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7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33) - 정금 같은 사람

 


1. 가사 살펴보기

고난의 시간 이겨낸 이는 정금 같은 사람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져 있으니
광야의 시간 통과한 이는 보배로운 사람
예수님의 흔적이 새겨져 있으니 

살아 숨쉬는 동안 주만 예배하길 원하네
몸 된 교회 위해 전심으로 섬기며 살리
많이 가지기보다 더 많이 나누기를 원하네
높아지기보다 깊어지길 기도하네

 

2. 곡 소개

곡은 민호기 목사님의 곡으로 특별히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면서 또한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한 곡으로 쓰여졌다. 이 곡은, 성도가 마치 광야와 같은 고난의 시간을 지나감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영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됨을 고백하는 곡이다. 또한 그 고난 속에서도 예배하며 교회를 섬기며 나눔으로써, 성도의 진정한 깊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갈망을 담은 곡이다.

* 민호기 목사, 코로나 시대 힐링송 ‘정금 같은 사람’ 발표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1625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23:10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ile Job cannot find God, he believes that God knows him. He is confident that God will recognize that he has not followed the way of the wicked, contrary to Eliphaz’s claim (22:15).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아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엘리바스의 주장과 반대로 자신이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he tests me Job acknowledges that his current suffering is a test—this parallels the opening scene where the satan figure who claimed that Job would not fear God once great difficulty came his way. Job believes that his testing will have results (compare note on 1:6). He is right—it develops Job’s character and results in an authentic and deep relationship with God (see note on 42:1–6). 그가 단련하신 후에 : 욥은 자신의 현재의 고난이 시험임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욥이 고난을 겪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탄이 등장하는 장면과 평생을 이룹니다. 욥은 자신의 시험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가 옳습니다. 고난은 욥의 성품을 발전시키고 하나님과의 진실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결과를 낳습니다.

I shall come out like gold In a previous speech, Eliphaz encouraged Job to put away his ill-gotten gold (see note on 22:24) and let God be his gold (22:25). Job is confident that, after his vindication, he will come through like gold that has been purified by fire.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이전 담화에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부당하게 얻은 금을 버리고 하나님 자신이 그의 보화가 되게 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한 이후에 불로 정련한 금처럼 나오게 것을 확신합니다.

John D. Barry기타,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23:10.

갈라디아서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6:17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Jesus.

6:17 marks of Jesus. As slaves bore the brand mark of their owner, so the marks of Paul’s suffering identify him as Christ’s slave (cf. 2 Cor 11:23–29). 예수의 흔적 : 노예가 주인의 낙인을 지니고 있듯이, 바울의 고난의 흔적은 그가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10.

6:17 Paul’s scars (Greek stigmata) probably resulted from the severe persecution he had endured as a servant of Christ (see Acts 14:19; 2 Cor 6:4–10; 11:21–33). In contrast with the physical mark of circumcision that the false teachers in Galatia wanted to impose on Gentile Christians, Paul’s scars of suffering were proof that he was Christ’s servant (cp. Exod 21:6). 바울의 흉터는 아마도 그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견뎌낸 심한 박해의 결과일 것입니다. 갈라디아의 거짓 선생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요하고자 했던 할례의 육체적인 표식과 대조적으로, 바울의 고난의 상처는 그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증거였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6:17.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2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3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develops perseverance.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 1:4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NIV)

1:3 The word translated testing of your faith occurs only here and in 1 Pet. 1:7. The term, which means “tested” or “approved,” was used for coins that were genuine and not debased. The aim of testing is not to destroy or afflict, but to purge and refine. It is essential to Christian maturity, for even Abraham’s faith had to be tested (see Gen. 22:1–8). The meaning of patience transcends the idea of bearing affliction; it includes the idea of standing fast under pressure, with a staying power that turns adversities into opportunities. 믿음의 “시련”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오직 이곳과 베드로전서 1:7에만 등장합니다. 이것은 “검증된” 혹은 “승인된”을 의미하는 용어인데, 진품인 그리고 가치가 떨어지지 않은 동전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시험의 목적은 파괴하거나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정화하고 정제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믿음조차 시험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인내의 의미는 고통을 견디는 개념을 초월합니다. 그것은 역경을 기회로 바꾸는 지속적인 힘과 함께, 압박감 속에서도 굳건히 서있는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3.

1:4 HAVE ITS FULL EFFECT. Perfection is not automatic; it takes time and effort. MATURE AND COMPLETE. What James has in mind here is wholeness of character. LACKING. The opposite of mature and complete. This is a word used of an army that has been defeated or a person who has failed to reach a certain standard.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완벽함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 야고보가 여기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품성의 온전함 입니다. 부족함 : 이것은 성숙함과 완전함의 반대 말입니다. 패배한 군대나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Lyman Coleman, 편집자,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96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고난이 성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하여 아름답게 그러낸 찬양이다. 고난이 닥쳐오면 그 당시의 괴로움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에 고난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찬양의 고백처럼 어둡고 힘든 시간을 통과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우리의 영혼 속에 새겨진다.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경험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는 고난을 통과함으로 그의 신앙이 깊어지게 된다. 불순한 것들로 가득한 불완전한 우리의 신앙과 성품은, 고난을 통해서 단련이 되고 순수해지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진정한 삶의 목적이며 평생동안 힘써 추구해야 하는 성도의 부르심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를 짓누르는 고난을 뛰어넘어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발견하고 믿음의 길을 힘써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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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3일 화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9) - Isaiah and the Alter / 하나님을 진짜 만난다는 것

 


* Isaiah and the Alter

넓은 바다와 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에 서면, 뭔가 주저하게 됩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어린아이가 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앞에서 저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듣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단 하나의 설교 안에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사실 정말 오래 들은 설교 한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이제는 다른 설교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어 다른 설교를 들었습니다. 원래 더 많이 듣고 글을 적어보지만, 이번에는 세번 정도를 듣고 스크립트를 보고 공부했습니다. 

영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팀켈러 목사님의 깊이를 모두 따라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삶의 깊은 내면을 만지는 그 논리를 아직 저는 충분히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더 고민하면서 듣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번 설교는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사야는 수도 없이 성전을 방문하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유독 바로 한 날에 하나님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변화시킵니다. 이 설교의 주된 골자는 이사야갸 그렇게 경험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 그리고 진짜 성도의 경험과 가짜 종교적인 경험의 비교가 주된골자를 이룹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하나의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동시에 다른 말씀에서 예화들을 자주 가져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성도님들의 집중력이 떨어질까 주저하곤 하는데, 팀켈러 목사님은 거침이 없습니다. 마리아와 마리다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여러 열심은 있었지만 마르다는 결국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놓쳐 버렸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도 일어났음을 인용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정한 기도교인이 됩니다. 교회 역사상 정말 큰 영향을 준 한분의 회심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이사야가 높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조나단 에드워즈를 인용해서 논증합니다. 은혜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사람들은 사랑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저 역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회개하였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되었던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가끔씩 기도 응답에 포커스를 맞춰서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분들도 팀켈러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염려하는 부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해 주는 것", 그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하며, 자신의 영혼의 변화와 삶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결국 설교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분을 만나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오직 경배를 받으실 분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분을 만나며,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가장 존귀하신 그분을 바라보고 붙들 떄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 맡길 수 있습니다. 

어렴풋이, 그러나 점점 더 선명하게 설교를 배워가는 것이 큰 행복을 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저의 마음과 삶을 집중하고, 그 안에서 더욱 주님을 새롭게 진정으로 만나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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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1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32) - 보혈

 


1. 가사 살펴보기

이 몸에 무슨 소망이 있나 이 삶에 무슨 희망있나
아무것 의지할 것 없네 예수의 보혈
그것 뿐일세 

서러워 울던 나날도 애타게 목말랐던 날도
이제는 모두 잊을 수 있네 예수의 보혈
그것 뿐일세 

나 이제 담대하게 나가네 예수의 보혈 공로로
이제는 의지할 것 하나뿐 예수의 보혈
그것 뿐일세 

주의 보혈 주의 보혈 어린양의 귀한 보혈
나의 죄 희게 하는 예수의 보혈
그것 뿐일세

 

2. 곡 소개

곡은, 찬양사역자 김도현님의 성령이 오셨네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독점적인 능력 그리고 소중함을 탁월하게 표현한 찬양이다. 어떤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그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된다. 어떤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용서함을 받는다.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야 말로 그의 전부임을 담아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Come now, let us settle the matt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1:18 reason together. Repentance begins by learning a new way of thinking from God. Scarlet and crimson represent sin as being of the deepest dye, the stain of which cannot be removed except by the grace of God. He offered cleansing from all their sins (1 John 1:7, 9).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고 방식을 배움으로써 시작됩니다. 주흥색과 진홍색은 가장 짙은 염료로 죄를 표현하며, 얼룩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제거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59.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9:14 How much more, then,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unblemished to God, cleanse our consciences from acts that lead to death, so that we may serve the living God!

9:13–14 Whereas the Old Testament sacrifices could cleanse the outside, the blood of Christ can cleanse our consciences from dead works so that we can serve the living God (9:14). And if you’re clean on the inside, it can work its way out so that dead works that formerly sought to earn God’s favor become good works that are the result of our response to God’s favor. 구약의 제사가 겉을 깨끗하게 하였던 반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의 내면이 깨끗하다면, 과거에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던 죽은 행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의 결과로 선한 행실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61.

요한계시록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1:5 and from Jesus Christ, who is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1:5a John gives three descriptions of Jesus Christ. (1) As the faithful witness, Jesus is our model for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salvation (1:2). (2) The truth that Jesus was the first to rise from the dead is foundational to Christian faith (1 Cor 15:14, 17). (3) As ruler of all the kings of the world (see also 17:14; 19:16), he is the absolute Lord of everything. Inhabitants of the Roman world were expected to declare Caesar as absolute lord; many early Christians died for their conviction that Jesus alone holds that position.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로 묘사합니다. (1) 신실한 증인이신 에수님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우리의 모델이 되십니다. (2)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살아나셨다는 진리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3) 세상의 모든 왕의 통치자로서 그분은 모든 것의 절대적인 주인이십니다. 로마 세계의 주민들은 카이사르를 절대 군주로 선포해야만 했습니다. 많은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그 지위를 가지고 계신다는 확신 때문에 죽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1:5.

요한계시록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7:14 I answered, "Sir, you know." And he said, "These are they who have come out of the great tribulation;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7:14 great tribulation. Many identify the “great tribulation” with a final period of persecution shortly before the second coming. But tribulations for Christians occur throughout the church age, so that the whole age can also be characterized as a time of tribulation (2 Thess. 1:5, 6; 2 Tim. 3:1, 12), which will worsen at the end of time. The passage was intended to comfort first-century Christians as well as those in the final crisis. See note on 11:2. 환난 : 많은 사람들은 환난 재림 직전의 박해의 마지막 기간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위한 환난은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의 전체 역사가 환난의 때로 특징지을 있고, 마지막 때에 가서 힘들어질 것입니다. 말씀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 아니라 마지막 환난에 처한 모든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R. C. Sproul, 편집자,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314.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in the blood of the Lamb: This description symbolizes Christ’s redeeming death for them. • made them white: This description expresses their victory over sin and death and their acceptance by God into eternal life.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었다 묘사는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희게 하였다라는 묘사는, 죄에 대한 그들의 승리와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표현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7:14.

요한계시록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11 They overcame him by the blood of the Lamb and by the word of their testimony; they did not love their lives so much as to shrink from death.

12:11 blood of the Lamb. The Church’s victory over Satan was achieved through the blood shed by Jesus on the cross (1Jn 1:7). and by the word of their testimony. Though Jesus’ death is the effective cause of salvation, the Gospel testimony is the means by which this deliverance is received and spread. 어린 양의 : 사탄에 대한 교회의 승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의 효과적인 원인이지만, 복음의 증거는 구원이 받아들여지고 또 전파되는 수단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219.

blood … word. Believers’ ultimate victory comes through Jesus’ death (1:5) and their witness, which motivates patient endurance and hope for suffering Christians (see note on 1:9; see also Introduction: Purpose). , 말씀 : 신자의 궁극적인 승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그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은 고통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와 희망을 주는 동력이 됩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9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가 가진 참된 소망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자신의 창조주로 부터 분리되고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 지옥의 형벌로 부터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의 죄를 완전하게 없애 주며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것이다. 소망 없던 죄인이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며, 죄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된 것이다.

성경은 성도를 부를 때에,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마귀를 이기시고 승리하셨고,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자들은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지금 시점에 있어 가장 어두운 시절을 걸어가고 있는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하고 존귀한 그리스도의 피와 그분의 희생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며,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최후의 유일한 소망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존귀한 보혈의 능력과 그분의 고귀한 희생이 새롭게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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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0일 토요일

나와 우리의 "한계"를 넘어, "한걸음 더" 나간다는 것

 



장로님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카톡을 읽고 어떻게 답을 드리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어제 찬양이 참 좋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마음에 의도한 대로 진행된 것도 좋았고, 또 팀원분들이 함께 은혜롭게 찬양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영적인 깊은 확신이 또 좋았습니다. 

몇달 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좀 더 찬양팀의 찬양을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전화였습니다. 그때 제 상황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타이레놀을 먹어도 몸은 좋아지지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침체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제 상황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저는 목사님 믿고 지금까지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잠들어가는 저의 마음을 깨운 한마디였습니다.

설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설교보다 더 어려운 것이 찬양 인도입니다. 신경 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선곡을 할 때에 여러가지를 고려합니다. 말씀과의 연관성, 곡 사이의 그리고 곡 전체의 흐름, 멤버들의 연주력과 가창력, 회중의 곡에 대한 친밀도, 곡의 높이 그리고 곡이 가지는 느낌과 뉘앙스 등등을 모두 고려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손에 들려지는 그 네곡과 다섯곡 자체가, 예술의 과정의 결과입니다. 

실제로 찬양이 시작되면 더 많은 것을 고려합니다. 곡의 빠르기, 팀원들의 컨디션, 사운드의 크기와 질감, 싱어분들의 한분 한분의 가창력, 그리고 어디에서 어느만큼 반복할 것인가의 상황 판단, 흐름의 진행을 계획대로 할 것인가 즉흥적으로 더 추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려하면서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예찬팀에 더 이상 큰 부담을 드리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요 찬양을 하고 맡은 사역을 다 하면서, 추가로 주일에 설교하는 것은 이미 제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야기 나누면서 여전한 예찬팀의 갈망을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제안하시는 것들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팀원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들은, 아마도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꿈꾸며,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의 찬양 세션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심오한 과정입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의 부담을 짊어지고 솔로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까지 마무리되는 과정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빚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모든 역량이 총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싱어분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어제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악기팀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어제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충분히 기도하고 먼저 연습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충분히 연습이 될 때에, 어제와 같은 결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정다빈 전도사님이 찬양팀 시작할 때에, 정말 진지하게 부탁했습니다. 피아노는 0.5초라도 쳐지면 안되고, 한곡 안에서 코드를 두번 이상 틀리면 안된다, 솔직한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결국 팀의 하모니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사님이 열심히 따라주었고 거의 저의 기준에 부합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형승 집사님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드럼 심벌을 개인의 것으로 매주 가져오십니다. 정우철 집사님은 베이스가 자신의 삶의 전부입니다. 전문 베이스 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첫 곡에서 부터 송근선 권사님이 아주 부드럽게 연주하시면서 아름다운 힘을 더한 것은, 수천 시간의 음악적 역량이 쌓인 결과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태도와 열심이, 결국 지금의 예찬팀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는 제 자신의 한계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찬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렇게 한걸음을 더 나아가는 사람은, 거기에 걸맞는 희생과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합니다. 희생이 없다면,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라는 바와 실제의 삶을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멘탈리티에서 팀 그로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진정 무엇을 이룰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것을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적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일반적인 예배와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한 예배와 가장 완벽한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서 걸어갑니다. 

저의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압도적으로 듣게 되는 날을 꿈꿉니다. 저는 제가 찬양할 때에, 처음에 들이마시는 호흡만으로도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예찬팀이 함께 음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이 되기를 원합니다. 

"미쳤다" 혹은 "교만하다" 그런 누군가의 말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 벅찬 숭고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상상을 초월하는 열심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없으면, 교회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어설프고 엉성한 것들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장로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장로님이 처음에 가졌던 단점들이 거의 대부분 고쳐졌기 때문입니다. 벌스에서 부드럽게 부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음을 너무 끌지 않는 것 등 제가 부탁드리는대로 거의 완벽하게 곡을 소화해오시고, 또 창법으로도 찬양팀에 맞는 창법으로 잘 바꾸셨습니다. 장로님의 찬양이 팀 전체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바라기는, 장로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찬양의 그 가장 완전한 극치"를 향해서 "평생"을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저에게도 어쩌면 장로님에게도 이 시간들이, 가장 완전한 찬양팀에서 가장 아름답게 찬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시간이 소중합니다. 예찬팀을 인도하는 단 한 순간도 허투르게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찬팀은 저에게 너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의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또 섬기기를 원합니다, 늘 감사드리고, 제가 예찬팀을 섬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함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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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9일 금요일

존경하는 팀 켈러 목사님(1950–2023)을 기억하며 "I’m ready to see Jesus.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 Top Gun: Maverick - The Man, The Legend

 


짧은 삶을 살아보니, 저를 포함해서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멘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멘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넓고 방대한 인간의 삶과 신학 가운데, 그 좁고도 찬란하게 빛나는 길로 능히 인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스스로 그 길을 힘써 걸어가며, 이후에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팀켈러 목사님이 저에게는 바로 그런 멘토 같은 존재입니다. 

그분의 책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았지만, 설교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탁월합니다. 성경적이며 동시에 시대의 정신을 관통하며, 따뜻하며 또한 논리적으로 아름답고, 인간적이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시는 설교입니다. 몇십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은혜가 되고, 제 마음을 움직이고,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그런 설교입니다. 이런 설교가 존재하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것이 항상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암으로 오래 투병하시다가,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셨습니다. "I’m ready to see Jesus.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라는 본인의 유언처럼, 그토록 고대하던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그의 발걸음은 멈추었고 죽음이 그를 무너뜨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은 기꺼이 사망을 이겼습니다. 그렇게 평소에 확신과 사랑을 담아 전하던 그분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소식을 접하는데 마음이 너무 먹먹하더군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설교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을 뛰어 넘는 설교자는 기독교 역사상 앞으로 더 나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성경과 철학으로 시대를 관통하고 설득하고 논증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분이야 말로 진정한 Legend입니다. 겨우 72세의 나이에 소천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없이 마음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분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마지막 말은 ""There is no downside for me leaving, not in the slightest" 였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최선을 향해서 달렸고, 주어진 시간 동안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자신의 고백처럼, 목사님의 떠나는 것에는 부정적인 측면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제 팀켈러 목사님의 위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고민하며 열어가야 하는 책임이 저를 포함해서 모든 남겨진 목회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음으로 그렇게 의지하던 분이 소천하셨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그런 면에서 오히려 더욱 그분의 남겨진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얼마전에 주일 설교 강단에 서기 바로 전에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감히 내가 팀켈러 목사님과 같은 "설교자"라는 타이틀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마음이 뭉클하고 벅찼습니다. 위대한 그분과 같은 설교자라는 동일한 직책을 가졌다면, 그분처럼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해서 마땅히 저의 삶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저에게도, 저의 목회 그리고 저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에 저도 팀켈러 목사님처럼 동일하게 후회 없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 날을 향하여 오늘도 한걸음을 걸어가기를 원하고, 믿음의 길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31) - 예수로 살기 원해

 

1. 가사 살펴보기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알아도 일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주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내 뜻대로 살았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걷지 않았고
사랑해야 함을 알아도 나를 내어주지 않았네
나는 이렇게 소망 없는 사람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해
행함 없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지 않도록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해
날마다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봅니다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해
곤고했던 내 안에서 주의 능력이 넘쳐나네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해
날마다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봅니다

 

2. 곡 소개

찬양은, 히즈윌 7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갈망이 있지만, 또한 동시에 세상으로 그  마음이 향하는 성도의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죄악 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만 살기 원하는 참된 영적인 결단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로마서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7:21 So I find this law at work: When I want to do good, evil is right there with me.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2 For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7:23 but I see another law at work in the members of my body,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at work within my members.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25 Thanks be to God--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I myself in my mind am a slave to God's law, but in the sinful nature a slave to the law of sin.

Paul depicts this inner conflict four times in four different ways. First, there are two egos. The evil and the good are both part of our fallen yet regenerate personality—sin lives in me. Secondly, there are two laws: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22), but another law is at work too—the law of sin (23). Thirdly, there are two cries from the heart. One is what a wretched man I am! (24), while the other is thanks be to God, who delivers m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25). Fourthly, there are two slaveries. I myself [the authentic, regenerate I] in my mind am a slave to God’s law, but in my sinful nature [my fallen self] I am a slave to the law of sin (25). 바울은 내적인 갈등을 가지 다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첫째, 타락했지만 거듭난 성품의 일부로서 악과 선이 함께 있습니다. 죄가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두가지 법이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다른 법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음으로부터 가지 외침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참으로 곤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넷째, 두가지 노예됨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중생한 나는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나의 육신 즉 타락한 자아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NIV Bible Speaks Today: Notes (London: IVP, 2020), 1543.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1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2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3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in that it was weakened by the sinful nature,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man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sinful man,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개역개정) 8: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s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but according to the Spirit. (NIV)

8:1 Therefore. The result or consequence of the truth just taught. Normally it marks the conclusion of the verses immediately preceding it. But here it introduces the staggering results of Paul’s teaching in the first 7 chapters: that justification is by faith alone on the basis of God’s overwhelming grace. no condemnation. Occurring only 3 times in the NT, all in Romans (cf. 5:16, 18), “condemnation” is used exclusively in judicial settings as the opposite of justification. It refers to a verdict of guilty and the penalty that verdict demands. No sin a believer can commit, present, or future—can be held against him, since the penalty was paid by Christ and righteousness was imputed to the believer. And no sin will ever reverse this divine legal decision (see note on v. 33). those … in Christ Jesus. I.e., every true Christian; to be in Christ means to be united with Him (see notes on 6:2, 11; cf. 6:1–11; 1Co 12:13, 27; 15:22). 그러므로 : 여기에서는 처음 7장에서 가르친 놀라운 결과, 칭의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근거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며, 정죄가 없다는 것을 소개합니다. “정죄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세번 모두 로마서에서만 등장하는데 칭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법적 환경에서만 사용됩니다. 이것은 유죄의 평결과 평결이 요구하는 형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댓가를 지불하셨고 신자에게 의가 전가되었기 때문에 신자가 현재 또는 미래에 저지를 있는 어떤 죄도 신자를 대적할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죄도 이 신성한 법적 결정을 뒤집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분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8:1.

8:2–3 Which law you operate by determines whether you live in victory or defeat. The law of sin and death is like gravity. It inherently pulls you down, no matter how high you jump. But the law of the Spirit overrides gravity (8:2). It’s like climbing aboard an airplane, where the laws of aerodynamics apply. You cannot get rid of the law of gravity, but you can transcend it. The Spirit’s law transcends the law of sin so that sin no longer controls the agenda (8:3). 어떤 법칙에 따라 행동하느냐에 따라 승리의 삶이냐 패배의 삶이냐가 결정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중력과 같습니다.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도 중력은 본질적으로 당신을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중력보다 우선합니다. 마치 공기 역학의 법칙이 적용되는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없앨 수는 없지만, 초월할 수는 있습니다. 성령의 법은 죄의 법을 초월하여 죄가 이상 삶의 문제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8:4 The word walk refers to our entire way of life, and it has three concepts imbedded in it. First, it implies a destination: you must point your life toward the will and glory of God. Second, it implies dependence: when you walk, you place one foot in front of another, putting all your weight on that foot for that step. You must rest all of the weight of your soul on God’s power, not your own. Third, walking implies dedication: you must continually take steps, perpetually calling on God to do in you what you could never do alone. 영을 따라 행하는 (걷는) 우리에게 : 걷는다는 단어는 우리의 삶의 방식 전체를 가리키며, 여기에는 가지 개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적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향한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둘째, 의존을 의미합니다. 걸을 발을 다른 앞에 놓고 발걸음을 위해 모든 체중을 발에 싣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당신의 영혼의 모든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셋째, 걷는다는 것은 헌신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혼자서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당신 안에서 행하시도록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부르짖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2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현실의 성도의 모습을 잘 드러낸 찬양이다. 성도의 마음 안에는 두가지 마음이 존재한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또 다른 죄의 욕구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에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모순적인 모습에 당황하고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참된 성도가 경험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만약에 성도가 자신의 모순되는 현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며, 그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에게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붙들고 믿음으로 의지할 때에, 우리가 그분 안에서 용서 받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용납 받았음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고, 다시 한번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참된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의 목적과 걸어가는 모든 걸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일마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넘어져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그분이 내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인도하시며 바른 선택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평생의 마땅한 길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새로운 용기를 얻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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