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5일 금요일

옳은 길을 가는 성도 그리고 참된 복음 / 다니엘 11장 36절 - 12장 4절 새벽 설교

 

미국은 추수 감사 주일을 지났습니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날입니다. 비록 새벽 설교이지만 설교 준비는 거의 한주 전에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꼭 가야하는 식사 초대로 인해서 원고로 작성하는 것이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항상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그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정성으로 준비할 것인가? 지나친 이상주의자인 저는 거의 후자를 택합니다. 잠은 줄이면 되지만, 설교의 기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며 큰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설교 원고를 쓰고 다시 그것을 읽으면서 연습하다 보면, 이정도 하면 됐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정도 생각이 들면 충분히 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얼마전에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보니 손을 아기자기하게 쓰시는 것이 참 귀엽기도 하고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손을 이용한 좀 더 디테일한 포즈까지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에 차에 시동을 걸었더니 공기압이 낮다고 싸인이 들어왔습니다. 그 전날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출발했습니다. 새벽 설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약간 무리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타이어가 이상한 느낌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10분 정도를 달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큰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마도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두번째 하이웨이에서 차를 세웠는데 여전히 무섭습니다. 급하게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하고 40분을 통화한 끝에 road assistant 서비스 스케쥴을 잡았습니다. 한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같은 날 차의 배터리가 죽어 버렸습니다. 시동도 비상등도 들어오지 않는 침묵 속의 차 안에서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연결이 되었다는 토잉 업체 기사가 연락이 왔습니다. 멀어서 갈 수가 없으니 다시 보험 회사에 전화해서 다른 회사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목소리에는 귀찮아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시동은 걸리지 않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저의 상황을 다 알고 있지만, 자기가 오지 않아도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습니다.

달리는 차들 옆에서 또 다른 토잉 업체를 기다리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만약에 정말 더 추운 겨울에 더 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실제로 그랬을 것입니다. 제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번 설교는 평소 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민했던 설교였습니다. 11장과 12장의 연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며 순종하며 회개하는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옳은 회심이라는 것은, 11장까지 보여지던 적그리스도 혹은 악한 왕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참된 겸손과 돌이킴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임을 설교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있었다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들이 궁창의 빛, 별처럼 빛나게 한다는 것도 강조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자기 자신을 통하여 죄인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신 가장 빛나는 분이십니다. 꼭 이 부분을 넣고 싶었는데 일단 물러 섰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와 감격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에, 본문 해석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나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성도님들께 설명하고,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1:36 the king: Many ancient and modern interpreters have concluded that at this point a new person, the Antichrist, is introduced. This king is distinguished from the king of the North (v. 40); therefore he cannot be Antiochus Epiphanes.

11:37 The king of v. 36 will cast aside the God of his fathers, the worship of his ancestors. The desire of  women is usually taken to be either a female goddess or the desire of every Jewish woman to be the mother of the Messiah.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1:36–38.

36–45절은 안티오커스 4세의 새로운 통치 행적이나 적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앞에서 기록했던 그의 악행과 통치를 강조하여 요약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물론 2차적으로 그의 행적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김성수, 구약의 , 3 ed., 바이블 키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생명의 양식, 2017), 249.

특별히 무신론자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이용하며 종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악한 왕 혹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래 내용을 통해서 얻은 것입니다.

11:39 strange god. God of a foreign land. Although atheistic, he will use religion to his advantage to advance his cause.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222.

정말 정성으로 준비했는데, 설교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사고가 나서 고생을 한 것 보다 설교를 못한 것이 더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임을 받아들였습니다. 한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더 겸손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저는 그저, “옳은 것을 위하여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면, 저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 다니엘 1136– 124절 설교

다니엘 11장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앞 부분에서는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죽음 이후에 나라가 나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북방 왕조인 셀레우코스 왕조와 남방 왕조인 프톨레미 왕조 사이에 갈등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서 역사가 흘러서 21절 부터는, 비열하고 악한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4세의 역사적인 모습들을 계속 예언하시는 내용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5절에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될 때까지 그 왕의 악행이 계속 되리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인 36절 부터는 계속 등장하고 있는 안티오쿠스 4세의 악행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서 동시에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쉬운 성경은 3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북쪽 왕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자기가 신보다 크다고 생각하여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말로 신들의 하나님께 맞선다 그의 성공은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면서 함께 끝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왕은 안티오쿠스 4세 혹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왕이라 불리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그 특징입니다. 이 악한 왕의 특징은 무엇인가?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높아지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무시하며 모욕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바로 우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높은 여호와라는 존재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악이라는 것은 여호와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것이며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며 그분 아래에 굴복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성경은 이렇게 하늘 높은줄 모르고 방자하게 행하는 극악의 존재를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도 ""이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 없이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35절 마지막 부분에도,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36절 마지막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그 작정된 일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악한 존재가 활개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간을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마지막 때가 아직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분명히 못을 박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왕은 여호와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모욕하며 자신이 신과 같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하는 극도의 교만한 존재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37절 말씀에 “스스로 크다” 하고 또 마지막에는 말씀하시기를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부터 살펴본 것 처럼, 이 악한 왕 혹은 적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신과 같은 존재로 높이기 때문에 37절 말씀은 충분히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38절과 39절을 읽어보면 마치 지금까지 내용과 반대되는 듯한 말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38절 말씀에는 “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9절 말씀에는 “이방신을 힘입어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내 구미에 맞는 신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왕의 태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신이라는 단어의 그 의미가 무엇인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신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한 존재는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용해 먹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고 힘을 줄 수 있다면, 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신의 힘만 빌리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지만 그리고 그에게 제사까지 열심히 드리는 것이지만, 사실상 나의 성공을 위해서 부려 먹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한가지는, 우리가 여호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악한 왕 혹은 적그리스도가 신이라는 이름을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는 어쩌면 굉장히 종교적인 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신을 믿고 공경한다고 말하며 실제로 보물을 바치면서 제사도 드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교묘하게 사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배도 잘 드리고 헌금도 잘드리고 흠 잡을 데가 없는 모습이고, 마치 자신이 하는 행동과 말과 모든 목적이 여호와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고 겉으로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어떠한가? 결국에는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부와 이름을 위해서 여호와라는 존재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고 해서 겉으로 신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는, 그 사람은 완전히 믿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정말 그 내면에 여호와에 대한 참된 신앙이 있는가 진실로 여호와의 이름과 그분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것을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 이렇게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며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악한 왕 혹은 적그리스도는 결국에는 "그 끝"이 온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장막 궁전을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운다 라는 것을 주석가들은 악한 왕이나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차지할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주 노골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극도로 대항하며 그분을 모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그렇게 위세를 떨치고 수 많은 악의 동맹을 가지고 있었던 악한 존재도,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자가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오늘 말씀에서 반복되던 것처럼, 결국에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결국에는 그분의 정하신 그 마지막 때가 되면 반드시 악이 멸망하고야 마는 시점이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12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앞에서 이어지는 모든 악한 존재 적그리스도의 큰 악행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확실하게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을 것도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라는 것은, 요한계시록 13 8절에 말씀하시는 어린 양의 생명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명단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친히 기록하신 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때가 반드시 올 것인데, 그 때에 과연 누가 구원을 얻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속한 자를 기록한 책이 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 생명 책에 기록된 그 사람만이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니엘 12 2절과 3절은 구약에서 육체적인 부활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말씀인 것입니다. 2절과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 본문을 그저 평범하게 읽어 나간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목사님 알겠습니다 예수님 잘 믿으면 죽은 이후에 천국 간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잘 전하라 라는 말씀이지요?” 당연히 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부활하여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2절에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다 에서 "수치와 부끄러움" 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3절 말씀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라는 말씀에서 "옳은데" 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 말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영원한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라는 것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의롭고 선한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옳은 데로 돌아오는 것 왜 이것이 새롭게 보였는가? 왜냐하면 지금 이 말씀이 주어진 문맥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3절 말씀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지금 앞에서 부터 계속 다루고 있는 악한 왕과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되고 마치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고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고 만족하는 그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악이며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라는 것은, 이제 한 사람이 천국 갈 수 있게 되었다 라는 의미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쳐서 무너뜨리고 살아계신 여호와 앞에 겸손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진정한 그분의 백성으로 변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서, 마치 안티오쿠스 4세와 같은 모습으로 악한 삶을 살던 사람이,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그 진정한 회심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그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돌이키며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갈망해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장 확고하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 20절에서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마지막 때를 경고하시며 부활에 대하여 소망을 주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부활을 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신약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넘어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통하여 그분을 믿는 자들도 동일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확고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 가운데 분명히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도 고난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기쁨 가운데 바로 오늘을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로마서 6 17절에서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그 영생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우리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믿었으니 천국에 들어간다 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를 벗어난 사람들이며, 옳은 방향으로 옳은 것을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죄의 종이 되어서 나 중심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다면, 이제는 여호와의 종이 되어서 그분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며 자랑스러운 것이며 명예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마땅히 자기 자신을 끊임 없이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나의 욕심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라도 내가 마음이 변질되어서 내가 살고 싶은대로 그대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분명히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진정한 순종이 바른 것이고 옳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높이시며 영원히 빛나는 자들로 영광스러운 자리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부활에 대한 확고한 소망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은 그 위세와 전혀 상관 없이 반드시 그 끝을 맞이할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임을 분명히 믿고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을 믿을 때에 그리고 주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때에, 마땅히 나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버리고, 의롭고 바른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나의 하루 하루의 삶을 주님 앞에서 변화시켜 나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붙들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기쁨과 소망 가운데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참된 주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저의 죄악과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최 우선으로 삼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주님께 순종하는 진실한 자녀로 살아가도록 오늘 하루도 새롭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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