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일 월요일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할례파 / 디도서 1장 10-16절 주일 설교

 

*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할례파
/ 디도서 10장 10-16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7/10-10-16.html

* 디도서 1장 10-16절 설교 원고

- 기도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자리까지 우리를 이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거룩한 주의 말씀을 들을 있는 놀라운 특권과 은혜를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 오기를 원하며, 어두운 영혼을 밝히시는 찬란한 빛으로 임하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영적인 위로와 권면과 책망과 돌이킴이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들으시며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리며,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 나의 아들

바울 사도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가 아끼는 아들과 같은 존재가 두명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디모데와 디도입니다. 디모데를 부를 때에도참 아들이다 라고 불렀고, 디도를 부를 때에도 나의 아들이다 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는 자녀들이 대학에 가더라도 부모님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지는 않은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맥락은 완전히 다른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녀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은 자녀를 곁에 두고 가까이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이상 그렇게 없을 때에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바울은 너무나 아끼는 영적인 아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바울의 곁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영적 아들 디도에게 당부와 권면과 사랑의 편지를 쓰고 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디도서입니다.

- 위치

지금 편지를 쓰는 바울은 아마도 로마에 있는 같습니다. 그리고 디도는 그레데라는 섬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그레데 섬까지는 무려 천마일이나 떨어져 있고 지중해를 가로 질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디도는 거기에 있는 것일까? 디도서 1 5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비록 자신이 직접 그레데에 머무를 수는 없지만, 가장 아끼는 디도를 통해서 중요한 일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리더를 세우는 것입니다.

- 그들을 방해하는

그런데 바울 사도께서는, 디도의 사역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님들은 혹시 할례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그것은 남성의 생식기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이후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바울 사도가 디도에게 경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교회를 세워가는데 크게 도움이 같은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 할례파의 특징

그런데 할례파 사람들은 오히려 그레데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를 한번 보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이지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충분한가? 우리처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구분을 해야지 어떻게 무분별하게 살면서 구원을 받겠는가?”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사람들에게 할례라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표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할례라는 것은 굉장한 자기 자랑이었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나는 너와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며, 나는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례라는 것은 누구도 흔들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은 할례파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사람들 앞에서 당연히 주눅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대단해 보이고 나는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서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정말 그런 같다, 저렇게 대단해 보이는 할례를 받으면 정말 구원을 받을 같다” 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끌려 갔을 것입니다.

- 속이는 자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 사도께서 얼마나 실랄하게 이들을 비판하는가 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할례도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사람들도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는 것이니 이해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할례파 사람들이, 마치 그레데 사람과 똑같다 라고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12절과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3 증언이 참되도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레데라는 섬은 교통과 무역이 발달한 곳이어서,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입니다. 특히 그레데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이들이 하던 거짓말 중에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우리 섬에 바로 제우스 신의 무덤이 있다 라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서 신나게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동네 출신이야 내가 이런데를 가봤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무슨 소리야 여기 제우스 무덤이 있는데 여기 출신이 최고지! 이렇게 서로 뻐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그레데 사람들처럼, 할례파 사람들도 자기 자랑하기에 바빴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섬에는 위험한 짐승이 사는 곳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바울 사도는 할례파가 마치 짐승과 같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할례라는 것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는지들짐승처럼 다른 사람을 거칠게 대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고마치 자신만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그렇게 기고만장했다는 것입니다.

-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례파 사람들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신 것은 그걸 자랑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영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파는 완전히 반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에만 관심이 있었지 속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바울 사도는 그들의 극단적인 이중성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11절에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할례파의 모순

정말 소름돋지 않는가? 지금 그레데를 헤집고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매우 종교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돈을 가져다 정도로 탁월한 언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실제로는 도덕적인 파산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15절에서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단도 직입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진짜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할례를 붙들고 있느라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돌아볼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신이 죄인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지도 당연히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분을 받아들일 있겠는가? 라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없다

오래 전에 제가 고등학생 이야기입니다. 한참 유선 TV 유행하던 시절인데 당시에 이단으로 알려진 어떤 교회의 예배 실황이 녹화 방송으로 중계가 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집에서 채널을 넘기다가 그것을 보게 것입니다. 당연히 평소에는 이단 교회에 가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영상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져서 한참을 틀고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단 찬양팀 수준이 너무 높아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열정적으로 찬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본 찬양보다는 제가 거의 들어본 찬양이었습니다. 아마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찬양 같았습니다. 얼마나 음악적으로도 탁월한지 30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갔을 때에 갑자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그렇게 열정적인 찬양 속에서 예수님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놀랍고 이상하고 소름 돋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찬양해요 하나님을 높여요, 성령님 사랑해요 성령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영광 돌립니다, 온갖 미사여구가 등장하였는데도 놀랍게도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존귀한 이름이나그분의 보혈이나 그분의 대속이나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과 감사는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이래서 이단이구나, 이단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기독교적인 것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의 행위로 인간의 능력으로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며, 정도면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자만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입니다.

- 나의 알량한 자랑이여

얼마 전에 바다에서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타이탄 잠수정의 침몰 사건입니다. 해당 잠수정에는그 잠수정의 주인인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의 CEO 부유한 사업가와 탐험가 등의 5명의 남성이 탑승했습니다

잠수정은 파선된 타이타닉 관광을 위해서 특수하게 제작된 심해 잠수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것입니다. 결국 잔해가 발견되면서 이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사망했다는 것도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사건은 사실상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서 일어난 백퍼센트 인재라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깊은 바다라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수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엄청난 압력을 견딜 있을 정도로 잠수함이 설계가 되어야 하는데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잠수함은 수심 3700미터를 내려가야 하는데 거기에 달려 있는 아크릴 창문은 고작 1300미터밖에 견디지 못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잠수함의 몸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갔지만, 그것을 한번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잠수정이 대서양 한복판에서 운영 되었기 때문에 미국 안에 어떤 기관에도 등록되지 않았고 인증이나 허가를 전혀 받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CEO 태도는 매우 거칠고 교만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이렇게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안전 규제는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다, 나는 논리와 기술력으로 틀에 박힌 규칙을 깼다” 이렇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교만의 댓가는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알량한 생각과 자랑을 가지고, 가장 깊은 심해로 들어간 부실한 잠수정은 결국에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버린 것입니다.

- 견딜 수가 없다

저는 사건을 들으면서, 이것이 마치 영적인 원리인 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주 얕은 깊이로 들어갈 때에는 사람들은 자신 있어 하는 것입니다. “그 얕은 마음에 머무르면서 자기가 남들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몇가지를 가지고, 정도면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사람만이, 인간의 추악한 본질을 제대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나의 깊은 마음 속에 숨겨진 탐욕과 교만과 음란함과 비교해 보았더니, 실제로는 내가 자랑하던 것들이 얼마나 초라한 것이며 얼마나 오염된 것인가를 영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 9절과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7:10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진 기독교에 대한 가장 오해가 무엇일까? 그것은 기독교의 최종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나의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바꾸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도 여전히 할례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착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나는 이렇게 헌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해서 자랑스럽다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마음 깊은 곳은 들여다 보지도 않은채로 마치 하나님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교만하게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다

펜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은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특별히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상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람이 교회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고백이 여전히 반쪽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교회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성경적 교회라는 것인가? 정말 오랫동안 고민이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디도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확신을 주셨습니다. 무엇이 교회인가? 누가 진짜 성도인가?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교회를 망치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진짜 교회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례파야 말로 디도의 가장 대적자였습니다.

그렇다면 할례파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할례파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내면의 죄악을 돌아보지도 않는 자들이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늘어 놓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이유도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들이며, 그저 화려한 종교인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 본질을 발견해야 은혜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는, 우리의 마음 안으로 깊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나를 정직하게 보면서,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진실하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깊이 숨겨진 나의 끔찍한 죄악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과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함을 절박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1 15절에 이렇게 고백하시고 있습니다.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본 사람만이 말씀에 완벽하게 공감할 것이며, 동시에 절대적인 위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를 돌이키는 바로 그것이 참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 때문에 내가 바뀐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외에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존전에 감히 자신을 내보일 조차 없는 죄인인데, 내가 당해야 하는 모든 죄의 댓가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8 그런즉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같이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겉으로 드러난 몇가지가 아니라, 나의 내면과 의도와 결과까지 완벽하게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인정 받을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순종하시며 그분의 완전한 의로움을 나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존귀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셨으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며 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이며 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파와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례파는 모든 것이 자기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그것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전혀 없어도, 나의 구원은 존귀한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이 것입니다. 나는 그저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이다

얼마 전에 시편 2편을 듣는데 12절의 말씀이 마치 저의 가슴을 망치로 치는 같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입맞춤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표시이지 존경의 표시입니다. 당신이 나의 전부라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라도 종교적인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잘난 맛에 신앙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복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혹시라도 그래도 내가 남들보다 괜찮은 몇가지를 내세우면서 정작 나의 전부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평생동안 지독히도 거절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사람이 사랑에 빠졌는가를 확인할 있는 유일한 기준이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상대방을 향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해서 자신이 해준 것은 잊어버리고 내가 잘해야 하는데 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인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주님을 위하여 남들보다 열심히 일한 것조차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오히려내가 삶에서 아직 드리지 못한 작은 것조차 죄송스러워서, 주님 앞에 회개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이진짜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 당신이 믿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미국에 유학 와서 석사를 졸업한 일인것 같습니다. 이후에 목회학 박사 과정을 졸업한 것도 쉽지 않았지만, 처음에 석사 과정 공부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단 저의 아버지 어머니 양가를 통틀어서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었거니와,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나와서 유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굉장히 자부심이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여유 있게 여행을 다닐 때에도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이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입장에서는 절대로 실패하면 안되었기 때문에정말 절박하게 공부하고 소논문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졸업이 확정되어서 학위를 받게 되었다는 최종 이메일을 받았을 때에얼마나 마음이 기뻤겠는가?

너무 기뻐하면서 신나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보 드디어 졸업하게 되었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지? 내가 유학 나오기 전부터 논문를 주제 정하고 매달린거 알지? 내가 이렇게 했으면 어떻게 졸업을 했겠어? 그런데 아내가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오빠, 하나님께서 오빠에게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오빠가 공부할 있는 여건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인도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학위를 얻을 있었겠어?

말을 듣는데 마음이 내려 앉는 같았습니다. 인생에 가장 기쁜 순간에 제가 붙든 것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모든 것을 홀로 이루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자아 도취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이런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세상에 번성하면서, 가장 처음에 시도한 대형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바벨탑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바벨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는가? 창세기 11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4 말하되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어떤 것이라도 그걸 가지고 나의 자랑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너무 자랑스럽다고,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든지 아니면 속으로 품고 있든지 하나님이 없어도 내가 살아갈 있다 라는그 엄청난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것을 중심적으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심지어 종교적인 것으로도 나를 자랑하며 치장하고 살아가던 사람이,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안된다 라고 고백하고, 나는 예수님이 전부라고 고백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그분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진정한 기적이며 영적인 각성이며 삶의 완전한 전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6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께서 평생동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는 ,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의 진정한 자랑이 되게 하는 바로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 말씀의 목적

오늘 말씀 13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깊은 마음을 있습니다. 그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편이 사람들을 엄히 꾸짖으라 라고 디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비참한 실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이 풍성하며 넉넉하신 것처럼,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결코 할례파들이 망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그들의 믿음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의 어떤 것을 자랑하며 그것을 의지하는 삶에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변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병들어 버린 믿음이 성경적으로 회복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맞추는 자들로 그리고 오직 그분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위기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교회의 위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인과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그들 안에서 온전히 높아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함께 예배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헤브론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계시는 가장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나의 업적을 자랑하며, 내가 겉으로 내세울 것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어리석은 신앙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그리스도에게 입맞추며 오직 그분에게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기도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만들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깊은 내면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함을 진실하게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전부를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기 원합니다. 매일의 삶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게하시고, 주님과 진실하게 동행하는 복된 자녀 그리고 헤브론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기꺼이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감격과 능력을 넘치게 부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과 역사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전부로 믿고 오직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머리 위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리옵나이다, 아멘

* "설교문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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