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처음에 뵙고 안부를 나누면서 제가 받은 인상은 아름다우시고, 친절하시고, 위트가 있으시고, 참 따뜻한 분이다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엄마를 보기 위해서 진우 형제가 방문했을 때에 처음으로 진우 형제도 만났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제가 시카고로 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절인데 헤브론 교회 당회에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도착해서 보니 이명은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교제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이 모두 아시는 것처럼, 이명은 집사님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셨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 시간들을 이겨내셨습니다. 헤브론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이명은 집사님의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인께서는 한글 학교 교사로 그리고 교장으로 탁월하게 섬기셨습니다. 두 자녀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아름답게 키우셨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성도님들에게 큰 사랑을 나눠주셨습니다. 탁월한 예술가로서 인간과 자연을 예술 작품으로 남기셨습니다. 기적과 같이 생명을 연장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시간을 가장 의미있게 채우신 너무나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이명은 집사님이 몸이 점점 약해지시는 것을 보면서, 또 가장 강한 항암제를 쓰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께서 그래도 활동이 가능하실 때에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몇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삶에 기억에 남을 만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사님은 본인이 그렇게 아픈 중에도 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어 주셨습니다. 저도 집사님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뵜을 때에도 집사님의 죽음이나 장례식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저 역시 굳이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잠시 든 생각은, 혹시라도 제가 장례를 맡아야 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많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그러하신 것 처럼 절대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저 역시 너무나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집사님과의 대화들을 기억하면서 오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집사님과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집사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지, 고인의 시아버지 되시는 고 옥한음 목사님의 설교가 본인에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본인이 고통 중에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목회자인 저의 눈에도 참으로 놀랍고 감격적이었던 것은, 이명은 집사님의 육신은 눈에 띄게 연약해져 갔지만, 그 내면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찬수 목사님께서 주일에 헤브론 교회에서 설교하실 때에, 하나님과의 친밀함 Intimacy 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명은 집사님과 대화하면서 느낀 것이 정확하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본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하는 지 또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시는지 들려주시는데, 마치 딸이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이명은 집사님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아버지 하나님의 신실한 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신 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신 신이며 절대자이십니다. 세상은 존재하지 않던 아무것도 없던 그 때에 그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며 빛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가장 완벽한 곳이었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분에게 대적하여서 결국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인간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병들었고, 그 마음은 마치 어두움이 가득한 것처럼 처음부터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싫어하는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하여,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동일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죄를 짓는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놀라운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 찬란한 빛이 직접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치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 속에 빛을 만드신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고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생명을 주시고 밝히심으로, 우리의 병들고 어두운 영혼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인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빛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시며, 오직 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고, 오직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성도의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고난이 없고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마치 질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명은 집사님처럼 강철과 같은 의지를 가진 분조차도, 결국에는 육신이 연약하여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이 다른가?" 라고 우리에게 질문하시며 "그는 보배를 가진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영혼 안에 가장 가치 있는 보물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인간으로오셔서,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의 댓가를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어떤 죄도 없으신 순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서 십자가에서 가장 잔인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이심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역사 가운데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을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자와 영적으로 연합하시며, 그에게 영적인 생명과 능력을 공급하시며,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며, 그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명은 집사님의 삶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성경적이고 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고인은 자신의 육체가 연약해지고 이 땅에서 생명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사랑하였고, 자신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확신하며 의지하는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에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고인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질그릇"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약속하시는대로, 집사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하늘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고인께서 누리셨던 그 놀라운 영광의 빛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마음에도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예배의 이 거룩한 시간이 우리의 영적인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스러운 빛이 우리의 영혼 깊은 곳으로 들어오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든 죄들을 돌이키며 용서 받고 고인이 그러신 것처럼 하나님의 복된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시는 구원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기는, 고인이 평생동안 그러하셨던 것처럼, 내 안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하시고, 보배이신 그분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며, 사랑하며 그분과 동행하시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또 조문객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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