있고, 진실하고, 꾸준하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2.html

저에게 의미있는 책들을 집사님께 몇권 추천드렸습니다. 이미 집사님께서 좋은 신앙 서적과 신학 책들을 충분히 읽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책들 중에 혹시라도 관심 가는 것이 있다면 읽어보시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죄와 은혜의 지배"는 읽지 못했고,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는 목사로 삶을 결단하기 전에 저에게도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이미 집사님께서 그렇게 하시고 계시겠지만, 읽으신 책들에 대해서 아주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읽고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내가 정리하고 요약하고 느낀 점을 적을 때에 내 마음에 그것을 내면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책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담이지만, 자녀 양육 때문에 고민이라는 분의 집사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집중하거나 강박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건강한 나 자신이 필요한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의 성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성숙입니다. 

저야 아이들이 어리지만, 아마도 부모로서 경험하는 것은 동일한 듯 합니다. 은혜에 대한 이해와 깊이, 그리고 나의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고, 아주 긴 성숙의 길입니다. 

결국 성숙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혹시라도 집사님께서 그분을 도와주실 수 있다면 좋은 책을 읽고 함께 그분과 나누면서 마음을 만져 주시면 어떨까요?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저의 단순한 생각입니다. 

바라기는, 집사님이 읽으시는 귀한 책의 내용들을 나눌 사람들이 옆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히 다른 이들에게 읽은 내용을 나누셔서 더 그 깊이를 더하시면 좋겠고, 또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집사님의 삶이 좋은 책들을 통해서 그 풍성함이 더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3년 8월 2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6) - 사명

 


1. 가사 살펴보기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 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2. 곡 소개

곡은, CCM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권희 집사님의 곡이다. 이 곡은, 주님이 달려가신 그 길을 자신도 따라가겠다 라는 바울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을 따라서, 어디든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달려가겠다 라는 각오를 담은 놀라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4:4 But when the time had fully come, God sent his Son, born of a woman, born under law,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5 to redeem those under law, that we might receive the full rights of sons.

4:4 when the fullness of time had come. God sent his Son at the right moment in human history. God directed world events and prepared peoples and nations for Christ, and for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가장 적절한 순간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다스리시고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민족과 나라를 준비하셨습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653.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35 Jesus went through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9: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9:38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9:37–38 the Lord who is in charge of the harvest: All ministries are ultimately under God’s call (see 23:8–10, 13), so Jesus urges his disciples to pray for God himself to call more workers. 모든 사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꾼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촉구하십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Mt 9:37–38.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1:8 Instead of being concerned about the date of Christ’s return, the disciples’ job was to carry His message throughout the world. you shall receive power: This does not refer to personal power for godly living, as demonstrated in the lives of Old Testament saints (see Abraham in Gen. 22; Joseph in Gen. 39; Moses in Ex. 14; Daniel in Dan. 6). This was power for a new task—namely, to take the gospel to the ends of the earth. Be witnesses is Christ’s command to His disciples to tell others about Him regardless of the consequences. Church tradition tells us that all but one of the eleven apostles who heard this promise became martyrs (John died in exile). God empowered His disciples to be faithful witnesses even when they faced the most vehement opposition. That same power for witnessing is available to us today. Our task is not to convince people, but to testify of the truth of the gospel.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세상에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난 경건한 삶을 위한 개인적인 권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새로운 임무를 위한 권능인데,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입니다. 증인이 되라는 것은, 결과에 상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말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약속을 들은 열한 사도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순교하였습니다 (요한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장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을 때에도 신실한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증인이 되기 위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Ac 1:8.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개역개정) 20:24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NIV)

20:24 Paul’s primary duty and passion, more important than life itself, were to finish his duty as a faithful witness (testify) to the good news (gospel) of how God freely and powerfully saves undeserving sinners through Jesus Christ (grace). 생명 자체보다 중요한 바울의 주된 사명과 열정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격 없는 죄인들을 값없이 능력으로 구원하시는 복음의 신실한 증인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9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바울 사도의 고백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서 가장 탁월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여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 말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가장 위대한 사명자이시며, 그 사명을 완성하신 분이시다.

친히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 자체가 긍휼과 사랑의 사역이었다.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더욱 많은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주님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고, 위대한 사명자 바울 사도 역시, 자신이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주님의 사명이다. 우리의 삶과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모든 조건 속에서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왕 되신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 드러나는 일이 끊임 없이 일어나야 한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새롭게 발견하고,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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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8일 월요일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의 기쁨 by 8개월 주일 설교의 대장정을 마치고

 






미국에 온지 11년이 지났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저 흥분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온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젊었을 때에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 수록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거대한 손에 떠밀려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가지고, 부목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딱 한번 정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너무 큰 부담,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일들을 그대로 다 하면서, 주일 설교 강단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저의 삶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설교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끝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참으로 가벼운 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리입니다. 대략 열세번 정도의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주일 설교가 세번입니다. 저는 세번의 설교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오시는 분들의 숫자는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사실상 동일합니다. 1부 예배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오십니다. 그리고  2부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과 성가대가 있습니다. 3부는 주로 젊은 층들이 있습니다. 3번의 예배는 모두가 소중하고 그 고유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 한번의 설교도 허투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그대로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모든 부교역자들이 주일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여러 이유로 부목사들에게 주일 설교를 잘 맡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자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며,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회가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온전히 드려서 모든 것을 걸고 감당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제까지 저에게 맡겨진 모든 설교를 마쳤습니다. 설교를 위해서 강대상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감사의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기회를 허락하시고 잘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제가 설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설교의 세번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다시 정리하겠지만, 마지막 설교는 저의 내면에 있는 그동안 갈고 닦은 개혁주의 신학의 종합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고 종종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예배의 모든 요소들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분을 받들지만, 설교 안에서는 그리고 성도님들의 사고와 고백과 삶 속에 너무나 그리스도께서 약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마치 잔치의 주인이 구석에 몰려서 소외 받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 마음껏 설교했습니다. 설교 단에 올라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인식에서 저는 완전히 사라지기 원합니다, 오직 주님이 나타나시기 원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은혜 받으신 분들도 계셨고, 저를 노려보고 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예수님께 당신 자신을 드려야 한다는 가장 직설적인 외침은,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의 기쁨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저주로 느껴질 것입니다. 원래 기독교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이제는 더욱 더 주님께 생명을 드리는 자들과, 근심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자들로 나누어집니다. 

이미 설교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기 때문에, 설교 전에는 조용히 루이스의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합니다. 평범함에 지친 저의 마음에, 가장 탁월하게 주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저의 마음에 직접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지난 8개월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나치게 최선을 다했고 그런 면에서 후회가 없습니다. 아마 다시 돌아가서 해보라고 하더라도, 더 잘 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소극적으로는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저의 역할을 잘 감당했고, 적극적으로는 목회자로서 보일 수 있는 최선으로 설교를 감당했습니다. 주님께서 넘치게 저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셨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고, 제가 누릴 수 없던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며칠 전 부터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보다, 열배의 깊이를 가지고 싶다” 이미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수준은 지나갔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울 뿐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갈고 닦고 더 나아질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기도입니다. “주님, 열배의 깊이를 허락해 주십시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삶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팀켈러처럼 되고 싶고, 루이스처럼 되고 싶고, 칼빈처럼 되고 싶고, 마이클 호튼처럼 되고 싶고, 박영선 목사님처럼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솔직한 제 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들 보다 더 나아야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욕심은 아닙니다. 앞으로 이정도 수준에서 살아도 크게 잘못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주일 설교를 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님들의 그 진지함과 기뻐함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빛나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더 잘해야겠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세우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교회의 신비입니다. 예배에 와서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바랄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탁월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굳이 그것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열배입니다.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동안 제 설교가 늘지 않아서 정말 고민했습니다. 그때에도 이미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저를 더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주 섬세하고도 확고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의 결론은, 루이스와 칼빈을 평생동안 가장 진지하게 그리고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두분입니다. 루이스는 세상을 향해서 가장 탁월하게 기독교를 설명하고 이해한 사람이며, 칼빈은 가장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기독교를 이해하고 밝히 보인 사람입니다.

물론 종종 두 사람의 책을 읽기는 했습니다. 루이스야 원래 좋아했고, 지금도 기독교 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도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것이 완전히 저의 것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두주 전쯤에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루이스가 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물론 직접은 아니구요”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이 얼마나 루이스를 사랑하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팀켈러 목사님에게 루이스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또 늘 동행하는 존재였습니다. 

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신학책을 보고 학자들을 살펴보지만, 그러나 가장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하는 것은 역시 칼빈입니다. 흔들림 없이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성경이 이야기한만큼 성경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분이 칼빈입니다. 칼빈의 모든 태도와 모든 사고와 모든 경건을 저의 것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밴드를 추가로 두개를 더 만들었습니다. “하루 한번” 루이스, “하루 한번” 칼빈입니다. 멘탈리티에 빠져서 반복해서 읽으면서 얻은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치 그런것처럼, 평생동안 하루 한번 루이스와 칼빈으로 저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천천히 그러나 깊이 그리고 아주 지나치게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 길의 언젠가에는, 열배 쯤 깊어져 있는 제가 존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목회자로서의 저의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이제 시작입니다. 마치 저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보물이 가득 담긴 바로 그 방의 문을, 아주 살짝 열어보고서 놀라버린 아이입니다. 오 이럴수가! 눈이 부셨습니다. 그곳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쳐다볼 수 조차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떨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내 삶 전체를 드려도 아깝지 않은 그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의 가진 모든 것과 저의 삶 전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쓰여지기 원하고, 저에게 맡기신 성도님들을 잘 섬기시는데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저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성경 일독을 또 한번 마쳤습니다 by 공동체 성경 읽기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삶에 빠른 길이 있으면 좋겠다" 중년의 나이를 살아가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또 앞을 내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길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많은 책들을 보면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은, 어떤 시점이 다가와서 준비하는 것은 이미 늦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보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린 결단과 삶의 바른 방향을 진실하게 걸어가고 있는가입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준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모습은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렇습니다. 제가 삶을 부지런하게 살고 싶은 중요한 이유는, 저에게 어떤 중요한 시점들이 다가왔을 때에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 잘 준비된 모습으로 그것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고,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정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한편으로는 가장 절박한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한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성경을 듣고 묵상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는 꿈과 같은 시대입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너무나 탁월한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공동체 성경 읽기 입니다. 내 나라 언어로, 탁월한 성우들의 목소리로, 이렇게 편리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기적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계획은 자신에게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공동체 성경 읽기에는 몇가지 플랜을 제공합니다. 최종적으로 저에게 맞는 플랜은 365일 플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략 하루에 15분-20분 정도 분량입니다. 너무 지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이고, 꾸준히 하기에 적당한 수준입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차에서 성경을 들으면서,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온갖 세상의 생각들로 가득찬 저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진리의 말씀이 없다면 어두움에 가득찰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주기적으로 계속 영혼을 새롭게 함으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삶에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아도, 그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의미는 충분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있고,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한다면, 그것이 삶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경 듣기는 저에게 있어서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삶이 잘 준비된 삶이 되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서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경 일독을 마무리 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하루 하루 걸어온 길에 한번의 끝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내일부터 창세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에서 시작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놀라운 진리의 장엄한 드라마가, 저의 삶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또 이끌어가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드라마 바이블" 어플이 "공동체 성경 읽기"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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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1일 월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11) - Hope in the Face of Death /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는 성도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 한편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저는 대략 2-3주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두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에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듣고, 충분히 고민하고, 혹시라도 필요한 부분을 더 찾아보고 공부하는 시간이 그렇습니다. 

설교를 듣고 공부하는 것을 공부 자체로 받아들이면 참 괴로울 듯 합니다. 하지만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분의 설교를 들을 때에 저의 설교의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르고 종종 마음이 벅찹니다. 저는 성령님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저의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소천하신지 벌써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그분의 소천의 소식을 들으면서 마지막의 그분의 고백들을 살펴보면서,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부럽고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고, 그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성경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가 참 좋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이미 충분히 준비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라도 중병으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을 찾아보면, 그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믿음으로 견딘다는 것은, 건강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설교의 서두에서 죽음에 대한 두가지 태도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스토익 방식이고 하나는 모던 방식입니다. 스토익은 죽음이 끔찍한 것임을 알지만, 감정을 완전히 닫아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대적인 방식인데,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그저 자연에서 시작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팀켈러 목사님은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반박합니다. 여러 문헌들을 이용해서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는 마땅히 분노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인간의 마음의 근원에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에 대한 예가 등장할 때에는 청중들과 함께 몇번이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이번 설교의 큰 장점은, 죽음이 사랑의 관계를 다 빼앗아 간다는 것을 포착한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사실 자체를 나열하는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그것의 성경적인 의미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단조로운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드러내는 것은 탁월함의 결과입니다. 죽음은 나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나를 빼앗아 간다는 그 문장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논증 이후에는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에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서 좋았던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분이신데, 죽음에서 다시 돌아오신 분이신데 왜 그분이 우리에게 중요한가를 분명하게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0절을 인용하면서 그 부분을 설명합니다. 논리적으로 9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구원의 창시자"로 번역된 부분인데,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champion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원어적으로 대리자의 측면이 있고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분이심을 설명합니다. 

약간 아쉬운, 혹은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저명한 원어사전을 살펴보아도 대리자의 개념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본인이 보신 주석의 해석 가운데 일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히브리서 주석까지 다 살펴볼 수는 없으니, 일단 이 개념을 마음에 담고 넘어갑니다.  


특별히 좋았던 부분은, 앞에서 죽음이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다 무너뜨리는 적이라면, 결국 천국은 그 사랑의 관계를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인용하셨는데 저에게는 새로운 통찰력입니다. 천국을 단순히 영원히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묘사하는 것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천국은, 진정한 사랑의 회복이며, 다른 이의 행복을 통해서 내가 행복을 경험하는 곳이라는 그 논리가 참으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최근에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그 복음이 굉장히 폄하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완전히 반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가장 고귀한 소식입니다. 그리고 팀켈러 목사님은 그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탁월하게 깊이있게 그리고 설득적으로 설교합니다. 이 소식이 저의 기쁨입니다. 가장 큰 감사가 마음에 넘쳐납니다.

과연 저는 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무기력해지고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만한 그 절망의 상황에서 저는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까요? 종종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준비합니다. 누구에게도 죽음은 멀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죽음 앞에서, 죄의 결과의 최종적인 그 대적 앞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주님의 생명과 승리로 저의 두려움을 잠재웁니다. 그리고 죽음은 절대로 끝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영광과 사랑 속으로 들어감을 믿고 기뻐합니다. 천국에서 저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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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5) - 십자가의 전달자

 


1. 가사 살펴보기

난 지극히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
무익한 날 부르셔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부끄럽지 않게
십자가 전케 하셨네 

어디든지 가리라 주 위해서라면
나는 전하리 그 십자가
내 몸에 벤 십자가 그 보혈의 향기
온 세상 채울 때까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난 주의 것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소망
내 안에 주만 사시는 것
내 사랑 나의 십자가

 

2. 곡 소개

곡은, 성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보여주는 곡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을 부르시고 은혜로 구원하심을, 그리고 성도는 십자가를 전하며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사는 존재임을 탁월하게 드러낸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7:10 So you also, when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were told to do, should say, 'We are unworthy servants; we have only done our duty.'"

17:10 unprofitable servants. Christians should not swell up in pride over their service but should realize that obedience to the Lord is simply their duty, of itself meriting no praise or reward. 무익한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섬김으로 인해서 교만해져서는 안되며,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고 그것 자체로는 칭찬이나 보상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488.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1:20 I eagerly expect and hope that I will in no way be ashamed, but will have sufficient courage so that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exalt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1:20 The crucial thing for Paul is not life or death. It is maintaining his faithful witness to Christ. Or by death indicates that Paul hopes to honor Christ even in the way he eventually dies.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실한 증인으로 남는 것입니다. “죽든지” 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가 죽는 것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라는 의미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81.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8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14:8 we die for the Lord Indicates that in all things, the believer’s purpose is to serve and please God. 우리가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믿는 자의 목적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we are the Lord’s Paul affirms that neither life nor death can adversely affect the believer’s union with Christ (see Rom 8:35; 1 Thess 5:10).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라는 것은 믿는 자의 목적은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Derek R. Brown기타,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14:8.

14:7–9 None of us refers to believers, not people in general. Believers belong to the Lord. They live and die in relation to Him. Therefore Christians should aim to please Him. 신자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관련하여서 살고 죽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4:7–9.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2:20 salvation, As Being in Christ—The best commentary on this text may be Jn 15:1–17. Being in Christ is tied inseparably and mystically to our radical union with Christ in his death and resurrection. It is a life lived by faith in the Son of God. We let Christ direct our thoughts and actions. We bury selfish interests in the interest of Christ.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근원적으로 연합하였고 분리될 없도록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안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관심을 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18.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15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that deserves full acceptance: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worst.

I am the foremost. Lit. “I am the first.” This is not a characterization only of his record as a blasphemous and violent persecutor prior to his conversion. Rather, as Paul has grown in Christ, even as the Holy Spirit has been conforming him to his Savior’s purity and love, he has also become increasingly aware of his own sinfulness.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문자적으로는 내가 가장 먼저니라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회심 이전에 비방하고 폭력적인 박해자였던 그의 과거를 특징 짓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지는 동안에, 성령님께서 그를 그의 구원자의 순결함과 사랑에 닮아가게 하시는 가운데, 바울은 자기 자신의 죄악을 더욱 크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R. C. Sproul, 편집자,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156.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3:8 Although I am less than the least of all God's people, this grace was given me: to preach to the Gentiles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3:8 evangelism, Call to Evangelize—Paul always reveled in his call to reach the lost for Christ. In principle, that call comes to every believer. We thus should revel in the fact we can share the gospel and help others to our Lord. We are not worthy; it all comes through grace. 전도하라는 부르심 :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잃어버린 자들에게 찾아가라 라는 부르심을 항상 즐거워했습니다. 원치적으로 부르심은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이 주님께 오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은혜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34–183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유는, 말씀의 그 깊은 이해를 탁월하게 잘 연결하였기 때문이다. 단 한 곡의 찬양을 통해서, 성도가 어떤 존재인가, 성도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감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부른다. 이것은 바울의 성숙한 내면 속에서 경험하는 자신의 죄인됨의 깊은 각성이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록, 성도는 자신이 얼마나 죄로 가득 찬 존재인가를 더 깊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러한 자신을 구원한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더욱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삶 자체 그리고 죽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만,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전해지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이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했고 오직 그것을 위하여 전력질주 하였다.

십자가로 구원 받은 모든 성도 역시,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신비하게 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와 행동과 삶의 모든 결과들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셔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마땅히 할 일이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성도의 참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이것을 위하여 힘써 달려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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