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일 월요일

참된 남자다움을 찾아서 / Just The Way You Are - Billy Joel



그러면 일과 삶이 통합되었던 (미국의) 식민지 시대에 가족간의 관계는 어떠 했을까? 우선 남편과 아내가 날마다 나란히 함께 일했으며 동일한 경제적 기업을 공유하고 있었다. 한 역사가는, 식민지 시대 여성의 경우 결혼은 '남편 옆에서 동역자가 되어 ... 도살, 은세공 작업, 인쇄, 의자의 천 갈이 등 남편의 일에 필요한 기술이면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의미했다' 고 말한다. 중략...

식민지 시대에는 남편과 아버지가 집안의 머리로 간주되었는데, 여기서 머리됨의 의미도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되었다. 즉 그것은 자기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집안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신적으로 재가된 직분으로서 정의되었다. 중략... 그는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도록 요구받았다. 남편과 아버지는 개인적 야망이나 자기 이익에 좌우되어서는 안되고 온 집안의 공동선을 위해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중략...

일상 생활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일과 자녀 양육의 책임에 통합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가정을 중심으로 생산적인 일이 수행되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일하는 법을 훈련했기 때문에, 그는 '하루하루, 해마다 눈에 보이는 존재' 였다. 아버지의 역할은 직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시작되는 별개의 활동이 아니라, 하루 일과에 속한 불가결한 일부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자녀 양육에 관한 식민지 시대의 문헌 - 설교와 자녀 양육 지침서 같은 - 이 요즈음과는 달리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주로 아버지를 대상으로 했다. 아버지가 일차적인 부모로 간주되었으며, 자녀의 종교적 지적 훈련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남자들은...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여성만큼이나 편하게 느꼈는데, 집안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살림살이를 꾸릴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요리와 가사에 관한 책들이 일차적으로 남자들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들은 손대접에 신경 쓰는 만큼이나 실내 장식에도 열심이었다.' 중략...

이 모든 것이 산업 혁명과 함께 바뀌었다. 중략...

가장 자명한 변화는 남자들이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가정과 들판을 떠나 일을 좇아 공장과 사무실로 가야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집안에 늘 있던 남자들이 급속히 사라져 버렸다. 중략...

그 결과, 19세기 중반에 출간된 자녀 양육 지침서에는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자녀 양육에 관한 설교와 소책자가 처음으로 아버지나 양친 부모가 아니라 순전히 어머니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다. 이제 남자는 일차적으로 아내를 통해서 자녀들과 연결된다고 느꼈다. 중략...

자녀 양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은 과거에 집안의 다른 어른들 - 조부모, 독신인 친척, 나이 많은 형제, 하인, 특히 아버지 - 과 함께 그 과업을 나누던 때보다 더 두드러진 양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어른들이 집을 떠나 일터로 가게 되자,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순전히 어머니의 책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여성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경험하는 한편, 동시에 여전히 남아 있는 소수의 일에 대한 책임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경험했다. 중략...

새로 등장한 산업 자본주의 세계는 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보급시켰다. 자본주의 세계는 각 사람이 개인 대 개인으로서 다른 이들과 경쟁할 것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는 자기 이익과 개인적 야망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이 적절하고, 심지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그러한 경향은 가정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결국에는 식민지 시기의 가치관이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졌다. 청교도들은 '정열' 을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공공선을 위해 통제하고 억제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이르면, 남자의 '정열' 과 자기이익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평등과 경제적 번영의 근원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중략...

그리하여 공 / 사 의 분리는 남녀 간의 뚜렷한 대비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MIT 대학의 케네스 케니스턴은 이렇게 쓰고 있다. '가정은 특별히 보호된 장소요, 부드럽고 순수하며 관대한 정서(어머니 안에 구현된)의 저장소이며, 노골적이고 경쟁적이며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상업의 세계(아버지로 구현된)를 막는 요새요 보루가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역전이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남편과 아버지가 가정의 도덕적, 영적 지도자 역할을 하도록 권유받았다. 그러나 이제 남성은 선천적으로 거칠고 잔인하며 아내에게서 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한다. 중략...

이것은 이중 잣대의 기원인데, 겉으로는 여성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어쨌든 그들에게 덕의 집행자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역학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로툰도가 설명하듯이, 본질적으로 미국은 남성을 덕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할 의무에서 풀어 주었던 셈이다 .처음으로 도덕적, 영적 지도력을 더 이상 남성적 특질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의 일이 되어 버렸다. 중략...

미국 교회는 대체로 남성다움이 재정의되는 것을 묵인하는 입장을 취했다. 수세기 동안 남편과 아버지가 가정의 머리된 직분으로 신적 소명을 받았다고 가르쳐 온 교회가, 이제는 대상을 바꾸어 주로 여성에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중략...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2대 1의 비율인 경우도 많았다. 중략...

많은 성직자가 공적 영역에서 변호될 수 있다는, 종교에 대한 인지적 주장을 펴는 데서 후퇴하고 말았다. 그 대신, 그들은 신앙을 경험과 감정이 속한 사적 영역으로 옮겼으며, 따라서 그것은 여성의 관할구역 아래로 들어갔다. 중략...

요컨데, 교회는 남자들 사이에 퍼져 가던 세속주의 풍조에 도전하기보다 대체로 그것을 묵과하고 여성을 향해 돌아섰던 것이다. 성직자들은 종교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영역이 하나라도 남은 것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가정이 바로 그런 영역이었다. 한 역사가에 따르면,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은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던 데 비해, 1800년대 초 '뉴잉글랜드 목사들은 '어린이의 취향과 정서와 습관' 을 형성하는 데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자신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열렬히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 결과 '어머니들이 예전에는 아버지들의 일이었던 가정기도 인도를 점차 떠맡게 되었다.' 중략...

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성을 남성의 도덕적 개혁자로 만들려는 시도는 자기 파괴적인 것이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덕이라는 것이 인간의 자질이 아니라 여성의 자질로 정의될 경우, 남자에게 덕스럽게 되라는 것은 결국 여성적 표준을 강요하는 셈이며, 그런 표준은 남자의 본성에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덕스럽다는 것은 남자답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으로 되는 것을 의미했다. 중략...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일하고 있었으므로 근대성의 풍조를 먼저 흡수한 데 비해, 사회적 개혁운동은 대체로 여성의 주도하에 (성직자의 후원을 받으면서) 이뤄졌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공적 영역을 도덕으로 재무장시키고 남성을 전통적 가치관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이 여성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남자들은 재도덕화의 시도를 '여성적' 가치관의 강요로 인식했으며, 그것에 정하아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성이 종교와 가정에 반항했고, 그로 인해 종교와 가정은 모두 평가절하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었음에도 일부 사회비평가들이 남성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일'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중략...

그러나 미국의 역사 기록은 이런 접근이 실효가 없음을 보여준다. 오직 남성들 스스로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 남자다운 모습이라고 확신할 때에만 남성들이 가정 생활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이 사실이다. 즉 부모로서의 의무와 희생이 남성적인 가치라는 것, 부부 간의 사랑과 정절이 바깥에서 남성에게 강요된 여성적 표준이 아니라 남성적 성품의 불가결한 측면 -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그 무엇 - 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 완전한 진리, 낸시 피어시 601-631p 발췌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녹녹한 일은 아닙니다. 어떤 단편적인 것들을 들어 하나하나 열거하여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떤 역사적인 흐름 안에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끈질기게 추적하여 알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훌륭한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해가는(어쩌면 이제 새롭게 다시 읽어야 하는) 완전한 진리를 들춰보면서, 미국의 역사 가운데 가정 속에 일어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의 변화에 대해, 소중한 관점을 배웁니다. 물론 산업 혁명의 부작용 (남편을 가정에서 빼앗아 가 버린) 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이 책에 나와있지 않습니다.(저자는 그 영역은 이 책에서 다룰 부분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비록 미국의 역사적인 맥락을 조명했지만,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권위와 책임을 잃어버린 가장, 모든 가정의 책임을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방관해 버린 채, 외부적인 생업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프고도 악한 남편의 모습이 사실은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는, 한국 교회의 부흥은 여성들의 헌신과 노력 (저의 어머니와 장모님을 포함하여) 에 뿌리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낸시 피어시가 주장하는, 결국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가 도망하여, 가정이라는, 그리고 여성이라는 영역안에만 존재하고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가슴이 덜컥합니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 고민해야겠지요. 저는 목회자이기 이전에, 남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입니다. 요즘에 정말 많이 언급되는 '가장됨' 의 진정한 회복은, 단순히 가정을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끝날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언제나 그 최종적인 목표는, 참되고 성숙한 기독교인 남성을 양육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구체적인 각론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교회 가운데, 이런 고민과 성찰에 대한 나눔과 도전이 언제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세우고 요구하시는 참된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마땅히 가장이 갖추어야 할 덕과 신앙을 갖춘 가정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

그래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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