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0일 화요일

"너는 내 사랑" - 막내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며

 

부모에게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 있다면, 자녀가 태어난 순간일 것입니다. 너무나 작아서 어떻게 안아야할지도 몰랐습니다. 저의 또 다른 존재가 세상 속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아빠가 된 저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너가 바로 나의 아들이구나.”

돌이 되기 얼마전에, 갑자기 막내의 한쪽 눈이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데려갔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본인이 경험한 소아 뇌종양의 경우의 증상과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큰 병원을 예약하고 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소아 암 병동 예약을 어렵게 잡고 뇌 MRI를 찍었습니다. 암과 싸우는 용감한 아이들을 hero라고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가정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의 기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뇌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뇌종양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눈이 왜 쳐지는지 원인을 찾아야했기 때문입니다. 신경외과라는 영역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저와 아내에게, 소아 신경외과라는 분야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또 어렵게 예약을 잡았습니다. 기억도 다 하지 못하는 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근무력증이라는 이상한 단어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한 것은, 중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구나.” 뇌에서 나오는 신호가 다시 근육까지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면역이 너무 강해서 자기 스스로를 공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혹시라도 숨을 쉬거나 음식을 삼키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문제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응급실로 들어오라고 의사와 간호사가 신신 당부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이제 겨우 돌이 되는 사랑하는 막내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잠시라도 연결 짓는다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소아 신경외과의 경우는 전문의가 드문데 따뜻하고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전적인 기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가장 약한 약부터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이 듣지가 않았습니다. 두달 정도 약을 썼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간 약을 처방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너무 마음에 낙심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기는 어떻게 되는걸까요?” 

중증근무력증은 이유를 모르는 면역질환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정말 우연히, 혹시 집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찾았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working하는 이야기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고 확인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당장 새로운 집을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그해의 1월은 유독 추웠습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추위였습니다. 재정은 없어도 깨끗하고 안전한 집을 찾아야했습니다. 겨울은 이사철이 아니라 빈집 자체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나마 있는 집들도 아내의 소셜이 없어서 번번히 거절을 당했습니다. 여러번 어플라이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집을 찾지 못해서 교회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마음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방법이 없어서 속으로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조금은 의연해야하니, 제 마음도 그리고 현재의 상황도 아내에게 다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적적으로 한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출퇴근하기에는 먼길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것을 그나마 인정해준 한 할머니께서, 저의 가정에 집을 렌트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저희의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집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추운 겨울에 이사했지만, 작은 희망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이사를 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약이 듣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내 손을 잡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막내가 눈꺼풀에 힘을 주고 들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약을 먹는 그 순간 만큼은, 아이가 숨을 쉬는지 안쉬는지, 아이가 제대로 음식을 삼키는지 안 삼키는지 마음 졸이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새로 이사한 곳은 여러가지로 쉽지 않았지만, 막내가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이사를 하고 조금은 적응이 되었을 때에, 아이가 좋은 학교 다니게 할려고 이사했냐는 이야기를 몇번 들었습니다. 집을 사서 이사한 것 아니냐고 약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하시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주저하게 됩니다. 왜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막내에 대한 이야기와 저의 마음과 상황을 다 이야기해야하는 것일까? 세상은 여전히 제가 다 알 수 없는 공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추웠던 그 겨울로 다시 밀려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막내가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한지 4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병세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히 아주 가끔씩 약을 먹는 정도이고, 적어도 현재 상황으로서는 더 병이 악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님들께서 많이 기도를 해주셨고 또 염려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시키심입니다. 

그 정도면 이제는 다 나은 것 아니냐는 가볍게 던진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연하게 쉽게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많이 상하긴 합니다. 만약 자신의 자녀가 그랬다면,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으로 누군가를 깊이 공감 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치 막내가 처음부터 아프지 않은 것 처럼, 잊어 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못합니다. 아빠이기 때문이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약은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보관이 되어 있고, 막내가 지치거나 힘들어보이면 긴장이 됩니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말은 하지 않아도 똑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전히 막내는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막내를 지키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그 무게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막내가 개그감이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한글도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 나이인데, 저의 농담을 이해하고  깔깔거리고 웃을 때에, 그 얼굴을 볼 때에 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저의 가정에 주셨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잘 보살피고 또 지키고 싶습니다. 저의 생일 따위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내의 생일은 이렇게도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막내가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그분의 기쁨이 되고 그분의 영광을 마음껏 드러내기를 기대하고 또 기도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