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참된 지혜, 그리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 / 다니엘 5장 1-12절 설교

 

교만함과 겸손함이라는 주제는,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에 들어 있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자가 옆에 있다는 소망을 가지지만, 정말 지혜자가 옆에 있을 때에 삶이 변하리라는 확신은 하기 어려운 합니다.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바른 방향을 알려달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것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는 언제나 의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돌아볼 있는 설교 도입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벨론을 통틀어서 사람의 지혜자가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기를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습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오직 겸손함으로 순종에 매진하는 삶을 있다면 얼마나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 다니엘 5 1-12 설교

저를 포함해서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한가지 바라는 일이 있는 같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나의 바로 옆에 탁월한 사람들이 머물러 있어서, 나의 삶에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삶을 지도해주면 좋겠다 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아마 성도님들도 그러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옆에 사람이 바뀌고 지혜로운 조언을 따라가는 것은 절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특별히 느부갓네살 왕을 보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옆에는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다니엘처럼 지혜롭고 겸손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조언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다니엘이 옆에 있었지만 느부갓네살 왕의 죄악된 삶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니엘 처럼 훌륭한 신하와 조언자를 옆에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의를 끊임없이 저지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4 27절에 다니엘이 이렇게 충성되게 조언을 했습니다. “4: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라고 조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로운 조언에 대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바벨론의 위대한 왕궁 지붕을 거닐면서 자아 도취와 교만에 빠져서 이렇게 감탄하면서 말했습니다. “4:30 왕이 말하여 이르되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며 교만하여 자기 자신에게 탄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그는 무려 칠년 동안 거의 이성을 잃고 문자적으로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짐승과 같은 그가 다시 왕으로 돌아오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총명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느부갓네살의 마지막 고백은,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자에 대한 경외의 고백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서양의 속담 중에 하나는, 역사는 반복된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같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니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손자인 벨사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사건들이 때에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고 있지습니다. 특별히 벨사살 왕의 인생의 마지막 밤에 대한 기록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1 말씀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5: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명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구절 안에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의 궁전의 호화로움과 그의 세력을 과시하는 허영이 말씀 안에서 분명히 보이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대단한 장면입니까? 천명의 귀족들이 앞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왕은 앞에서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며 그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것입니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인지를 서로 나누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왕이 이렇게 명령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한 그릇들을 모두 가져오라 라고 것입니다. 그랬는가? 그릇들을 가지고 술을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끔찍한 모독이라는 것을 분명히 우리가 있는 것은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5:4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 , 구리, ,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물들에 술을 부어 마시면서 여호와를 비웃었습니다. 여호와를 모독하고 그의 이름을 더렵혔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우상들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리는 단순히 술만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교만하고 방자한 인간들의 향연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벨사살은 왕은 분명히 느부갓네살의 삶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고 자기 나라에서 일어났던 자기 할아버지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느부갓네살보다 끔찍한 신성 모독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치명적인 죄악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연회장의 벽에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분명히 사람의 손가락들이 아니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연회장은 순식간에 얼음장과 같은 분위기로 변하였습니다.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6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우습고 불쌍한 인간의 모습입니까? 벨사살 왕의 비참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바로 몇분 전까지만 해도 천명 앞에서 허세를 부리면서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중에 한명이라도 처럼 행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얼굴 빛이 변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 버려서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에서 벨사살 왕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7절에 보니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들을 불렀습니다. 바렐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글을 해석만 해준다면 나라의 권세를 그들에게 주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누구도 그것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느부갓네살의 꿈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모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협박까지 했지만 누구도 그의 꿈을 알지도 해석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허세와 교만을 부리던 벨사살 왕에게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세상이 움직이는 것에 대한 진짜 원리는 오직 그분의 지혜로만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왕이라 하더라도 제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나라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절대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절박한 시점에 왕비가 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왕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자신의 교만에 빠져서 허세를 부리다가 이제는 다리까지 떨고 있는 벨사살 왕에 비해서, 그의 아내는 굉장히 차분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일을 해결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글자를 해석할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니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나라에 살면서도 집에 살면서도 다니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때부터 이미 존경 받던 사람입니다. 무지하고 교만에 왕은 그에 대해서 전혀 몰랐지만 왕비는 정확하게 다니엘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며 사람만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상의 많은 지혜자가 있는 같지만,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어려움은 아무나 해결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통틀어서 사람만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충만한 사람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그런 사람은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저와 성도님들은 어떤 사람인가? 혹시라도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사람에게 가서 지혜를 구해야겠다 사람이야 말로 성령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다 라고 고백할 있는 그런 사람입니까? 세상 속에서 방황하며 길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사람인가 라는 기준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있는 것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향에 대해서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교만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악된 성향의 본질이라는 것을 특별히 오늘 말씀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만으로 무너졌던 자신의 할아버지의 일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방자한 왕의 모습을 성경은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 말씀 아니라 성경이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그랬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분명한 선을 그으셨습니다. “선약과를 먹지 마라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아담이 누구인가를 그에게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아담이라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가장 독보적인 창조물이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만을 섬겨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처음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진정한 행복을 그의 가운데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처럼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유혹이 되고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이렇게 망쳐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고 세상이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시지만 기꺼이 낮고 낮은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는가? 그분은 교만하고 순종하지 않고 실패하는 모든 인간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마땅히 드려야 하는 순종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박히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 6절과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뜻을 버렸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벨사살 왕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지만, 사실상 인류 역사의 모든 인간들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패역하며 죄악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하나님이시자 참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아무런 소망 없고 죽어야 하는 죄인을 위해서 땅에 오셨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온전히 순종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완전한 구원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분의 의로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순종한 적이 없지만 그분의 순종이 나의 순종이 되고, 그분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순종과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그분의 순종 때문에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라 부르시며, 하나님 자신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보여 주신 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지혜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의도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순종 그리고 그분 앞에서 겸손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겸손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순종을 통해서 자신의 가운데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미워하시며 누구를 기뻐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벌하시며,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넘치는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38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138: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시편 147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전체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일하심을 통해서, 그리고 성도에 대한 모든 명령을 통해서, 오직 여호와 앞에 겸손하며 오직 그분을 따를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격려와 도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지혜와 말씀을 풍성히 소유하시는 아름다운 성도님들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지혜가 너무나 필요해서 주변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조언하고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할 있는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의 참된 지혜를 힘써 따라가는 자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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