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굳이 꼭 구입해야 하다면, 단순히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이 채널 스트립이 가지고 있는 사운드와 이큐 커드 등의 특성 그리고 이것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능들을 잘 살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채널 스트립은 플러그인 얼라이언스의 CEO인 Dirk Ulrich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콘솔입니다. 오랫동안 실제로 레코딩 작업에서 사용하면서 많은 장점을 발견했고 꼭 한번 플러그인 형태로 만들고자 했는데 결국에는 결과물로 만들어낸 플러그인입니다. 그래서 직접 Dirk Ulrich가 등장해서 소개를 하고 설명을 합니다. :)
이런 영상이 단순히 재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상당히 지겨웠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들어야했습니다. 하지만 플러그인의 화면을 보면서 또 영상을 보면서 몇가지가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Dirk Ulrich가 영상 중간에 DAW 리퍼를 띄워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도 리퍼 사용자이기 때문에 눈에 금방 띄었습니다. 혹시 이분도 리퍼 유저일까요?
어쨌든 저에게 있어서 이 채널 스트립은 일단 편의성이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다이얼 자체가 굉장히 크고 시안성이 좋아서 이큐를 조작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빠르게 접근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큐 섹션에서 특별히 sheen과 glow는 부드럽게 하이와 로우를 조절할 수 있는 커브를 제공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컴프 외에도 리미터 섹션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영상에서는 입력 신호를 과하게 넣은 다음에 fast attack으로 바꾸고 그리고 mix 노브로 패러럴 믹싱을 통해서 좀 더 소스를 앞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컴프에다가 추가해서 좀 더 타격감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플러그인은 플러그인 얼라이언스의 최신 채널 스트립이기 때문에, 다른 채널 스트립에 없는 기능도 그냥 모두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영상에서는 아마 자리가 남아서 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AUTO LISTEN입니다. Brainworx에서 일반적인 이큐에 들어가 있는 기능인데, 채널 스트립에는 처음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이 기능에 정말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큐 노브를 클릭하면 그 노브가 가리키는 주파수 대역만 들리는 것입니다. 정말 편리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만약 이 기능이 있다면 항상 키고 작업을 합니다. 특히 미드 쪽에서 너무 부밍이 있는 부분을 적당하게 잘라내기에 아주 좋습니다. 이 기능을 켜 놓으면 빠르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 기능이 채널 스트립에 들어가다니!
채널 스트립은 다양한 이큐 커브를 사용합니다. 특히 미드 대역에서 큐 값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큐 값을 조정하면서도 변화를 귀로 캐취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약간 반은 느낌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채널 스트립을 쓰면, 정확하게 내가 어떤 대역을 손을 대고 있는지 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들에게는 이것이 없어도 되겠지만 저 처럼 초심자에게는 너무나 탁월한 기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mono maker와 stereo width입니다. 영상에서 설명할 때에 다른 플러그인에 이미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플러그인 얼라이언스 플러그인을 쓰면서 아마도 모든 플러그인에 모노 메이커와 스트레오 넓이 조절은 동일한 알고리즘을 쓴다고 느꼈습니다. 제 느낌이 맞았네요. :)
물론 이 채널 스트립 다음 순서에다가 이런 기능이 있는 플러그인을 쓰면 됩니다. 가장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제 기억으로는 Mastering 쪽 플러그인들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것이 채널 스트립에 그대로 들어 있다면 굳이 다른 플러그인을 띄울 필요가 없습니다. 듣고 바로 적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역시 빠르게 작업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약간 고민했지만, 만약에 위의 기능들을 통해서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좀 더 간편하면서 퀄리티를 끌어낼 수 있다면 이것은 좋은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구입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이제 실전입니다. 디자인만 보고서, 혹은 그저 몇가지 추가적인 기능을 보고 혹 해서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위에 생각했던 모든 것이, 음악을 만드는데 충분히 적극적으로 사용 되었는지가 관건입니다. 결론은, 대성공입니다. 저는 Brainworx AMEK 9099가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
일단 모든 것이 너무 간편해 졌습니다. 물론, 좀 더 독특한 획기적인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플러그인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AMEK 9099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많은 플러그인들을 더 이상 띄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AMEK 9099를 중요 트랙에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먼저 보컬입니다.
제 오디오 인터페이스 혹은 컴프레서 문제인지 신호가 너무 작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사실 위에서 컴프는 걸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일단 보컬에 걸어보고 깜짝 놀란 것은, 게이트 성능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 저는 focusrite의 채널 스트립을 가장 많이 씁니다. 그것도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절을 해도 게이트 쪽에서 보컬이 쉴 때 노이즈를 잡아주는 것이 조금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AMEK 9099는 심지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기본 셋팅에서 완벽하게 노이지를 잡아 줍니다. 모든 채널에서 기본으로 게이트가 다 셋팅되었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
제가 쓰는 베링거 TM1은 저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음이 정말 너무너무 강하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큐가 좀 극단적입니다. 그런데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나, 생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auto listen 기능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솔직히 중음을 듣고 어디를 깎아내야 하는지를 거의 고민 없이 바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큐에서 sheen과 glow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너무 과하게 급하게 고음과 저음을 깎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단 채널 스트립으로 기본적으로 다 마무리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이큐 등을 계속 더 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피아노입니다.
솔직히, 피아노는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것도 더 이상 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프리앰프 하나를 거쳐서 AMEK 9099으로 집어 넣고 이큐로 만졌습니다. focusrite과 비교하자면, 로우 컷이 뭔가 좀 더 부드럽게 걸리는 느낌입니다. 뭔가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로우컷을 적당하게 조절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사실 더 좋았던 것은, 피아노의 땅땅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파라메트릭 이큐로 잡을 때에도 항상 고생하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10분 정도 안에 해결했습니다. 중고음 대역을 가지고 오토 리슨으로 셋팅해 놓고 4k 부근에서 큐 값을 조절하면서 적당히 깎아 냈습니다. 그 이후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피아노는 중음도 중요한데 너무 답답한 부분을 살짝 걷어 냈습니다.
역시나 게이트가 진짜 좋습니다. 거기다가 간편하게 모노 메이커로 살짝 모노감을 주고, 스트레오 감을 살짝 더 넣었습니다. 솔직히 bx에서 만든 stereo width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번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다음은 스트링입니다.
솔직히 이번에도 충격입니다. 그냥 콘탁에서 불러온 생 악기를 AMEK 9099 안에서 조절했을 뿐인데, 평소에 여러가지 많이 더한 것 만큼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 물론 스트링 버스를 만들었지만 거기에는 iron 하나 정도 걸려 있을 뿐입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AMEK 9099의 느낌과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기도 하고 다른 채널 스트립 보다 더 사운드가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로우패스필터도 굉장히 부드럽게 걸립니다. 뭔가 사운드가 어색해지지 않고 그냥 컷트가 부드럽게 됩니다. 여기에는 컴프를 살짝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튀어나오기 보다는 뭐낙 정리된 스트링 톤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오토 리슨 기능은 최고입니다. 사실 스트링을 들으면서 빠르게 이큐잉을 하는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가장 관건이 되는 중음을 들으면서 살살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편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쿠스틱 기타입니다.
솔찍히 다시 한번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다른 것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타 버스도 iron 하나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큐를 통해서 충분히 좋은 소리가 그냥 나옵니다. 어쩌면 정말 제가 이큐를 지금까지 엉망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 오토 리슨 기능은 거의 작업 시간을 절반 이상으로 줄였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stereo width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기타는 스테레오로 나오기 때문에 스테레오로 나오는 것을 pan을 20퍼센트 정도 주고 스테레오 넓이를 넓히면 아주 환상적인 효과가 나옵니다. 마치 귀에다 대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만약에 채널 스트립에 stereo width가 없었다면 생각을 전혀 못했을 것입니다. 역시 컴프를 걸었는데 컴프는 특별히 착색이 있는 것은 아니라 깨끗하게 컴프레싱 됩니다. 그리고 일렉기타입니다.
일렉기타도 어쿠스틱과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guitar rig의 프리셋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전체 믹스 안에서 사용하려면 반드시 이큐를 써야 합니다. 역시나 오토 리슨으로 들으면서 중음을 조절했는데 너무 소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쿠스틱 기타 처럼 스테레오 효과를 의도적으로 과하게 넣었습니다. 보통은 일렉기타를 두대 정도 넣지만 이번 곡은 한대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자 이제 리듬 파트로 갑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드럼 버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컴프레서는 엘리샤의 Elysia Mpressor입니다. 그래서 항상 엠프레서의 빅드럼 프리셋을 걸어 놓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하고 아래 내용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스네어 입니다.
자 이제 진짜 이것이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스네어 자체 사운드를 위해서 AMEK 9099 하나와 보컬 인헨서 하나 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스네어 사운드를 만들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안 들리고, 자칫하면 과합니다. 자칫하면 너무 얇고, 자칫하면 너무 두텁습니다. 거기다가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리듬을 잡아야하는데 그렇다고 과하게 나와서도 안됩니다. 이런, 도대체 어떻게 하란 것인가?
그런데 드디어 AMEK 9099의 특기인 리미터를 쓸 때가 되었습니다. 일단 3db 정도 좀 빠르게 컴프를 넣은 다음에 그 다음에 리미터를 걸었습니다. 정지 상태에서 캡쳐를 했지만 굉장히 강하게 먹였습니다. 당연히 사운드가 많이 일그러집니다. 그리고 mix 노브를 통해서 적당히 기본 소리와 섞었습니다. 물론 이큐의 오토 리슨을 통해서 빠르게 중음역대를 조절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보컬 인핸서로 약간의 harsh함을 더했습니다.
아, 이럴수가.. 제가 원하는 그 드럼의 스네어입니다. 적당한 타격감, 없는 듯 그러나 존재하는 그런 사운드입니다. 물론 부드럽게 믹싱에 묻히기 위해서 오토메이션으로 볼륨을 다 조절했지만, 제가 원하는 바로 그 사운드를 얻었습니다. 그것도 단 2개의 플러그인으로... 그 다음은 킥입니다.
저는 킥이 많은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킥을 만들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 여러 영상을 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의 경우에는 저의 마음에 어느 정도 흡족한 킥을 만들었습니다. 역시나 스네어 처럼 리미터를 걸고 사운드를 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오토 리슨이 너무 좋았습니다. 드럼 킥은 단단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어야하는데, 이게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토 리슨을 키고 중음을 빼면서 저음 쪽에 좀 더 무게감을 넣었습니다. 좀 더 자신있게 저음 이큐를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의기 충천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탐입니다.
탐이야 말로 필인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합니다. :) 물론 요즘에 음악들은 들어보면 탐을 거의 안 쓰고 808 드럼의 스내어 정도로만 쓰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strike2 드럼은 약간 옛날 느낌 혹은 사람 느낌 나는 드럼 악기입니다. 그래서 필인에서 탐이 꼭 멋지게 들어갑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리미터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스네어처럼 적당히 믹스 노브로 섞으니 튀어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리미터 쪽으로 소리를 완전히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딱 적당한 뭔가 타격감이 바로 나오더군요. 그리고 스테레오 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충격적이게도, 다른 플러그인 하나 없이 소리를 끌어 냈습니다. :) 이 모든 것을 과정을 종합해서 만들어낸 곡을 한번 들어보시죠.
사실 이 곡을 세번 믹싱을 다시 했습니다. :) 역설적이게도, AMEK 9099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소리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니, 저의 믹싱 환경이 엉망이라는 것이 부각이 되었습니다. 헤드폰으로 너무 마음에 들게 믹싱이 완벽하게 되었는데 다른 곳에서 들어보니 너무 harsh해졌습니다. :) 하지만 모니터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 등으로 크로스 체크해서 결국에는 위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 지금도 기분은 약간 얼떨떨합니다. :) 좋은 사운드를 그렇게도 원하고 추구해서 한 채널에다가 정말 수도 없는 플러그인들을 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만큼은 사운드적으로 더 추가해서 쓴 플러그인이 거의 없습니다. 늘상 채널에 더 걸었던 것들을 다 걷어냈지만, 사운드는 충분히 훌륭하고 마음에 듭니다.
역설적이게도, 원하는대로 좀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게 되니 헤드폰이 너무 마음에 안들게 느껴집니다. :) 며칠전에 제가 쓰는 AKG K92의 주파수 응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지만... 며칠 생각하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이 헤드폰으로 작업할 때에는 4-8k를 아주 아주 잘 들리지 않게 작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곳에서 그나마 평탄하게 들리네요. 그래서 이번 작업도 모니터링이 아주 불편한 상태에서 작업했습니다.
어쨌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저는 정말 멋져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한국분들의 AMEK 9099 리뷰는 없어서 아쉽네요. 앞으로 제 작업 방식은 무조건 AMEK 9099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focusrite은 디에서 부분만 사용할 듯 합니다. 좀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네요. 사운드는 모든 이들이 자기 취향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귀에는 AMEK 9099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
파라오가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성경은 이 상황 속에서 한 가정에 집중합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처절한 노력이 등장합니다.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겼지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습니다.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둡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슬픈 장면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을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어떤 미래를 이 아기에게 열어갈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기의 누나가 그 아기 옆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족의 아픈 마음과 아기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바로의 딸이 등장합니다. 바로의 딸은 상황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보고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와 다르게 그녀는 자비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겼다"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 안에서 거의 스무번 가깝게 하나님께서 주어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바로의 딸을 통하여 이 아기에게 보여졌습니다.
지혜로운 누이가 그 때 등장합니다. 사실 굉장히 당돌한 발언입니다. 유모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집트사람 중에 유모가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유모를 제안하였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아들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 모세가 장성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세가 의롭고 정의로운 사람이라서 동족을 위하여 행동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모세는 장성하기까지 무엇을 했는가? 입니다. 모세는 오랫동안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동족들은 이미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늘 보고서도 그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던 동족의 핍박이, 어느날 모세에게 큰 아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형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족을 죽이려는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입니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히브리 동족들은 모세를 자신들의 재판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세의 폭력과 살인을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파라오에게까지 그 소식이 들어갑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합니다.
이집트의 왕자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진정한 추락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큰 용기였고 정의로운 행동이었지만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땅 어느 낯선 우물 옆에 앉아 있을 때에, 그곳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줍니다. 낯선 곳에서, 전혀 낯선 누군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들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듣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이 그렇게 귀한 은인을 버려두고 왔다고 책망합니다. 모세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저는 21절에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라는 말씀이 너무나 크게 보입니다. 르우엘은 모세를 인정해 준 사람입니다. 그를 칭찬해준 사람입니다. 그의 가치를 알아봐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타인의 가치를 무시하며 칭찬에 인색한 삭막한 이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너무나 따뜻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르우엘의 딸과 결혼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준 사람이 장인 어른이 된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것을 아들의 이름을 통해 나타냅니다.
사도행전 7장 30절을 보니, 광야에서 모세는 40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성경이 시간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과정은 때론 너무나 야속하고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40년이라니... 이 시간 동안 모세를 찾던 파라오는 죽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성경에서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히브리 민족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모세도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삶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In Exodus 2, we see the newborn baby at risk. because the pharaoh ordered to kill every boy, one of the Hebrew families chose to hide his baby putting the papyrus basket among the reeds along the edge of the Nile.
in god's grace, this baby was rescued by the daughter of the pharaoh, and even he adapted to her son. amazingly, when this boy was fully grown up, he realized and see Hebrews as his brothers. he had great brave and sense of justice to kill the Egyptian beating his brother. however, the Hebrew people refuse to accept Moses as their leader or helper.
so, Moses should flee to the Midian. coincidently Moses helped some women and he found a good man to acknowledge his value. however, Moses has felt that he is a foreigner there.
even 40 years passed. maybe Moses felt that he was abandoned by everyone and Israelites felt too. however, God saw them remembered his covenant, and started to act to save them.
미국에 살든지 한국에 살든지 상관 없이, 영어는 중요한 듯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꾸준히 영어를 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픽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고 또 미국인을 자주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영어를 사용하고 말할 수 있는 탁월한 어플입니다. 제가 그동안 사용했더 말해보카와 비교하면서, 스픽을 처음에 사용하면서 간단하게 리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영어 어디까지 해봤니?
- 스픽 (Speak) 영어앱 사용기 / 이해를 했다면, 쉴새 없이 떠들어라! vs 말해보카
무슨 분야이든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끈기가 정말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재미가 동기가 되어서 시작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재미를 넘어서서 해야만 하는 것을 반드시 하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스픽을 시작하면서 왕초보 2탄 단계에서 시작했습니다. 1탄은 정말 너무 쉬운 수준이라서 2탄 정도가 저에게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끈기있게 도전한 끝에 오늘 왕초보 2탄의 마지막 훈련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 돌이켜봐도, 한국 문법에서 표현하는 to 부정사, 동명사, 사역 동사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회화에서 사용되는지를 강의를 통해서 배우고 그것을 실전으로 연습하도록 훈련을 계속 받았습니다.
스픽을 사용하면서 강의와 훈련의 치밀함에 대해서 굉장히 감탄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day 26의 "이번 코스도 완료!"는 생각보다 더 내용이 완성도가 높아서 감탄했습니다. 좋은 표현으로 정말 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픽을 만든 사람은, 어떻게 해야 언어를 잘 공부할 수 있는가를 정말 깊이 연구한 사람인 듯 합니다.
마지막 코스에서는, 왕초보 2탄 속에서 나왔던 모든 형태의 문장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것을 공부했는지를 아주 조직적으로 다시 한번 리뷰하기 때문에 복습의 의미에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 코스가 단순히 복음의 코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배웠던 문장의 형태들을 조금 더 발전시키도록, 그리고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한차원 더 올라간 수준에서 마지막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 화면은 마지막 코스의 한 장면입니다.
위의 장면은, 일종의 상황을 설정하고 회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학습자가 샌프란시스코에 왔는데 파티에서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학습자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같은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설정의 힘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마치 실제 파티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작은 대화들로 대화를 이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한번 더 놀란 것은, 위에 파란색 바가 3개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스픽이 대단한 것은, 동일한 상황을 놓고 회화를 연습하도록 하지만, 세번의 경우를 살짝 다르게 셋팅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의 비슷한 대화를 세번 동안 반복합니다. 그런데, 약간씩 다릅니다. 놀랍습니다. :)
예를 들어서 위에 보이는 여자분은, 연구원으로 일할 때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직장을 옮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첫번째 회화를 연습할 때에는 직장을 옮기는 것만 이야기하지만, 두번째는 요가 강사를 하고 싶고, 세번째는 또 다른 어떤 일에 대한 말을 하는 식으로 살짝 다르게 바뀝니다.
나의 가상의 대화 상대의 말의 내용만 바뀔 뿐 아니라, 학습자의 경우에는 동일한 내용을 말하더라도 빈칸의 위치가 계속 바뀝니다. 그래서 왕초보 2탄의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단순히 복습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어플을 키는 그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습니다. 학습자가 영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정말 집요하게 조직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스픽 어플이 단순히 영어 공부 어플이 아니라, 영어 공부의 조직화를 이루어주는 아주 탁월한 어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잘 꿰어서 하나로 만들고 그것을 점차 확산시켜 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러한 조직화가 이루어져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픽은, 영어와 영어 회화를 조직화해서 확장하고 그것을 훈련 시키는데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제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비교를 통해서 현재의 나를 평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들과의 비교를 넘어서서 나의 공부 플랜과 나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나의 것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스픽을 시작하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참 마음이 뿌듯합니다. 아직 다음 단계를 정하지 않았지만 더욱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어 공부 별로 재미 없습니다. :)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도전합니다. 지금의 이 시간들을 미래에 다시 되돌아보았을 때에,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자 도전이었다고 평가할 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사이트를 홍보할 때에, 헤드폰 리뷰를 위한 온라인 메거진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네요. 사실 첫 눈을 사로 잡는 것은 사진의 퀄리티입니다. 웬만한 유명한 온라인 쇼핑몰 사진보다 훨씬 낫고 심지어 제조사의 사진 보다도 더 멋지게 보입니다.
그리고 리뷰 내용까지 들어가 보면, 정말 내용이 충실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제가 관심 있는 스튜디오 용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헤드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사운드라는 것은, 주관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고가 라인으로 가면 추천 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정해져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에는 저가 라인 쪽에서 오히려 더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이 되는 듯 합니다. 특별히 소위 말해서 가성비 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헤드폰이 누군가에게는 또 최악의 헤드폰으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 지더군요, 혹시 제가 쓰는 AKG K92의 리뷰도 있을까? 찾아보니 있었습니다. 100불 아래 스튜디오 헤드폰 추천 (best of: studio heaphones under 100 bucks) 에 들어가 있더군요. :) 그런데 그런데 다양한 모델 중에서 꼴찌입니다. 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들어가서 리뷰를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거의 실물의 컬러와 완벽하게 매칭되는 정말 잘나온 사진입니다. 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이 나왔다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K92는 정말 예쁜 헤드폰입니다. 황금색의 아름다움에 빠져듭니다. :)
그리고 실제 리뷰를 읽어보니 제가 느낀 느낌과 비슷한 부분이 등장합니다. 일단 이 헤드폰은 베이스가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베이스가 강한 음악이 아니면 음악을 신나게 들려주지 않습니다. 또 하나 동의하는 것은 스테레오 이미지가 넓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절대로 고음이 둔하고 생기가 없지 않습니다. 고음이 굉장히 선명하고 섬세하게 나옵니다. 제가 많은 헤드폰을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이 헤드폰을 선명하지 못하다고 평한다면 정말 이상한 평가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헤드폰 리뷰들을 보면서 단 한번도 고음이 선명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운드는 주관적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이 리뷰를 적은 사람이 누구인가가 갑자기 궁금해지더군요. 이렇게 사이트에 저자에 대해서 소개해 놓았습니다.
Carsten Kaiser, born in 1974, is a sociologist (MA) and a cultural scientist (BA). He graduated jazz singing from the Glen Bushman Jazz Academy in Dortmund and attended the Conservatory of Hogeschool Enschede (NL). Today Kaiser works mainly as a producer and author of books and researches as a sociologist in the field of Art and Science of Record Production.
아주 흥미로운 분이군요. 전반적으로 사회학을 공부한 분이고 아마도 유럽 쪽에서 재즈를 공부하신 것 같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레코딩 프러덕션과 예술 그리고 과학을 연결해 놓은 필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여하튼 그냥 막 리뷰를 쓴 것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
이 사이트가 굉장히 전문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드폰의 주파수 응답을 자체적으로 측정하여서 자료를 올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엄청나네요. 나름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저는 잘 모르는 전문 분야이지만 왠지 이 그래프를 보는 순간 헤드폰의 특성을 다 파악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단 위의 그래프만 보자면, AKG K92는 중음대가 강한 헤드폰이고, 그리고 앞에서 리뷰어가 언급한 것 처럼 선명함이 떨어지는 헤드폰입니다. 일단 중음대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게 됩니다. :) 보컬 쪽이 소리가 굉장히 강해서, 헤드폰으로만 믹싱하면 보컬만 커지는 사태가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4-10khz 정도가 딥하게 들어간다는 것은 잘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어쩌면 내 귀가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봅니다. 이큐로 그래프 상으로 딥한 부분을 살짝 보정해서 한번 믹싱을 시도해봐야겠습니다.
음악을 듣고, 또 그 음악을 듣는 장비를 살피고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보통 저도 지금까지 아마존의 리뷰와 다른 음향 업체들의 리뷰를 참조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헤드폰 쪽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좋은 사이트를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혹시 헤드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번 들러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네
2. 곡 소개
이 곡은 남미 워십 찬양 1집, “누가 끊으리요” 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서, 처음 한국에 소개된 이후에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곡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는 탁월한 곡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그분이 주신 모든 소원과 꿈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심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실질적인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함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의지를 조화롭게 엮어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가복음 9: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It has often thrown him into fire or water to kill him. But if you can do anything, take pity on us and help us."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Immediately the boy's father exclaimed,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9:22b–24 The father merely seeks help through Jesus’ miraculous powers: if you can do anything. Jesus corrects the father’s statement by calling him to put his trust in God. I believe; help my unbelief! The father immediately confesses that he has some faith but also acknowledges his spiritual weakness and appeals to Jesus to create in him a heart that believes more firmly. 소년의아버지는“무엇을하실수있거든”이라고말하며단지예수님의기적적인능력을통해서도움을구했습니다. 예수님은아버지에게하나님을신뢰하라고요구하심으로써그의말을바로잡아주십니다. “내가믿나이다, 나의믿음없는것을도와주소서” 그아버지는즉시, 그가어느정도의믿음은있었지만그러나그의영적으로연약함을고백합니다. 그리고, 더확고하게믿을수있는마음을자신안에만들어달라고예수님께간청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912.
9:24 If you find yourself doubting God, let this man’s cry be your prayer. Be honest with God about your doubts and proceed in faith. God will honor your faith and strengthen it. 만일, 당신이하나님을의심한다는것을발견하게된다면, 이남자의부르짖음이당신의기도가되게하세요. 당신의의심에대하여서하나님께정직하고믿음으로나아가세요. 하나님은당신의믿음을귀히여기시고그것을견고하게만들어주실것입니다.
9:24 I believe; help my unbelief. Like the Twelve, whose spiritual sight is still blurred (8:17–25), this desperate man is a mixture of faith and unbelief. Yet Jesus responds to even such fragile faith. His compassion and power bring encouragement to Mark’s readers, both in the first century and today. 영적인시야가흐릿한열두제자처럼, 이절망적인아버지는믿음과불신이뒤섞여있습니다. 그러나예수님은그러한연약한믿음에도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의연민과그분의능력은, 1세기그리고오늘날의마가복음의독자들에게격려를가져다줍니다.
누가복음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he said to Simon, "Put out into deep water, and let down the nets for a catch."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Simon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When they had done so, they caught such a large number of fish that their nets began to break.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When they had done so, they caught such a large number of fish that their nets began to break.
5:4let down your nets to catch some fish: Peter was naturally skeptical when a rabbi told fishermen how to catch fish. Jesus’ command was odd for three reasons: (1) When the sun came up, the fish moved to the bottom of the lake (which is why they fished at night); (2) they fished with a heavy dragnet hung over the side of the boat by two men (or between two boats) and could not go deep with it; (3) they had just fished all night with no results, and the prospects were now much more unlikely. 랍비가어부에게어떻게고기를잡을지를말하였을떄에, 베드로는당연히회의적이었을것입니다. 예수님의명령은다음과같은세가지이유때문에이상한것이었습니다. (1) 해가뜨면, 물고기들은호수바닥으로이동했습니다 (이것이밤에고기를잡는이유입니다). (2) 두사람이(또는두배사이에) 무거운그물을배옆에걸어고기를낚았습니다. 그리고그러한상태로는깊은곳에들어갈수가없었습니다. (3) 그들은밤새도록아무런성과가없었고방금마쳤습니다. 그러므로이제그가능성은훨씬더낮아졌습니다.
5:6–7 In contrast to Simon’s doubt, Luke underscores the magnitude of the catch. It was so large that it tore the nets and threatened to sink Simon’s boat as well as that of his partners. 시몬의의심과는대조하면서, 누가는어획량의규모를강조합니다. 물고기가너무많아서그물을찢었고그리고시몬과그의동료의배까지가라앉을정도가되었습니다.
5:8 Simon is now called “Simon Peter,” probably to indicate the significance of this experience. It is only later that Jesus calls him Peter (6:14), and Peter becomes the leader of Jesus’ disciples (8:51; 9:20, 28). Unlike the earlier reference to Jesus as “Master” (v. 5), Peter now recognizes that Jesus is the “Lord.” Go away from me. The appropriate response from those who realize that they are unworthy to be in God’s presence (cf. Exod 3:11; Judg 6:15; Isa 6:5; Jer 1:6). sinful man. Reinforces Jesus’ mission to reach out to sinners (5:30–32; 7:36–50; 15:1–32). 베드로는이전에는예수님을선생님이라고언급했지만, 이제예수님을“주여”라고부릅니다. “나를떠나소서” 라는것은자신이하나님의임재에합당하지않다는것을깨닫는사람들의적절한반응입니다. “죄인이로소이다” 라는것은죄인들을향하신예수님의사명을강조하는부분입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83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헛된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가진 돈, 명예, 인맥, 학력 등이 마치 자신의 모든 소원과 꿈을 이루어 줄 것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능력으로 이루어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이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믿음이란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믿음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지 못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 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분의 뜻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의 능력과 생각을 뛰어 넘어서 반드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께서 친히 그분의 아름다운 뜻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기꺼이 던져 순종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서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라는 말씀과 이 찬양의 실제를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잠시 멍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오늘 내가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도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꺼야 라는 저의 본능적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막기가 어렵습니다. 내면에 일어나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삶이란 무의미한 것이라며 저의 죄악된 본성은 제 자신에게 소리칩니다.
새벽 기도를 나오기 위해서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바람을 쐬고 나서야 생각이 조금은 교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나의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며, 하루에 열심으로 섬기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사용하시리라는 확신을 그제서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 바이블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삶은 치열한 투쟁입니다. 로고스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왜 로고스를 사용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좀 더 탁월함을 가지기 위해서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어떤 해석과 적용을 발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사실 로고스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간과되는 것은 "한번의 열심" 입니다. 탁월하게 말씀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그것을 적용하고 나 자신을 위한 그리고 성도님들을 위한 교육 자료등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번의 열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을 묵상하고, 그 묵상의 내용을 글로 남기고, 묵상의 내용을 메모로 만들고, 그 메모를 다시 성경에 링크를 거는 등등의 과정들은, 정말로 "귀찮은" 그리고 "꾸준한 끈기"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물론 한번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주석 한권을 잘 찾아서 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나의 묵상의 내용이 점점 쌓이고, 그것이 결국에는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번의 열심"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루는 핵심은, 로고스의 하이라이트와 메모 그리고 앵커 기능입니다.
저 역시 로고스를 쓴지 꽤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은, 결코 로고스는 단 한번의 스쳐 지나가는 통찰을 주기 위해서 개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고스 프로그램은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합니다. 나의 모든 지식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나의 모든 묵상과 해석과 이해들을 결국 하나의 큰 틀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스터디 바이블, 혹은 주석에서 찾은 내용들을, 나의 귀찮음을 극복하면서, 그 실제의 내용들을 한 곳에 모으고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을 때에, 내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더 효율과 시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가 감히 1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 교육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로고스를 켰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로고스의 원문을 해석하고 그 자료에 해당하는 메모를 만들어서 내용을 집어 넣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 누구도 완벽한 기억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한 해석과 질문과 이해를, 언젠가 동일한 본문의 자료를 사용할 때에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노트를 보니, 순수하게 제가 글로 기록해 놓은 메모만 2177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다른 목회자들도 또 성도님들도 잘 모릅니다. 제가 묵상하고 설교하고 자료를 만드는 모든 것이 다 어떤 원리로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제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로고스를 통해서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그리고 그 자료를 정리하고 모은 그 한번의 결과들이, 지금의 저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눈물로 부지런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외로움을 극복했기 때문에 얻은 열매입니다.
사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뿌린 것 없이 거두고 싶어 합니다. 그저 한번 좋은 자료를 찾아서 설교에 적용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번의 설교를 반짝 어쩌다 잘할 수는 있겠으나, 성경 공부를 한번 어쩌다 잘 인도할 수는 있겠으나, 꾸준함으로 은혜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단 한번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뭉클해서, 글을 통해서 스스로를 격려해 봅니다.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10년이 더 중요하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서로 격려하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 마다, 미래에 이루어질 희망들과, 우리가 만들어낼 결과들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절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르지 않는 열심, 작지만 꾸준하게 추구하는 열정, 잠시 쉬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만이 우리의 삶의 열매들을 만들어 냅니다.
로고스를 사용하고 계시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자료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꼭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단 한번 사용하시더라도, 최대한의 효율을 얻기 위해서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메모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앵커 기능을 반드시 사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 하루는 별 것 아니게 지나갈 것입니다. 마음에 어떤 감동도 없이 그저 덤덤할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했던 그 선택이, 삶의 가장 의미있는 선택과 도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출애굽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요약하며 시작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 "이스라엘"로 불립니다.
시간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위대한 야곱과 요셉의 죽음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무나 큰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자손은 번성합니다. 매우 강하게 되고, 온 땅을 채웁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는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 안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9절에 보니 성경은 의도적으로 바로가 "그(의) 백성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테마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그리고 바로와 그의 백성의 대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억압은 11절에 다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노역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를 위하여" 성을 건축하게 됩니다. 처절한 굴욕감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세상의 악한 왕을 섬겨야 하는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대에도 불구하고,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갑니다. 감히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능력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는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아예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을 없애 버리겠다는 전략입니다. 히브리 산파를 불러 아들이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신과 같은 존재였던 바로의 명령을 받았지만 산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들을 살립니다.
산파는 지혜로운 대답으로 모숨을 부지하고 하나님은 오히려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산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참되게 살아계신 능력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바른 반응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잔인함을 은밀하게 사용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온 나라에 드러냅니다. 22절에 보니 그는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바로의 것이 아님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모든 태어나는 아들을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여호와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 사이의 갈등은 크게 고조되며 출애굽기 1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 동화 되어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살아가는 것은 평화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저와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믿음과 그리고 어떤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In Exodus 1, we see the severe tension between the new Pharaoh and the Israelites. As God promised, the Israelites were flourished and the Egyptians were afraid for that. the Pharaoh insist that the Israelites were his people. He made the people of God build his castle and facilities. I think that this big burden gives humiliation to the people of God.
The Pharaoh conspired that he will kill every boy to diminish the Israelites. But the Hebrew midwife was wide and disobey to him. They were afraid of the Pharaoh but Jehova.
In Exodus 1, we see the sovereignty of God for his people. He reigns his people and leads to his purpose. Because we are the people of God, inevitably, we should have the pressure from the secular world. What pressure do we have? What faith do we have? Do we live according to God's will as his sacred people?
신학교 졸업 여행을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집트가 가장 좋았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사막과,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피라미드가 좋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모래로 가득한 그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안에서 실제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애굽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여정이 너무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백성의 좌절과 기쁨, 배반, 절망 그리고 환호가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입니다.
출애굽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GT 스터디 바이블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저자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내용이 너무 좋던가, 아니면 내용이 별로 좋지 않던가 입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굉장히 문학적으로 탁월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던 출애굽기 1장을 너무 평범하고 무미 건조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출애굽기 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았습니다. T. D. Alexander라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찾아보니 이분은 복음 연합에 속해 계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보수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그리고 살펴보니 좋은 주석 시리즈로 평가 받고 있는 Teach the Text Commentary 에서 EXODUS의 저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좋은 주석 시리즈로 평가 받고 있는 Apollos Commentary의 Exodus 저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한 듯 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C.S.루이스나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정말 말 그대로 한줄만 읽어도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자주했습니다. 그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GT 스터디 바이블의 출애굽기 편을 시작하면서 1장 전체에 대한 내용을 읽었지만 감동이 크게 없었습니다. 특별히 통찰력을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창세기와 마태복을 통해서 크게 유익을 얻었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시작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이미 저명한 주석 두권의 저자라는 것은 탁월한 분이 틀림없을 것인데 저의 마음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Chita라는 분의 아폴로 주석의 아마존 서평을 읽으면서 작은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This is one of my two mistakes I have made by buying commentaries immediately after their release.
If I am going to teach a Book of the Bible in a few months, I expect to get some help in seeing certain things from a commentary whose author has spent 5, 10, 15, 20 years on it but sadly, that is not often the case with many commentaries.
I read through Alexander’s “From Paradise to the Promised Land” and I wasn’t very impressed. He handled critical issues very well but when it came to surveying the teaching of the Pentateuch, he wasn’t as helpful or as insightful as Hamilton’s Handbook to the Pentateuch. Hamilton did a superb work on the text (literary sensitive) and its theological implications (in my view his survey is better than his commentary on Genesis).
I expected Alexander's Exodus to be better and a great Biblical-Theological commentary but I was wrong. He seems more concerned about answering questions raised by critical scholars than questions raised by the text itself. He mastered a lot of material on Exodus but he strikes me as not having much mastered the text and more importantly, been mastered by the text.
He did not so much make use of the modern literary methods and thus often missed many connections between Exodus and Genesis, and the rest of the Pentateuch. For example he does not pick up on how Exodus both looks backwards and forwards in the Moses birth narrative. One of my favorite texts is Exodus 32-34 because it is foundational to both OT theology and NT theology. He says very little about its influence in both Testaments. I expected to see his biblical-theological skill at this point but I was disappointed.
I look for literary theological exegesis in a commentary, inter-textual and intra-textual sensitivity. For me literary structure is critical to understanding the theological message of a book. He analyzes a few proposed structures of Exodus but he never offers his. This makes it difficult to see how he understands Exodus was put together or how it works. His explanation sections fell flat for me: they are not biblical theologically insightful and neither are they helpful in applying the text.
But since Alexander is a world expert on the Pentateuch his commentary is academically sound and moderately and wisely conservative. Therefore, it is good for some 'dry' academic or traditional exegetical work but the preacher or the literary-theological exegete needs to look elsewhere. It cannot compete with Fretheim (Int.), Stuart (NAC), Garrett (KEC), Bruckner (UBCS) or even Brueggmann’s little commentary in the NIB.
제가 이해할 때에 이분의 서평의 핵심은, T. D. Alexander는 본문이 주는 그 핵심의 의미와 그 가치를 다루기 보다는, 비평적인 학자들이 제기하는 여러 질문들에 답을 하는데 관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자체를 다루는데 전문가라기 보다는, 본문을 다루는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전문가라고 저자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를 이해하는 문학적인 구조의 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저자 자신만의 구조들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수 많은 강력한 메시지들을 드러내기에는 저자의 관심이 충분히 집중되지 못했기 때문에 감동이 부족한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고, 또 아카데믹한 영역에서는 인정 받은 분이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은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말씀의 묵상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글쎄요, 말씀 묵상이 무엇일까요?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 저런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종합하는 정도가 과연 말씀 묵상일까요?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배우고 익히고 적용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언제나처럼 그것은 "말씀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서 "그 안으로 들어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세상이 감히 줄 수 없는 감격과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많이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T. D. Alexander는 믿음 안에서 형제입니다. 이분의 저작에 대하여 실망한 제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적은 것은 아닌가 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또한 배울 것이 있을 것입니다. 위의 부분들을 감안하면서 GT 스터디 바이블의 출애굽기 편과 함께, 출애굽기의 여정을 이제 시작해 봅니다.
틈나는대로 유투브를 보면서 홈레코딩을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 중에서 특히 라우드벨 스튜디오의 박문수 감독님은 명쾌한 설명과 배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발라드 음악 전체 믹싱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마 예전에 한번 보았던 것 같은데 새로운 마음으로 집중하면서 배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때마다 배우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당시에 고민하던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에,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전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dyneq를 쓰는 법을 전혀 몰랐는데 박문수 감독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음의 레조넌스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플러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약간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상을 보면서 제가 다인이큐를 너무 제한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단 저는 이큐의 큐 값을 가장 좁혀서 사용만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큐 값을 충분히 넓혀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의 목소리는 저음으로 떨어질 때에 레조넌스가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해 보니 큐 값을 넓혀서 쓰는 것이 훨씬 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가장 획기적으로 깨달은 것은, 이큐의 릴리즈 값이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제 눈이 마우스를 따라가는데, 박감독님이 다인 이큐에서 릴리즈 값을 300ms 정도로 조절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 영상의 42분 18초 정도를 보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여러개의 다인 이큐를 쓸 때에 모두 값을 거의 동일하게 300ms로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인 이큐를 띄우고서는 거의 제일 처음에 릴리즈 타임부터 조절하시더군요. 갑자기 머리 속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바로 이거구나!
항상 저의 보컬 쪽을 다듬으면서 느낀 것은, 저음의 풍성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깨끗한 소리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인 이큐는 다이나믹 이큐기 때문에 너무 많이 누르면 소리가 얇아집니다. 그렇다고 너무 적게 누르면 여전히 레조넌스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이도 저도 못하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만 걸어서 해결이 안되니 수도 없이 걸었다가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운 것이 여러번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처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릴리즈 타임! 다시 말해서 정해진 만큼 컴프레싱을 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의 길이로 컴프레싱을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전혀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초 중에 너무 기초인데, 역시 저는 초보자였네요. :)
그런데 문제는, 설령 제가 릴리즈 타임을 신경을 썼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느 정도로 잡아야 적당한 수준에서 눌러 줄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제가 만드는 CCM 커버가 거의 다 발라드 스타일이기 때문에, 박문수 감독님이 기준으로 잡은 300ms가 분명히 저에게도 적절하리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셋팅값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일단 레조넌스가 심하게 걸리는 저음 쪽을 큐 값을 좀 더 넓게 주고 릴리즈 값을 300ms 정도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음에 반응하도록 셋팅을 잡으니 세상에, 완전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딱 발라드 느낌에서 적당한 느낌으로 적당한 길이로 저음을 눌러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나의 문제가 이거였구나...
그런데 이렇게 다인 이큐를 적용하고 나니, 갑자기 또 다른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건 혹시 디에서도 똑같은 것이 아닐까? 디에서도 일종의 다이나믹 이큐이기 때문에 연장선에 서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자주 쓰는 bx_console Focusrite SC 채널 스트립의 디에서나 혹은 SPL Dual-Band De-Esser에는 릴리즈 타임이 없습니다. 아마 내부적으로 있겠지만 사용자가 설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너무 잘 사용하고 있는 아날로그 옵세션의 LOADES에는 릴리즈 타임이 있다는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 최고의 디에서(De-esser)를 드디어 찾은 것일까? LOADES by Analog Obsession VS Brainworx bx_refinement
바로 작업하던 프로젝터에서 디에서를 조절해 보았습니다. 다인 이큐에 적용했던 마법의 릴리즈 숫자 300을 자신있게 적용했습니다. 보컬이 너무 둔탁하지 않도록 밴드와 소프트 버튼을 누르고 적당히 조절하면서 DRY 와 WET 값을 조절했습니다.
세상에, 이제서야 좀 더 들을만한 보컬이 나왔습니다. 사실 LOADES 를 쓰면서도 뭔가 2퍼센트 부족한 것은 아닌가 느낌을 가졌는데, 그것은 순전히! 저의 탓이라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개발자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하도록 해 놓았는데, 정작 컴프레서에서 가장 중요한 릴리즈 타임을 신경도 안쓰고 있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플러그인을 통해서 원하는 소리를 어느 정도 뽑아내게 되었네요. 딱 원하는 수준 만큼 디에싱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으로 마법의 숫자 300을 통해서 아래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물론 좀 아쉬운 것은 보컬에 화이트 노이즈가 들어갔네요. 플러그인들을 다 확인한다고 했는데 어디서 유입 됬는지 발견을 못했습니다. :) 하지만 일단 이번 목표인 레조넌스를 자연스럽게 잡는 것 그리고 치찰음을 자연스럽게 잡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합니다. 물론 여전히 저음 쪽에 레조넌스가 더 심해서 연구와 훈련이 필요하겠네요.
이번에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컴프레서의 릴리즈 타임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발라드 보컬에서 다인 이큐와 디에서에서 300ms를 기준으로 잡고 사용하면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영화 300이 기억이 나네요. :) 어떤 상황에서도 잊어버리지 않을 듯 합니다.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적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