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4일 금요일

참된 경건의 길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기준이 성경적인 기준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제 자신에게 종종 던져봅니다. 우리는 과연 참된 경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 없이는, 절대로 신앙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 생활, 나의 유익만을 위한 신앙 생활이라는,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은 그 형태로는, 사실상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을 나누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고 움직일 때에, 그제서야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답은 분명한데, 어떤 분들은 답을 인정하지 않고, 또 어떤 분들은 그 답을 내 삶 속에서 풀어내야 하는 엄청난 과정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역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은혜 받은 자임을 기억하기를 원하고, 또 그것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부터 흘러 가기를 원합니다.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무엘상 27장에서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견디다 못하고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안에 거주하면 어쩔수 없이 자신의 동족과 싸울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오히려 은밀하게 다른 이방 민족들을 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민족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현재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블레셋 편에 서서 참전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을 구해주셨습니다. 블레셋의 장군들이 그들의 큰 적인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다윗이 블레셋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다윗은 그들과 함께 전쟁에 함께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흘길을 걸어서 시글락으로 돌아와보니, 온 성읍이 잿더미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모든 여자와 아이들을 다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동안 다윗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조차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반기를 들면서 오히려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를 더욱 의지함으로,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봇을 통해서 여호와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답을 주시기를, 약탈자들을 쫓아가면 반드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실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그 즉시로, 부하 600명을 거느리고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한번 이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속도로 추적을 했을 것입니다. 반드시 가족들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윗의 부하들이 용맹 했지만, 그들 모두의 체력이 동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600명 중에서 200명이 완전히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브솔 시내를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400명이 다윗을 따라서 계속 추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400명을 끌고 추격을 하다가, 다 죽어가는 한 젊은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서는, 그 급한 와중에 추격을 잠시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의 기력을 되살렸습니다. 상황을 알아보니 그 사람은 이집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원래는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어서 종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주인이 그 종을 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 바로 다윗의 성을 약탈해 간 바로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종의 안내를 받아서 아말렉 족속을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넓은 들에서 약탈한 물건을 가지고 즐기고 있던 아말렉 족속을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새벽에 동틀 때에 부하들과 함께 그들을 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완벽하게 찾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지금 분위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돌로 맞을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다윗과 군사들이 돌아올 때에 지쳐서 남겨졌던 200명도 기뻐하면서 다윗을 영접하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환영과 기쁨과 감격의 순간을 망치는 이야기가 병사들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2절에 보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공동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다윗을 따르는 이들 중에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수고하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전리품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전리품의 일부는 원래는 자신의 동료의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으로 부터 다시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기다린 자들에게는 최소한의 가족들만 돌려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것은 늘 우리가 듣던 주장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노력한 자가 그 결과를 얻고,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게 합당한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당연히 나눠줄 것이 없다는 이 주장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듣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23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라고 부하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악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에게조차 “나의 형제들아” 라고 부르며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 다윗의 부하들 중에서 악한 자와 불량한 자들의 마음에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전리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겠다는 지극히 지극히 세상적인 논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던 다윗은, 지금 이 기적같은 승리와 넘치는 전리품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셨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고,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세상의 방식으로는 이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니, “전장에 내려갔던 이들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 것이다 같이 분배해야 한다” 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25절에 보니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다윗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함께 전쟁의 결과와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결정이,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원리가, 자신이 다스리는 현재의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왕으로 다스릴 전체 공동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영적인 삶의 원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강한 자도 그리고 약한 자도 함께 기쁨을 누리며, 힘이 있는 자도 그리고 연약한 자도 함께 공동체 속에서 유익을 얻는 바로 그것을 꿈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으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의 큰 구조 속에서,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큰 대조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급하게 추적할 때에 누구를 발견하였습니까? 병들어서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고 버려진 초라한 행색으로 죽어가는 거지와 같은 이집트 사람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수 있는 것은, 아말렉 족속 안에서 모두가 받아들이는 관습이 있었는데, 종이 병들고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그를 버리는 것이 아말렉 족속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효용 가치가 있으면 데리고 있지만, 효용 가치가 없으면 즉시 버리는 것, 그것이 아말렉 족속의 방식이고 세상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다윗의 무리가 아말렉 족속을 쫓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버려진 사람에게 무엇을 먹였는지를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장 급박하고 힘든 순간에 조차,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힘써 먹인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자비와 따뜻함과 사랑의 마음과 태도가, 오늘 말씀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라고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소에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평소에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성품이 없었다면, 절대로 부하들이 이 사람을 데려갔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의 리더가 관심도 없는 괜히 병자를 데려갔다가, 괜히 욕만 먹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평소 다윗의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자를 발견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그를 다윗에게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다윗의 마음이, 오늘 말씀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온전한 왕으로 세워지 못한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그러나 그가 섬기는 그 공동체와 그의 무리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알기를 다윗은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유력하고 강한자만 대우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는 자 까지 함께 유익을 누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다윗이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아담 안에서 영원히 본성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망한 우리였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하나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이 놀라운  것은,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를 평가 절하하거나, 자신이 고생한적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수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수고 가운데 역사하신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받은 것들을 연약한 자들에게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경건이라는 것은,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음을 깨달으면서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마음과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참된 경건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저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요 사랑을 결과임을 인정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그 넘치는 은혜 때문에, 가장 연약한 자에게 우리의 마음이 향하기를 원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참된 사랑과 경건을 실천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자녀 삼으시니 감사합니다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여, 저의 삶 가운데 언제나 은혜를 인정하며, 주님께 감사를 돌리는 복된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인정하며 그 은혜와 넉넉함이 저를 통해서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속한 그 공동체 안에 있는 가장 연약한 자들도 저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시고, 저의 삶의 시선과 방향이, 가진자 유력한 자를 향하지 않고, 가장 연약한 고아와 과부를 향하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6월 20일 월요일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77 - 무료 AI 마스터링의 최강자? Music Gateway A.I. 마스터링

 


마스터링은, 최종적으로 음원을 들려주기 위한 마지막 관문입니다. 적절한 음압과 세츄레이션을 통해서 듣는 사람의 귀에 듣기 좋게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 스튜디오에 맡기기 위해서는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매우 섬세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운 마스터링의 작업을,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시도해 보려는 무료 서비스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기본적인 원리는, 수 많은 곡들을 레퍼런스로 사용해서 그 특징을 파악한 이후에, 개별 트랙을 분석해서 가장 비슷한 음원과 사운드로 매칭 시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러한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 보고 세편의 글을 작성했습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 AI 마스터링을 "무제한 무료로" 해준다구요? BandLab Mastering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 AI 마스터링 vs 홈 마스터링, 과연 승자는? (1)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 AI 마스터링 vs 홈 마스터링, 과연 승자는? (2)

한동안 마스터링을 배워보려고 이것 저것 찾아보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제 곡을 직접 마스터링 해 보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믹스한 결과물을 세츄레이션과 이큐, 그리고 컴프레서 등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가 환상적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곡은 모두, 플러그인 얼라이언스 사의 무료 A.I. 마스터링 서비스인 mastering.studio 를 사용해서 마스터링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한곡을 커버곡을 만드는 상황에서,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의 마스터링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https://www.mastering.studio/ 

그리고 둘째 이유는, 결과물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의도한 대로 직접 추가로 미드 사이드 등을 조절하면서 세츄레이션을 더 넣고 이큐로 수정하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더 좋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서비스를 통해서 마스터링을 해도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약간 무난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밸런스라는 점에서는, 제가 한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더군요. 혹시라도 무료로 A.I. 마스터링을 서비스하는 곳이 더 있을까? 이미 걸출한 두 곳을 알고 있었고 mastering.studio가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호기심에 구글링을 해 보았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니, 다섯군데 정도가 무료로 마스터링을 제공합니다. 이 글에 적지는 않겠지만 테스트를 위해서 다 사용해 보았는데, 퀄리티 차이가 정말 심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곳은 제 프리 마스터링 버전이 전혀 harsh 하지 않은데 곡을 망쳤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서비스 업체 중에서 군계일학과 같은 걸출한 한 곳이 있었습니다.  

https://www.musicgateway.com/ 라는 곳은, 일종의 뮤지션을 위한 포털과 같은 곳입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서비스가 있어서 다 둘러보지도 못했습니다. 음악 제작과 베포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제공합니다. 심지어 아티스트의 홈페이지도 제공합니다. 저의 것도 간단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 Music Artist JBANDFAITHPIANO
https://www.musicgateway.com/creative-professionals/music-artists/jbandfaithpiano


그리고 이 서비스 안에 제가 찾던 "무료 마스터링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회원 가입을 해야 합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서 마스터링을 하는 것은, 약간 복잡합니다. 기본적으로 웹페이지를 통해서 프리 마스터링한 웨이브 파일을 업로드 해야 합니다. 가입 절차를 거친 이후에, https://app.musicgateway.com/mastering 로 접속합니다. 

접속하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옵니다. 아래 파란색 커튼을 클릭해서, 내가 마스터링 하기 원하는 파일을 업로드 해야 합니다. 업로드 시간은 다른 서비스와 큰 차이 없이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파일이 업로드가 완료되면,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옵션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mastering.studio와 차이가 많이 납니다. mastering.studio의 경우에는 파일을 업로드하고, 일단 곡 분석을 한 이후에 곧 바로 몇가지 마스터링의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다 들어본 이후에, 자신이 최종적인 선택을 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Music Gateway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나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비트 레이트를 16, 24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mastering.studio의 경우에는 제 기억에는 24는 유료이지만, Music Gateway는 24까지 무료 서비스를 합니다. 

그리고 마스터링 스타일에서 Warm, Balanced, Open을 선택합니다. Warm은 좀 더 따뜻한 성향으로, 그리고 아마도 Open은 좀 더 초고음 쪽이 강조되어서 마치 소리가 열린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Loudness 도 Low, Medium, High를 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테스트를 위해서 Balanced 그리고 Medium을 선택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Music Gateway와 mastering.studio의 가장 큰 차이는, 아래 이미지처럼 마스터링에 있어서 마스터링의 모든 과정을 완전히 A.I.가 주도하는 Characteristics가 있고, 사용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곡을 reference로 추가로 제시하는 Sound maching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실제로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의뢰할 때에 "최대한 이 곡과 비슷하게 마스터링 해주세요"라고 의뢰하는 것처럼, 비록 A.I.가 마스터링 과정을 진행하지만, 놀랍게도 동시에 레퍼런스 곡을 참조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유료 A.I. 서비스인 LANDR에서 이것과 동일한 기능을 포함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무료 서비스 가운데에서 이 기능을 포함한 것은 Music Gateway가 유일합니다.

당연히 두가지 다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서비스가 어느 정도까지 퀄리티를 낼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에, 일부러 Characteristics과 Sound maching 두가지 버전으로 마스터링 결과물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특별히 사운드 매칭의 경우에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인 이승환 님의 "그 한 사람"을 레퍼런스로 사용했습니다. 파일은 유투브를 웨이브로 변환해서 업로드 시켰습니다. 


이 곡을 레퍼런스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가장 최근에 만든 "행복"의 커버곡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커버 곡이, 이승환님의 "그 한 사람"처럼 뭔가 꽉 찬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나오기를 바랬기 때문에, 비록 행복에 밴드 악기들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레퍼런스 곡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해서 드디어 마스터링을 시작하게 되면, "Mastering in progress"라고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아래 그림처럼 데쉬보드로 들어가면, 현재 진행중인 곡이 나옵니다. 아래 스크린 샷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위에 말씀드린 것 처럼 두 곡으로 나눠서 마스터링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사실 이렇게 마스터링 프로세스를 걸어 놓으면 아마도 10분 정도 안에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mastering.studio의 경우에는 파일을 업로드하고 분석하고 마스터링 결과를 얻는데 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작업 속도를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란 것은, 이 두곡의 마스터링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프로세싱을 시작했는데 Music Gateway는 무려 2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일 명이 한글이라 혹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측하고, 영문 명으로 파일 이름을 바꾸어서 다시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하루 반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마치 스튜디오에 실제로 맡기고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 그럴듯한 서비스가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실망하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꼬박 이틀만에, 저에게 이메일이 왔습니다.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인공지능 기반인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놀라웠고,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결과물을 찾아서 다운로드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운로드는 위에서 보신 데쉬보드에 들어가서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특별한 분석 없이 편하게 먼저 들어보았는데,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그냥 언뜻 듣기에도 mastering.studio 보다 좀 더 고급스럽고 더 풍성하게 들렸습니다. 물론 중저음이 더 풍성해 지다보니, 숨기고 싶은 믹싱의 치명적 오류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아마도 보컬 쪽이라고 생각되는데 다인 이큐를 쓰다가 실수가 있어서 보컬 중간 중간에 마치 컴프레싱이 너무 갑자기 걸리는 것 처럼 퍽퍽 소리가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그대로 마무리했는데 확 드러나는군요.

어쨌든, mastering.studio 을 포함해서 무료 마스터링을 해주는 곳들을 다섯 군데 정도 이미 동일한 음원으로 테스트해 보았지만, Music Gateway의 결과물이 가장 유니크하고 또 상업적 음반의 퀄리티에 가장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두 곡을 한번 비교하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위에 것이 mastering.studio 버전이고 아래의 것이 Music Gateway 입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기대했던 레퍼런스를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두 파일은, 사실 큰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승환님의 곡을 레퍼런스로 사용한 것은 약간 더 중음이 풍부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의도한 대로 꽉 찬 사운드가 나왔습니다. 일단 제 귀로만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바로 ADPTR MetricAB의 애널라이저에 띄워서 그래프로 살펴 보았습니다. 

두 곡을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재생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거의 같은 부분의 분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두 음원을 면밀하게 비교해보면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원래 mastering.studio에서 마스터링한 것과 Music Gateway에서 마스터링한 결과물의 "스테레오 이미지"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가지가 가장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스펙트럼 분석을 동시에 띄워놓고 보니 "저음 영역 대"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라우드니스"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스펙트럼 상으로 볼 때에는, mastering.studio는 제가 기본적으로 믹싱한 성향을 크게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mastering.studio 의 경우에는 London Edgy 프리셋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리셋은 약간 클래식 악기에 어울리는 셋팅에 좀 더 컴프레션이 들어간 셋팅입니다. 물론 좀더 팝에 가까운 중저음이 강한 셋팅도 시도해 보았지만 어울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저의 프리 마스터링을 존중하면서 아주 약간 손을 보는 정도로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Music Gateway의 경우에는, 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A.I.가 마스터링 과정에 굉장히 많이 개입을 한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사람이 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스펙트럼을 보면서 느낀 것은, 최대한 음원을 평탄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최대한 저음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서 아마도 라우드니스가 더 올라가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제 곡들을 마스터링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얼만큼 저음에 힘을 줄 것인가" 그리고 "얼만큼 청감상으로 크게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요즘에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원들이, 실제로는 고음이 많이 절제되어 있고 중저음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을 때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굉장히 감동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라고 질문하면서 들을 때 마다 감탄을 합니다. 

그런데, "중저음이 풍성한 이러한 느낌"을 내가 믹싱하고 마스터링하면서 실제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고음을 절제하면 굉장히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저음에 자신을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큐로 올리면 간단한 문제이지만, 이큐로 저음과 중저음에 마스터링 과정에서 손을 댔을때에, 부드럽고 풍성하면서 답답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모니터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소리에 대한 감각과 내가 생각하는 최종 음원의 이상향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딱 적당한 수준에서 중저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현재의 저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얼만큼 크게 들리는가"는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곡들을 직접 분석해 보니 가장 큰 부분이 LUFS 5.5-8 정도로 나옵니다. 그런데 단순히 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이 수치를 내기 위해서 음량을 올릴 때에,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가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부분에서 눌리지 않는 느낌으로 키우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적어도 Music Gateway는, 제가 항상 고민하던 이 두 부분의 난재를 해결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제가 겨우 한곡을 테스트 해본 것이기 때문에, 이 서비스의 퀄리티를 확신하기는 너무 경우의 수가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가 가장 신뢰하는 mastering.studio보다 훨씬 저음 쪽을 딱 듣기 좋게 적절하게 조절하고, 결과적으로 귀에 더 크게 들리도록 라우드니스까지 충분히 더 키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에, 제가 실제로 스튜디오에 마스터링을 맡기고, Music Gateway의 결과물을 받아들였다면 정말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엔지니어가 mastering.studio과 Music Gateway의 결과물을 두가지를 주면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저에게 물어본다면 저는 당연히 Music Gateway를 선택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호기심에 Music Gateway 서비스를 테스트 해 보았는데 이 정도의 퀄리티를 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는, 무료 A.I. 마스터링 서비스에 있어서는 가장 탁월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물을 받기 위해서 이틀 걸릴 것을 예상해야 하는 것은 약간의 난관이긴 합니다.

물론 마스터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충분히 재정이 있다면 좋은 스튜디오에 마스터링을 맡기는 것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혹은 재정적으로 쉽지 않은 뮤지션이 있다면, Music Gateway는 자신의 곡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0/blog-post_31.html

"위기를 이기는 제자 훈련의 세가지 타입 (딤후 2:3-7)" by 한규삼 목사님

 


한규삼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칼빈에서 공부하던 시절입니다. 한인 학생회의 특강 강사로 오셔서 강의해주셨습니다. 그 때 한목사님의 설교와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치밀하면서 동시에 따뜻하다" 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성경적으로 설교하시지만, 그러나 그것이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저 "성경의 주해"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 속에 살아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강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모든 설교자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의 10년만에 우연히 제가 섬기는 교회에 강사로 오셨습니다. 한번의 설교와 한번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거의 변하지 않은 외모가 참 놀라웠고, 여전히 따뜻하고 치밀한 그분의 설교와 강의가 참 좋았습니다. 

특별히 인상에 남은 것은, 성경에서 나온 원리들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회중이 믿음으로 붙들고 적용하고 실천하도록 강하게 계속적으로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분은 아니지만, 10년 전 보다 더 탁월해지셨다고 느꼈습니다. 한 목사님의끊임 없는 정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적이고 목회적인 너무나 탁월한 설교였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설교 후 특강의 제목은, "위기를 이기는 제자훈련의 세가지 타입 (딤후 2:3-7)" 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평생에 마음에 새겨두고 붙들어야 할 목회 비전으로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하의 내용은, 한규삼 목사님의 강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저의 목회적인 이해와 적용입니다. 

* "위기를 이기는 제자 훈련의 세가지 타입"

팬데믹 시간을 지나면서 모든 교회들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신뢰도 역시 너무나 크게 낮어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 보다 더 앞서 가는 곳이었고 세상에 나눠 주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오히려 교회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가 공공선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지원하고 물밑에서 이끌어나가는 것을 교회의 목표로 잡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의 역량이 더 크다 하더라도, 교회는 포기하지 말고 노골적이지 않은 은근한 복음 전파의 의도를 가지고 계속적인 구제를 해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계속되는 교회를 향한 요구는, 신앙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주의입니다. 이러한 현 시대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신앙의 터전을 "교회 안에만" 두지 말고, 세상으로 성도 한명 한명이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서, "모든 성도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의 배경은, 바울 사도가 감옥에 있는 배경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를 통해서 바울이 얻은 소식은, 오히려 교회는 활력을 얻고 신앙은 견고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교회의 소식을 듣고 앞으로의 교회의 방향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 2장에 기록된 훈련의 내용입니다. 

1. 병사 훈련 (절대 위기의 순간에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 단기)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3 Take your share of suffering as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4 No one in military service gets entangled in matters of everyday life; otherwise he will not please the one who recruited him.

첫 번째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훈련은, "병사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전투를 위해서 하는 훈련입니다. 이 모델은, 내 삶 속에서 절대 위기가 찾아오고 안정적인 삶이 흔들릴 때에 사용하는 훈련입니다. 보통 병사가 실제 전쟁 속에서 딱 한가지의 훈련이 생각나고 그것으로 싸우는 것 처럼, 이것이 바로 그 절체 절명의 순간에 사용해야 하는 훈련의 내용입니다. 

삶 속에서 모든 것이 작동하지 않을 때에, "나를 병사로 모집한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라는 한가지 생각만 붙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왔을 때에 (ex) 경제적 위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전혀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날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에 전념할 때"에 병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운동 선수 훈련 (나의 영적 수준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헌신 / 중기)

딤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5 Also, if anyone competes as an athlete, he will not be crowned as the winner unless he competes according to the rules.

두번째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훈련은, "운동 선수 훈련" 입니다.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이라는 라는 말씀은, 언뜻 보면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실격한다 라는 의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화적인 맥락에서 보면, 로마 헬라 세계에서 열렸던 다섯 개 정도의 전국 체전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은 제우스 신 앞에서, 10개월 동안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시합에 임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대로 경기한다"라는 것이 훈련이라고 말한다면, 이 훈련은 "시합에 나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 올린다는 훈련"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여서 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훈련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단순히 지적인 훈련 뿐만 아니라, "기도, 예배, 성경 읽기 등의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교회에서 가능하면 소그룹으로 묶어서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을 위해서 교회에서는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농부 훈련 (하나님께 인생이 달렸음을 인정하는 긴 여정 / 장기)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6 The farmer who works hard ought to have the first share of the crops. 

세 번째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훈련은, "농부 훈련" 입니다. 이것은 긴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훈련입니다. 농부 훈련은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농부는 자신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께서 비와 다른 모든 조건을 통해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일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농부 훈련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며, 내가 수고한 것을 빼앗기는 것이 수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수고해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며, 이 사실 때문에 우리의 감사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길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농부 훈련입니다. 

4. 총명 (세가지 훈련을 통해 얻는 결과)

딤후 2: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개역개정) 7 Think about what I am saying and the Lord will give you understanding of all this. (NET)

마지막으로, 이러한 세가지 훈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총명"입니다. 이것은 세가지를 포함하는데, 먼저 "돌파력" 입니다. 돌파력은, 훈련을 통해서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에 그것을 뚫고 나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해력" 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묘하게 일하시며, 그것들을 만나게 하시는 자리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우러짐"입니다. 이것이 특별히 중요한데, 총명으로 번역되는 우리 말 단어 가운데, 영어로 미학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우러짐"을 의미합니다. 총명은 "온 교회가 행복해지는 것"이며, "필요한 말과 필요한 행동, 적절한 말과 적절한 행동을 공동체 가운데 하는 것"이 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훈련은, 단순히 어떤 과정을 수료하거나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세우고 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 저의 목회 비전으로서의 적용

목회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목회는 정말 많은 것을 포함합니다. 행정, 예배, 심방 등등 영적인 일 뿐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목회의 핵심은, "사람을 세우는 것" 입니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훈련의 방법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도 한명이 자신의 삶의 역량을 키우고,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실천의 면이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바탕"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탄탄한 배경 없이 그저 열심히 훈련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아주 적은 부류의 천재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천재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더 높은 차원에서 어떤 현상과 사물을 이해하는 사람이며, 단순히 남의 것을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비전을 따라서 자신의 이해를 통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한목사님이 바로 이 영역에 속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목사님이 제시하시는 "훈련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이해"는 가장 수준 높은 차원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한목사님의 제자 훈련의 타입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세가지 훈련이 서로 교차하는 복합적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편의상 이렇게 나눌 수 있겠습니다. 

* 위기 속에서 "가장 우선 순위"로 놓아야 하는 것

먼저 "단기인 병사 훈련"은, 짧은 순간에 찾아온 삶의 아주 극단적인 위기 속에서 성도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 가를 가장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펜데믹으로 여전히 일상이 무너진 이 시기에,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훈련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신앙이 좋아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는 정말 어려운 시간을 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위기의 상황 속에서는, "정신"이 혼란스럽게 됩니다. 자신이 그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이 다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대한 혼란 속에서, "삶의 우선 순위"가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바로 그 때에,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한다"라는 "가장 상위의 비전 혹은 소명"을 붙들라는 것은 너무나 탁월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주장한 것처럼, 삶의 가장 극단적인 순간에서, 어떤 희망이라도 한가지를 반드시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흔들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그분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그 비전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바로 이 훈련에 임하는 것이야 말로 위기를 벗어나는 최고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흔들리고 무너져도, "궁극적인 성도의 비전"인 이것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제 자신에게 바로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훈련은 "성경적"이다

"중기 훈련인 운동 선수 훈련"은, 교회 안에서 항상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사실 훈련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더 부유해지기 위한 훈련 혹은 자신의 건강을 위한 훈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영적인 훈련은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세속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내면과 영혼의 훈련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훈련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기본적인 분위기가 "훈련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하는 문화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이 분명히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훈련에 대한 모든 의구심에 대한, "가장 확고하고도 궁극적인 답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새로워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훈련의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참여시킴으로써, 헌신된 운동 선수처럼 계속적으로 사람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목회자의 끈기와 비전에 대한 헌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라는 한 목사님의 한마디 속에서, 그분이 넘어야 했던 수 많은 파도들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성도의 궁극적인 모습은 "치열함 속에 겸손"이다. 

"장기적인 훈련인 농부 훈련"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가장 깊은 겸손함"을 만들어내는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한목사님의 강의가 참 좋았던 것이, "인간의 책임을 경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타락하고 소망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상황이 "나의 삶의 책임을 도피할 수 있는 변명"은 될 수 없습니다. 장기적인 훈련인 농부 훈련에 임하는 사람은, 삶을 대충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헛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삶의 최선을 다한 모든 열매조차도, 하나님께서 맺게 하셨음을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런면에서 이러한 농부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의 특징은, "탁월함과 겸손"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총명"에 대한 이해

저는 교육학을 공부하였지만, "총명"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연구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 더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고, 이것이야 말로 "성도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한 목사님이 제시하신, 돌파력, 이해력, 그리고 어우러짐은 모든 목회자와 성도가 꿈꾸는 너무나 큰 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중에 한가지만이라도 충분히 이룬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하지만 분명한 이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탁월함을 보았습니다.

저는 먼저 디모데후서 3:7에서 “생각해 보라” 라는 것은 "명령형"이라는 것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명령"이라는 것은 매우 낯섭니다. 현대인들은 마치,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처럼" 착각합니다.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실상, "성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자신이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훈련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명령 하신 것은 분명히 그 의도가 있습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에서 “생각하다”라는 것을, 로우 나이다 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30.3 νοέωb: to think over a matter with care—‘to think about carefully, to consider well.’ ὁ ἀναγινώσκων νοείτω ‘let the reader think carefully’ or ‘note to the reader: carefully think about what this means’ Mk 13:14; νόει ὃ λέγω ‘think carefully about what I am saying’ 2 Tm 2:7.

Johannes P. Louw and Eugene Albert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6), 349.

흥미로운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의 깊게 이것들을 살피고, 마음에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강의에 적용하자면, "훈련이 주는 의미와 그 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서, 삶의 중심 축으로 삼고 그것을 확고하게 붙들라" 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훈련의 결과인 “총명” 에 대해서는 로우 나이다 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32.26 συνίημιb or συνίω; σύνεσιςb, εως f: to be able to understand and evaluate—‘to be able to comprehend, to understand, to be intelligent, insight, intelligence.’

Johannes P. Louw and Eugene Albert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6), 382.

그리고 이러한 총명에 대하여서, 다양한 주석가들은 추가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QUESTION—What is meant by σύνεσις ‘understanding’? Basically the Greek word carries the idea of bringing things together and thus understanding them [Lns]. It is to have the ability to grasp mentally and make discerning judgment [El]. It means understanding [EBC, GNC, Lns, LSA, My, TG], intelligence [MNTC], enlightenment [HNTC, Lns], comprehension and insight [NTC], right judgment [Brd], discerning judgment [El], discretion [NCBC], wisdom [EGT, TNTC].

Eugene Minor, An Exegetical Summary of 2 Timothy, 2nd ed. (Dallas, TX: SIL International, 2008), 51.

결국 총명에 대한 이해는, 단어만 놓고 보자면 "어떤 것을 이해하고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것을 이해하고 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통찰력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어적인 의미만 놓고 보자면, "매우 지적인 기능을 가진 단어"입니다.

* 총명은 "전인격적 훈련의 결과"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먼저 "보통의 사람들의 착각"입니다.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모두가 삶의 통찰력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그토록 소망하는 통찰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훈련의 결과 혹은 단순히 단기적인 훈련의 결과가 결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총명을 얻는 것은, “전인격적인 훈련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위기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로 훈련에 임하고, 장기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그 과정을 감당하는 사람만이 얻게 되는 것"이 총명입니다. "절체 절명의 위기와 영적인 전쟁 상황을, 한 인격이 힘들게 고단하게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총명은, 지적인 열매라기 보다는, 반드시 "성경적인 전인격적 훈련의 결과"로 보아야만 합니다.

* "총명과 훈련"은 순환적이다.

“범사에” 총명을 주신다라는 말씀이 참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주해적인 관점으로는 이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상의 차원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 목사님께서 범사라는 부분을 적용하신 결과가 바로, 돌파력, 이해력, 어우러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탁월한 성도의 특징들은, 결국에는 "범사의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은, 총명이라는 것을 단순히 지적인 것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함께 나타나는 가장 실천적인 것으로 이해하시는 듯 합니다.

저는 아직 “범사”에 총명을 논할 수준은 아닌 듯 합니다. 다만 제가 이번에 주목하고 마음에 품은 것은, "영적인 훈련은 순화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가지 훈련을 통해서 더 깊어진 신앙을 가진 사람은, 더욱 큰 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총명을 얻은 사람은, 세가지 훈련의 가치를 깨닫고 더 그것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성도의 성숙의 길” 이라는 것입니다.

* "진실한 삶"에 매진하라.

결론적으로, 제가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붙들고, 어떤 태도로 훈련에 임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성경적으로 확고하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한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더욱 명료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의 삶의 태도를 지지해주고 그것에 대해서 성경적인 기반을 제시해준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귀한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과 끈기" 입니다.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훈련에 임하는 것만이, 열매를 맛보는 길입니다. 앞으로 바로 이 내용을 저의 목회의 비전으로 삼고, 더욱 성도의 진실한 삶에 매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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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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