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0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88) - 그리스도의 계절 / 민족의 가슴마다

 

1. 가사 살펴보기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의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하소서 오게하소서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하옵소서
모든사람의 마음과 교회와 가정에도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여주소서 

주의 청년들의 예수의 꿈을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게 하소서
한손엔 복음들고
한손엔 사랑을 들고
온땅 구석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이 땅 구석구석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소서
하늘의 뜻 이 땅에 이뤄주소서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 


2. 곡 소개

이 곡의 원곡은, 2001년에 발매된 CCM 가수 지영 1집에 수록이 되었다. 저자가 C.C.C.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고, 수련회 책자 뒤에 적혀 있는 “민족 복음화의 꿈”이라는 말을 통해 영감을 얻고 이 곡을 만들게 되었다.   

이 곡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피의 복음의 전파”라는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가 머무르는 모든 곳으로 전파되어야 하며,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까지, 그리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충만히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결단하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 CCM 가수 지영 “‘그리스도의 계절’ 나오게 된 이유는…”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1072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5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2:6 who gave himself as a ransom for all men--the testimony given in its proper time.

2:5 For. Indicates that vv. 5–6 will explain v. 4. one God. God’s uniqueness is an axiom of the OT and early Christian belief (Deut 6:4; Gal 3:20). The Roman world was awash in gods and religions, just as today most deny that the God and Christ found in Scripture are the only means to be saved. But in fact “there is one God” and only “one mediator.” one mediator. Jesus “mediates,” or serves as the bridge, between the invisible God and people who seek God (John 1:18; 1 Pet 3:18). Most people prefer to deal with (their natural notions of) God directly rather than humbly access him through Christ Jesus alone.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 하나님의 유일성은 구약과 초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과 그리스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부인하는 것 처럼, 로마 세계는 신과 종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은 한 분 이시며” 오직 “한 중보자” 만이 계십니다. 중보자도 한 분 이시니 :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겸손하게 하나님께 다가가기보다는, 하나님을 직접 해결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2:6 ransom. Jesus paid the necessary price to set people free. all people. God does not play favorites (Rom 2:11); he welcomes all nationalities, social classes, and personality types. This means not that everyone will be saved but that Christ has done what is needed for all people who call on him to receive the new life he promised. witnessed to. People proclaimed Jesus’ saving work in the apostolic era (Gal 4:4–5). Even apart from human preaching, Christ’s self-giving testifies to God’s goodness (vv. 3–4). 대속물 : 예수님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 필요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편애하시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국적, 사회 계층 및 성격을 환영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새 생명을 받기 위해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거니라 : 사람들은 사도 시대에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선포했습니다. 인간의 설교와는 별도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주심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0.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5 God presented Christ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the shedding of his blood—to be received by faith.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3:25 whom God put forward as a propitiation. Christ died as a propitiatory sacrifice that satisfies the divine judgment against sinners and assuages the Father’s wrath against them, bringing about forgiveness and justification.  하나님이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그리스도는 화목 제물로 죽으심으로 죄 사함과 칭의를 가져오셨는데, 그것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만족시키시며, 그들을 향한 아버지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입니다.

Martin Luther recognized that the Gk. word here translated as “propitiation” (hilastērion) is also used in the Septuagint in Ex. 25:22, where it is translated into English as “the mercy seat.” In speaking to His people, God said of the mercy seat, “There I will meet with you.” Rom. 3:25 showed Luther that Christ is our mercy seat. God meets us at the cross. 마틴 루터는 여기서 “화목제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출25:22의 70인 역에서도 사용된 것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영어로는 “속죄소”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실때에, 하나님은 속죄에 대하여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25는 루터에게, 그리스도가 곧 우리의 속죄소이심을 보여주었던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by faith. The emphasis of v. 22 is repeated and thereby underscored. “By” indicates the means of our being linked to the righteousness of Christ. Faith is the instrument, not the ground or basis, of justification. The ground is Christ’s perfectly obedient life and propitiating death. 믿음으로 : 믿음은 칭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며, 칭의의 근거나 기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칭의의 유일한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삶과 화목제물로서의 죽으심에 있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984.

에베소서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1:20 which he exerted in Christ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realms,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1:21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title that can be given, not only in the present age but also in the one to come.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1:22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1:22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Paul quotes Ps 8:6, which itself recalls Gen 1:26–28. Both Paul and Heb 2:6–9 apply this psalm to Christ; Christ is the last Adam, who restores dominion over creation. head. Greek kephalē, generally implies authority. Christ is the preeminent and authoritative ruler over all things. See note on 4:16.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 바울은 창세기 1장 26-28절을 회상하는 시편 8장 6절을 인용합니다. 바울과 히브리서 2장 6-9절 모두 이 시편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그리스도는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신 마지막 아담이십니다. 머리 : 그리스어 케팔레는 일반적으로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뛰어나고 권위 있는 통치자이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18.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1:3 After his suffering, he showed himself to these men and gave many convincing proofs that he was alive. He appeared to them over a period of forty days and spoke about the kingdom of God.

1:3 The disciples didn’t have a corporate delusion. Nor did they see a ghost. Jesus showed them by many convincing proofs that he was the same flesh-and-blood man they’d seen crucified and buried—though he’d since gained a glorified body (see Luke 24:36–43). 제자들이 집단적인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귀신을 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그가 영광스러운 몸을 얻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장사 지낸 바 된 동일한 분이심을 여러 설득력 있는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What did Jesus talk to his disciples about for forty days between his resurrection and his ascension? The kingdom of God. God’s kingdom agenda is the unifying theme of Scripture. We may define it as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the comprehensive rule of God in every area of life. Thus, the church exists to serve King Jesus and his kingdom. 예수님꼐서는 부활과 승천 사이의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왕국 : 하나님의 왕국은 성경의 통일된 주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포괄적인 통치의 가시적인 나타남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270.

마태복음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개역개정) 6:10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NIV)

6:10 Jesus calls his disciples to make a pledge of allegiance to the kingdom of God—to God’s rule over his creation. When Olympic athletes are awarded gold medals, they don’t get to choose the song they hear at the award ceremony. The song played is the national anthem of their country. Similarly, you are called to march to God’s tune.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 즉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라고 부르십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시상식에서 들을 노래를 고를 수 없습니다. 연주되는 노래는 그들 자신의 나라의 국가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하나님의 선율에 맞추어서 행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God’s will is what God wants—when, where, and how he wants it. Those who are part of God’s family are to follow God’s rules. He’s sovereign, and he’ll accomplish his purposes with you or without you. The question is, will you get to take part in it?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분이 원하시는 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과 함께 혹은 당신이 없더라도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과연 거기에 참여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102.


4. 찬양에 대한 묵상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유일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처절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죄인이 용서를 얻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죄인을 만나주시며,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며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

첫 사람 아담은 범죄함으로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잃어버렸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그분만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그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이다. 그분은 단순한 속죄 제물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완전한 왕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에 기간 동안, 그리고 승천하시기 바로 전까지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선포하셨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 살아간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역사하시고 그분의 다스림을 삶의 모든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의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는 것이고, 새로운 삶이 열리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다시 한번 묵상하며 감사해야 한다. 내 마음에 소원이 바로 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되기를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와 내가 속한 모든 곳에 더욱 충만하게 온전히 임하기를 마땅히 간구해야 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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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87)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1. 가사 살펴보기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나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2006년 남미 워십 찬양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다. 이 곡은, 자신의 마음의 악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주님께서 그분의 마음과 사랑과 성령을 성도의 영혼 가운데 충만하게 부으시기를 간구하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35 Jesus went through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9: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9:36 The words as sheep having no shepherd recall Ezek. 34. They imply that Israel’s spiritual condition reflected the failures of its spiritual leaders. By showing compassion for the abused and neglected, Jesus identified Himself as the Shepherd of God’s people, Lord and Servant of David (Ezek. 34:11–16, 20–24). See also Matt. 25:32; 26:31. 목자 없는 양 같이 라는 말씀은 에스겔 34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영적 지도자들의 실패를 반영한다고 암시합니다. 학대 받고 소외된 자들을 측은히 여기심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이시며 다윗의 주이시며 종임을 밝히셨습니다.

Holman Bible Staff, KJV Study Bible (WORDsearch, 2012), 마 9:36.

마태복음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16:21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explain to his disciples that he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many things at the hands of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that he must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to life.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2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Never, Lord!" he said. "This shall never happen to you!"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16:23 Jesus turned and said to Peter, "Get behind me, Satan! You are a stumbling block to me; you do not have in mind the things of God, but the things of men."

16:23 savourest. Thinks, grasps. Peter failed to grasp the implications of what he had so admirably confessed several verses before, being to some degree still influenced by the mindset of fallen men instead of the truth of God, and therefore still influenced by Satan. 생각하지 아니하고 : 이것은 생각하고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그가 몇 구절 전에 (마태복음 16:16) 그토록 훌륭하게 고백한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 대신에 타락한 인간의 사고 방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고, 그리하여 여전히 사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85.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6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7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2:5 Let this mind be in you. Paul points to Christ as the greatest example of selflessness. Verse 5 introduces a beautiful and rich Christological hymn, showing that deep theology is deeply practical. Believers are to have the same mind, or attitude, as Christ in dealing with others. This verse reminds us that the exhortations in vv. 1–4 can be summarized by the phrase “be like Christ.”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바울은 그리스도를 이타심의 가장 위대한 본으로써 제시합니다. 5절은 깊은 신학은 바로 심오한 실천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풍성한 기독론적인 찬송을 소개합니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 혹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 말씀은, 1-4절의 권면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라”라는 구절로 요약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19.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5:5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5:5 The hope that believers have of their future glory with God will not disappoint them by being unfulfilled. They will not be put to shame or humiliated because of their hope. The reason the believer can be so confident is that 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The moment a person trusts in Christ, that person receives the Holy Spirit (see 8:9), who constantly encourages them in their hope in God. 장래에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으리라는 성도의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소망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 안에서 그들을 끊임없이 격려하시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롬 5:5.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0:22 let us draw near to God with a sincer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having our hearts sprinkled to cleanse us from a guilty conscience and having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

sincere heart. The Gr. term behind “sincere” carries the ideas of being true, genuine, and without ulterior motive (cf. Jer 24:7; Mt 15:8). This one thing these particular Hebrews lacked: genuine commitment to Christ. 참 마음 : 헬라어의 용어의 의미는, 참되고, 진실하고 그리고 숨은 동기가 없다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에게 부족한 한가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헌신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히 10:2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인간은 죄로 인하여 본성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영적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성도는 더 이상 나의 죄악 된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 주시는 그분의 마음을 풍성히 받고,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순간에, 나의 마음에 내키는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의 선택 속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하신 그 이타적인 마음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을 감추고 위선적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악함을 고백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마음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자체가 놀라운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마다, 주님의 마음을 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이며,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풍성히 가질 때에,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답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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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일 토요일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됩니다 / 히브리서 1장 1-14절 설교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아들아 성경 읽어라" 라고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물론, 철이 없는 저는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 저에게 성경은 한주 동안 교회 가방에 그대로 넣어 놓았다가, 주일에 다시 들고 가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자발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성경이 히브리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 그분의 아름다우심이 너무나 멋지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오하면서 신비로웠습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믿음이 확고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잘 믿는 것" 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그 안에 수 많은 주제들과 각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붙들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입니다. 

설교 자체가 너무 쉬울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과 표현들로 설교를 구성했습니다. 새벽이라 시간이 한정이 되어 있지만,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과 왕 되심에 적용적인 강조점을 두고 마무리 하였습니다. 제 자신부터 "예수님 잘 믿는" 성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히브리서 1장 1-14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히브리서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들이 그들의 믿음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바라며 그들을 격려하기를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열어가는 히브리서 1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가 바로 그 부분이 강조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할 때에 남자에게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남자가 더 단순하여서 여자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통 여자분들이 이렇게 잘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꼭 내 마음을 말로 해야 아는거야?” 라고 말한다면 정말 남자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사랑이 깊어지면 어느 정도 알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그 마음을 다 알 수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과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감히 인간이 어떻게 그분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여호와라는 분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하시는 형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한데 확연하게 두 시대로 나누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절 상반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옛적에라는 것은 구약 시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양이라는 것은, 꿈과 환상들과, 기적과 천사의 계시와, 선지자의 말과 사건들과 혹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시대마다 선지자를 세우셔서 그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옛적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지만 2절에 보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모든 날 마지막이라는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부터 마지막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마지막 날에는 이제는 여러 부분과 모양이 아니라, 단 한 분에게 모든 말씀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은 이제 시대가 지나간 것이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이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아들이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선지자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이 중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분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는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라는 분이 누구이시길래?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환상이나 선지자나 아니면 천사들이 훨씬 대단해 보이는데 도대체 예수라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1세기의 유대인들은 천사들에게 매료되어서 천사들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히브리서의 저자는 천사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특히 3절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고 압축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3절 처음에 보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광채라는 것은 아주 강렬하게 밝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아들을 통해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형상이라는 것도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 어떤 인간도 감히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지만, 오직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가지신 그의 본성을 동등하게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고 모든 가장 작은 단위의 물질들까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심으로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서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실 때에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와 본질상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가장 완전한 대 제사장으로서 그분을 믿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분의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앉으셨고, 계속해서 성도를 위하여 중보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가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다른 어떤 존재들과 비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지 말고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맥락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 이 편지를 받는 독자들에게, 예수님과 다른 어떤 존재들을 철저하게 비교하면서, 얼마나 예수님이 탁월한 분이신가를 보여주면서, 감히 그 어떤 존재도 그분과 비교할 수 없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에 보니 “1: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편 2편 7절을 인용해서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들을 귀한 존재임이 틀림 없으나 그러나 그러한 천사들조차 감히 예수님과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원 속에서 이미 존재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위치는 가장 특별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절에 보니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천사들은 그저 그분을 경배할 수 있을 뿐이고 7절에 보니 천사들은 예수님의 종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시편 45편 6절과 7절을 인용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이 시편의 원래 문맥은 다윗의 보좌를 높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다윗의 나라를 통하여 그림자처럼 보여지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천사들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히브리서 1장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10절부터 이렇게 말씀하시지 “1: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102편 25절에서 27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장 10절과 11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창조주이시자 창조의 질서를 끝을 내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능력을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들어진 것과 그것을 만든 존재 중에 어느 것이 더 위대하고 더 영원한 것인가? 이것은 물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1절에서 1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이 만드신 이 모든 것은 다 낡아질 것이지만 오직 그리스도는 영원한 분이시며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면서,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그분의 탁월함을 재차 강조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를 그분의 발등상 혹은 발판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승리한 왕이, 이제는 내가 완전히 승리했다는 상징적인 표시로 적의 목이나 등을 발로 밟은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수에 대항하여 완전한 승리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모든 천사들은 그저 섬기는 영인데 그리스도를 섬기며 또 구원 받은 사람들을 섬기는 섬기는 영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이 가슴 뛰는 말씀 안에서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오래전에 이단에 빠진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불쾌하고 또 분노했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히 인간을 예수님의 자리에 자꾸 앉히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특별히 오늘 히브리서 1장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얼마나 탁월하고 고귀하고 완전한 분이신가? 그분이야 말로 온전한 이 땅의 주인시며 구원자이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오직 그분 안에서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이 이렇게 히브리서에 탁월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인간 교주를 붙들고 마치 그 사람이 구원자인것처럼 거기에 집착하고 매달리는가를 있는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마귀에게 미혹된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자격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그 사람이 그 역할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먼저 히브리서 1장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사장으로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어떻게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 왜 오직 그분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상속자이시며, 그분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시며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그것을 온전히 지탱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동일하게 가지신 그분의 유일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 말로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의 맥락을 살려 본다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라는 말씀 속에서 "죄를 용서하신다" 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강조점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의지할 때에 우리가 확실한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1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대단해서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너무나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며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가장 탁월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평안을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 더 우리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자이시며 또한 동시에 우리의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오늘 말씀이 에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설명할 때에, 그분은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세상을 지탱하시며 또한 세상의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심판자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무 맥락도 없이 뜬금 없이 그저 막연하게 2천년 전에 그분이 오셨다 라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전부터 아버지와 계셨고 그분은 말씀으로 존재하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자신의 기업으로 상속 받는 분이시고, 자신의 백성을 자신의 것으로 되찾는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왕이 자신의 백성을 되찾는 것입니다. 위대한 왕이 오히려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자신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시고, 이제는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살게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왕되신 그분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완전한 사랑의 통치에 우리를 굴복시키며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9 우리가 사랑함은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자로 그분의 사랑을 이미 넘치게 받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그분과 영적인 연합 속에서 힘을 공급 받으며,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우리 역시 넘치게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초점을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맞추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생자를 보내시고 주님의 능력의 구원을 이루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토록 확실하게 이루시며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 마다 가장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붙들게 하시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괴로움이 아니라 확고하게 주어진 천국에 대한 확신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넘치게 받게 하시고 구원 받은 자녀로 주님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땅히 오늘 하루를 왕 되신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 최선을 다하는 하루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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