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2일 금요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 히브리서 11장 35-40절 설교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 있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세상 사람으로 부터 버림을 받을까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봐, 우리는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남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어떻게 해서든 뭔가 있어보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내 생각만 주장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필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 판단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그분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제 자신에게 더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히브리서 11장 35-40절 설교

누군가 성도님들께 믿음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믿음의 의미는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실상 혹은 reality 라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라는 분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내가 조금 소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처럼 우리에게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성도님들께 이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두가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하나님을 잘 믿고 그분을 따르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자녀들이 잘 되게 됩니다, 돈도 왠만큼 잘 벌게 됩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됩니다 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이렇게도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예, 하나님을 잘믿고 따르면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내가 믿는다는 이유로 정말 고생을 많이 하게 되고 핍박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 두가지 대답 중에서 어떤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놀라운 것은, 오늘 히브리서 말씀에 보니 두가지가 다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33절에서 34절에 보면 정말 멋진 승리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칼날을 피하고 의를 행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들은 마치 슈퍼 히어로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능력이 겉으로 화려하게 나타나는 그런 기적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35절 앞 부분에도 그런 기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죽었던 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났던 그러한 여인들도 있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런 승리의 멋진 내용에 연결하여서 바로 그 뒤에는 뭔가 이상한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비참한 장면이 바로 연결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35절부터 보니 “심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조롱을 당했다 채찍질을 당했다 돌로 맞고 톱으로 잘렸다” 그렇게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정 반대의 삶을 살았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렇게 겉보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든지 아니면 정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9절에보니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그리고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약속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기다리던 것은 더 좋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있습니다. 

첫번째 적용은, “성공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믿음을 추구하는가?” 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아주 분명한 대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들과 겉보기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고 정말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그러한 신앙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뒤를 이어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성공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아주 극단적인 실패의 삶을 살았던 그런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신앙 생활을 잘 해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사람들로 부터 폭력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했던 그런 신앙인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겉보기에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한 사람과 겉으로 완전 실패한 것 같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여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의 이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이 된다면, 그 사람은 신앙 생활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진짜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어야 하고 남들이 보기에 불쌍하게 살면 실패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성경은 두가지를 한번에 보여주십니다. 겉보기에 아주 성공한 사람 그리고 겉보기에 아주 실패한 사람 둘다를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두가지 모두가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39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그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 속에 있는 믿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크리스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만 신앙 생활을 한다면, 잠깐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아마 크게 좌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아니면 겉보기에 화려한가 초라한가? 라는 그 기준만으로는 우리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몸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훌륭한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히려 성경은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사람들이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성공한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시고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틀어서 크리스천을표현하는 가장 멋진 표현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 마다 마음이 떨리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말씀입니다.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지금 이 사람들은 세상의 평가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크리스천은, 세상이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것에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참된 크리스천의 관심은 자신의 인생이 성공한 것이든 혹은 겉으로 보기에 실패한 것이든 그것에 관심을 쏟지 않고 그 중심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기 위해서살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협박할 방법이 없습니다. 왜 그런 것인가? 돈으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가 없습니다. 높은 자리로이 사람들을 매수할 수가 없습니다. 죽인다고 협박하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무시해도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있고 믿음이있고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주인이 되신다는 자신의 삶의 확고한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가지 말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을 위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결과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남들이 비웃을 만큼 처절한 아픔을 줄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 여호와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시고 우리를 칭찬하시며 상을 주실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번 한주간 동안 그리고 여러분의 평생 동안 이러한 참된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번째 적용은, “지금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마지막 때를 위해 사는가?” 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실제로 그 약속이 눈앞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비교할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미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다시승천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믿고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승천하신 것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예수님께서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말씀입니다.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본 그대로 오시리라” 라고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 이 세상이 끝나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인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 그리고 마지막 심판을 하시는 것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년 전에 코로나 상황이 일어나면서 성도님들의 비지니스가 정말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특별히 한인 분들 중에는 클리너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지역에 클리너들이 어려운데 어렵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흑인 지역에 있는 분들은 비지니스가 어렵기는 커녕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정부에서보조금이 나오고 코로나로 인해서 더 많은 보조가 있었는데 흑인분들은 그 돈을 그냥 다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옷도 더 많이 맡기고돈도 더 많이 써 버린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저는 흑인분들이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있는 모든 돈을 바로 지금 당장 다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금의 현재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오늘 말씀 속에서 기록된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당장만 생각했다면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고 그들에게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예수님이 오실 그 때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오실 그 때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이 오실 그 미래의 마지막을 깊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저오늘 하루 즐거운 일, 지금 당장 기분 좋은 일, 지금 당장 돈이 되는 일, 그것만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마치 구약의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오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 처럼, 이제는 구약의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도 다시 말해서 온 역사의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예수님이 오실 바로 그 날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단순히 오늘만 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기분과 내 목표를 위해서 오늘만 살지 말고 언젠가 반드시 오실 그분이 오실 그날을 믿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뜻에 따라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삶과 에너지와 모든 열정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향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고 믿음으로 어려운 선택을 할 때에도 저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과 핍박을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저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을 고대하는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5장 / 순종이라도, 삶은 순탄하지 않다

 

모세는 정말 어려운 길을 내딛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로 떨고 있었지만, 여호와를 의지하여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백성들은 그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일하심을 보고 여호와께 머리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바로 찾아갑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한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처음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신 내용과 다소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출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장로들과 같이 가지도, 혹은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지도 혹은 허락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짧은 내용으로 명령하는 것 처럼 선포할 뿐입니다. 당연히 바로는 거기에 대하여서 콧방귀를 뀌면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것일까요? 심각하게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는 백성이 노역을 쉬려는 꾀병으로 이해하고 더 그들의 노력을 심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백성이 모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여기도록 만듭니다. 더 몸을 고되게 만들어서,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백성의 리더들이 바로에게 찾아가 호소하지만 바로는 자신의 뜻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리더들의 분노를 모세와 아론이 뒤집어 쓰게 됩니다. 바로 앞에 장에서는 모세와 아론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지만, 그러나 일이 틀어져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게 되자 리더들은 이 모든 책임이 모세와 아론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잘잘못을 어찌 칼로 자르듯이 딱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모세는 바로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라 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빨리 자신의 역할을 해치워버리고 싶어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는지도 모릅니다. 백성은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자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부족함을 덮어주기에는 너무나 인내가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과정이었지만, 여전히 모세는 실수가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모세는 순종했지만, 그러나 당장 모세의 눈 앞에는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선하게 인도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모든 일을 그분의 뜻대로 온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We assume that when we obey God's command, there will be a good conclusion. but, the problem is that our obeying has a lot of errors. we can't figure out every aspect of our life and the effects of our every behavior. 

I think that Moses did his best to obey God's command. but, surprisingly, his mention of Paraho was slightly different. maybe he does not want to have a long conversation with Pharaoh. Maybe Moses's attitude was so rude in the sight of the Paraho. Anyway, Pharaoh made fun of Moses and he ordered Israel to make brick in harsh conditions.  

therefore, the leaders of Israel were angry with Moses and Aron. They don't have the patience to be with Moses to go further. I think that Moses was really embarrassed by this situation. Only God can control this messy situation. He will rearrange and will make right it with his sovereignty. 

삶으로 드리는 찬양 (89) - 믿음이 없이는

 

1. 가사 살펴보기

주님 제 마음이 너무 둔해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속하여 이 땅만 보다가
주님 손을 놓쳤습니다

나는 나그네로 왔는데
왜 주저앉게 되었나
나는 청지기인데 언제부터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버렸나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고된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 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주를 찾는 자 반드시 만나리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 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2. 곡 소개

이 곡은 CCM 보컬 그룹인 히즈윌 5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성도의 믿음에 대해서 강조하는 곡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면, 오직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세워가심을 고백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 A song of ascents. Of Solomon. Unless the LORD builds the house, its builders labor in vain. Unless the LORD watches over the city, the watchmen stand guard in vain.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127:2 In vain you rise early and stay up late, toiling for food to eat—for he grants sleep to those he loves.

127:1–2 UNLESS THE LORD BUILDS. God blesses hard work but warns that anxious, frantic labor is futile. If his people fail to trust him as their ultimate source of shelter, security, and food, they become workaholics and burn out.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 하나님께서는 수고하여 일하는 것을 축복하시지만, 근심하고 미친 듯이 매달려 일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만약 그분의 백성이 피난처, 안전, 그리고 식량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일중독자가 되어서 탈진하게 될 것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951.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6:9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16:9 A PERSON’S HEART PLANS HIS WAY. God’s sovereignty over our lives should not discourage us from planning and setting goals. Rather, it gives us reassurance that the outcome is not ours alone. Someone much bigger is watching out for us.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은, 결코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을 낙담 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가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시고 계십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001.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11:5 By faith Enoch was taken from this life, so that he did not experience death: “He could not be found, because God had taken him away.” For before he was taken, 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worship (vv. 5–6): Notice that Enoch’s faith and actions actually “pleased God.” You also have the opportunity to please God through your faith each day. Take a moment to pray in faith, expressing not only your belief in God but your desire to please him. 에녹의 믿음과 행동이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음”을 주목하세요. 당신 역시 매일의 당신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뿐 아니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당신의 소망을 표현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959.

누가복음 12: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12:42 The Lord answered, "Who then is the faithful and wise manager, whom the master puts in charge of his servants to give them their food allowance at the proper time? 12: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12:43 It will be good for that servant whom the master finds doing so when he returns. 

12:41–44 Jesus previously told His disciples that His parables held secrets that were only for His followers (see note at 8:9–10). Jesus did not answer Peter’s question directly. Instead, He told another story about a lord and his steward. The story in verses 35–40 emphasized that the master’s servant should be watching, but this story made it clear that the servant must also be working. Disciples who persevere in faithfulness will be rewarded by the master.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주님은 주인과 그의 청지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35-40절의 이야기는 주인의 종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야이기는 종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성실함으로 인내하며 일하는 제자는 주인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입니다.

Holman Bible Staff, KJV Study Bible (WORDsearch, 2012), 눅 12:41–4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탁월한 찬양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을 예배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께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도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도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믿음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확고하게 가진 자 만이,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을 가지고 오직 그분을 섬기며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힘을 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칭찬하시고 풍성한 상을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라고 선포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살아가지만, 성도는 성도의 삶을 붙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의 모든 선한 결과들이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성도의 삶은 그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믿음이 부족하여 무너진 자리가 회복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것을 나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기를 원하며, 그분의 것을 그분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한다. 더 이상 나를 의지하여서 세상을 해쳐 나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원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올리브트리, 어디까지 써봤니? - Berean Standard Bible (BSB) 무료!

 


언어라는 것은 너무나 신비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사용하시며 인간은 그분을 따라 언어를 사용합니다. 삶의 대부분은 사실상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랑도, 격려도, 미움도, 분노도 언어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언어의 사용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올리브트리 성경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가끔씩 홈페이지에 들어가봅니다. 로고스와는 또 다른 기습적인 세일이 있고 또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료들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들어가보니, "Berean Standard Bible"이라는 것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공지가 떠 있었습니다. 일단 처음보는 번역본이었지만 무료이기 때문에 다운로드를 받았습니다.

* Berean Standard Bible (BSB)
https://www.olivetree.com/store/product.php?productid=65515

이미 영어 번역본들이 충분히 있었지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Berean Standard Bible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더군요. 

* Berean Study Bible
https://berean.bible/

사실 처음에 흥미가 생겼던 것은, "스터디 바이블"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스터디 바이블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관주와 각주 정도가 들어가 있는 수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넷바이블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넷바이블이 스터디 바이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Berean 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한글 번역으로는 "베뢰아" 입니다. 한국에 이단이 있어서 이 단어를 선입견을 가지게 되지만, 사실 성경에서 베뢰아 성도는, 사도행전 17장에 등장하는 매우 수준 높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받고 또 상고하는 베뢰아 지역의 사람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가 관심있는 부분인, 어떤 부분에 중점으로 번역을 하였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 Traslation Tiers
https://bereanbibles.com/about-berean-study-bible/translation-tiers/


위의 설명을 보니 이 번역본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부터 번역했다는 것, 그리고 문자적인 번역을 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study translation"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현대적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부하고 익히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의미인 듯 합니다.

마지막 설명이 흥미로운 것은, 강조된 번역이라고 설명합니다. 원문의 강조하는 바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 강조되는 부분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번역본은 대표적인 번역들 중에서 ESV 와 CSB 정도 사이에 있다고 자신들의 번역 위치를 설명하는군요. 

* Compare Translations
https://bereanbibles.com/about-berean-study-bible/compare-translations/


그리고 자신들의 번역이 다른 대표적인 번역본인 NIV 그리고 NLT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비교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의역보다도 훨씬 원문의 의미에 가깝고, 그리고 대표적이 역동적 번역인 NIV 보다도 더 문자적 번역에 가깝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대조한 로마서 8장 28절은 아마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이 세 번역본을 보면 제가 생각할 때에는, BSB가 좀 더 간결하게 그리고 좀 더 분명하게 의미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소에는 NLT가 정말 좋은 번역이고 이해가 잘 된다고 생각했는데 BSB 를 읽어보니 깜짝 놀랄 만큼 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아래의 로마서 8장 28절의 넷 바이블의 각주를 보면, 이 말씀을 이해할 때에 두 가지 방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BSB의 경우를 보니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쪽으로 번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본인들이 설명한 것 처럼, emphasized traslation을 잘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tc ὁ θεός (ho theos, “God”) is found after the verb συνεργεῖ (sunergei, “work”) in v. 28 by 𝔓46 A B 81 sa; the shorter reading is found in א C D F G Ψ 33 1739 1881 𝔐 latt sy bo. Although the inclusion is supported by a significant early papyrus, the alliance of significant Alexandrian and Western witnesses favors the shorter reading. As well, the longer reading is evidently motivated by a need for clarification. Since ὁ θεός is textually suspect, it is better to read the text without it. This leaves two good translational options: either “he works all things together for good” or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In the first instance the subject is embedded in the verb and “God” is clearly implied (as in v. 29). In the second instance, πάντα (panta) becomes the subject of an intransitive verb. In either case, “What is expressed is a truly biblical confidence in the sovereignty of God” (C. E. B. Cranfield, Romans [ICC], 1:427).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위의 번역본들과 비교하면서 개역개정을 읽어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지만, 사실 개역개정에서는 확고하게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BSB 경우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BSB를 읽을 경우에는, 좀 더 성경이 문맥상 강조하는 바를 더 강하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성경 번역본을 한글 하나 영어 하나 정도 보셔야 합니다 라는 권면 자체가 사치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번역본들을 읽어보고 묵상하는 것은 큰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그분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새롭게 더 넓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 가끔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한번 BSB에 관심을 가지시고 살펴보신다면, 유익을 누리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올리브트리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22.html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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