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6) -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성도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눈을 가리고 싶은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현실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치달아가는 생존 경쟁,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살아가기가 버거워지는 현실, 신앙 생활에 집중하기 어려운 삶의 분위기 등, 차라리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보고 싶지 않은 현재와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기계화 시대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침식해 가고, 그것의 최대 피해자인 보통 사람들 앞에 어떤 미래가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자본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피폐해 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인 앤드루 양은, 이미 개인으로서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이러한 현대 사회의 변화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변화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의 결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하는 것이 "기본소득"입니다.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자신의 재능과 상관 없이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정부라는 가장 큰 조직이 서포트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이 가진 재능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서 가치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두번째 정독하고 있지만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작은 관점에서 느끼는 것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쇠락해져가는 조직에 대한 경각심"입니다. 저는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미 수 많은 교회들이 고령화로 점점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통해서 점점 쇠락해져가는 교회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앤드류 양이, 통계를 통해서 쇠락해져가는 소매업과 제조업 그리고 도시들의 현실을 보듯이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쇠락해져가는 교회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의 경각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최소한의 반응 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장년 세대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늘 경고하는 사람으로 목회자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락한 건물과 현재의 재정적인 상황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의 저자가 이미 닥쳐온 현실과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면, 교회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확실함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경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분명히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과 전혀 상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러한 귀한 책을 통해서 미래를 보여주시며, 그것을 미리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에 대한 중요성"입니다.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자본이 인간을 앞선 시대입니다. 세상은 무자비하게 흘러갑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IT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인간이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철저하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효용성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미래에 교회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효용성과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의 유일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어떤 기술을 가지고 공동체에 기여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돕고 구제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교회라는 공동체도 조직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더 헌신하고 남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헌신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교회는 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세상적인 효용성을 가지지 못해서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교회는 반드시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리더쉽의 결정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야만 합니다.

저는 앤드류 양이 제시하는 보편소득이라는 것을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보편소득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한정된 교회 예산 안에서 구제비의 비율을 확인하고 적어도 각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엔드류양이 보편소득을 위한 재원을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가가치세는 "제품이나 용역이 생산·유통되는 모든 단계에서 기업이 새로 만들어 내는 가치인 '부가가치'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위키백과)이기 때문에 제품을 많이 구입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내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부유한 사람일 수록 더 많이 내게 되는 것이 교회에도 존재하는데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만약 십일조의 중요한 사용 목적을 어려운 성도의 보편 소득에 집중한다면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운 성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중요해집니다. 극단적인 경쟁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장하는 경쟁이라는 컨텍스트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의 개인적인 성장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서 결론적으로는 적어도 그 경쟁 속에서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한다는 점에서 교회는 주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순히 일주일에 일곱번 예배 드리는 교회에서 넘어서서, 일주일에 일곱번 예배 드릴 때에 그 예배 가운데 적절한 교육 커리큘럼을 넣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 가장 강력한 모임인 예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수동적으로 듣는 예배에서 벗어나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가 장점인 예배 역시, 단순히 설교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 개인 큐티의 시간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 하는가 못하는가를 경험하는 시간이 아니라, 혼자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훈련시켜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 속에서 뛰어난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각 예배마다 제공하는 컨텐츠는 그 사람의 지적인 탁월함을 기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각 교회가 상황이 다르겠지만, 각 교회 상황에 맞추어서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방안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으로 누릴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항하며 넘어설 수 있는 탁월함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이나 북클럽과 같은 특화된 교육 혹은 엘리트 교육이 중요하겠지만, 훨씬 보편적이면서도 효과가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성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수준임을 기억해야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끊임 없이 지적으로 성장할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합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스터디 바이블의 적극적인 사용이 그 중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글이 어설퍼도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습니다. 커피 한잔 가볍게 마시면서 그냥 현재의 안락함 속에 파묻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니께서, 미래를 열어갈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1년 8월 25일 수요일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37 - 밸런스가 중요한 믹싱, 꼭 작은 볼륨으로, 기준을 잡고 시작 하세요

 


믹싱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 완전한 백지에서 출발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것 처럼, 믹싱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여러 악기 트랙들을 조율해서 최종적으로 스테레오 사운드의 음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솔직히 뭔가 만들어진 결과물을 들으면, 뭔가 들을 만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탄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인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

보통 믹싱을 배우기 위해서는 레슨을 받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 실력있는 분에게 제자로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주로 웹에 있는 자료들과 영상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웹상에 있는 조언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종 정말 탁월한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정확하게 어디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분이 믹싱에 대해서 조언할 때에 "꼭 작은 볼륨으로 믹싱하세요" 라고 말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정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스쳐 지나갔던 조언입니다. 그런데 이제보니, 믹싱에서 그것만큼 중요한 조언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동안 스스로 한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친 최종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분명히 헤드폰으로 그리고 스피커로 들었을 때에는 꽤 괜찮았는데, 이어폰이나 차에서 들으면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스트링이나 다른 악기들이 전혀 들리지 않고 목소리만 너무 크다든지, 혹은 드럼의 스네어가 너무 크다든지의 결과가 종종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꼭 작은 볼륨으로 믹싱하라"라는 조언이 생각이 나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헤드폰 단의 볼륨을 많이 낮추었습니다. "딱 평소에 음악을 듣는 음량 정도"에 놓고 전체 믹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그나마 괜찮은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결과물이 좋아진 원인은 뭘까?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귀는 너무 큰 볼륨에서는 제대로 밸런스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예를 들어서, 자신이 평소에 듣는 음악의 볼륨보다 훨씬 크게 들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좋게 들립니다. 보컬, 드럼, 기타, 킥, 베이스 등등이 모두가 풍성하고 드라마틱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밸런스를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크게 들을 때에는 정말 괜찮았는데, 막상 평소에 듣는 볼륨으로 들으면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전략을 바꾸어서 믹싱할 때에 볼륨을 확 줄여서 딱 평소 음량으로 들으면서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밸런스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에서는 스트링이 점점 커져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스네어가 좀 더 강하게 나와야하는데 작은 볼륨에서 드디어 그 차이가 잘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평소 음량으로 듣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 평소 듣는 곡의 LUFS가 다 다를 것이고 내 기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소 듣는 것 보다도 약간 더 작게 소리를 줄이면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듣고 믹싱하다가 다시 볼륨을 평소보다 조금 더 키우기도 합니다. 약간의 변동은 있겠지만 일단 보통의 볼륨을 기준으로 잡고 믹싱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작은 볼륨에서 믹싱한다고 믹싱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또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믹싱은 결국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데 밸런스라는 것은 기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수 많은 악기 중에서 무엇을 기준을 잡아야 할까요? 

물론 심플하게는 드럼 킥과 베이스를 기준으로 잡을 수 있고,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분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드럼 킥과 베이스도 음량과 밸런스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이지 않고 강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킥 드럼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지 않고 약간 작게 시작합니다. 드럼 버스 트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야 실제로 듣기에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정한 것은, 한 음악의 어느 타이밍에서든지 간에, 목소리에 밸런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대략적으로 목소리를 1이라는 수치로 계산한 다음에, 그것을 기준으로 믹싱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목소리 1 기준으로, 스트링은 처음에는 0.5 정도, 그리고 스트링을 후렴으로 가서 클라이맥스에서는 거의 0.9 정도입니다. 시험 삼아 스트링의 음량을 1.2 정도로 해 보았는데, 귀에 거슬리는 것으로 보아 이정도 밸런스가 좋은 듯 합니다. :)

결론적입니다. :) 믹싱은 밸런스가 중요한데, 목소리를 가장 기준점으로 잡는 것이 현재로서는 좋아보입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기준으로 해서 밸런스를 잡을 때에는, 평소에 음악을 듣는 작은 볼륨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잘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곡은, 이러한 밸런스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믹싱할 때에 그리고 심지어 마스터링 할 때에도 가급적 평소 볼륨 정도에 놓고 작업한 것입니다. 


들으시기에 어떠신가요? 정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 목소리가 전체적으로 0.5dB 정도 더 낮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기독교 방송 라디오 송출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라 찬양 가사가 잘 들려야 되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두었습니다. 

블로그를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목회가 전공이지 음향이 제 전공은 아닙니다. :) 그래서 정목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믹싱하는구나 정도로 이 글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홈레코딩에서 밸런스 문제로 고민하시고 계시다면, 제가 시도했던 방식으로 한번 해 보신다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얻으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0/blog-post_31.html

삶으로 드리는 찬양 & 금요찬양교실 (44) - 나의 가는 길 / God Will Make a Way

 


1. 가사 살펴보기

나의 가는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위해 일하시네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하시네
사랑과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인도해
사막에 만드신 보라
하늘과 변해도 주의 말씀 영원히
속에 일을 행하리

 

2.  소개

 곡은세계적인 워십 리더인 모엔(Don Moen) 곡이다 곡은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모엔의 가까운 가족이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그는 이후에 자신의 친척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는 중에 비행기에서 성경을 읽었다그리고 이사야 43 19절을 읽고서 곡의 영감을 얻게 되었다.

곡은자신의 속에서 환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곡으로 유명해졌다앞이 보이지 않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하나님께서 길을 내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담은 소중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이사야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43:18 "Forget the former things; do not dwell on the past. 43:19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43:19 See, I am doing a new thing! Now it springs up; do you not perceive it? I am making a way in the desert and streams in the wasteland.

원래의 출애굽은 하나님의 능력을 고갈시킨 것이 아니라새로운 출애굽 같은 구원의 패턴을 제공했습니다유대인 포로들은 과거 속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이 그들을 다른 출애굽을 통해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데려오실 것을 고대해야 합니다. 

광야에 길을 : 앞으로 가는 분명한 길이 없는 곳에서도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만드십니다사막에 강을 : 자연적인 위안이나 원기를 회복해 주는 것이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그런 것을 제공하십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19.

메시지를 들은 포로 생활을 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처럼길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행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그분을 찬양하도록 길을 만드실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참으로 이사야가 상상했던 것을 뛰어넘습니다그분의 이름은 바로 임마누엘이며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입니다.

Kelly M. Kapic, Isaiah,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918.

 

4. 찬양에 대한 묵상

곡은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여호와의 능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리고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절망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경이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야 말로여호와의 능력의 절정이라 말할 있다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땅에 친히 오셨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땅에 보내심으로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다시 말해서 이미 우리는사막에 새롭게 길과 같은 기적의 은혜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서 적용할 있는 것은현재의 우리의 상황이 혹시 절망스럽다 하더라도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질 있다는 것이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담대함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다여호와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여전히 붙들고 계시며 그분의 자녀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신실하신 여호와께서는 절대로 실패하거나 포기하시지 않는다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돌보시며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날까지우리를 친히 인도하시며 돌보시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내실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찬양은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이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우스운 모습" 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오늘도 노력합니다.

저는 아내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틈만 나면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주로 "삶의 목표와 우선 순위" 에 대한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우스운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사는거야" 아내가 저의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랍니다. 왜냐하면 저는 굉장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고, 그리고 제가 이룬 일들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우스운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니, 꽤 놀란듯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약점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또한 노력합니다. 

제가 지금 목회자로 그리고 성도로서 주력하고 있는 로고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꽤 많은 결과들을 끌어 냈습니다. 저의 목회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자료들을 거의 분류하고 분석하였고, 실질적으로 매주 사용하는 스터디 바이블에 대해서 제 관점에서는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도, 다른 사람에게 들릴 때에 어느 정도 좋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1년 전에 비하자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할 때에 정말 우스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로고스를 탁월하게 사용하지만, 로고스 유저들 사이에는 그저 평균보다 약간 나은 수준입니다. 레코딩 프로그램을 꽤 잘 다루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고,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과거에 만든 찬양 곡들을 다시 들을 때에 부족한 부분들이 정말 수십가지는 들립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저게 범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오류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이미 이룬 업적에 스스로 도취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가진 장점들만 부각시키면서 자아 도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이정도나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약점은 덮어 버리며 더 이상의 발전을 멈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오류는, 저의 우스운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들, 내가 가진 약점에만 포커스를 맞추면서 "그래 나는 겨우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장점을 전혀 인정하지도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나 라는 인간의 자기 발전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은, 두가지를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이미 이룬 귀한 것들은 그것을 이루게 하신 하나니께 감사하며 자신의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우스운 부분들, 약점들은 그것 또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면서 계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물론, 어떤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서 노력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비교 의식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감사로 인정하면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가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바른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느 정도의 삶을 더 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스은 모습"이 아닌 "조금 더 발전되고 성숙한 모습" 으로 계속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리고 아마도 주님께서 그분의 나라로 부르시는 바로 그 날까지도 우스은 모습이 가득한 부족한 사람일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좋은 것들은, 더욱 발전시켜서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끊임 없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길이며, 삶의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5) - 리디 셀렉트로 본 책을, 실제로 구입하면 어떻게 되나?

모든 사람의 자신의 삶에 큰 전환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책이라는 관점에서 저에게는 스무살에 북클럽을 시작한 것, 로고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북클럽으로 논문을 쓴 것, 그리고 리디 북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저의 인생에 큰 전환점입니다. 

리디 셀렉트는 정해진 풀 안에서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플랜입니다. 리디 셀렉트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아래 글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All You Can Eat
- 리디셀렉트 : 세상의 모든 책을 월정액으로 읽으세요

리디 셀렉트를 구독한 이후에 처음에는 열심히 읽다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네이버 밴드를 열고 하루에 한번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하루에 작은 분량이라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은, 제 인생에 가장 의미있는 도전이었고 가장 탁월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 "하루 한번 " 밴드 시리즈 (성경, 영어, 책)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책을 좀 더 열심히 읽다보니, 예전에 리디 셀렉트를 통해서 읽었던 책 중에서 꼭 다시 한번 읽고 리뷰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책이 "보통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책입니다.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려서 펼쳐진 미국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개인과 정부를 향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탁월한 책입니다. 

처음에 읽고 너무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던 책입니다. 너무 귀한 책인데 리디 셀렉트에 포함되어서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지금은 리디 셀렉트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다시 읽기 위해서는 구입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오늘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구입하기 전에 한가지 정말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과거에 리디 셀렉트 안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에 하이라이트 한 것, 그리고 메모로 남긴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습니다. 

리디 셀렉트를 통해서 책을 보면 사실상 거의 공짜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리디북스에서 제한 사항을 걸어 놓지 않았는가 염려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하이라이트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정말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겠다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구입하려고 카트에 담으니 "예전에 대여한 책입니다"라고 문구가 뜨더군요. 갑자기 희망으로 마음이 두근대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 제 계정 안에서 그 책을 보았던 정보가 저장이 되어 있었고, 만약 그렇다면 제가 기존에 기록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구입하고 바로 셀폰 어플에서 열어보았습니다. :)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사하게도 아래 그림처럼, 제가 과거에 리디 셀렉트를 통해 보았을 때에 기록했던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아,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 결론적으로 리디 셀렉트에서 보았던 모든 책에 대한 과거 자료는 그대로 서버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사용자가 리디 셀렉트에서 본 책을 실제로 리디 북스에서 구입할 경우에는 그 자료는 그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제 남은 것은, 책을 더 열정적으로 읽는 것이네요.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이사야 51장 9-16절 설교 with "죽음의 수용소에서"

 

설교자에게 설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설교를 준비하고 할수록, 설교는 설교자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이전에,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삶과 신앙을 고민하는 것이 설교이며, 그 모든 고민의 결과를 선포하며 함께 나누는 것이 또한 설교입니다. 

설교 한편 한편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원고들을 완성하는 과정이 참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그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을 더 하나님 앞에서 성찰하게 되고 성도의 삶의 의미를 발견해간다는 점에서 제 자신에게 저의 설교가 너무나 귀하게 느껴집니다. 설교야 말로, 목회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틀림 없습니다. 

최근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면서, 성경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성경적인 맥락과 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본질적으로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그 방향성은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과 거의 동일하다고 느꼈습니다.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는 아래 링크를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6.html

아래 설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영향을 받은 설교입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 중 한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과연 성도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맥락으로 준비된 설교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된 것 처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그런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어제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말씀 속에서는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속에서는 그 일을 속히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은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9절에서 11절 까지 말씀인데 하나님을 깨우는 기도라고 소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12절에서 13절까지 말씀인데 여호와를 다시 한번 기억하라라고 소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절에서 16절까지 말씀인데 만군의 여호와가 행하실 것이다라고 소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함께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9절에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51: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말씀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아마도 그 약속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선지자가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주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고 잠시라도 쉬면서 행동하지 않은 적도 없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 속에서 선지자의 간구는 주님께서 깨어나시고 주님께서 그분의 팔을 움직이시며 능력을 베풀어 달라고 그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적극적인 간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을 9절과 10절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9절 말씀에서 라합과 용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집트 제국과 파라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런 배경이나 이유 없이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구원하시며 이집트 군사들을 무찌르셨던 바로 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의 핵심이 10절에 홍해를 건넌 사건입니다. 10절의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바다의 깊은 물을 말리시고 길을 내셔서 그분의 백성을 걸어가게 하신 그 여호와께서 다시 한번 깨어나시기를 적극적으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그런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들이 반드시 시온으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부터는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12 이르시되너 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대답하실 때에나 곧 나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치 앞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을 때에 깨소서 깨소서라고 반복한 것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서 응답하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적극적으로 내가 내가라고 응답하십니다. 12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말씀하시면서 위로하는 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12절 하반절과 13절에서는 여호와 자신과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비교하시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면서 14절부터는 포로로 잡힌 그들이 반드시 풀릴 것과 그들을 풀어주실 여호와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십니다. 14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라고말씀하십니다

기적과 같은 말씀입니다. 남의 나라에 잡혀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희망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속히 놓이게 될 것이며 양식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보호하심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약속을 왜 믿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15절에 보니 그분은 바다를 휘저어서 파도를 일으키시는 분이신데 16절에 보니 바로 그분이 친히 그분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 넣었고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부르셨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적용은 삶의 의미를 찾았는가? 아니면 잃어버렸는가?”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의 말씀은 9절 말씀과 대조가 됩니다. 9절에서 이사야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면서 그분이 이미 행하신 일을 적극적으로 기억하면서 이미 그렇게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들을 도와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런 이사야의 간구를 들으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를 정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신은 알고 여호와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분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에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결과로 인하여서 필연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잊었기 때문에 그 당연한 결과로서 그들을 핍박하는 제국들이 그들의 눈에 너무나 거대해 보이고 그래서 그 결과로 인하여서 이스라엘의 마음에 두려움이 몰려들어온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문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압제자를 두려워하는 것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여호와가 누구이신가를 잊어버린 것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빅터 프랭클 박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입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데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수용소는 나치가 세운 강제 수용소 중에 가장 큰 수용소인데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해당한 곳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을 넘나드는 모든 끔찍한 경험들 속에서 결국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입니다. 책은 24개 언어로 번역이 되고 무려 1억 권이 팔린 책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직접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주변에 갇혀서 고통 받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 상태가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육체적으로 얼마나 약해지는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특히 사람들이 많이 죽는 기간이 성탄절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의 사망하는 원인은 가혹한 노동조건이나 식량 사정이 악화되거나 혹은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이번 성탄절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가지지만 정작 그 시간이 다가와도 희망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을 때에 용기를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그리고 결국에는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그 중에 많은 이들이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 이 책의 깊이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결국 빅터 플랭클 박사는 심리학적인 치료와 회복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자신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를 가질 때에 일어난다 라는 것을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기억하라 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오늘의 말씀은 능력의 여호와를 기억하여 그분의 일하신 것들을 충분히 기억하여 그분이 여전히 현재에서 일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적극적으로 그분을 찾으면서 그분을 통하여서 현실의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억하라에서 시작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하나님 안에서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오늘의 핵심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목적도 찾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은 우연히 태어났으며 자신은 그저 운명의 장난에 맡겨졌으며 어쩔 땐 좋은 일 어쩔 땐 나쁜 일 속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오늘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국제적인 정세의 압박 속에서 두려워하며 떨고 괴로워할 때에 그리고 나중에 바벨론의 포로 된 자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타국에 끌려가서 가장 크게 절망하고 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기억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친히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여 현재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고 그분 안에서 현재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고난과 두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는 지를 말씀을 통해 기억하기를 원삽니다. 로마서 324절에 말씀하십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81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여기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며 하나님의 전적이며 주권적인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 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도 극복하는 자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아마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서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도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 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나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것 자체에 우리의 의미와 희망을 둔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세상적인 성공을 늘 누리지는 못하고 언제나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성공과 잘나가는 것 그 자체에 우리의 삶의 의미를 둔다면 우리가 몸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성공과 잘되는 것에 얽매여서 혹시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실패하거나 나에게 고난이 찾아오면 완전히 나의 내면이 무너져 버리고 삶의 의미와 희망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우리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두라고 말씀하시며 그 하나님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고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9절 말씀에서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라고 간절히 찾는 것은 헛된 거짓 신을 부르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살아계시며 지금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그를 통하여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이 구원 받는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맹세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약속하신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역사 가운데 기꺼이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61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영원한 중보자가 되셔서 비록 답답하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의 의미와 미래의 소망은 흔들릴 수 없이 확고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속에서도 실패 속에서나 자신의 좌절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심지어 죽음조차 넘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삶의 진정한 희망과 의미를 둔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오직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과 힘께 동행하며 적극적으로 그분의 도움을 구하며 오직 그분 안에서 믿음의 길을 힘써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주와 지구와 세상을 친히 만드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기 원합니다. 누가 뭐래도 여전히 나는 사랑 받는 사람이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상속 받은 사람이고 죽음조차도 이겨낼 사람임을 기억하고 살아가도록 오늘도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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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9일 목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43) - 왜 슬퍼하느냐

 



1. 가사 살펴보기

슬퍼하느냐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어려움에도 아픔 있어도
이젠 아무 걱정하지마 내가 붙들어 주리 

내가 너와 항상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실망치 말고 나를 보아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2.  소개

 곡은한국의 대표적인 CCM 남성 듀오 소리엘 2집에 수록된 곡이다 곡은두려움과 아픔으로 크게 낙심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하나님께서 직접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곡이다하나님께서 항상 성도와 함께 하며 그들을 지키시고 계심을 강조하면서너는 나를 바라보라 라고 성도들을 위로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1 For the director of music. A maskil of the Sons of Korah.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도다 42:3 My tears have been my food day and night, while men say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42:5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개역개정42:5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NIV)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행을 떠나셨고 언제 오실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편 기자가 하는 두번째 일은진리를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조언하는 것입니다그는 그렇게 낙심하고 혼란스러워 하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그리고 그러한 어둠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오셨을 때를 기억하세요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래야 어려운 시기에 좋았던 시기를 기억하며 인내할 있습니다그리고 거기에 더하여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기억하세요그분은 신실하시며 그분에게 소망을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없다고 해서그분께서 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30.

시편 기자는위로와 안도감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그의 낙심에 초점을 맞춘 질문에 답을 하면서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라고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시편 기자가 말하고 있는 요점은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자시라면 그가 낙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명령을 여러 반복했다는 사실은 진리를 내면화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56.

 

4. 찬양에 대한 묵상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사람은 누구나 연약하기 때문에얼마든지 낙심하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하나님의 자녀인 성도 역시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괴로워할 있다그러나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러한 절망이 결코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찬양은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는 고통의 상황 속에서말씀이 요구하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자신을 향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소망을 것을 명령해야 한다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우리의 절망하는 느낌과 우울함에 빠져 들어가는 일반적인 본성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통해서하나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묵상해야 한다그리고 두려움과 낙심에 잠식당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여전히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계신다 라는 진리를 붙들고 그분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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