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5일 금요일

잠언 29장 1-14절 설교

 

잠언 29 1-14절 새벽 설교 by 정진부 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크게 보았을 때에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1절 한절인데 “돌이키는 자의 지혜” 라고 소제목을 붙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14절 까지는 “공동체를 살리는 지혜” 라고 소제목을 붙일 수 있겠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함께 말씀 나누기를 원합니다. 

1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 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계십니다.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은 “목이 곧은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표현이 참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교만한 사람을 말할 때에 “목이 곧은 사람이다” 라고 종종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에 목이 곧은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사하게도 책망하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살면 망한다 라고 책망하고 교정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라는 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절부터는 그 말씀의 성격이 조금 달라져서, 한 사람의 내면과 삶을 다루기보다는 “한 사람이 전체 공동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절에 보니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탄원하면서 “의인이 열 명이라도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하시겠습니까?” 라고 간절히 물어보던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한 성읍과 도시에 의인이 많으면 어떠합니까? 그 도시의 온 백성에게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이 득세하고 권세를 잡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 역시 백성에게 큰 탄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공동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으로 계속 이어지는 맥락에서 4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역시 한 사람의 리더가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정의로우신 것처럼 그분의 성품에 맞추어서 정의를 세워가는 왕을 통해서 한 나라 전체가 견고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악한 리더가 세워진다면 결국 그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12절도 아주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어 성경은 좀 더 풀어서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29:12 정권 잡은 자가 거짓 정보에 귀기울이면 그 아래 있는 관료들은 거짓말만 골라서 하게 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씀은 특별히 한 공동체의 리더의 주된 관심사라는 것이 공동체 안에서 점점 전염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경우에는, 조직의 탑 리더가 정직하고 바른 말은 무시하면서 자기 귀에 듣기 좋은 혹은 흥미를 가지게 하는 거짓 정보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리더의 입맞에 맞추어 준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분위기가 어떻게 되는가? 잠시 잠깐은 서로 화기애애하고 좋을 지 모르겠으나 결국 그 공동체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2절이, 공동체에 미치는 한 사람의 악한 영향력에 대해서 강조한다면, 반대 의미에서 한사람이 공동체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14절 말씀입니다.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리더가,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이, 가장 연약한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보면 왕이 정직하고 공정하게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은 왕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그런 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일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감당하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공동체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유익과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유익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 번째 적용은, “돌이킬 것인가? 아니면 결국 망할 것인가?”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저는 1절 말씀을 읽으면서부터 “굉장히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고의 말씀이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를 책망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특별히 새벽 예배를 꾸준하게 드리시는 분들은 매일 아침 첫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격려를 받고 격려 뿐 만 아니라 책망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면서 끊임없이 책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비춰보니 책망을 자주 받는 우리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목이 곧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망을 받는다는 그 사실이 그 사람이 겸손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으면서도 혹은 공동체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얼마든지 마음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너에게 머리를 숙이고 듣고 있지만 나중에 한번 두고 보자” 라는 악한 마음을 얼마든지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 어떤 결과가 있는가? 갑자기 패망을 당한다, 그리고 피하지 못한다 라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많이 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주 꺼내서 보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리 스트로벨이 쓴 “특종 믿음 사건”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의 난제에 대해서 저자인 리 스트로벨이 유명한 신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날카롭게 질문하고, 그 답에 대해서 정리한 책입니다.

이제 말씀드릴 내용은, 그 중에서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라는 챕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모어랜드라는 교수가 지옥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따라서 지옥이란 일차적으로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리 스트로벨이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지옥을 택한다는 말인가요?" 그랬더니 모어랜드가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천국을 거부하고 대신 지옥을 선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천국의 일상이 될 그런 부류의 가치를 거들떠보지 않기로 한 것은 분명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덧붙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은 단순히 선고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이 생에서, 바로 지금 여기서 날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의 종착점이기도 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1절을 보면서 방금 읽어드린 책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택의 관계라는 점에서 저에게 가장 큰 통찰력을 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보면서 혹은 악인의 종말을 생각하면서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옥은 결국 죽은 이후에나 가는 것이고 사는 동안에는 나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죽기 전에만 잘 돌이키면 된다”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시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하루 하루의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그 결론이라는 맥락에서 천국을 들어가는 것이고 지옥을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죄인의 구원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그분이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고 믿으며, 한번 선택하신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능히 용서하시며 뛰어 넘는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로마서 3 3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은 자로서, 그분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 말씀으로 바꾸어서 표현하자면 이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자주 책망을 받을 때에 목이 부드러워져서 그 강팍한 마음이 녹아들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키며 통회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기꺼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서 순종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기뻐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구원을 받은 자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떠합니까? 혹시라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내 마음대로 방종하여 살면서, 하나님이 오시려면 아직 멀었다고 혹은 내가 이렇게 산다고 해서 내 구원은 아무 문제 없다고 이상한 착각 속에 빠져서 그렇게 어리석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그 부분에서, 우리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책망하시며 선택한 자들이 다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고 악하다면 바로 그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온 마음을 쏟고 성실하게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번째 적용은 “선한 영향력인가? 아니면 악한 영향력인가?”입니다. 조금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본인이 소천하신 이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불러주기를 원하십니까? 만약에 성도님들의 이름 앞에 누군가가 수식어를 붙여준다면 어떻게 붙여 주기를 원하십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에, 남아프리카의 나라 중 하나인 짐바브웨의 무가베 전 대통령이 95세로 사망하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 소천 하였다면 얼마나 나라 전체가 크게 슬퍼할 일입니까? 그리고 한 나라의 수장이 소천 했다면 전 지구상의 나라들이 얼마나 함께 아쉬워할 일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한 뉴스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사상 최악 독재자,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 95세로 사망" 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는 무려 95년의 삶을 살았지만, 그리고 무려 30년 동안 한 나라의 대표자였지만 그의 삶의 마지막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사상 최악의 독재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말씀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이 말씀이,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문자적인 내용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기사들을 살펴보니 무가베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그래도 통치를 잘 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변질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정적을 탄압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들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마음껏 채우고 온갖 폭정과 공포 정치와 그리고 무능한 경제 정책으로 나라를 완전히 망쳐 버렸습니다.

2천 년대 중후반에는 대략 800억 퍼센트라는 물가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가는 초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에 짐바브웨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무려 국민의 80퍼센트가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궐하는 에이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환자가 2백 만 명이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평균 수명이 되었습니다. 어떤 기사는 그에게 대해서 묘사하기를 짐바브웨는 국민들에게 “살아있는 지옥”이 되었고 무가베에게는 “향락의 왕국”이 되었다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그리고 무가베가 망하게 한 그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공동체에 미치는 리더의 영향력 혹은 한 사람의 역할과 그것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정말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대해서 놀랍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 12절입니다.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몸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지체들이 완전히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몸의 모든 부분은 근육으로 완전히 연결되어서 피가 흐르고 있고 영양분과 성장과 고통을 하나로 공유하는 것이 몸이라는 구조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공동체가 성장하고 쇠퇴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함께 책임이 있다 라는 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주시는 엄청난 영적인 진리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따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에게 아무 영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적으로 서고 성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혹은 나의 악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영적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 13절 말씀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모든 공동체의 멤버들이 각자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목표 가운데 모든 관심을 예수님에게 쏟고 그분을 알고 믿는 것에 함께 자라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의 상황과 태도에 대해서 곰곰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동체로 만드시고, 그 공동체 안에서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존재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만약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말씀에 나의 마음을 담아서 그것을 공동체 가운데 실천해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영향력이 점점 확대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하루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하루가 의미 있게 쌓여져서 결국에는 누군가가 우리를 떠올릴 때에 “하나님을 높이는 누구누구” 라고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긍휼의 사람 누구누구” 라고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영향력을 펼쳐 나가시고 그것을 통해서 공동체를 변화시켜 나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 앞에서 언제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참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마음과 돌이키는 마음을 주시고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순종하며 나아가는 복된 자녀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알아가며 내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성가대가 찬양할 때에, 어떤 태도로 찬양해야 합니까?

성도님 중 한 분이, 성가대 혹은 찬양대가 어떤 태도와 마음 가짐으로 찬양하는 것이 좋은가 여쭤 보셨습니다.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언뜻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없어서 스터디 바이블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 가운데 힘있게 역사하시기를 늘 바라며 찬양 올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

역대하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개역개정) 20:21 After consulting the people, Jehoshaphat appointed men to sing to the LORD and to praise him for the splendor of his holiness as they went out at the head of the army, saying: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love endures forever." (NIV)

1.   배경 

모압과 암몬 족속이 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상황


2.   스토리 

여호사밧 왕은 여호와를 의지하기로 결심하고 금식을 선포하였음,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기도하였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심,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겠다고 약속하심


3.   찬양대 

여호사밧은 백성의 지휘관들과 의논한 다음에, 노래하는 자들을 특별히 세워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함, 찬양대를 오히려 군대보다 앞세워서 나아가게 함, 그리고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함 


4.   참고할만한 내용들  

20:21–23 Jehoshaphat appointed Levitical singers and musicians to go ahead of the army. To praise the LORD before the battle was an act of faith in His promise. The Lord inhabits the praises of His people (Ps. 22:3).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622–623.


20:21 in holy attire. This refers to the manner in which the Levite singers were clothed in symbolic sacred clothing (cf. 1Ch 16:29) in honor of the Lord’s holiness.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대하 20:21.


20:21 Normally, a battle begins with the war cry of the entire army. Here it begins with music from the worship leaders. holy attire. Cf Ex 28.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693.

 

5. 적용의 포인트 

1) 큰 문제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고백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황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찬양으로 하나님께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함

2) 하나님께서는 찬양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며 성가대는 믿음의 고백의 선봉에 서는 사람들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임

3) 찬양하는 자들이 거룩한 예복을 입고 찬양하였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한 마음과 태도로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줌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하루 한번 " 밴드 시리즈 (성경, 영어, 책)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의 깊은 내면에는, 항상 초조함이 있습니다. 그 초조함은,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입니다. 목회자라는 특성상, 많은 분들의 장례식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엄숙한 자리에서 제 마음에는, 저 역시 언제라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다라는 너무나 강한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고는 "뼈를 깎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아무런 노력 없이 결과를 얻기 원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아주 안락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나의 나태함을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과 목적을 이루시는데에 나의 모든 노력을 사용하십니다.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오늘 내가 살아간 모습을 보면 분명히 보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사실상 미래의 나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제가 경험적으로 보니, 보통 75세 정도까지가 활발한 지적 활동의 마지노선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초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수명을 허락하셔도 겨우 30년이 조금 넘습니다. 제가 단언하건데, 저와 여러분에게 그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하루 하루 제 자신을 연단하기 위해서 네이버 밴드를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밴드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이지만, 아내가 추천할 때에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시작하였습니다. :) 

처음에는 "하루 한번" 성경 읽기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분량이라도 상관 없이 성경을 함께 읽어 나가는 밴드입니다. 밴드 안에서 "미션"을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서 인증샷을 올리면 됩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저 혼자 할때보다 훨씬 더 말씀에 매진하게 되고 또 다른 분들을 통해서 배우고 격려를 얻게 됩니다.

성경 읽기 밴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평생 무엇을 위해서 경주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으로, 두가지를 더 만들었습니다. "하루 한 번" 영어 공부, 그리고 "하루 한번" 책 읽기 밴드 입니다. 

영어를 하는 것의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영어를 통해서 나의 지식을 넓히고 언어권이 다른 사람들과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지평을 한 없이 넓히는 것이 바로 영어입니다. 

책은 또 어떻습니까? 저 역시 북클럽으로 목회학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혼자서 책 읽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책 읽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임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루 한번 책 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량과 내용에 상관 없이 하루 한번이라는 목표로 함께 읽는다면, 혼자 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누구나 24시간이 주어집니다. 누구나 피곤합니다. 누구나 하루가 버겁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 지구상에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삶은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급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저는, 제가 지적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나이가 될 때 까지 이 밴드들을 계속할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하루 한번" 성경, 책, 영어라는 이 세가지 카테고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많은 것들을 이루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여정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이 세가지 밴드는, 목표는 동일합니다. "하루 한번" 성경 읽고,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량도 내용도 상관 없습니다. 단지 "하루 한번"이면 됩니다. 어렵지만,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아주 작은 분량이라도 도전하고 성공을 맛보기 시작하면,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실 것입니다.

밴드의 취지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새로운 은혜와 기쁨과 열매들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래 초대 링크를 통해서 가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 "하루 한번" 성경 읽기

* "하루 한번" 영어 공부


* "하루 한번" 책 읽기

시카고 기독교 방송(KCBS)에서 "삶으로 드리는 찬양" 코너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현재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은 분명히 알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굉장한 긴장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자로서, 알 수 없지만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삶 입니다. 

스무살 어린 시절에, 찬양팀의 마이크를 처음 잡았습니다. SM58 마이크는 차갑지만 따뜻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친숙합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역 교회의 싱어로 악기로 리더로 그리고 CFNI의 유학으로,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셨습니다. 

펜데믹이 시작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 앞으로 목회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하루에도 여러번입니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속상함도 여러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심에, 지친 마음을 추스러봅니다. 

처음에 섬기는 교회에서 찬양 교실을 시작할 때에, 어떤 포멧으로 하면 좋을지는 전적으로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기타를 치면서 찬양 한곡을 불러보고 가사를 조금 짚어주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이왕이면 성도님들에게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사를 묵상하고, 그 가사의 성경적인 배경을 짚어보고 배우고, 그리고 가능하면 제 목소리로 찬양을 불러서 듣기 좋게 들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제 방을 스튜디오 처럼 꾸미고, 뒷 배경을 위해서 벽지를 바르고, 부족한 컴퓨터 성능에다가 억지로 동영상 편집과 음악 편집까지 모두 셋팅하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애써 웃으며 영상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시카고 기독교 방송은, 1978년 6월에 첫 방송을 시작한 시카고 지역의 한인 방송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한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 이민 생활을 돕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훌륭한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이 자원하여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또 방송국은 이 모든 것을 편성하여서 매일 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시카고 기독교 방송은, 시카고 근방 지역을 다 커버하고 AM1590, FM95.9 라디오 채널과 자체적인 유투브 채널을 통해서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 분과 이야기 나누는 중에, 참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은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IT의 인프라에서 소외된 연약한 분들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제 마음에도 큰 감사가 있었습니다. 연약한 이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것이야 말로,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마땅히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몇 분의 추천을 통해서, 방송국 국장이신 서도권 목사님을 찾아뵙고 함께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실 제 마음에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여기에 참여할 만한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과연 꾸준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두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세상은 너무나 넓고,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 너무나 많다 라는 것입니다. 굳이 대단한 교수가 아니고 대단한 목회자로 이름이 나지 않아도, 정말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위대합니다. 그런 분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제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사역을 하는 것도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퀄리티에 대한 부담과 염려가 늘 있습니다. 추구하는 기준은 너무나 높고, 현재 저의 모습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러주신 자리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저를 지금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신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방송국 국장님께서, 프로그램의 이름을 정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보다 여러가지로 뛰어난 아내에게 상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하는 찬양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소원을 담았습니다. 프로그램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50분부터 10분 정도 방송이 됩니다. 기존에 하던 찬양 교실보다는 더 압축적으로 내용이 진행됩니다. 라디오 진행하는 느낌으로 하려고 하니 목소리에 벌써 긴장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청년 시절,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고, 이것이 제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언하였습니다. "지식과 지식을 새롭게 결합하여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프로페셔널", 저는 언제나 그런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입니다. 

한곡을 준비하고 녹음하고 믹싱하여서 마스터링까지 최소 10시간에서 15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실 목회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의 시간을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좋은 음향 장비도 없습니다. 정말 가장 저렴한 수준에서 준비하였을 뿐입니다. 마음은 좋은 것으로 사고 싶은데, 현실은 녹녹치는 않습니다. 결국 저의 미션은, 제가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제가 가진 장비를 최대한 활용해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단 하루의 시간만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아무리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눈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늘 후회 없이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제 섬기는 교회가 펜데믹 이전 시절로 돌아가면서, "금요 찬양 교실"은 7월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삶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성도님들을 찾아뵙게 됩니다. 7월 한달 동안에는 두 프로그램을 약간은 다른 포멧으로 병행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앞 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에 부으신 그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루 하루 한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여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음에 감사하고, 또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메꿔가면서, 열심으로 연습하면서, 그렇게 제 자신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생각나실 때에, 시카고 기독교 방송을 위해서, 그리고 준비하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당분간은 금요 찬양 교실과 삶으로 드리는 찬양 코너를 병행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의 첫 에피스도의 배경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금요 찬양 교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6/blog-post_22.html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6월 22일 화요일

요한복음 9장 1-12절 주일 설교를 돌아보며

담임 목사님의 출타로, 주일 설교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준비하게 되어서 두주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고, 평소에 성경 통독을 하다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본문인 요한복음 9장 1-12절을 설교 본문으로 정하였습니다. 

이번 설교도 동일하게, 충분한 개인 묵상과 스터디 바이블들, 그리고 필요한 주석들을 충분히 참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평소때 보다 훨씬 더 개인 묵상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계속적으로 퓨전 설교를 연습하고 적용하면서, 목회적으로 굉장히 좋은 설교의 틀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로, 퓨전 설교는 성도님들에게 본문의 개요를 먼저 설명하여서 이해를 돕습니다. 개요를 먼저 설명하기 때문에, 전체 본문의 구조를 머리 속에 담고 적용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설교의 경우 본문 자체가 9장 전체를 다루어야했기 때문에, 굉장히 압축적인 논리 전개가 필요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퓨전 설교의 틀 안에서 개요를 먼저 다루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주해 설교였다면, 설교의 처음부터 쉬지 않고 9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루다가 저도 성도님들도 지쳐버렸을 것입니다. 아마 퓨전 설교의 틀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았다면, 9장 전체를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로, 퓨전 설교는 목회적인 강조점을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을 충분히 주해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설교의 기본인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특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청중에게 필요할 만한 혹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본인이 섬기는 지역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판단할 경우에, 단순히 주해를 일렬로 늘어 놓는 설교 구조를 넘어서서, 특별한 강조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퓨전 설교의 구조는 "주해적이면서 동시에 주제적"입니다.

이번 설교의 첫번째 적용 파트는 저에게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적용은, "논쟁할 것인가? 아니면 자비를 베풀 것인가"라는 적용이었습니다. 

물론 주해적으로만 보면, 사실 이 부분은 그렇게 큰 강조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도님들을 공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논쟁만 하는 것에 치우친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그 부분이 공동체 가운데 분명한 적용점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첫번째 적용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적용에서는 Exegetical Summary와 칼빈 주석, 그리고 카슨의 주석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틴데일 요한복음 주석이 얇은 주석임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명쾌하고 매우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고신 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 주석 사도행전편은, 생각보다 논점들을 피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자에게는 죄송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칼빈의 설명을 보니, 성경 전체에서 죄와 고통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한 사람을 정죄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칼빈은 이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목회적이면서 또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깊은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QUESTION—Did this man and his parents ever sin?

Be careful that the translation does not indicate that either of these never sinned. Jesus was talking specifically about what sin caused this man’s blindness. It could be made clear by translating something like, ‘His sin did not cause him to be blind nor did his parents’ sin cause him to be blind’ [TH, TRT].

Ronald Trail, An Exegetical Summary of John 1–9, Exegetical Summaries (Dallas, TX: SIL International, 2013), 480.

3. Neither did this man sin, nor his parents. Christ does not absolutely say that the blind man, and his parents, were free from all blame; but he declares that we ought not to seek the cause of the blindness in sin. And this is what I have already said, that God has sometimes another object in view than to punish the sins of men, when he sends afflictions to them. Consequently, when the causes of afflictions are concealed, we ought to restrain curiosity, that we may neither dishonour God nor be malicious towards our brethren. Wherefore, Christ assigns another reason. This man, he says, was born blind,—

John Calvin and William Pringle,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vol. 1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10), 367.

그리고 결론을 맺으면서 인용했던 브라이언 스턴버그의 예화는 Jon Courson의 커멘터리에서 보고 인용하였습니다. 

Maybe you’ve heard his story: During the ’68—’69 season, Brian Sternberg was at the West Coast Relays in Fresno, California, pumped, primed, and poised to break the world record in the pole-vault. The day before the meet, he was doing what pole-vaulters often do—working out on the trampoline. But following one particular double flip, he hit the metal railing and broke his neck. It was a tragedy and a shock to the track and field world when Sternberg was told not only that he would never vault again, but that he would be a quadriplegic for the rest of his life.

Jon Courson, Jon Courson’s Application Commentary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03), 514.

세번의 연속되는 주일 설교를 감당하면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또 감사했습니다. 자랑이 되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너무 열심히 준비한 설교였고, 또 너무 소중한 설교였습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리고 구조적으로 만족스러웠고, 또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 가운데 설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읽은 모든 책들의 정수가, 이 설교 한편 안에 모두 녹아 들어갔습니다.

너무 설교에 집중해서, 마치 제 자신의 자아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스피커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 풋이 깨달아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준비하던 만큼 충분히 강조할 부분들을 강조하였습니다.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서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원고를 놓치지 않고 설교했고, 마지막 설교에서 조차 다섯번 정도 밖에 발음에서 실수가 없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여러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실제로 하면서 울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영상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예수 이름 높이세" 찬양을 2절까지 설교 후에 찬양하였습니다. 사실 목이 다 상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찬양이 바로 성도이자 목회자인 저의 신앙 고백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결국, 성도님들에게 하기 전에 설교자 본인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교를 준비하게 하시고 마무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며 설교하는 자리에 세워주시는 측량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저의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게 하시는 주님의 신비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을 경배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금요찬양교실 (36)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1. 가사 살펴보기

(1)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 놓았네 

(2)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3)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받아 주소서


2. 곡 소개

 곡은박정관 목사님의 곡이다박목사님은 1990년대에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다가 성서해석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문화연구원 소금향에서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찬양은예수님께 향유를 쏟아드린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쉬운 멜로디와 감동적인 가사로 표현해낸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7:37  동네에 죄를 지은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7:37 When a woman who had lived a sinful life in that town learned that Jesus was eating at the Pharisee's house, she brought an alabaster jar of perfume, 7:38 예수의 뒤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7:38 and as she stood behind him at his feet weeping, she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Then she wiped them with her hair, kissed them and poured perfume on them.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개역개정7:47 Therefore, I tell you, her many sins have been forgiven--for she loved much. But he who has been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NIV)

이름 없는 여인은 아마도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일 것입니다기대는 것은 발이 테이블에서 멀어 지도록 옆으로 눕는 것을 의미했습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그녀의 눈물과 예수님의 발에 바르기 위해서 비싼 향유를 기꺼이 바친 것은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감사를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증거였습니다.

Craig A. Evans, Messianic Expectatio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20.

옥합은 귀중하고 비싼 향수를 보존하기 위해 부드러운 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그녀는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잇는 군중 앞에서 행위를 하였고여인의 섬기는 행위에는 겸손과 헌신그리고 용기가 있었습니다여인은 전체 기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통회하는 마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7:3738.

 

4. 찬양에 대한 묵상

찬양은바리새인의 집에 계신 예수님을 직접 찾아와그분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여인을 배경으로 찬양이다성경의 배경을 따르면 여인은 당시에 누구나 알고 있던 엄연한 죄인이었다.

그러나 여인은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예수님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실 있는 분이심을 믿고 찾아왔다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에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붓는다마치 집안에서 가장 낮은 종처럼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었다.

우리는 감격적인 찬양을 부르며어떤 죄인이라고 얼마든지 그리스도께 다가갈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예수님은 죄인이 주님께 용기를 내어 찾아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고오히려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다그리고 그녀의 회개의 모습을 보시고 기꺼이 죄를 용서하셨다그러므로 찬양을 통해우리 중에 누구라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주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된다놀랍게도 여인은 주님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녀의 모든 행동은그녀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얼마든지 주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낼 있다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며또한 주님의 조건 없는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이웃을 향해 사랑을 나타낼 있다결론적으로 찬양은참된 은혜와 사랑을 향해 우리를 부르시는하나님의 초대장이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주제 중심으로 다시 한번 설교를 접근해 보다! Dictionary of Bible Themes (2)

 


제가 섬기는 교회는, 매일 성경을 따라가면서 새벽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 저는 현재 매주 금요일 새벽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섬기는 분들이 참 훌륭한 분들이시기 때문에 다른 날들에는 동료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배우고 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매일 성경을 따라가는 것이 유익한 것은, 다양한 성경 본문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한 목회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본문 혹은 스타일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매일 성경 스케쥴을 따라가다 보면 반강제적(?)으로라도 다양한 본문을 묵상하고 설교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신학과 성경에 대한 관점을 기를 수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만, 실상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 특히 잠언은, 평소에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것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니, 각자의 스타일 안에서 잘 설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문 중에 한 구절만 잡고 그것을 집중해서 설교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한구절 한구절을 다 의미를 설명한 이후에, 적용점을 몇가지 짚어내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어떻게 잠언을 설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저의 퓨전 설교의 기본틀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계속 적용중입니다. 서론에는 큰 문단의 구조들을 분석해서 나누고, 간략하게 내용을 살핀 다음에 그 안에서 적용점들을 두가지를 찾는 형태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잠언이라는 말씀의 특성상, 일단 문단 나누기 자체가 어렵습니다. :) 그래서 보통 스터디 바이블이나 주석들을 보면 그렇게 엄격하게 문단을 나누기 보다는, 다양한 격언들의 모음 정도로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런 부분을 인정하지만,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님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주제를 정해서 문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듣기가 편한 듯 합니다. :) 그리고 제 나름대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본다는 점에서 계속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잠언을 설교하면서,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다 해설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성경 구절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한구절 한구절 보다는, 그 내용들을 큰 덩어리로 보고, 좀더 주제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주제 중심으로 설교를 이끌어가다보니, 좋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터디 바이블과 주석을 보지만, 그러나 내가 전체 그림 속에서 보는 주제를 설명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리뷰하였고 사용을 시작한 Dictionary of Bible Themes를 이번 설교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Dictionary of Bible Themes에 대한 기본적인 리뉴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말씀 묵상의 수준을 폭발적으로 업그레이드하라! Dictionary of Bible Themes (1)

이번 설교에서 핵심 테마는, "선택" 그리고 "마음의 변화" 였습니다. :) 굉장히 실제적인 성경적인 주제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난해하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설교 때에 말하자면 전하는 사람도 그리고 듣는 사람도 흥미가 많이 떨어지겠죠. :)

일전에 설명드린 것 처럼, Dictionary of Bible Themes는 단순히 주제별 사전이 아닙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큰 항목에서 시작하지만, 그 항목이 다시 세부 항목으로 정리되면서 일종의 해석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 쉽게 이야기하자면, 성경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가에 있어서 아주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전 안에는 식상하지 않은 탁월한 논리의 전개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선택이라는 주제를 보기 위해서 "choice"라는 항목을 찾아 보았습니다. 

6622 choice

A deliberate act of will or decision, in which God chooses individuals or peoples to be his or calls them to perform certain tasks or responsibilities. Human beings are also required to make choices, particularly between good and evil.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좋았던 것을, 선택을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선택하시는 분이십니다.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쪽으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을 묵상하니 참 은혜가 됩니다. 그분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선택이며, 하나님의 신중한 은혜의 선택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면서 설교를 풀어나갈 방향을 잡았습니다. :) 하나님의 선택을 묵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에 이 선택이라는 부분을 굉장히 의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주어진 하루 가운데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 그래서 더 Dictionary of Bible Themes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이 사전을 읽고 묵상하면서 묵상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자기계발 혹은 성공을 위한 선택의 맥락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의 선택이라는 아주 심오한 주제까지 펼쳐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논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서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마음의 변화"라는 부분은 더 난해한 부분입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사실 적당히 풀어내고 접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 하지만 마음을 돌이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25분 설교를 했으니 평소보다 5분이나 더 했네요. 저는 사실 새벽에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 설교도 중요하지만 성도님들의 상황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변화" 특별히 잠언에서 마음의 어리석음을 풀어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해서 더 살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Dictionary of Bible Themes에서 성경 인덱스에서 잠언 22장 15절 섹션을 살펴보니, 마음에 대한 부분은 언급이 없습니다.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 인덱스가 없으면 주제별 인덱스에서 찾으면 됩니다. :) 마음을 뭐라고 영어로 검색해야 될까요? 검색창에 heart를 찾아들어갑니다. 다행히 heart라는 항목이 있군요. :) 이제 heart 안에서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heart, divine => Aspect of the heart of God 이런 식으로 등장하기도 하네요. 

제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5017 heart, results of renewal in 입니다. 이쪽이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라는 점에서 변화된 마음, 혹은 결과라는 쪽이 제가 설교 때에 이야기할 주제와 가장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5017 heart, results of renewal in

An individual, if renewed and led by the Holy Spirit, will be aware of new spiritual experiences and desires, and also of the Holy Spirit’s work of restoring character. These things provide evidence of the grace of God at work in the life of a believer.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제가 이 부분에서 좋았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 안에서 역사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추가로 스스로 묵상한 부분은, 마음의 변화라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이고, 성령님의 역사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 마땅히 복음을 알고 붙들고 기도하는 일이 반드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논리를 준비한 것이 기억이 나는데, 조금 더 고민했던 뒷 부분이 약간 기억이 흐릿한 부분이 있네요. :) 보통 로고스 안에 하이라이트를 다 치면서 설교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눈으로 계속 읽었더니 정확하게 어디서 후반부의 성경 구절을 인용했는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 

다만 아마 Dictionary of Bible Themes 안에서 몇군데 추가적으로 더 들어가서 살펴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료의 내용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필요한 성경 구절들을 읽어보고 그 안에서 선택하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

사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는데에는 시간이 정말 촉박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의 한주 전부터 본문을 묵상하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언제나 "딱 한걸음만 더 나가보자"입니다. :) 설교에 완성이라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딱 한걸음더 묵상하면서 도전해 보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Dictionary of Bible Themes는 마치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보물 창고를 옆에 두었더니, 마음이 이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네요. :) 창고를 열었더니 눈이 부십니다. 진정한 보물인 하나님의 말씀들이 찬란한 빛을 내면서 차곡차곡 주제별로 다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읽지 않으면 크게 도움은 안됩니다. :) Dictionary of Bible Themes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결심한 것 처럼, 앞으로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평생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본인에게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Dictionary of Bible Themes를 계속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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