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원고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지역 이름이나 길 이름을 잘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억을 잘 못해서 어디를 갈 때면 꼭 GPS를 키고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GPS를 켜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와서 주를 네번 옮겨 다니면서 살아 봤는데 재미있는 것은 길 이름이 겹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달라스에서 보았던 길 이름인데 똑같은 길 이름이 미시간에서도 있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드문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길 이름이 겹치게 되면 갑자기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모든 것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도 가끔씩 그런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지역 이름이 등장하게
되면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안디옥 이라는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이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무려 열여섯개의 안디옥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이후에 그의 후계자 중 한명인 셀레오쿠스 1세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념하면서 무려 열여섯개의
안디옥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 중에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곳이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수리아 안디옥이라는 곳은 열여섯개의 안디옥 중에서 가장 크고 번성했던 곳입니다. 주일
설교에 등장했던 안디옥이 바로 수리아 안디옥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 14절 부터 연결해서 바울이 설교했던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아마도 현재 터키의 중부 지역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여기에 있던 회당에서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어제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3장 15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의 회당에 예배를 드리려고 방문했다가 즉석에서 설교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에게는 즉석에서 설교하는 것이 참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들어보면 정말 거침 없이 설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역사를 훑으면서, 다윗으로 이어져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역사적인 배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에 대해서 특별히 시편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 받는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로움은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선언함을 받는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38절과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사도 바울의 설교라는 것은, 매우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그리고 그리스도가 드러나시는 탁월한 설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진
설교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바울의 영혼 깊은 곳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런면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번에 장모님께서 오랜만에 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것이 저에게 큰 행복입니다.
장모님께서는 한국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다 수료하시고 오랫동안 전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가끔씩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정작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 문 앞에 섰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시기를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라고 물으실 때에 대답할 준비가
안된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로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와 업적이나 노력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그 죄의 모든 댓가를 치르심으로 그분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을 믿고 주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받는다는 그 복음을 우리에게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영혼의 근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붙들고 동행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렇게 담대한 바울 사도의 즉석의 설교를 통해서 회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많은 이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3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머무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약에서부터 이미 은혜를 베풀어오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라 라고 새로운 성도들을 권면하고 격려하신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라는 것은 종교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혹은 질투라는 것이 그저 조금 일어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시기심이 완전히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질문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질투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것일까? 그것은 처음부터 그들의 신앙이라는 것이, 자신들이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척 했지만,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했지만,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인기를
얻고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위선적인 종교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확 쏠렸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느냐 아니냐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인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도시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쫓아내게
되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따른다면 그것은 참 기분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함께 할 사람이
많이 있다면 그것도 정말 좋은 일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나의 신앙 생활의 목적 자체가,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로 부터 인기를 얻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요한복음 3장이 생각이 났습니다. 스토리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원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을 잘 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세례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 중에 한명이 와서 그
사실을 걱정스럽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세례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요한복음 3장 28-29절입니다. '3: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세례 요한이 점잖케 제자를 타이르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사역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결코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신랑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드러나고 그분의 부흥하고 그분이 역사하시는 그것이 자신에게
넘치는 기쁨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례 요한은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인기를 얻거나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쉽게 교회 안에서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여기 모여 있는 우리 모두가 오직 한가지 목표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는 것, 오직 그분이 전해지고
죄인들이 구원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그분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힘 있게 교회를 섬기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시간에 말씀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 감격 그리고 감사가 저의 영혼에 깊이 자리잡게 하시고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복된 성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삶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께서 드러나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저를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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