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 일요일

올리브트리, 어디까지 써 봤니? - We are friends, 로고스와 올리브트리는 "말씀 태그"가 완벽 호환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올리브트리를 쓴지가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이미 다른 자료들이 로고스에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브트리를 쓰는 이유는 "가벼움" 그리고 "추가적인 자료" 때문입니다. 

제 랩탑이 꽤 괜찮은 사양인데도 로고스를 필요한 만큼 탭을 사용하면 상당히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로고스는 거의 대부분의 스터디 바이블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꼭 보고 싶은 몇권은 데이터베이스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올리브트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스터디 바이블은 제가 로고스에 들어오기를 제일 바라는 스터디바이블인데 아쉽게도 어려울 듯 합니다. 이 스터디 바이블의 최고의 장점은, "적용과 해석을 적절하게 결합"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로고스에서 몇권의 스터디 바이블을 묵상해도 되지만,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처럼 아주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서 종합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목회자 뿐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할 때에 꼭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을 읽어봅니다. 

저는 중요하게 공부한 자료들은 반드시 로고스 메모장에 기록해 놓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만들어온 가장 중요한 습관입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내용이라도 사람은 반드시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기록을 해야 합니다. 로고스의 메모장의 앵커 기능을 통해서 꼭 기록을 해 놓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올리브트리의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내용을 로고스 메모장에 넣어 봤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의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로고스 메모장에 기록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24장 15-16절에 등장하는 "멸망의 가능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입니다. 특히 "it can be seen as any deliberate attempt to mock and deny the reality of God's presence."라는 부분이 너무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평소하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로고스의 "마태복음 24장 15절 구절 자체"에 메모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위에 하이라이트를 한 "올리브트리 내용"을 복사해서 거기다가 붙였습니다. 그래서 제 메모장이 "아래 그림처럼"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로고스 프로그램을 계속 쓰신 분이라면, 아래 메모장의 이미지를 보고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구절이 "파란색" 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저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원래 저렇게 성경 구절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성경 구절이 태깅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텍스트의 색깔만 바뀐 Daniel 9:27이 아니라, 로고스 프로그램 안에서 "그 구절이 성경 구절과자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더군요, 혹시? 혹시? 혹시라도 설마 "성경 구절 태깅" 된 것이 "자동으로 연동"이 되는 것인가?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서 "말씀 구절 위"로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래 그림처럼 "다니엘 9:27"이자동으로 뜨는 것입니다. 

저는 로고스에서는 "개역개정" 성경을 기본 성경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성경 구절이 개역개정으로 뜹니다. 중요한 것은, "올리브트리 자료"의"성경 구절 태깅"이, "로고스와 완벽하게 연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로고스의 다른 스터디 바이블에서 카피한 것을 메모장에 붙인 것처럼, 완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혹시나 해서, 태깅으로 자동으로 띄워진 다니엘 9:27을 "클릭"해 보았습니다. 역시나 로고스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자동으로 개역개정 성경이 다니엘 9:27로 이동을 했습니다. 아래 이미지처럼 "저의 로고스 화면 전체"가 다니엘 9:27을 기준으로 움직였습니다. 더 이상 추가적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올리브트리에서 성경 태깅해 놓은 자료를 로고스로 복사할 경우에, 완벽하게 태깅이 호환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사고 싶지만 로고스에서는 사기 어려운 책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몇권의 스터디 바이블도 그렇고, 또 C.S.루이스의 책들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이 기능을 알게 되면서, 제가 상상력만 충분히 발휘한다면, 지금까지 올리브트리와 로고스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한 차원 다른 수준에서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몰랐던 부분인데 새롭게 알게되어서 참 흥미롭습니다. :) 처음에는 개역개정 성경만 맥에서 편하게 좀 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올리브트리가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올리브트리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분들은, "성경 구절 태깅"이 서로 호환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올리브트리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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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4) - 본어게인 (Born Again)

 

1. 가사 살펴보기

주 안에서 내 영혼 다시 태어나
이전 것은 지나고 새롭게 됐네
죄로 물든 내 모습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 생명 내 안에 새로운 삶이 열렸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네
오직 내 삶에, 오직 내 맘에 그가 주인 되셨네

내 생명 그 안에 그의 생명 내 안에
나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네

 

2. 곡 소개

곡은, 제이어스 찬양팀의 Born Again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찬양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택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분의 생명을 주시며 다스리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잘 드러낸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Blessed are those you choose and bring near to live in your courts! We are filled with the good things of your house, of your holy temple.

65:4 Salvation means enjoying the presence of God. It is accomplished through Christ, the unique one whom God chooses to come near as our representative (Luke 9:35; Heb. 10:19–22) and through whom we can come near and be blessed (Eph. 1:3–14). 구원은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의 대표자로써 하나님에게 가까이 오도록 선택하신 유일한 분이시며, 그분을 통하여서 우리가 가까이 나가며 축복 받을 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014.

65:4 you choose. God’s free grace is the source of blessing, and the highest blessing of all is to enjoy His fellowship (16:11). 주께서 택하시고 :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가 축복의 근원이며, 모든 중에 가장 축복은 그분과 교제를 누리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903.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2:20 salvation, As Being in Christ—The best commentary on this text may be Jn 15:1–17. Being in Christ is tied inseparably and mystically to our radical union with Christ in his death and resurrection. It is a life lived by faith in the Son of God. We let Christ direct our thoughts and actions. We bury selfish interests in the interest of Christ.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근원적으로 연합하였고 분리될 없도록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안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관심을 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18.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29 For those God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and sisters.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30 And those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those he called, he also justified; those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NIV)

8:29–30 This sequence (or “chain”) of God’s acts on behalf of believers explains the “purpose” (v. 28) that God has for his people. The believer’s confidence for the present time, as well as for future glory, is rooted in God’s sovereign determination to call them into relationship with him, preserve them in that relationship, and vindicate them on the last day.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이러한 순서는, 그분의 백성을 위해 가지고 계신 목적 설명합니다. 미래의 영광 아니라 현재에 대한 신자의 확신은, 그들을 하나님의 관계로 부르시며, 관계 안에서 그들을 보존하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34.

8:29 CONFORMED TO THE IMAGE. While Paul has in mind that time of glorification (when believers will be brought into full conformity to the image of Christ), he is also thinking of ongoing sanctification, whereby believers come ever closer to the image of Christ (through daily suffering and obedience).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닮게 되는 영화의 때를 염두에 두는 한편, 신자들이 매일의 고난과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에 점점 가까워지는 지속적인 성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819–182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탁월한 점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본질과 그의 삶의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러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영적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드디어 때가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도록 허락하신 자들로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며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시작된 성도의 운명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주권적인 사랑에 의하여 완성된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의 삶을 인도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적인 힘을 공급하시며, 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점점 빚어 가신다. 고난과 어려움과 갈등과 실패와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신실하게 인도하시며, 결국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자녀로 만들어 내시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경험하는 한 없는 평안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실패 조차 극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주님을 닮아가기 위한 치열한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매 순간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분의 뜻 가운데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나를 선택하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또한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결단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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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1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3) - 샬롬

 


1. 가사 살펴보기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내니 두려워말아라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안심하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나의 평안을 주노라 세상과는 다른 평안
두려워 마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내니 두려워말아라
나의 사랑 나의 이스라엘
안심하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평강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날 보냄 같이
나도 널 보내노라 샬롬

 

2. 곡 소개

곡은, 찬양 사역자 김도현님의 “Shalom”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평화이시며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찬양이다. 예수님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지금 찾아오시며, 그분의 평안으로 위로하시고, 채우시며,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심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평화(平和, peace) 성경에서평화 단순히 근심이나 고통이 없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와 더불어 존재의 운명과 결부된 종말론적인 문제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매우 적극적인 의미의 단어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근거로 하고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사역에 의해서 이뤄진다( 2:15–16). ‘평안’, ‘평강’, ‘화평등으로도 표기된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솰롬’(שָׁלוֹם)이며, 헬라어는에이레네’(εἰρήνη)인데, 단어 모두 평온한 상태, 안전함(안녕), 조화와 일치, 교제, 만족한 상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1005.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14:27 Peace: The customary good-bye among the Jews  was to say shalom, meaning “peace.” The Lord was about to depart, so He added to this farewell by saying, My peace. The word My is emphatic. This is no conventional wish; this is Jesus’ personal, special grant of peace. The peace that Christ gives banishes fear and dread from the heart, for Jesus is in control of all circumstances.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헤어지는 인사는 평화 의미하는 샬롬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시려 하셨기 때문에 작별 인사를 말씀하시면서 나의 평화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여기서 나의라는 것은 강조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바램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허락하신 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마음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4:27.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19 On the evening of that first day of the week, when the disciples were together, with the doors lock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0 After he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side. The disciples were overjoyed when they saw the Lord.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 Again Jesus said,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20:19 FEARED THE JEWS. In spite of Jesus’s words in 14:27, the disciples were afraid that the authorities, who had been successful in having Jesus killed, might now turn on them. JESUS CAME. Nothing is said about how Jesus came to be among them, but the implication of the locked doors appears to be that Jesus simply appeared with them (v. 26; Lk 24:31). PEACE BE WITH YOU. This is repeated in v. 21 and in the appearance a week later in v. 26. The promise of peace was given in 14:27 and 16:33. It sums up the blessings and fullness of the new covenant that Jesus has made between the Father and his people (14:27). 요한복음 14 27절에서, 나의 평안을 준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한 권력자들이 이제 그들을 핍박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으신 언약의 축복과 충만함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746.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개역개정) 5: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NIV)

5:1 PEACE. What is in view is not some sort of inner experience of harmony but rather the objective fact of a new relationship with God. The root image is of war. Those who were in rebellion against God, their rightful King, are now reconciled to him through Christ; the enmity is over. This is the basis for the Christian’s access to God’s grace and hope for the future. Peace in the Bible is a comprehensive term describing the total blessing of salvation.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화평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면의 조화와 같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이미지는 전쟁에 있습니다. 정당한 왕이신 하나님께 반역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그분과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다가갈 있는 기초가 됩니다. 성경 안에서 평화라는 것은, 구원의 완전한 축복을 묘사하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81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샬롬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다가올 죽음과, 그분의 죽음 이후에 권세자들의 핍박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나의 평강을 준다라고 약속하신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그분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을 믿는 주님의 자녀로서 가장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면의 위로 정도가 아니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충만한 것이다. 우리를 정서적으로 위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장하고 지켜주는 평강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평강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며, 내가 너희를 지킬 것이라 약속하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그분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평강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주님을 전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완전한 주님의 평강을 누리고, 또 그것을 세상 가운데 풍성하게 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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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에게 배우다 (8) - The Final Temple /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함

 



보통 글을 쓰기전에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최소 다섯번 정도 듣습니다. 처음 그리고 두번째 정도까지는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정도 이상부터는 꽤 많은 부분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내용의 전체적인 구조를 대략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안 들리는 부분은 끝까지 안들립니다. 대부분 특정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고, 그리고 문장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듣고 고민한 다음에 설교 원고를 읽으면서 공부합니다. 

원고를 읽으면서 눈이 밝아집니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제야 온전히 보이는 환상적인 논리 전개와 방향 전환, 매력적인 표현들과 논리적이며 감성적인 조화는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속이 꽉 차 있습니다. 말이 상당히 빠른데 최소 35분 정도 이상의 설교이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자면 그 안에 무한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한편을 진득하게 제대로 공부하기만 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설교는 완전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설교입니다. 

최근에 저의 설교의 변화는, 좀 더 충실하게 내용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다더라의 방향이 아니라, 그것이 설교에 있어서 정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의 표현과 논리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팀켈러 목사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분의 표현들이 저의 마음을 너무나 새롭게 하고 또 기쁘게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가지의 양립되는 속성들, 예를 들어서 완전한 높으심과 완전한 접근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라는 연속되는 표현은, 마음에 감동을 주면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특별히 이번 설교는, 장엄한 성경 신학을 배운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보통 설교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설교하면 혹시 근거 없는 알레고리식 설교가 아닐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보수적이고 성경 중심적인 설교를 배운 저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팀캘러 목사님이 비유나 상징을 풀어내는 방식과 범위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그분이 그렇게 한다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는 room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이 참 된 하나님의 성전이었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거기로 다시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염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에덴 동산의 화염검을 그렇게 많이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창세기부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댓가를 치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요한계시록 5장 6절에서 "slaughtered Labm"에서 드러납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창세기의 그 하나님의 검과 연결지어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검으로 도살당하셨다고 연결합니다. 개역개정은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고 표현하지만, 원어적으로는 도살된 것을 의미합니다. NASB는 "as if slai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잔인하게 찢기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공부하면서 마음에 감사가, 그리고 또 한 없는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하여 그리고 죄인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히 찢어지셨고 그리하여 모든 죄의 댓가를 다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영광스러운 왕으로 또 죽임 당하신 어린 양으로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더욱 살아하고 갈망하고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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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0일 금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11강 설교문인가 기억력인가? (Lecture 11: Manuscript or Memory?)

 


설교자에게 있어서 많이 가지는 궁금증은, "설교 원고 자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종종 설교자들은 혹은 심지어 성도님들도 은연 중에, 원고에 의지하지 않는 설교를 은혜가 충만한 설교 혹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진짜 설교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과연 원고를 써야 하는가? 원고를 암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요만 필요한가? 즉흥적으로 해야하는가? 이런 질문은 설교자라면 모두 가져본 질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는 바로 그 부분을 말씀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대 전제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지혜로운 조언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원고에 대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설교자의 목표는 "강해의 희열이라고 부르는 설교"가 잘 이루어지는 것, 그것 자체가 목표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이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원고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설명합니다. 

* 강의 내용

존파이퍼 목사님은 일단, "철저하게 원고를 full text로 쓰는" 스타일입니다. 40년 동안 목회하면서 거의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했다고 말합니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는가? 무려 여섯가지의 이유를 언급합니다. 

첫째로, 원고를 작성하지 않으면, "설교의 논리적인 선명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쓰지 않으면, 본문의 흐름, 논리적인 구성 등등이 선명하게 설교자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원고를 작성하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단순히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흐름들을 만들어서 성도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설교자 자신도 설교 자체를 잘 볼 수 있고 잘 이해하게 됩니다.

셋째로, 원고를 작성하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개요에 들어 있는 단어들만으로는 설교자가 그 내용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일 설교를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그때에 사용할 원고들로 작성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실제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말 자신이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 주님께 기도한다고 하시네요. 

넷째로, 설교 중에 "특별한 몇몇 문장들은 완벽하게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논쟁이 있는 교리적인 부분을 말할 때에는 더욱 신경을 써서 원고를 작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칭의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믿음과 행함의 관계 등입니다. 

다섯째로, "상투적이고 뻔한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Spontaneous is overrated", 즉흥이라는 것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즉흥적인 것이 독창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곧 틀에 박힌 것을 의미합니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을 즉흥적으로 말하면 결국 상투적인 내용에 빠지게 됩니다. 

여섯째로, "기억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설교 시간 동안 해야 하는 모든 말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원고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퍼 목사님이 원고 때문에 자신의 설교가 약해진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원고를 보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 쓴 원고에 여러 표시를 해두고 마치 개요처럼 원고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력이라는 맥락에서 원고가 중요한 이유는, 설교자가 설교 중에 "지금 어디쯤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릴 때에도, 개요가 아닌 전체를 기록한 원고 덕분에 계속 설교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꼭 쓰라고 강조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알고 설교의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야하고 결국 그런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설교의 목적을 잘 이루는 것이 설교자의 목표임을 알려주면서 강의가 마무리가 됩니다. 


* 강의를 통해 배운 것과 적용할 것


제가 이 강의를 통해서 크게 감동받은 두가지는, 첫째로 파이퍼 목사님의 "철저한 준비성"입니다. 평생을 목회하면서 원고를 쓰지 않은적이 거의 없었다라는 고백은 저에게 큰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원고를 매번 쓴다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이고 또 동시에 엄청난 시간을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 정도 지명도를 가지면 삶이 얼마나 바쁠까요? 그러나 적어도 이분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 순위"가 설교에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또 하나 크게 배운 것은, "설교의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고민은, 내가 원고를 쓰느냐 아니냐, 혹은 이걸 더 줄여서 개요로 만드느냐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것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설교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그것이 때론 설교의 자유로움을 다소 막는다 하더라도, 원고를 다 써서 그것을 최대한 읽고 연습하는 현재의 저의 설교 형태가 설교의 목적을 이루는 충분히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원고를 써야 "설교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설교를 느낀다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설교자인 제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도 함께 저의 설교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 때문에, 단순히 원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원고를 소리내어서 읽고 연습하면서 최소 다섯번 정도 이상을 연습하면 그때서야 제 마음에 그 내용의 깊이가 충분히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경우에는, 원고를 충실하게 쓰고 연습하여서 그 원고 내용을 완전히 느끼는 것을 설교 완성의 목표로 해야 함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투적인 것을 피한다"라는 부분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는 세상에 천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만 만나기 어려울 뿐입니다. 당연히 천재는 즉흥적인 이야기도 얼마든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와 대부분의 설교자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준비하고 잘 작성된 원고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설교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설교의 지루함과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원고를 잘 작성해야 한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깊은 내용이 안 나올 것 같은 강의였지만, 깨닫는 바가 많았던 의미있는 강의였습니다. 앞으로도 목회를 하는 동안 충실하게 원고를 쓰고, 그것을 연습하고 느끼고 그리고 영광스러운 설교의 목적을 탁월하게 달성하고자 하는 결심을 해봅니다.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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