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내 생각만 주장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필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 판단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그분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제 자신에게 더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히브리서 11장 35-40절 설교
누군가 성도님들께 믿음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믿음의 의미는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실상 혹은 reality 라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라는 분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내가 조금 소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처럼 우리에게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성도님들께 이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두가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하나님을 잘 믿고 그분을 따르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자녀들이 잘 되게 됩니다, 돈도 왠만큼 잘 벌게 됩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됩니다 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이렇게도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예, 하나님을 잘믿고 따르면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내가 믿는다는 이유로 정말 고생을 많이 하게 되고 핍박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 두가지 대답 중에서 어떤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놀라운 것은, 오늘 히브리서 말씀에 보니 두가지가 다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33절에서 34절에 보면 정말 멋진 승리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칼날을 피하고 의를 행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들은 마치 슈퍼 히어로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능력이 겉으로 화려하게 나타나는 그런 기적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35절 앞 부분에도 그런 기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죽었던 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났던 그러한 여인들도 있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런 승리의 멋진 내용에 연결하여서 바로 그 뒤에는 뭔가 이상한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비참한 장면이 바로 연결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35절부터 보니 “심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조롱을 당했다 채찍질을 당했다 돌로 맞고 톱으로 잘렸다” 그렇게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정 반대의 삶을 살았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렇게 겉보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든지 아니면 정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9절에보니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그리고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약속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기다리던 것은 더 좋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있습니다.
첫번째 적용은, “성공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믿음을 추구하는가?” 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아주 분명한 대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들과 겉보기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고 정말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그러한 신앙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뒤를 이어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성공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아주 극단적인 실패의 삶을 살았던 그런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신앙 생활을 잘 해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사람들로 부터 폭력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했던 그런 신앙인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겉보기에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한 사람과 겉으로 완전 실패한 것 같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여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의 이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이 된다면, 그 사람은 신앙 생활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진짜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어야 하고 남들이 보기에 불쌍하게 살면 실패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성경은 두가지를 한번에 보여주십니다. 겉보기에 아주 성공한 사람 그리고 겉보기에 아주 실패한 사람 둘다를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두가지 모두가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39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그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 속에 있는 믿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크리스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만 신앙 생활을 한다면, 잠깐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아마 크게 좌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아니면 겉보기에 화려한가 초라한가? 라는 그 기준만으로는 우리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몸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훌륭한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히려 성경은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사람들이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성공한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시고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틀어서 크리스천을표현하는 가장 멋진 표현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 마다 마음이 떨리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말씀입니다.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지금 이 사람들은 세상의 평가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크리스천은, 세상이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것에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참된 크리스천의 관심은 자신의 인생이 성공한 것이든 혹은 겉으로 보기에 실패한 것이든 그것에 관심을 쏟지 않고 그 중심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기 위해서살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협박할 방법이 없습니다. 왜 그런 것인가? 돈으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가 없습니다. 높은 자리로이 사람들을 매수할 수가 없습니다. 죽인다고 협박하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무시해도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있고 믿음이있고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주인이 되신다는 자신의 삶의 확고한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가지 말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을 위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결과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남들이 비웃을 만큼 처절한 아픔을 줄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 여호와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시고 우리를 칭찬하시며 상을 주실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번 한주간 동안 그리고 여러분의 평생 동안 이러한 참된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번째 적용은, “지금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마지막 때를 위해 사는가?” 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실제로 그 약속이 눈앞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비교할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미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다시승천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믿고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승천하신 것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예수님께서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말씀입니다.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본 그대로 오시리라” 라고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 이 세상이 끝나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인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 그리고 마지막 심판을 하시는 것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년 전에 코로나 상황이 일어나면서 성도님들의 비지니스가 정말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특별히 한인 분들 중에는 클리너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지역에 클리너들이 어려운데 어렵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흑인 지역에 있는 분들은 비지니스가 어렵기는 커녕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정부에서보조금이 나오고 코로나로 인해서 더 많은 보조가 있었는데 흑인분들은 그 돈을 그냥 다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옷도 더 많이 맡기고돈도 더 많이 써 버린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저는 흑인분들이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있는 모든 돈을 바로 지금 당장 다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금의 현재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오늘 말씀 속에서 기록된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당장만 생각했다면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고 그들에게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예수님이 오실 그 때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오실 그 때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이 오실 그 미래의 마지막을 깊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저오늘 하루 즐거운 일, 지금 당장 기분 좋은 일, 지금 당장 돈이 되는 일, 그것만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마치 구약의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오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 처럼, 이제는 구약의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도 다시 말해서 온 역사의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예수님이 오실 바로 그 날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단순히 오늘만 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기분과 내 목표를 위해서 오늘만 살지 말고 언젠가 반드시 오실 그분이 오실 그날을 믿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뜻에 따라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삶과 에너지와 모든 열정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향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고 믿음으로 어려운 선택을 할 때에도 저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과 핍박을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저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을 고대하는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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