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2일 목요일

복음 안에서의 참된 사랑 / 반의 반 - 이승환



그의 노래는 참 슬픕니다. 마치 뮤직비디오에 화장이 번져버린 삐에로처럼, 그의 노래는 그의 슬픈 인생을 말해줍니다. 평생을 사랑을 노래했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는 여전히 슬플 뿐입니다. 오늘도 수 많은 젊은이들은 사랑하기를 원하고,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헤어진 사랑에 대해서 슬퍼합니다. 그 감정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듣고, 또 자신을 위로합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지 못한체, 그렇게 사랑을 기다립니다.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연애한지 8년, 결혼한지 이제 3년이 지나면서,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수 많은 시간을 아내를 고통스럽게 했고,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고 돌이켜 보며 또 고민합니다. 하나의 구절을 묵상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많은 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랑을 합니다. 겉으로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 영혼 깊숙히에는 자기 자신을 향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인간은 절대 인간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떤 아름다운 인간도 그 본질은 추악한 슬픈 죄인이라는 것을. 남녀 사이에서,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 저에게 주어진 말씀은 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생각할 때 마다, 그리스도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기억해서 울컥하고, 또 그렇게 사랑하기를 요구하시는 명령 앞에 숙연해집니다. 세상에 완벽한 가정은 없습니다. 세상에 나를 채워줄 완벽한 상대방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정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불타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가정이 이혼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 없는 결혼이,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깨달아질 수록, 주의 말씀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저는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결국 복음만이 저를 움직입니다. 제 팔을 붙잡고 자는 아내를 옆에서 보면서, 여성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고, 또한 남편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마음을 주심을 느낍니다. 사랑도 연민도 긍휼도 결국 복음 안에서만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과하는 두 사람이 만날 때, 그토록 서로가 갈망했던 행복과 사랑이 드디어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에 화려한 사랑은 공허합니다. 사랑은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복음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한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사랑은, 희생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 가운데 맛보는 천국의 그림자 입니다. 당신이 젊은이라면 그 사랑을 하기 위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진리 가운데 복음으로 당신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바랍니다. 오직 그것만이 당신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2012년 1월 7일 토요일

고 김현식을 그리며 / 비처럼 음악처럼 - 김장훈



처음 고 김현식씨의 노래를 어디서 듣고서는, 그 어린 마음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이 남았다. 우리집에서 공식적으로 가요가 금지되었음에도, 나는 복받치는 마음으로 어머니께 제발 tape을 사달라고 졸랐다.(놀랍게도 사주셨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이의 인생이 참으로 진지하고 무게가 있을 때에, 그렇게도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나보다. 김장훈에게 김현식이 그런 사람이다. 가장 그의 목소리에 근접한, 가장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헌정 앨범을 만든다. 한참을 보고, 또 몇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리움이란 정말 무섭고도 혹독한 감정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그리워하고 누구를 열망하는 것이 그리고 나를 다 불태워버리는것이. 어쩌면 진정한 성숙은, 그런 불같은 시간을 지나야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값진, 그러나 아주 작은 빛나는 보석 같은 것이리라.

2012년 1월 6일 금요일

인간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 너에게 간다 - 윤종신



인간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이것은 진실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별 두려움과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평안하겠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양심이 살아있다면 그 영혼이 예민하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에 다다를 수 없다는 그 절박함에 우리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중세에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바로 그런 떨림이었다. 신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 가치 없어보이는 우리의 인생.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인생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믿음으로의 칭의를 주장했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현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움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심으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그 의로움은 쉽게 이야기해서, 얀시의 말을 빌리자면, 그분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더 이상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개혁주의 안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파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 처럼, 단순히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정도의 역할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의로운 일들을 행하셨고, 그 의로운 일들을 믿음으로 내 것이 되게 하셨다. 어떤 신학자들은 루터의 하나님의 칭의야 말로 악한 것이라 비난한다. 어떻게 인간이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이 하지도 않은 것을 하나님이 했다고 인정해주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믿는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완전을 주셨음을,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 완전 안에 걸어가고 있음을, 그리고 바로 그 복음이 비천한 우리 마음가운데 그를 향한 사랑을 터져나오게 한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이 비참하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단 한 순간도 믿을 수 없을지라도, 나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주신 그분의 사랑은, 나에게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그리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며 구원을 향한 보증이 되신다고,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셨다. 그분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인도해 가신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늘도 내 인생 가운데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 오직 그분의 뜻 안에서 마땅히 일어날 것이 일어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분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나와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2012년 1월 4일 수요일

그리스도인의 메리트 / 없는게 메리트 - 옥상달빛



안목있는 아내가 처음 이 노래를 소개시켜줬을 때, 정말 온 마음이 다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센스있는 즐거운 노래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자조적인 노래인 듯 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희망과 상상이 가득차 있다. 비록 있는게 없지만, 젊음이 있고, 그래서 여전히 채울 시간과 여지가 있기에 없는게 메리트라는..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끊임 없는 발전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때론 한걸음 멈춰서 이런 노래를 불러봄직하다. 한숨 돌리고,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기 위해 묵상해볼 만 하다. 생각해보면 이 노래를 크리스천의 차원으로 승화시킬 때, 이 안에는 복음과 이어지는 아주 약한 그러나 질긴 끈이 있다. 물론 진리라는 잣대 안에서 이 노래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위대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떠오른다.(고후12:9) 자신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한다는 그 고백. 능력 본위의 세상은 나에게 요구한다. 너의 능력으로 베스트가 되라고, 그리고 너의 위대한 능력을 세상 앞에 보여주라고. 그러나 나는 늘 최선을 다하되 잠잠히 고백한다. 세상아.. 나는 없는게 메리트라네, 나는 약한게 메리트라네, 이런 약한 나와 주님이 함께 하신다네, 그리고 나를 통해 오직 주님이 드러나시길 바란다네..

나의 영웅 / 물어본다 - 이승환



박종호가 ccm계의 나의 영웅이라면, 이승환은 대중가요계의 나의 영웅이다. 그의 호흡, 그의 발성, 그의 노래, 그의 가사를 사랑한다. 그의 노래가 단순히 사랑 노래에 그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예술인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깊이 있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조금은 생각이 생긴 20대에 많은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고 새로운 꿈들을 꾼다. 낯선 곳에서 따뜻한 사람들과 새로운 꿈을 꾸고, 또 그것을 바라고 기도한다. 한국의 모든 정치적 시점과, 모든 종교적 시점은, 이제는 진실로 복음이 일어서야 할 때임을 말하고 있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 교회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사회가, 그리고 교회 스스로가 묻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까. 한번 주어진 인생 가운데, 시간이 흘러 내 인생 자신에게 물어보았을 때에, 부끄럽지 않기를..

토이의 추억 / 다시 시작하기 - 토이


가방도 없이 맨손에 든 시디플레이어에, 토이의 시디를 듣고 다니던 시절은 정말 행복했었다. present 앨범을 흐르는 감성을 자극하는 에코도 너무 좋았고, 한마디 한마디 음미해볼 수 있는 가사도 좋았다. 대부분의 사랑 노래가 자기 자신의 연민에 빠지거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거나, 헤어진 이후의 아픔을 노래한다면, 적어도 이 노래는 이제 사랑하고자 하는 결심과 그 각오를 노래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헌신이고, 결국 남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절묘하게 포착한 이 노래를, 많은 시간이 흘러 또 듣는다. 조금 더 아내에게 헌신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주님에게 헌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너무나 행복하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헌신과 드림을 기뻐 받으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 앞에서든, 하나님 앞에서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연약한 인생에 완벽은 없다는 것을. 그러나 오늘도 사랑으로 약속한다. 약속해요. 내 모자란 부분, 조금씩 고칠께요..

2012년 1월 1일 일요일

새로운 한해를 맞으며 / 하나님의 은혜 - 박종호


며칠전에 기도하면서, 잠깐이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제 마음 한켠이 싸늘했습니다. 제 마음 안에 또다른 내가, 뭘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냐고, 너 너무 약해지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저를 비난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고, 나의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아마도 평생에 싸움이겠지요. 한해가 지나가고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제 마음 가운데 이 곡이 생각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보잘것 없는 저를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늘 인도하셨습니다. 마음 가운데 온전히 만족스러운 날들이 단 하루도 없었지만, 그러나 주님이 여기까지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교파를 떠나서 가장 성경적인 주제요, 또한 신자의 현실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십니다. 새롭게 다가온 한해에도, 저와, 사랑하는 아내와, 우리의 가정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시간들이 넘쳐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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