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CFNI 다이어리 34 - Song Writing
이곳에서 얻은 유익을 손으로 꼽자면,
이미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중에 특별히 Song Writing이 마음에 남는다.
이곳에 오기전에 이미 나는
CCM을 향한 많은 비판들을 알고 있었다.
얕은 가사와 반복되는 멜로디와 몇개 안되는 빈약한 코드
청중의 감정만을 자극하는 분위기 위주의 구성 등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주님을 향한 열심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함을
아주 조금은 배우게 된다.
곡의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조나단의 열심은 정말 대단하다.
강의 중에 언뜻 들은 한 단어 'polish'
(If you polish something, you put polish on it or rub it with a cloth to make it shine.
(콜린스 코빌드 사전))
그날 이 단어를 이렇게 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러분의 곡의 가사를 끊임 없이 polish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자작곡을 들고나와서 부를 때 마다,
비록 혹시 그 멜로디와 화음이 부족하더라도,
조나단은 늘 그 가사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백하건데,
그 가사들 중 많은 부분이,
나의 혼신을 다한 설교문보다
문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뛰어나다.
이곳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쉬운 멜로디와 반복적인 음악적 갈고리(hook)를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나는 이것에 다소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인 논의를 넘어서서,
마치 클래식이 더 좋은 음악인가,
아니면 대중음악이 더 좋은 음악인가라는 논쟁과 비슷하다.
나는 클래식을 사랑한다.
일반적인 소양 수준에서 클래식을 듣고 사랑하며,
아내의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갈망하며 존경하며,
클래식 칸타타를 통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음악적인 수준에 있어서도 클래식이 월등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적인 소양이 깊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찬양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CFNI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흐름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가운데 있다고 믿으며,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단순화와 얕음에 저항하기를 원한다.
햄버거를 사먹으며
짧은 시간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진심으로 차가운 무서운 냉소 그리고 지옥의 정욕을 보았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안무와, 사단의 집회를 연상시키는 무대 연출,
인간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해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구성등은
진심으로 나의 영혼을 얼어붙게 했고, 가슴을 냉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무서웠다.
오늘 수업 시간에,
조나단이 2년 동안 polish하고 있는 노래를 들었다.
아직도 완성중이고 마음에 품고 있다고 한다.
내 안에 주님을 향한 노래가 있네. 라는 가사의 곡,
솔직히 너무 감동적이라 울컥해서 눈물이 났지만, 참았다.
혼자 울면 너무 민망하니까...
어쩌면 그 외형적인 모습은 동일할지 모른다.
열광, 감동, 감정, 흥분,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하든지 간에,
그 외형적인 모습은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그 열정을,
어떤 이들은 그저 감정주의라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내 지성 뿐만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주심을,
내 감성이 지성을 부드럽게 녹여, 사랑의 고백을 주님께 할 수 있음을,
그분을 향한 찬양이 조나단의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이 감성이 뜨거움이,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표출될 수 있음을,
악한 영적인 세력의 차갑고 죽음으로 이끄는 영향력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품으시고 보듬으시는 봄날의 햇살과 같은 성령님의 따뜻함 속에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그래서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CFNI 다이어리 33 - Audio Production
초등학교 때, 선장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KENWOOD 오디오 세트를 사 오셨다.
빛나는 검은 빛의 육중한 몸매, 그러나 각 모서리를 아름답게 라운드로 처리한,
심플한 로고에 아름다운 빛이 들어오는, 정말 단 한번의 눈빛만으로 나를 매혹시킨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는, EQ라고 적혀 있는 파트가 따로 있었다.
이퀄라이져, 아름다운 음악이 시작되면 현란하게 LCD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 소리를 조각할 수 있는 신의 도구였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다.
오디오 앞에 그렇게 앉아서 조작하던 시간도,
온갖 MP3 player를 구입해서 들었던 것도,
이어폰 헤드폰을 가리지 않고 사고 팔았던 것도,
그렇게 스피커에 집착했던 것도,
결국 그 끝에는 소리에 대한 집착, 사랑, 그리고 열망이 있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론 설교와 찬양과 기도와 영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사운드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육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 없다.
그러나 단 10명의 사람 앞에서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전기적인 시스템을 이용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소리가 조각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도,
인간의 마음을 울릴 설교도,
가장 뛰어난 악기 실력도,
소리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학기의 audio production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행복 그 자체였다.
전문적인 교육이 없었던 나에게
음향에 대해서, 소리의 특징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은
존의 호주 영어라는 정말 어려운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께서 더 큰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음향 전문가이신 승록 전도사님을 통해
한글로도! 추가 수업을 배우게 하신 것이다.
겸손하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승록 전도사님이 그런 분이다.
이런 축복이 또 있을까?
거기다가 오늘 마지막 시간으로,
실제로 미국 필드(field)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가 특강을 해주었다.
난 그의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음악을 향한 열정,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다짐,
자신의 손 끝을 통해 나오는 소리의 조합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 마음,
자신의 수고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겠다는 그 타는 마음,
찬양팀을 어떻게든 섬기고 말겠다는 그 열심.
그를 통해,
진정으로 소명을 받은 엔지니어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
가슴에 깊이 남을 만큼 배웠다.
오랫동안 고민은,
다양한 악기와 많은 목소리들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에,
어떤 선에서 찬양팀의 볼륨을 조정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오늘 특강은 아주 훌륭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볼륨과 주파수간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주파수를 아주 거칠에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인간의 목소리가 그 중간 영역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간 주파수 영역 안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들어가 있다.
만약에 우리가 특정한 악기 혹은 목소리를 더 부각시킴으로 잘 들리게 하고 싶다면,
같은 주파수 영역에 있는 악기 혹은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오늘 강의하신 그 분은 중간의 동그라미 친 영역을 nest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서 리드 보컬이 부각되어야 한다면, 다른 어커스틱 기타나 일렉기타나 백그라운드 보컬을 줄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기타 솔로가 부각되어야 한다면, 다른 메인 보컬이나 기타나 백그라운드 보컬을 줄이라는 거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나는 수 없이 많이 보았다.
절제되지 못한 볼륨과 방향을 잡지 못하는 믹싱으로 망쳐지는 수많은 집회를.
모든 악기와 목소리를 다 키운 어이 없는 믹싱으로,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시간을,
최소한의 음향에 대한 이해와 엔지니어의 열심만 있다면
더 은혜롭게 될 수 있었던 아쉬운 경우를.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익히고 적용하고 싶다.
소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한다.
천국은 틀림없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너머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클래식들이,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현대적인 찬양들이
함께 공존하며 울릴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도 함께 손을 들고 힘껏 목소리를 더할 것이다.
마치 C.S.루이스가,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며 천국을 그리는 것 처럼,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음악과 소리와 예술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이해하고 바라본다.
그래서 행복.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 / 나비효과 - 셰인
아내와 함께 셰인의 노래를 들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감격의 탄성을 질렀고,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아... 이런 보컬이 세상에 있구나. 아름답고,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어쩌면 이 곡의 아름답고도 애절한 가사가, 셰인의 목소리 속에서 드디어 그 진정한 그 빛을 드러내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하는 모든 음들은, 절묘하게 피치가 떨어지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조차 기술이고, 그것조차 감성으로 들리는 것을... 셰인의 첫 솔로 곡이 발표된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그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내 인생의 명작 / 주성치의 서유기
내가 열심히 유투브를 뒤져서 찾은 영상을 보자마자, 진희는 웃지만, 나는 꿋꿋하게 올린다. 왜냐하면 이 영와는,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이니까. 주성치의 서유기, 일곱번을 보았지만, 부족하고, 영상으로 소유했지만 허전하다. 아마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영상을 클릭하고 10초 정도 안에 눈물을 흘렸으리라. 인간이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웃기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슬프고 가장 마음에 남는, 이미 예술의 반열에 오른 영화이다. 3류 특수 효과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그 스토리는, 진실로 복음에 아주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가장 뛰어난 설교라고도 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박영선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남자로서, 사랑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진실하게 배웠다.
시간을 넘은 사랑 / 시월애 - Must Say Goodbye
당신이 나와 같은 감성을 가졌다면, 어쩌면 이 영화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시간을 넘는 사랑 이라는 제목의 '시월애'. 제목은 must say goodbye. 김현철의 목소리도, 그의 음악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곡만은, 나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평범하지 못한, 시간을 넘어서야만하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 그리고 그 시간조차 극복하게 되는 아름다운 결말까지. 아주 오래전에 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영화로, 음악으로 남아 있다.
참된 사랑을 엿보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우연히도 이 명화를 군대에서 보았다. 며칠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리던지..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소유' 해야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이 영화는 한줄기 빛과 같다. 영화 속에서 한석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면, 자신의 행복을 접고 차라리 홀로 남는 것을 택한다. 아마 한국 영화사에 남을 영화이리라. 이 영화를 보고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한석규의 진실한 연기와,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노래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Who is there like you?
오늘도 탁목사님은 세련된 곡으로 선곡해 오셨다. 비록 부르기는 수월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곡이다. 약간 느린 미디엄 템포의,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잘 불러보지 못한 분위기다. 특별히 후렴이 너무 아름답다. 약간 끈적한 백코러스의 느낌도 좋다. 꼭 이 찬양을 부를 때는, 반드시 손을 높이 들고 함께 고백해야 할 것 같은, 아주 경쾌하면서도 적극적인 마음을 들게하는, 좋은 찬양이다. 오늘도 아름다운 곡을 알게 하심에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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