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8일 수요일

상처가 욱신거려서 아플 때, 그래서 더 아플 때

 

목회자로 철이들고 나서, 두번 정도 크게 힘들었습니다. 소위 말해서 상처입니다. 관계 속에서 너무 힘들었고, 세상에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깊이를 잴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마음의 그 깊은 심연 속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처를 보았습니다.

상처가 도졌습니다. 분노가 제 마음을 휩싸고, 이성은 힘을 잃고 무너졌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까? 제 내면을 살펴보니,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물 속에 빠져서 고통 당했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절망, 아픔, 외로움, 슬픔이 저를 덮쳐 온다고 느꼈습니다. 잊혀졌던 과거가 마치 흉악한 손으로 저를 억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칼빈에서 공부하던 중에 허리를 다쳤습니다. 지나치게 공부해서 무리가 되었습니다. 일주일을 꼬박 누워있으면서 이제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려움을 겪고 나니, 허리가 아픈 분들의 이야기가 모두 저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저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까요?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아직 그 은혜의 방식이 저의 심연에 닿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보폭 하나 만큼은 더 다가갔음을 보게 됩니다. 

친절은, 하늘과 닿아 있는 것입니다. 배려는,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성품입니다. 인내는, 주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저의 삶이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때는 추웠지만, 지금은 따뜻하다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수십번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설교자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그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인생의 배움은, 그 길을 실제로 경험해 보아야만 한다라는 그분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경험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긴 여행을 했습니다. 아들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원인을 찾기 위해서, 또 치료하기 위해서 긴 여행을 했습니다. 그 시간은 정말 추웠습니다. 시카고의 추위 속에서 다녀야 했던 병원이, 그리고 또 가족을 보듬고 가야했던 그 시간이 참 추웠습니다. 

어제의 시간은 따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이,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따뜻하던 그 날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햇빛은 빛나고, 아이들은 뛰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아이의 병원을 가기 전에, 아프신 분을 찾아뵈었습니다. 단 둘이 하는 기도, 남자의 눈물, 성령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오랫동안 힘을 발휘하기를 원했습니다. 삶은 참으로 힘들지만,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잠시 따뜻한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의 삶은 여전히 순탄치 않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고, 또 앞으로의 한걸음을 이끄실 것입니다.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그 질문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평생을 '질문'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북클럽을 경험한 청년시절의 그 첫날부터, 그리고 목회자로서 수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에게 있어서 질문은 저의 정체성의 근간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질문의 정의는 '순수함' 입니다. 그리고 '배려' 입니다. 누군가를 회복시키는 질문은, 그 사람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혹시라도 어떤 필요가 있는지 살피는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아름다운 질문은 상대방의 안위를 내 마음에 둔 순수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질문의 본질이 얼마든지 변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천사가 타락하여 악마가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슬프고 아팠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부터 내가 이득을 얻기 위해 유도하는 질문, 내가 더 멋지게 드러나고 싶어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질문, 남의 처지에 일말의 관심은 없지만 그저 으례 던지는 질문, 혹은 상대방을 염탐하기 위해서 계산적으로 던지는 질문, 그것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 질문은 겉으로는 상대방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궁극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악행에 불과합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들의 질문과 어떤 분들의 질문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른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나는 혹시라도, 그렇게도 잔인하고 이기적으로 나 자신을 위하여 질문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제가 목회하는 모든 순간에, 저의 질문이 순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의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한 교묘한 질문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게 상대방을 위한 질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대화하는 모든 분들이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경험하고, 따뜻한 행복으로 가득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저의 질문을 사용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 2

 

누군가와 함께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론 화가 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의 어머니도 또 장모님도, 평생을 교회의 부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수 많은 시간을 나의 가족 뿐 아니라 영적인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서 힘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권사님들께서 음식을 해주시면 그렇게 마음이 죄송스럽습니다. 손수 음식을 하시고 식사하자고 부르시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식사라도 더 한번 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분들의 노고는 다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로만 하는 목회는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는, 그 사람의 삶 속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픈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고 그와 발걸음을 맞추는 것입니다. 목회는, 남이 하는 것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정황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불러주시는 곳에서는 저 역시 최선을 다합니다. 저의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일부러 쾌활하게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나의 성향을 뛰어 넘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고, 한번 더 웃음으로 용기를 주는 것이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분들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평신도이지만 진실하고 아름답게 사역하는 분들입니다.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의 아마도 팔할은 우리가 보지도 못하는 영역 속에 존재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이익을 위하여 교회를 섬기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내가 얻는 것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베푸는 분들을 보면, 겉과 속이 같아서 그렇게 투명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울컥합니다. 그분들이야 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목회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맡은 사명에 집중하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 다 아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을 최선을 다해서 격려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이름을 제 기도 노트에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에게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낙심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 목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을 더 해 주시기 원합니다. 이것이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귀한 분들을 위한 진실한 기도입니다.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 1

 

따뜻함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세상은 점점 식어가지만, 그럴 수록 따뜻한 분들의 그 온기가 더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 분들 옆에 잠시라도 머물수 있다면, 그 잠깐의 대화가 지친 삶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주일에 사역하는 분주한 중에 권사님 한분이 잠깐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목사님, 꿈에 목사님이 나왔어요. 그런데 성도님 차가 많이 망가졌는데 그걸 다 일일이 고치고 계시더라구요. 제가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 아닌데 목사님이 참 이런 일도 다 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목사님 안보이는데서 열심히 섬기시는구나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실꺼에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사실 약간 마음에 떨림도 있었습니다. 한번도 보시지 않은 저의 사역을 너무나 확신있게 말씀하시는 나이든 권사님이 참 귀여우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권사님의 따뜻한 한 마디가 참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몇 주가 참 분주했습니다. 성도님들 돌아보면서 연락하면서 심방하면서 저의 한계까지 제 자신을 밀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사님에게 제가 이런 저런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웃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권사님, 권사님 꿈에 제가 다 나오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주일의 사역이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 평소에 잘 알고 있는 명제라고 생각했는데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 성도님이 교회로 나오기 위해서 수십번의 연락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워지기 위해서 긴 시간의 경청과 조심스러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조금 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속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절대로 저의 수고를 누군가 온전히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서 양심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목회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더 성도님들을 살피고 돌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사역의 기대치는 무한대로 뻗어나갑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성도님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 뿐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때를 기다립니다.

The Precious Death of the Saint / 시편 116편 15절 하관 예배 영어 설교

 


From now on, we will offer the burial service of the late Elder Rim in front of God. Today's scripture is taken from the book of Psalm chapter 116 verse 15 You have the bible verses in your Pamphlet I will read for you "15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s."

In this time, I want to preach as the title "the precious death of the saint" Few month ago, my family went to the filed museum of the downtown. I have two sons. One is eleven and the other is seven. They love the museum so there was no chance to go to other place. 

In that time, I found that there is a kind of the special room in the museum. The room's name is the hall of Gems. It was first time to enter and to see inside of that room. Amazingly, according to it's name, It was filled with a lot of jewels. Actually, I don't know anything about the jewels. But, I was overwhelmed with fascinating lights from the jewels. Even, I could feel my bigger heartbeat with some excitement.

As you see, we can see the picture of jewel in our pamphlet. Actually, preparing the pamphlet, when I see the big blank, the idea hit me that I should put the picture of Elder Rim and his wife. When I got the picture from Yumi, and I overwhelmed again like I am in the Jewel room few month ago. I saw some lights from the picture I got. I thought that Elder Rim and Mrs Rim is like the actors of the great movie.

When I met Elder Rim for the first time, He was on the process to fight to the cancer. His back was bent. He could not hear clearly because his ability of hearing was so weak. I could not find anything that he had fully when he was young. But, When I participated in the small group of the hebron church, I was honored to listen the prayer of Elder Rim. 

I really surprised and actually overwhelmed because his prayer was so sincere, pure, strong, and persuasive. His voice of the prayer was so unique and beautiful and like the voice of the angel. And even he blessed me with God's blessings. In that time, I saw a kind of eternal things. Of course, he lost almost everything about the external beauty. But, in that time, I saw his beauty of his inside with spiritual eyes.

I can not forget that experience. Maybe, I could remember for a long time even in my lifetime. I just want to ask you about the why. Why elder Rim could have the beauty of his soul even in the time when his body has been collapsed? 

God's word answers for that question. The answer is the elder Rim's identity. In 2 Corinthians 5:17 says like this. "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 In Galatians 3:27 says like this.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What is the most important word of these two verses? That is Jesus Christ. In Jesus Christ, the saint is new creation. In Jesus Christ, the saint got the rightousness of God. Jesus christ died on the cross to save the sinner including Elder Rim. 

But when we believe in Jesus Christ and his saving works, we could be the new creation and his childen. That is the great mystery and grace of God. In this context, although we lost everything that make us beautiful but because we are in Jesus Christ, We are precious God's children and God the father loves us unconditionally.

As you know, Elder Rim was the man of Faith and the man of prayer. He's faith and love for Jesus Christ was the Rock. He has been confessed his love for Jesus Christ during his lifetime. So, now, we have conviction that He is in the heaven and he is in the arms of the Lord. 

So, in this worship, I want to ask you to see clearly Elder Rim' faith. And I want to ask you to hold firmly his love for Jesus Christ. Someday, we will see and hug and talk with Elder Rim in the heaven. To prepare that time, I hope that every one in this worship could live according the faith of Jesus Christ. Let's pray

Now, we will end the service with a benediction.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this precious family Amen.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71) - 검으나 아름답다

 


1. 가사 살펴보기

너의 모습 그대로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의 마음 그대로 너의 마음 그대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너는 멀리 왔다 하지만 널 따라 나도 왔단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널 위해 날 주었단다
그런 너는 나의 눈에 검으나 아름답다

 

2. 곡 소개

곡은, 김도현의 4검으나 아름답다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던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녀는 비록 외모적으로는 부족하였지만, 왕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자로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솔로몬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그려낸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아가서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1:5 Dark am I, yet lovely, O daughters of Jerusalem, dark like the tents of Kedar, like the tent curtains of Solomon.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1:6 Do not stare at me because I am dark, because I am darkened by the sun. My mother's sons were angry with me and made me take care of the vineyards; my own vineyard I have neglected.

검으나 아름답다 :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밝은 피부가 아름다움의 지표였습니다. 노동 계급의 가정 속한 여성들은 밖에서 밭에서 일한 이후에 햇빛 때문에 피부가 검어 졌습니다. 어두운 피부는 종종 낮은 사회 계층을 나타냈기 때문에 밝은 피부가 더 바람직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So 1:5.

술람이 여인은 비천한 출생입니다. 피부 때문에 아마도 무시 당했을 것이지만, 남편인 왕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 역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녀의 죄는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하게 보였겠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왕이신 그분은 그녀를 그분의 은혜의 영광 가운데 거룩하고 용서 받았으며 아름답고 빛난다고 부르십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068.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1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하나님의 종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베푸심은 값을 매길 수 없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264.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9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how much more shall we be saved from God's wrath through him!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높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반역하고 비열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 약속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Bruce Barton, Philip Comfort,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97.

요한1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개역개정) 1:9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NIV)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용서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용서하실 때에, 그는 그의 약속에 신실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기 때문에, 그분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도 그분은 의로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용서하실 때에, 그분은 더 이상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불리하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5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의 제목인 검으나 아름답다가 이 찬양의 핵심을 드러낸다. 술람미 여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어디든지 그녀와 함께 함으로 솔로몬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 안에서 여인은 깊은 행복을 맛 보았다.

마치 동화와 같은 이 사랑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조건에 따라서 우리를 대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내가 가진 그 어떤 조건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 인하여 사랑하신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역사 가운데 흔들림 없이 가장 확고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완전히 의롭게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심을 기억하시고, 항상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다시 돌이키며 그분과 동행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 마가복음 5장 35-43절 설교

 

예수님께서 어느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데 유대인의 회당을 책임지는 야이로 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그는 예수님께 아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5 23절 말씀입니다.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라고 예수님 앞에서 간곡하게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바로 그의 집으로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병으로 아팠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진것을 다 써서 의사들을 만났지만 도대체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내가 손만 대도 병이 나을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몰래 손을 대자 놀랍게도 여인의 몸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무리 중에서 굳이 찾으시고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마음이 바짝바짝 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왜 그런가? 시간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빨리 본인의 집으로 가셔야 하는데 빨리 가서 치료해 주셔야 되는데 자꾸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 왔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35절 말씀 하반절입니다.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라고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왜 그런가? 사랑하는 딸이 결국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딸을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마치 그런 야이로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회당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분이 온다고 해서 바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 하셨을까요? “야이로야 미안하다, 내가 좀더 빨리 갔어야 되는데 벌써 너의 딸이 죽었다니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이제 너의 집으로 가도 소용없으니 다시 돌아가겠다”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불신의 말을 무시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의 소식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영혼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절망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죽음이라는 그 절대적인 운명 앞에서는 그 어떤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잠식당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고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도착해 보니 딸의 죽음으로 인해 난리가 났습니다. 그 온 집안에 곡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9절 말씀입니다.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절 처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비웃더라”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 야이로가 처한 이 모든 상황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야이로의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사실상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수 많은 기적들을 일으킨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 그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향해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의 분위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셔서 소녀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비웃은 것입니다.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야이로의 볼이 부끄러움을 붉어졌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방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떠올렸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모든 두려움과 비웃음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야이로는 그 자리에서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40절 말씀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비웃는 자들을 다 내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비웃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데려가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아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릎을 꿇고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녀의 시신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니까 죽었던 소녀가 그 자리에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랐다” 왜 그런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설마 죽었던 아이가 살아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은 사람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죽음 조차 다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능의 말씀 단 한마디로 죽은 딸을 살리심으로 자신은 살아계신 여호와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심을 친히 증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조차 이기시는 분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심을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고 또 한쪽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웃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죽음 이후에 생명이 있는가? 어떻게 죽은 이를 잔다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러나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삶의 모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앞두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이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인가? 왜 굳이 손해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그래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러는 것인가? 정말 우리가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비웃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좀 대충 순종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면서 우리의 믿음도 연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 6절에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이 기적의 사건 가운데 예수님 바로 옆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웃던 수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바로 옆에서 함께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이렇게 격려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러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게 되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기뻐하라, 왜냐하면 우리 앞에 영원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연단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감격시키시고 넘치는 행복으로 지금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계시다는 그 사실이, 우리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그리고 그분이 주실 그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만약 우리에게 그 미래가 없다면 현재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인간의 본질을 꿰 뚫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그 환경 자체가 그들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의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목표를 볼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는 사람은, 과거의 생각에 파묻혀 살게 됐다. 그들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시련을 내적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여기지 않았다.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업신여겼다. 그들은 두 눈을 감고 과거에서만 살려고 했다. 그들의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 어떤 인간도 넘어서지 못한 죽음이라는 절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소녀에게 다시 생명을 주심으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불신의 시대에, 그저 자기 탐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이 시대 속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선을 행하며 손해를 보며 주님의 뜻을 행하며 우리의 삶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반드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루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실 그 날을 마음에 흔들림 없이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며, 주님의 자녀의 정체성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전능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기꺼이 오늘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날에 사랑하는 주님을 뜨겁게 그리고 온전히 만날 것을 사모하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그리스도께서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믿습니다또한 다시 오실 주님이심을 믿습니다주님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가장 명예로운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오니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시고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십자가의 길을 힘써 걸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지혜를 경청하다, 탐욕을 버리라고 조언을 받다.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북클럽을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래서 대화라는 행위 자체가 더 놀랍습니다. 우리는 모두 흩어진 자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고 영적인 연합과 하늘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모든 대화가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대화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말은 마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자신의 탐욕을, 합리성과 신앙으로 교묘히 감추는 이들 앞에서는 때론 말을 잃게 됩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참으로 깊은 지혜를 가졌습니다. 지혜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의 연단이 지혜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어르신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삶의 깊은 연륜 속에서 본질을 꽤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분들입니다. 말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리고 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분과 식사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분이지만, 그러나 저는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식사 중에 이민 교회에 대해서 또 목회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정말 좋아하는 분 앞에서는 오히려 경청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굳이 많은 말을 제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제가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목회자의 탐욕 때문에 찾아온다고 분명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돈을 밝히는 목사,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머무를 수 있는 교회였지만, 담임 목회자의 청렴함으로 인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심지어 외부 강사로 나갔다가 받은 모든 사례조차 교회에 헌금했을 때에, 오히려 성도들이 더 목회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청렴하게 평생을 목회하다가, 은퇴 즈음에 되어서 탐욕 때문에 전체 삶을 완전히 망친 목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돈을 밝힌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례 문제로 장로님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교회에 분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돈에 집착하던 어떤 목사님은, 달변가였음에도 성탄절과 부활절조차 예수님에 대한 설교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실망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요즘에 방향을 잃었다는 느낌 속에서 쉽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선명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탐욕을 버리는 것, 그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나의 욕심을 위해서 교묘하게 교회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사역과 제 자신을 크게 돌아보면서,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따라 충실하게 사역에 매진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한시간 남짓의 식사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지혜자와 함께 거닐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저 주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 확신 가운데 또 한걸음 걸어가기 원합니다.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70) - 빚진자

 


1. 가사 살펴보기

오병이어 드려도 향유 옥합 깨뜨려도
독생자 아들 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모든 생명 드려도 내 뜻 다해 드려도
십자가 피 흘리신 그 사랑 갚으리까 

다 감사할 수 없는 끝없는 사랑
다 찬양할 수 없는 높으신 이름
주님을 내 성전에 모셔 날마다 예배합니다 

땅끝까지 전해도 해지는데 이르러도
성령의 생기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모든 정성 드려도 온 맘 다해 드려도
영원한 생명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다 경험할 수 없는 깊으신 사랑
다 표현할 수 없는 귀하신 이름
날마다 지성소로 나가 엎드려 경배합니다

 

2. 곡 소개

곡은, 한국의 대표적인 CCM 사역자 박종호 씨의 11바닥에 새긴 사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감히 다 갚을 수 없는 십자가 사랑에 빚진 자의 감격을 아름답게 그려낸 찬양이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 때문에, 주님 앞에 날마다 예배하는 자로 결단하고 기쁨을 누리는 성도의 고백을 담은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1 Of David. Praise the LORD, O my soul; all my inmost being, praise his holy name.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2 Praise the LORD, O my soul, and forget not all his benefits--

시편 기자는 예배하는 성도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촉구하는데, 그것은 그분의 풍성한 관대하심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모든 은택을 잊지 않는 것은 주님을 송축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067.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5 he saved us, not because of righteous things we had done, but because of his mercy. He saved us through the washing of rebirth and renewal by the Holy Spirit,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3:6 whom he poured out on us generously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7 so that, having been justified by his grace, we might become heirs having the hope of eternal life.

바울은 디도에게 선한 일에 대한 강조를 부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행은 한 사람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입니다. 중생의 씻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며, 새로운 본성이야 말로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한 기반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Tt 3:5.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개역개정) 1:9 who has saved us and called us to a holy life--not because of anything we have done but because of his own purpose and grace. This grace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beginning of time, (NIV)

사람이 노력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 그리고 주권적인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호의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리를 부르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것을 받은 우리는 영원히 빚진 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현대인 혹은 어떤 크리스천들의 큰 착각은, 그들이 은혜를 입을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말하고 고백하고 나누지만, 실상 그들은 성경적인 은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가장 갚진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도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혹은 가장 순수한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아득히 뛰어넘어 우리를 온전히 압도하시는 말씀이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과 압도적인 은혜 앞에서 감격하고 겸손해지고 경외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성도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을 높이며 예배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떄 마다, 영원히 하나님께 빚진자로서 행복과 기쁨과 경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원한다. 마땅히 우리의 온 존재로 그분을 예배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간단한 큐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 QUIET TIME CHANGES ME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성경 한권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사실 제 마음 속에 평생 하고 싶은 것은 그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깊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항상 묵상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갈증이 있습니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개인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갈망입니다. 

한 집사님이 큐티를 열심히 하신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도전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나만의 큐티 블로그를 따로 만들면 어떨까? 

일전에도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묵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말씀만 묵상하고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성경 읽기와 묵상"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with Hannah's Bible Outlines &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하나의 전략을 지속할 수 없다면, 당연히 수정해야 합니다. 기준은 높게 잡을 수 있지만 또한 현실에 맞춰서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하루에 삼십분 정도 안에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저의 큐티 블로그 목표를 잡았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갓피플 앱을 사용해서 구약, 신약, 시편, 서신서 이렇게 돌아가면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성경 한 장 안에서 한 단락 정도를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표시는 하이라이트만 합니다. 필요하면 약간의 메모를 넣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하다면 갓피플 앱 안에서 원어 사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영어로만 적기로 했습니다. 이민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제가 담임 목회를 시작하게 되면 사실상 영어권까지 모두 섬겨야 합니다. 결국 시간이 얼만큼 걸리더라도 무조건 저는 거기에 제 자신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제 개인 묵상은 가급적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를 기본으로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아침에 짧게 정리하 그 말씀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고, 또 그것을 가지고 수시로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의 삶을 진리에 의탁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블로그를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하면서, 좋은 기능을 발견했습니다. 구글 블로그 사이에 연동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큐티, 리딩크리스천북클럽, 그리고 리딩피플북클럽의 업데이트 되는 글들을 블로그 우측 '내 블로그 목록'을 통해서 편리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저는 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절대로 한정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저희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도전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작은 결심이 제 자신을 더 깊게 만들고 변화시키고, 또한 제가 섬기는 성도님들께도 선한 영향력으로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89 - MixBox SE(Special Edition) 리뷰

가끔씩 너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리고 거기에 맞는 적당한 기술이 있다면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홈레코딩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고 시도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이 저의 큰 기쁨입니다. 

종종 bpb blog(bedroomproducersblog.com)에 들어갑니다. 프리웨어에 대한 소식이 가장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단순히 프리웨어가 아니라 꽤 비싼 프로그램들도 종종 한시적으로 풀릴 때가 있습니다. 

* bedroom producers blog

얼마전에 MixBox SE 버전이 잠시 무료로 풀렸습니다. 500시리즈라 불리는 아웃보드 박스들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한 것이 MixBox 입니다. 그리고 믹스 박스 풀버전에서 몇가지 기능을 제외한 것이 SE 버전입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준다니 정말 좋은 시대입니다. 예전부터 한번 써 보고 싶었기에 바로 받았습니다. 


위에 링크로 들어가시면 각 버전별로 기능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E 에디션은 아마도 하드웨어를 살 경우에 무료로 넣어주는 버전으로 보입니다. 만약에 실제로 구입하려면 80불 정도의 가치입니다. 살펴보니 총 24개의 모듈이 들어 있습니다. 

보컬과 피아노로 이루어진 심플한 커버곡에 바로 투입했습니다. 목표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보컬"을 제대로 한번 더 믹싱하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믹싱하면서 제 보컬이 너무 어렵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로우 파트에 바이브레이션이 심하고 특정한 두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소리가 튑니다. 다이나믹 이큐로 누르면 깔끔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매력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결과는 이루었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MixBox를 보컬에 써 보면 어떨까?"

실제로 믹스박스 SE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듈들을 많이 제외한 버전이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큐잉을 할 수 있는 채널 스트립, 그리고 옵토 컴프레서의 대명사의 클론, 리미터와 세츄레이션이 다 있습니다. 일반적인 구성으로 바로 아래처럼 짜 보았습니다. 중간에 코러스 모듈을 넣고 살짝 값을 넣었다는 것 빼고는 평범한 셋팅입니다. 


그런데 믹스 박스에서 하나 아쉬웠던 것은, 제대로 된 메뉴얼을 찾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설명 정도를 찾았습니다. 제가 사용한 모듈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Channel Strip : The Channel Strip effect is a full recording channel equalizer and compressor with clean, uncolored processing along with additional “Sub” and “Air” program EQ bands that have a vintage tube flavor.

* White 2A : The White 2A Leveling Amplifier is based on a legendary vintage unit that is entirely tube-based. It’s a totally different device in terms of construction where all the compression magic happens inside an optically coupled element formed by a fluorescent panel and some photocells: the famed T4A element. There is no electronic circuitry involved with the compression itself. It’s just a tube amp with photo-resistors, lighted by a fluorescent panel driven by the output signal. At the time of this invention, there were not many ways of making an audio compressor: only variable-mu and optical. Optical was the simplest one, and if proper elements for both the light emitting panel and the photocells were matched, magic happened.

* Chorus : A classic stereo chorus which adds space and depth to the sound.

* Limiter : This is a multi-band analog modeled limiter. Inside there are three separate hard knee compressors for the low, mid and high bands. It can deliver a very powerful compression to drums kits and loops. The controls of the three compressors are linked on the interface for simplicity. Compared against the Compressor, the Limiter can deliver a far more aggressive compression effect.

* Saturator-X : Saturator X delivers that classic analog saturation and takes you on a trip back in time to the birth of “modern” recording before computers and opens your recordings to the mysterious, elusive and warm world of analog saturation.

실제 모듈을 쓰면서 느낀 것은, 일단 채널 스트립이 디자인에 비해서 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디자인은 솔직히 별로이지만, Air 영역이 굉장히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위에 설명처럼 어떤 진공관의 느낌이 들어가서 그런 듯 합니다. 줄여도 소리가 너무 뭉툭하지 않고 섬세함을 살리면서 harsh한 것이 없어집니다.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Bettermaker EQ232D 같은 풀텍 스타일 이큐보다 훨씬 좋게 들렸습니다. 10hz에서 2db 정도를 뺐더니 딱 원하는 수준의 고음이 나왔습니다. 

채널 스트립에서 또 마음에 드는 것은, SUB 영역입니다. 저는 제 목소리의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로우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플러그인 얼라이언스 채널 스트립들의 기준으로는 사실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이 채널 스트립에서는 가능하더군요. 60hz 기준으로 2.7db를 줄였더니 딱 제가 원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평범한 값인데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참, 이 채널 스트립에서 컴프레서는 솔직히 별로여서 그쪽은 완전히 뺐습니다.

그리고 옵토 컴프레서도 정말 좋았습니다. 실제 하드웨어를 써보지 않은 저로서는 이것이 얼만큼 에뮬레이션이 잘 된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다른 회사의 동일한 하드웨어 복각보다 더 좋다고 느꼈습니다. 리덕션을 살짝 걸었을 때의 느낌이, 훨씬 더 보컬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아 이건 정말 좋은걸?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것이 리미터입니다. 굉장히 강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위에 설명을 읽어보니 로우 미드 하이 밴드를 나누어서 컴프레싱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보컬을 굉장히 큰 느낌을 만들어줍니다. 지금까지 제 목소리에 걸었던 어떤 플러그인보다 효과적으로 느껴졌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가슴으로 다가오는 보컬 느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세츄레이션 모듈을 살짝 걸어서 보컬을 완성했습니다. 

또 다른 트랙인 피아노에는 Model N Channel을 사용했습니다. 최근에 저렴하게 할인했고 평이 좋아서 구입했는데 피아노 트랙에는 느낌이 완전 좋습니다. 플러그인 얼라이언스 채널 스트립보다 약간 더 뭔가 무거운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더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는대로 리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스터 트랙은 두가지를 중점으로 사용했습니다. Black Box는 패러랠 조절로 살짝 걸었습니다. 그리고 TOMO Audiolabs LISA는 최근 부터 사용했는데 너무 복잡해서 프리셋 위주로 사용합니다. 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이번에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은 아래 영상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제 보컬만 놓고 봤을 때에는 제일 마음에 드는 믹싱 결과입니다. 로우를 충분히 살리면서 적당한 하이 그리고 제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튀어나온 보컬이고 느낌이 제 마음에 듭니다. 

저는 다양한 시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MixBox로 믹싱하는 것이 저의 목소리에는 제일 맞는 듯 합니다. 특별히 로우를 잘 보전하면서 제가 원하는 느낌을 구현하는데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일반적인 채널 스트립이 약간 식상하시다면, MixBox를 통해서 새롭게 시도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0/blog-post_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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