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6일 일요일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6강 하나님의 해결책과 나의 응답, 느낀 점

 

* 느낀 점

영상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것은, 풍삼초의 모든 내용은 철저하게 "처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는 풍삼초는 너무나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독교의 진리를 최대한 진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단순하지만 심오하다는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처럼, 저도 기독교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기본 진리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나와 세상과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신 주인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을 나와 세상의 중심에서 몰아내고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결국 세상이 깨어지고 온갖 고통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이고 죄이다. 

셋째로, 결국 깨어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족하고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자신도 없지만, 이 사랑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겠다라고 인격적으로 결단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인생이 재편성 되는 것이다, 이렇게 네가지로 정리해주셨습니다. 

기존의 전도라는 개념을 비교해 보았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접'을 좀 더 넓은 혹은 충분히 성경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재편성하겠다라는 점에서 훨씬 성경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알고 믿는 것을 중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인생 전체를 포함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의구심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혀 인정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점, 그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온전히 그를 이해하였다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조금은 이해되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사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실패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는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다"라는 것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보일 수 없는 수 많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전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더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은 있겠으나, "폭풍조차 잠잠하게 하시고 물 위를 걸으셨던 그분"을 지나치게 축소화시킨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 그리고 강조가 없는데, 그분이 죄의 댓가를 다 치르셨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저는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가장 존귀한 그분께서"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죄인의 죄의 댓가가 치뤄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정직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라는 쉐퍼의 모토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쉐퍼와는 세상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쉐퍼의 책을 꺼내서 읽어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쉐퍼는 이 시대의 문제를 "진리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제대로 다시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형국 목사님은, "진리에 대한 회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통치의 회복"이라고 보입니다. 사실 쉐피도 김형국 목사님도 궁극적으로 그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와 세상 가운데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형국 목사님은 그 방법과 과정보다는, "목적"에 훨씬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쉐퍼는 자신의 모든 주장 중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된다는 부분이 다소 약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해결책이 된다는 연결 고리가 약해 보입니다. 

저야 보수적인 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배우고 목회하기 때문에, 단순히 저와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신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복 본 강좌에서도 성경을 최종의 권위로 삼는다고 말씀하셨고 원어적인 충실한 주해와 논리로 목회 철학을 이끌어내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는 부분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목회를 이루고자 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어떤 열매를 이루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경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것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경외" 합니다. 그 말씀 한자 한자가 절대적인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겠으나, 저는 좀 더 심원한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김형국 목사님의 이번 영상에서 복음의 소개가,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논리는 존재하고 선명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신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설명하지 않고, 축소시켜서 설명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인데, 가장 존귀한 예수님에 대한 설명과 감격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셨다 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축소는, 결국 그분의 주인 되심에 대한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그 개념이 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자이시기에, 사실상 그분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절대 순종에 대한 요구"를 필요로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표현대로, 그분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경영하고 재편성한다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탁월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초대 교회의 수 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과연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인가에 있어서는 저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또한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면, 마치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는 개념 정도는 약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느낍니다. 물론 현재 한국 교회가 가진 여러 슬픈 현실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모든 불의와 괴로움과 죄가 사라지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으시고 더 이상 어떤 질병과 고통도 없는 오직 아버지의 영광으로 가득한 그곳을, 마치 그 정도 소망해서는 소용이 없다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기독교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영상을 보고 배운 점도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점도 다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형국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이 귀한 영상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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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드리는 찬양 (143) - 블레싱 (The Blessing)

 


1. 가사 살펴보기

주 네게 복 주사 주 너를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네
그 얼굴 비추사 평안주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의 은혜 너의 위에 천 대까지 흘러가리
너의 가정 너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까지

주의 임재 앞서가며 지키시고 동행하리
둘러싸고 채우시며 주가 너와 함께하리

아침에도 저녁에도 너의 모든 출입에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주님 너를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2. 곡 소개

곡은, 미국의 대표적인 찬양 사역자인 Kari Jobe 의 곡이며, 한국에서는 아가파오를 비롯한 다양한 찬양팀에서 번역해서 불렀다. 이 곡은, 민수기와 신명기의 축복의 말씀을 바탕으로, 주의 백성을 돌보시고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하며 또 감격적인 것인지를 고백하는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신명기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5:9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for I, the LORD your God, am a jealous God, punishing the children for the sin of the father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of those who hate me,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5:10 but showing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5:1–21 Deuteronomy 5–26 contains the laws that Israel was to keep in the land they were about to enter. The Ten Commandments stand at the beginning of all other laws, and at the beginning of the Ten Commandments we read,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slavery” (5:6). 신명기 5-26장은 이스라엘이 들어가려는 땅에서 지켜야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다른 유럽의 시작이고, 십계명의 시작은 나는 너를 애굽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하나님 여호와라 말씀입니다.

Law follows grace. God saved Israel before he gave them his law to follow. God rescued Israel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of his promise to Abraham, Isaac, and Jacob (Ex. 3:15–16). Israel’s deliverance was therefore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God saw their affliction and cared enough to deliver them from their suffering to an abundant life (Ex. 3:7–8). This truth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to read the whole of Deuteronomy 5–26. Indeed, this gospel rhythm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we carry out our obedience to God. Law follows grace. We obey from, not for, God’s favor. 율법이 은혜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따라야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보시고 그들을 고통의 삶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이끌어내실 만큼 그들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신명기 5-26 전체를 읽을 있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복음의 리듬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율법은 은혜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26–227.

신명기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1 If you fully obey the LORD your God and carefully follow all his commands I give you today, the LORD your God will set you high above all the nations on earth.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2 All these blessings will come upon you and accompany you if you obey the LORD your God: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3 You will be blessed in the city and blessed in the country.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4 The fruit of your womb will be blessed, and the crops of your land and the young of your livestock--the calves of your herds and the lambs of your flocks.

The problem is that we do not abide by all the things written in God’s law. Left to ourselves, the result can only be curse rather than blessing (Gal. 3:10). But Christ obeyed for us (Rom. 5:19) and bore the curse for us (Gal. 3:13), so that we might receive these blessings through our faith and not by our obedience (Gal. 3:14). Those who are free from the obligation to keep the law in order to merit the promised blessings (Gal. 5:1) do not use that freedom to sin (Gal. 5:13) but rather to serve in love (Gal. 5:14). As we do, we can expect to receive more of the covenant blessings in this life even as we anticipate experiencing the fullness of those blessings in the life to come…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직 저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순종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믿음으로 축복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은, 자유를 죄를 짓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때에, 내세에서 그러한 축복의 충만함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면서, 땅의 삶에서 많은 언약의 축복들을 받을 것을 기대할 있습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52–253.

민수기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4 "'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5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6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

The ultimate expression of God’s desire to bless us is found in the giving of his Son to bear the curse of God’s wrath upon our sin (Gal. 3:13–14). In reconciling us with God and bringing us near to him, Jesus himself is our peace (Eph. 2:14–22).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의 궁극적인 표현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담당하도록 그의 아들을 주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에게 가까지 게가 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L. Michael Morales, “Number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7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찬양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순종이 아니라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분의 언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마땅히 지킬 것을 요구하시지만, 그것은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 무서워하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자 하는 그 풍성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이며, 예수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단순히 이 세상의 물질의 복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성도는 심지어 수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감격을 누린다. 성도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순종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죄와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성도는 그저 감사함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 순종은 마땅한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고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순종을 추구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한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복된 길이 된다. 주님께서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은혜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며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을 마땅히 가르쳐야 함을 보여주신다. 이 찬양을 통해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주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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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5일 토요일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5강 세상이 깨진 이유와 죄의 본질,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실제 강의를 들었을 때에도, "참 이분은 진실한 분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자신이 신뢰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간절히 알려주기를 원하는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남을 설득 하는 것" 입니다. 사실 귀찮은 일입니다. 듣던지 안 듣던지 그냥 내가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 혹은 신앙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까지 설득하려는 것은 이러한 시도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이렇게 탁월한 결과에 큰 박수를 치고 싶고 또 김형국 목사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죄는 깨어짐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죄이다" 라는 표현이 너무 단순화된 죄의 설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다시 듣고보니, 충분히 성경적인 설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주신 분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논증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남을 비교하고, 삶의 목적을 찾기 어렵고 사명을 찾을 수 없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 된다는 탄탄한 논리적 흐름이 참 좋았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물론 한가지 약간 아쉬움 혹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었습니다. 사과 나무 비유로 죄를 설명하면서 "다 잘려버린 본체인 마음이 문제가 없더라도, 뿌리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어 있다면 그것이 죄"라는 설명은 모순점이 보였습니다. 단 한번도 성경에서는 마음에 문제가 없는 상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왜 마음에 문제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설명의 정확한 의미는 아마 또 다른 내용을 통해서 계속 살펴봐야 할 듯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변증은 탁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법칙을 만드셨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은 팀켈러 목사님의 중요한 논지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논증이야 말로 세상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 인들이 마땅히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이미 알던 부분이지만 새롭게 들어서 좋았습니다. 

"40대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통찰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젊은 이들 역시 자신의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이야기하시는 모습과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형국 목사님은 계속적으로 "진실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진실한 각성을 하는 것" 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할까요? 

이미 자신의 사고가 굳어버린 오래된 신앙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단순히 일방적인 강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다른 사람의 격려와 수정을 받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각성을 만들어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북클럽의 핵심이고 목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복과 제가 추구하는 크리스천 북클럽의 확고한 연관성을 드디어 제대로 발견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담임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면, 저는 풍삼초 정도는 충분히 적극적으로 사용할 듯 합니다. 

풍삼초의 영상과 책을 가지고 북클럽을 계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다른 책들과 제가 경험한 좋은 책들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성도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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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4강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오늘날 우리의 세상,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이 설명하시는 "깨어진 관계"에 대한 통찰은 참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읽을 때에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오히려 영상을 통해서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강조하셨던 부분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망가진 세상 속에서도 인간은 오히려 문제 의식을 느끼고 무엇인가 더 갈망하는데, 그것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원래 모습의 "흔적"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흔적이라는 표현은 기독교를 거절하는 분들에게라도 충분히 다가갈 수 있는 설명이고, 마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중요한 논증들은 인간이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과 경험이 있고, 바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패널로 참여한 청년이 한 말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어려운데, 어떻게 세상을 회복시키겠는가?"라는 질문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원대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회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의 변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참으로 추구하는 것도 경험하는 것도 어려운 목표입니. 그래서 더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공허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김형국 목사님이 참으로 대단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이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루어낸 모든 결과들은 마치 기적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청년이 이야기한 것처럼, "과연 하나님의 그 원래 계획처럼 회복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의구심이 저의 마음 깊은 곳에도 있는 듯 합니다. 솔직한 현재의 제 생각은, 김형국 목사님은 지나친 이상론자로 보입니다. 

여전히 요원한 인간 관계, 여전히 멀어 보이는 신앙의 성숙, 어쩌면 행복을 찾기보다 불행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른 듯한 목회자의 삶,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영상의 모든 내용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얼굴을 보면, 진심으로 이 내용을 믿고 또 그것으로 충분한 만족을 얻으신 것 같은데, 여전히 저에게는 미지의 세계로 느껴집니다. 

사실 책을 보면서도 모호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읽고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사랑하게 된다"라는 것이 저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자신 역시 많이 회복된 것이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언급하지 않고, 나의 강점과 약점을 인정하라는 말은 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의 질문은 계속 이어집니다. 약점을 약점으로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나쁜 것을 나쁘게 보지 말라는 것은 마치 나 자신을 속이라는 말 처럼 들리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물론 우월감과 열등감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도대체 하나님의 어떤 시각으로 나를 보라는 말인가? 여전히 큰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어쩌면 이 논리 가운데 예수님이 빠져서 그런 듯 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아니라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좋게 보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누더기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분만으로 인하여"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받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실수하고 잘못해도 저주를 하는 부모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끊없는 사랑 안에서 자녀를 아끼고 돌보고 고쳐주고 인도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부분에서 예수님이 없다는 사실이, 현재의 영상의 단계에서는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낯설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용이 연결되기 보다는 그저 중구난방 여러 이야기들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시각이 아닌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기독교를 접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경험하는 낯설음과 어지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것만이 인간의 회복을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러한 권면은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 말은,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고,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그 중요한 일,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그 중요한 일을 제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충분히 기도하고 고민하고 또 실천해야 할 부분입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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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3강 진정한 행복의 두 가지 조건, 느낀 점

 

* 느낀 점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교회 안에서만 자란 저에게,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김형국 목사님의 노력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이번 화도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4P 쾌락(pleasure), 명예(prestige), 권력(power), 재산(property) 이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과연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세상이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행복의 조건을 정확하게 요약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두 가지 정도가 있을 때에 행복해 지는데 첫째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때에 행복해지고 둘째로, 삶의 목적을 찾으면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하나님께서 이 두가지를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라는 설명은, 목사인 제가 들어도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야 "참된 인간으로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행복"이기에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한 탁월한 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풍삼초를 어깨 너머로 들었을 때에는 무슨 행복 타령인가 라고 살짝 생각했지만, 어쩌면 제 마음 안에도 가장 필요한 것이 행복이고,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추구해 나가도록 돕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상에서 설교적으로도 통찰을 얻었습니다. 만약에 모든 설교 가운데,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사랑" 그리고 "삶의 목적" 두가지를 함께 끊임없이 이야기해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좋은 설교가 되지 않을까요? 

논외로 하나복 본강좌를 들으면서 약간 아쉬운 점은,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제로 설명하는 부분”은 약점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김형국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현재 문제의 원인이 "단순히 십자가 사랑"만을 강조한 것이 문제였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깨어진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다스림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상 일종의 성도가 삶을 살아가는 시스템적인 측면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그 개념자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형국 목사님의 교회론은 성경적이지만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다소 기업과 가까운 것처럼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기 원하고 그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나복 본강좌에서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다소 상호 모순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하시고 그 운영에 부합하지 못한 교회에서 촛대를 옮기신다는 논리를 모든 것 보다 가장 앞세운다면, 그 안에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을 주는 "무조건적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본강좌를 들어보니 김형국 목사님은 로마서 7장의 바울 사도의 탄식을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바울의 탄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신앙 승리주의로 이해하였습니다. 만약에 로마서 맥락에서 바울 사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담대하게 설명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문맥상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디모데전서 1장에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이다"라고 말했던 바울 사도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결국 저는, 이 모든 논의가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저도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처럼, 단순히 인간이 죄인이다 라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을 참으로 싫어합니다. 마땅히 교회는 세상을 충만하게 하는 존재로 만들어졌고, 목회자를 포함하여 모든 성도는 그것을 향하여 탁월하고 진지하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한국 교회의 문제의 원인을 “두가지”로 동시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이 현재적으로 충분히 죄임을을 강조하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현재의 필요성을 계속적으로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이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새롭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도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무조건성과 예수님의 순종의 깊이를 십자가의 복음으로 충분히 드러내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이 행복을 경험하게 하고 거기에 기초하여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이 내 목숨 조차 걸 수 있는 삶의 방향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예수님이 없어진 것이 현재의 한국 교회이다” 라는 비판은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 예수님이 가르쳤던 하나님의 나라를 놓쳤기 때문이다” 로만 교회 갱신의 목표를 잡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더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이 강의를 통해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형국 목사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든 강조는 결국 복음의 온전성을 가장 탁월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복음을 덜 강조하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강조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 나라 복음을 더 제대로 완성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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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2강 무신론과 유신론, 소통하시는 하나님, 느낀 점

 

* 느낀 점

이 강의는 굉장히 깊은 내용을 심플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김형국 목사님의 전제는, "신이 있다 없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신념체계, 세계관이다. 과학과 종교는 상호 보완적이다" 입니다. 오히려, 어떤 것이 내 삶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을 감히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은 소통하는 신"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소통"이라는 단어가 이 시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소통하는 하나님" 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교회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조차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리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김목사님의 큰 강점입니다. 다만 무신론과 유신론은 결국 전제일 뿐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것을 마치 종교와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사실상 인간의 과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논리적인 것"입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나며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논의를 들어가면, 결국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주와 인간의 복잡성을 인격적인 존재의 계획과 섭리를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로 부터 온 것이라면, "그 가장 초기에 물질"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R.C. 스프로울이 "창조인가 우연이가"에서 진지하게 다룬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유신론의 논증입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상이 무신론자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과연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의 기독교로의 초대인지는 저로서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저의 입장에서는 유신론은 단순히 전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논리의 귀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통하시는 것을 그 내용을 텍스트화 한 것이 구약이라는 표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매우 타당한 말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 관점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설명으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성경을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스토리집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증거하시기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과,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완전한 것이다 라는 표현은 유사하지만 사실상 그 진지함 혹은 영적인 깊이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일을 이렇게도 적어 놓고, 저렇게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을 내가 읽고 맞는지 틀린지 보는 태도가 과연 성경적인 태도인가는 저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죄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경에 대하여 반감을 가집니다. 죄인이 경외감 없이 성경을 보는데, 그 영혼이 변화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것이 저의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영적인 시각이 비뚤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한 열린 태도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아무리 유신론에 대한 합리적인 증거를 보여줘도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두개 중에 하나가 너에게 무엇이 맞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가? 그런 부분에서는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예전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다니는 분들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 하이웨이 근처에는 가끔씩 비슷한 문구들을 크게 써 놓았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손가락질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분들 중 누군가가 교회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그것이 답이 아닐까요? 저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대답이든 충실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러한 대답과 권유가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그런 면에서 그분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 위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설득이 있어야겠으나, 복음을 그 마음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성경관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이 얼마나 더 소중한가에 대해서 오히려 역으로 생각하고 성경에 대하여 더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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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1강 세 가지 문과 세 가지 장애물, 느낀 점

 

* 느낀 점

한 사람의 언어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관점 혹은 태도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김형국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이 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의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상의 내용이 참 따뜻하고 좋았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대적하지 않고 대화하려는 마음이 열린 분이기에 풍삼초까지 만들어 내셨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어권에는 좋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굉장히 세련되고 누가 봐도 한번 더 보고 싶은 그런 영상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상의 퀄리티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풍삼초의 영상을 새롭게 청년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이 훨씬 편한 저이지만 굳이 영상으로 풍삼초를 보게 되었습니다.

풍삼초가 단순히 새가족 교제 정도가 아닌가 짐작했었는데, 굉장히 수준 높은 변증학 책이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하신 것이 좋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세가지 계기인 "생활 양식, 경험 혹은 고통, 그리고 탐구" 라는 것은 많은 분들과 함께 대화 나누면서 발견한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는 이 세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라는 것도, 균형을 잃어버린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생활 양식으로 하나님을 만난 분들은 하나님을 탐구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을 탐구하는데만 익숙한 분들은,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경험이 약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온전한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 영상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풍삼초 시리즈가 "생각"이라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것입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김형국 목사님의 목적은 충분히 신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생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라는 반문도 하게 됩니다. 이 시대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투브 영상도 극단적으로 짧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대에, 누군가가 생각하도록 끌어내는 것이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많은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가 일일이 답해 주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팀캘러 목사님은 오히려 질문에 답하지 말고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역으로 공격하라고 설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형국 목사님이 매우 탁월한 분이지만, 영상을 들을 때에 한편으로 제 마음에는, 마치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납득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듯한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녀 사이에 무턱대고 믿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질문과 거기에 맞는 대화와 설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목회자로서 제 자신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목회자가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쉐퍼가 주장한 것처럼,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대답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방향성을 한국적으로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김형국 목사님의 따뜻함과 태도를 잘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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