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에 쓴 글을 읽어보니 그때 첫 인상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좋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주 심각한 믹싱 작업과 마스터링까지는 AKG K92로는 무리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사실 처음 듣고 몇달 동안은 작업하면서는 큰 문제를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일년 정도 작업하니 한계가 드러나더군요. 느낌 상 6-70hz 정도 아래는 많이 약해서 저음 컨트롤이 어렵고, 그리고 5kz 이상은 약하게 나온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작업을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좀 더 정확하고 평탄한 느낌으로 맞추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다른 헤드폰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산은 맥시멈 150불 정도를 잡았습니다. 저의 열정을 알기 때문에 아내가 늘 도와주려고 하고 응원해 줍니다. 그런데 무조건 비싼 것을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적어도 기본적인 모니터링 성능을 가지고 있고 마스터링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저렴한 헤드폰을 찾아 보았습니다.
별별 모델들이 다 있더군요. :) 그런데 결정적으로 스윗 워터의 리뷰들을 읽으면서, 젠하이저 HD 280 Pro 로 결정했습니다. 적어도 100불 정도 아래에서는 이보다 더 격찬을 받은 헤드폰은 없는 듯 했습니다. 특히 베이스가 deep 하다는 평가, 그리고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모두 소화할 정도라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Some of the best monitoring headphones for mixing! By Darnell from Macon, Georgia on December 31, 2020 Music Background: Christian rapper, freelance mixing and mastering engineer
I love my HD 280s! Sennheiser in my opinion has some of the best headphones for mixing and mastering at a decent price. The headphones have great frequency response across the frequency spectrum. The low end is deep, mids are clear, and highs are crisp. I trust these headphones with my mix decisions along with a good reference mix.
물론 디자인은, 진짜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세상에, 요즘에 세련된 느낌과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머리가 약간 큰 편인 저에게도 꽉 눌러주는 착용감도 좋고 헤드폰 밖으로 음도 거의 새지 않지만, 디자인 자체가 너무 투박합니다. 특히 AKG K92의 은은한 황금색 테두리에 비교한다면 이건 정말 초등학생 디자인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사운드가 중요하니 참자" 라고 여러번 스스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
구입해서 딱 듣고 느낀 것은 확실히, 베이스가 훨씬 딥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리뷰에는 그렇게 충분한 정도는 아니다 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AKG K92 를 쓰던 제 입장에서는 정말 베이스가 충분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양 뿐만 아니라 질이 매우 뛰어나게 들립니다. 저음의 탄력감이 느껴집니다. 사실 저음이 탄력있게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들으면서 확 느낀 것은 "굉장히 소리가 자연스럽다" 라는 것입니다. 어디 하나 모난 부분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너무 좋았습니다. 어디를 분석해서 어디가 좋고 나쁘고를 논하기 이전에, 아 이건 정말 좋은 음반이야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런 면에서 이 헤드폰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물론 오픈형 헤드폰과 같은 초고음역의 어떤 살랑거리는 섬세함은 느끼기 어렵습니다. :) 제가 제일 좋아했던 젠하이저 MX400 오픈형 이어폰에서 느꼈던 공기를 스치는 듯한 그런 사랑스러운 고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소리가 자연스럽고 묵직하면서도 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고음 영역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그래서 굉장히 저가의 헤드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평을 얻는구나 싶네요. :) 그리고 이재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이 바로 아래의 곡입니다.
사실 이 정도 믹싱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음에 굉장히 힘을 주었는데 상당히 탄력이 있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크게 모난 부분이 없습니다. 물론 기타와 신스 리드가 좀 약하고 흐리멍텅하게 만들어졌지만 그냥 덮고 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손을 대지 말아야 하는 시점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다 만들고 나니, 갑자기 그 생각이 들더군요, "한번 더 해볼까?" 요즘에는 왠만하면 믹싱과 마스터링을 다시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좀 더 개선할 점을 다음 곡에다가 추가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플러그인을 우연히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헤드폰의 응답 주파수를 보정해 주는 Morphit 이라는 플러그인입니다. 헤드폰의 특성에 따라서 주파수 강조를 반대로 셋팅해서 최대한 사운드가 평탄하게 나오도록 도와주는 개념입니다.
* Morphit - Headphones correction and personalization
저는 이미 톤 부스터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데모 버전을 쓰면서 굉장히 좋게 생각했고 최근에는 레거시 플러그인들을 무료로 공개한 아주 너그러운 회사입니다. 공개한 플러그인의 퀄리티도 매우 좋습니다. 이 회사의 레거시 플러그인에서는, 헤드폰을 가상의 스피커처럼 만들어서 믹싱을 도와주는 플러그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요할 때 마다 크로스체크 용으로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 헤드폰으로도 풀 믹싱이 드디어 가능한가?
Isone v3 by Toneboosters VS 모니터 스피커 Monoprice SV25
그런데 며칠 전에, 이 회사에서 나온 헤드폰 주파수 응답 보정 프로그램을 데모 버전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회사는 유저 프리셋을 저장할 수 없다는 것 빼고는 데모 버전의 기능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실제로 다운 받아서 리 믹싱과 마스터링에 사용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HD 280 Pro 에다가 Morphit 플러그인을 더하면 결과물이 정말 더 좋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플랫한 느낌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Morphit 플러그인은, 저의 젠하이저 헤드폰을 포함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헤드폰을 지원합니다. 아래 그림처럼 헤드폰 모델을 정하면, 그 모델의 주파수 응답을 플랫하게 만들어주는 그래프가 등장합니다.
처음에 Morphit 으로 딱 이렇게 셋팅 값을 잡고 느낀 점은, "소리가 뭔가 굉장히 단단해 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래 좋은 헤드폰이 더 좋아졌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저음 쪽이 더 타이트하게 잡아주고 좀 더 분명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음 쪽도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소리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라 항상 조심스럽지만, 여하튼 Morphit 을 걸었을 때에 훨씬 작업하기가 좋다고 느껴져서 믹싱과 마스터링을 완전히 새로 했습니다. 두번째 작업하면서 좋았던 것은, 확실하게 저음 쪽에 컨트롤을 좀 더 수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이 플랫한 소리라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제 목소리 자체가 저음이 너무 컨트롤하기가 어려운데, 보컬 로우컷 지점을 잡기가 더 수월했습니다. 훨씬 소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와 중에 또 하나의 플러그인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로 발견했달까요? 그것은 boz DIGITAL LABS의 Width Knob 입니다. 스테레오 이미지를 조절하는 무료 플러그인입니다. 이미 저는 이 회사의 리미터를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최고의 리미터로 생각하고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눌리는 느낌이 적고 자연스럽게 소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리미터입니다.
Full stereo width is not the point of Width Knob. Its ability to reduce a stereo image is, enabling you to give various instruments or groups of instruments their own space in the stereo field. One example would be taking a synth bass recorded in stereo and narrowing it to mono for a punchier center image and making room for other instruments panned left and right, such as guitars or keyboards. Another use for a narrower field would be in the case of stereo background vocals that are too wide, causing the harmony to de-correlate. Narrowing the image will create a better harmonic blend while still maintaining the feel of a vocal ensemble in stereo space.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위에서 말하는 것 처럼, 어떤 악기의 특별히 베이스의 스테레오 이미지를 좁히면, 전체 스테레오 필드 안에 다른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 다른 악기들을 충분히 배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고 또 당연한 이야기인데 갑자기 번쩍 하더군요. 왜냐하면 위에서 들으신 곡이 제 기준에서는 나름 괜찮지만, 베이스가 스테레오 필드 전체에 굉장히 넓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줄이려고 이렇게 저렇게 노력한 것이 저 정도입니다. 그리고 킥도 마찬가지입니다. 센터에 딱 들어가서 탄력있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옆으로 펑퍼짐하게 퍼지면서 울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바로 중요한 악기들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제가 듣고 판단할 때에는 이 플러그인은 기본으로 오른쪽으로 레벨을 올린 상태가 width 100 입니다. 그리고 중간이 0인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간으로 레벨을 조절하면 최대한 스테레오 넓이가 좁아진 형태입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더 돌리면 뭔가 더 바뀌는데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을 못했네요. :) 아마 위상 전환이라고 설명이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일단 이 플러그인으로 좋았던 점은, 킥과 베이스의 경우에는 스테레오 쪽으로 차지하던 붕붕 거림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리가 훨씬 중간으로 몰리면서 타이트해졌습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사실 베이스의 경우 솔로로 들어보면 약간 소리가 일그러진 느낌이 듭니다. 마치 허리를 졸라면 느낌이랄까요? 좌우 음상도 아주 살짝 틀어지는 듯 합니다. 그래도 일단 충분히 스테레오 넓이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스 리드의 경우에도 너무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좀 줄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베이스와 킥을 확 줄이니까 양쪽에 공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면서 빈 곳을 갑자기 발견하면서 깜짝 놀란 느낌이랄까요? Width Knob 의 소개 페이지에서 설명한대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이 상태에서 마스터링을 하려니 또 완전히 새롭더군요. :) 마치 처음 만드는 곡을 처음 마스터링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래 처음 작업 때에는 미드 사이드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는데, 두번째 새롭게 마스터링 할 때에는 미드 사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블랙 박스 MS 세츄레이션과 풀텍 스타일의 Better 이큐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평소에는 이렇게 까지 미드 사이드 조절을 안하는데, 베이스와 킥이 확 중간으로 모아지니까 갑자기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제가 처음부터 다 작업한 것을 다시 했는데도, 마치 새로운 곡을 새롭게 작업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많이 업그레이드 된 듯 합니다. 헤드폰으로 이어폰으로 그리고 차에서 여러번 들으면서 느낀 것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롭게 작업한 곡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저의 새로운 헤드폰, 젠하이저 HD 280 Pro 그리고 그것을 더 평탄하게 만들어주는 Morphit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운드의 스테레오 넓이를 적극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width-knob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가 새롭게 믹싱하고 마스터링한 결과입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 사실 모든 작업 결과물들은 뮤지션에게는 자식과 같습니다. 흠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보입니다. 보컬이 생각보다 너무 harsh 하게 나왔고, 생각보다 하이헷이 너무 강하게 나왔네요. 그런데 의도한 베이스와 킥이 진짜 괜찮아졌습니다. 물론, 이상적으로 꿈꾸는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만든 킥과 베이스 중에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차에서 들을 때에는 음의 마지막 쪽에서 우퍼가 떨림이 있는데 어쩌면 너무 저음에 로우컷을 약하게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레오 감을 좁혀서 굉장히 타이트해졌고 베이스와 킥의 밸런스도 좋게 들립니다. 베이스와 킥 위에 보컬이 살짝 걸치고 올라간 느낌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일렉과 신스로 꽉 채운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게 들리네요.
역시 음악은 만드는 사람의 기대가 끊이지 않을 때에 더 좋게 나오는 것 같네요. 새롭게 작업하느라 어쨌든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고 시간도 들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새로운 결과를 보게 되어서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 앞으로 HD 280 Pro 로 작업할 날들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사실 겨우 입문자 수준의 헤드폰이지만 성능이 참 준수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혹시 타이트한 예산 안에서 헤드폰을 찾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젠하이저 HD 280 Pro도 선택지로 고려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참, HD 280 Pro 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선이 코일처럼 꼬여 있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책상에 있고 약간 멀리 있는데 헤드폰 선 길이가 굉장히 압박스럽습니다. AKG K92는 선 길이가 넉넉해서 전혀 문제가 없이 잘 썼는데 새로 헤드폰 구입하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단점이라 많이 당황하긴 했습니다. 연장선을 구입하려니 음질 열화가 있을까 염려가 되어서 사용은 안하고 있네요. 본인이 어느 정도 연결 길이가 필요하신지도 꼭 고려하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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