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1일 화요일

The Giver / 마태복음 5장 43-48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 좋은 설교를 꿈꾸며

좋은 설교는 어떤 것일까요? 항상 설교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분명히 “전통적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질은 항상, “새로운 옷”을 입게 됩니다. 저는 항상 꿈을 꿉니다. 충분히 성경적이면서, 충분히 적용적이고 시대에 걸 맞는 설교에 대한 꿈입니다.

지난 번 The Healer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아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반면에 비판적인 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인용한 것에 대하여 부작용이 있었던 듯 합니다. 책 인용으로 인해서, 설교에 대한 집중력이 오히려 약해졌고 또 산만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설교자로서 제가 발전하는 과정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것이지만, 비판의 이야기는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성숙해져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단점을 계속 보완해나가야 합니다.

* 책을 인용하는 것의 의미

독서를 오래하면, 마치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수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십대 중반부터 그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한 없이 혼자 길을 걸으며 책을 읽고 줄을 치고, 잠시 벤치에 앉아서 독서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담은 순간 만큼은,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의 본질에 대한 소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잃어버린 시대에, 누군가의 깊은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하고, 또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 놓으며 길을 찾아가는 것은 "성숙한 성도의 태도"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의 설교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설교자와 성경과 책들이 대화를 나누고, 성도는 그 자리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책을 인용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일반 은총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일반 은총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총을 통해서도 주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일반 은총이야 말로 “현실의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만 인용하고, 성경만 이야기하고, 성경에서만 모든 설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탁월한 세상의 진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결국에는 성경의 진리가 가장 탁월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 항상 저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성도에게 가장 좋은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설교의 구성 

이번 설교는, 산상 수훈의 일부분입니다. 보통의 주석들과 스터디 바이블들은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을 다각도로 오래 묵상하고 생각하고 자료들을 찾으면서, 제 마음에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두가지는 이것입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원수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을 접근할 때에, "원수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 원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 보통의 접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원수 뿐만 아니라, "나와 가장 친한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까지 한꺼번에 언급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친근한 관계에서 원수까지 나아가는 "인간 관계의 넓은 스펙트럼"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접근하였습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접근인데, 저는 이러한 이해가 성도의 현실에 훨씬 부합된다고 느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완전하시다 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라는 Carson의 주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verse does justice to the word teleios but also notes that the form of the verse is exactly like Leviticus 19:2, with “holy” displaced by “perfect,” possibly due to the influence of Deuteronomy 18:13 (where the NIV renders LXX teleios by “blameless”; cf. Gundry, Use of the Old Testament, 73–74). Nowhere is God directly and absolutely called “perfect” in the OT: he is perfect in knowledge (Job 37:16) or in his way (Ps 18:30), and a man’s name may be “Yahweh is perfect” (so yôtām [Jotham], Jdg 9:5; 2 Ki 15:32). But here for the first time perfection is predicated of God (cf. L. Sabourin, “Why Is God Called ‘Perfect’ in Matthew 5:48?” BZ 24 [1980]: 266–68).

D. A. Carson, “Matthew,”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Mark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9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194.

그렇다면, 결국에는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드러나야 하며, “성숙의 차원”에서 우리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며, 그리고 “성숙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까지 설교자는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설교에 대한 논지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결국 “가장 작은 수준에서 습관을 만들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책들과 성경을 통해서 논증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작게 시작한 사랑의 습관으로부터 관계의 폭을 넓혀서, "결국에는 원수를 사랑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고 상을 주신다라는 구조로 마무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설교의 자료 준비 

설교가 단순히 “주해의 모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들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적이고 적용적인" 설교의 이상향은, 주해 이상의 것을 목회자에게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자료들을 폭 넓게 찾고 다루는 것이 항상 필요합니다.

이번 설교는 의도적으로 "기브앤테이크"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설교자의 대화 상대”로 삼았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책 자체가 워낙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설교 본문과 잘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애덤 그랜트는 “인간 관계에서 주고 받는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서 굉장히 잘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설교 제목인 The Giver 역시 이 책에서 따 온 것입니다. 

"진정한 기버이신 하나님" 이라는 논지까지 내용을 끌고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설교 처음부터 애덤 그랜트의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설교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니, 설교 전체에서 Giver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어색했다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글 설교를 하면서, 주로 사용된 용어는 정작 R발음이 계속 들어가서 어색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용어라도 “좀 더 한글 자체로 풀어서” 설교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기버가 되는 것은, "성경의 문맥상"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기브앤테이크와 루터 저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는 루터 전집을 로고스로 가지고 있지 않지만, 루터란 스터디 바이블이 루터 전집에서 인용하고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터디 바이블 하나로 primary source까지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Luth “Do you see now how pious you are if you are friendly and kind only to your friends? You are just about as pious as the thieves and the scoundrels, as the whores and the criminals, or as the devil himself” (AE 21:127).

AE Luther, Martin. Luther’s Works. American Edition. General editors Jaroslav Pelikan and Helmut T. Lehmann. 56 vols. St. Louis: Concordia, and Philadelphia: Muhlenberg and Fortress, 1955–86.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589.


그리고 "최종적인 적용 부분"을 끌어내기 위해서, 진정한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은 "실천을 통한 우리의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며, 그리고 그 습관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반복"부터 필요하다는 것을 책 두권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논증하였습니다. 

실천과 습관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제임스 스미스입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지성 중심의 인간관”에 도전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 필요한데, 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덕에 대한 실천 그 자체"가 필요하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반드시 "사랑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내용을 압축하여서 이번 설교에 인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덕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습관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을 인용하였습니다. 실질적인 임상 결과도 그렇고, 저에게 스스로 적용할 때에도 성도의 변화에 대한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 이 설교가 저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반응

이 설교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는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변화에 대한 지금까지 저의 모든 고민과 답”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디민 논문을 쓰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해 본 결과, 한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반드시 실천을 필요”로하고, 또한 “실천은 습관”을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평생”을 달려가는 것이 성도의 삶 입니다.

설교에 대한 반응은 이번에도 다양했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따로 연락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쉽게도, 들으시는 분들 중에 지루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번 설교 때에는 유독 세분 정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중에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좀 더 잘 준비했으면 좋았을텐데, 혹시 너무 지루했던 것일까?"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도 가졌습니다. 

사실 설교자로서 이번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현재로서는 주일 설교 세번이 저에게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서적으로 잘 제 자신을 다스리고 충전하려고 해도, 이미 두번의 설교를 하면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소진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번의 설교 모두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담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설교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전체 설교라는 관점에서는 제 자신의 힘을 더 잘 안배해야 할 듯 합니다. 

*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길은,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모든 고민과 연구를 담아서 The Healer, 그리고 The Giver 라는 두번의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전통적인 설교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탁월한 책들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성도님들의 마음과 현실의 삶 가운데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제 주일 설교자로서 저의 상황은, 좀 더 전통적인 설교 형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저의 생각을 뛰어넘으시고, 또 제가 알 수 없는 어떤 길로 인도하시며, 저는 그 길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은 성도님들을 향하기 전에 언제나 제 자신을 향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저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계속, 한걸음 그리고 한걸음 더 전진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 모든 것이, 혹시 헛된 것은 아닐까요? 제가 꿈꾸는 설교의 이상향으로 더 나아가고, 주일 예배 이후에 활짝 웃으며 집으로 향하시는 성도님들의 행복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까요?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진실한 설교자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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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7) - 나를 통하여

 


1. 가사 살펴보기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내가 밟는 땅 주님의 땅이니
하늘이 주의 이름 높이 올리며 넓은 바다가 주를 노래해
모든 만물 주를 경배해 모든 입술 주를 찬양해
천지를 만드신 만물의 통치자 높임을 받으소서

내 평생의 주의 이름 높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을 예배 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아버지의 영광이 선포 되야 하리
찬양하며 주님을 예배할 때 하늘 가득한 주의 영광 보리라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

 

2. 곡 소개

곡은, “도우시는 분 성령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이권희님의 곡이다. 특히 이 곡은, 일본 선교 중에 얻은 확신과 경험을 바탕으로 녹여낸 곡이다.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를 통하여서 역사하시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웅장한 찬양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Of David. A psalm.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24:1 the Lord’s. God’s name is the first word of the psalm in Hebrew, placing the emphasis on him: he is the one—not anyone else (like another god)—who owns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everything in it. Everything that exists in the created world, living and non-living (50:12; 89:11). Paul quotes this verse in 1 Cor 10:26 to explain that since God owns everything, all foods may be enjoyed without qualms. 히브리어에는, 이 시편의 첫 단어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놓음으로 그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신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라는 것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창조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01.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10:31 do all to the glory of God. The exercise of rights and liberties is never more important than God’s glory. If God’s glory is at stake even in eating and drinking, then Christians do well to factor God’s glory into everything they do.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먹고 마시는 것에서 조차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59.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7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The nurse, the teacher, the architect, the musician—all should do what they do as an expression of their love for God and in the name of Christ. Each person should approach his discipline, whatever it may be, understanding that it leads not just to a job, but to a life through which God is glorified and humanity is benefited. 간호사, 교사, 건축가, 음악가 등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표현으로 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훈련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훈련이 단지 직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David S. Dockery and Gregory Alan Thornbury, Shaping a Christian Worldview: The Foundation of Christian Higher Education (Nashville, TN: B&H Academic, 200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탁월함은, 지금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잘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마치 어떤 특별한 순간에만 혹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며 이 찬양이 고백하는 것처럼,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생각으로의 전환은, 우리의 마음에 초월적인 견고함, 안정감 그리고 희망을 준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순탄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함께하시며 도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낙심할 만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힘과 동기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순간에 모든 곳에서, “성도의 살아가는 삶의 목적하나님의 영광이다. 나의 삶의 최 우선 순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분이 높아지시며, 그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나의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그분을 드러낼 때에,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그런 삶을 소망하고 믿음의 한걸음을 담대하게 걸어가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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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0일 금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6) - 허망해 보이나

 


1. 가사 살펴보기

허망한 삶이라 여겼던 우리 인생은
한 사람이 짊어진 십자가로 변했네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허망해 보이나
주 안에서 우리 사랑을 외치네

이 곳에 주의 나라와 주의 뜻만이 영원히 이뤄지리
주가 일하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께 우리 찬양과 그의 영광을 영원히 노래하리
포기치 않으시는 당신의 그 사랑을

 

2. 곡 소개

곡은, WELOVE 찬양팀의 people, Ecclesia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전도서의 중요한 메시지인 허망함 혹은 헛됨 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며, “성도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소망,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탁월한 찬양이다. 삶이 때론 헛되게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여전히 일하시고 있기 때문에성도의 삶은 충만한 의미가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 people, Ecclesia’ 발매한 위러브 “소금과 빛 되길”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6842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전도서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1 The words of the Teacher,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2 "Meaningless! Meaningless!" says the Teacher.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1:3 What does man gain from all his labor at which he toils under the sun? 

1:2 Vanity. The Hb. word translated “vanity,” which occurs thirty-eight times in Ecclesiastes, means “breath,” “vapor,” or “fleeting” and in the context of the book refers to that which is frustrating, temporary or perplexing (Introduction: Characteristics and Themes). “Vanity of vanities” is a Hebrew way of expressing the superlative. The Preacher is here clearly using hyperbole to encourage the reader to face the vanity of life; elsewhere in the book, he commends finding satisfaction, the opposite of frustration in life, and presumes that the reader will understand and not be perplexed by his message. 헛되고 : “헛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전도서에서 모두 서른 여덟 나오는데, “”, “증기혹은한순간 뜻하며, 전도서의 맥락에서는 좌절시키는 , 덧없는 또는 당혹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헛됨 중에 헛됨이라는 것은, 최상급을 표현하는 히브리어의 표현 방식입니다. 여기서 전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의 헛됨을 직면하게 하려고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전도서의 다른 곳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좌절과 정반대에 있는 만족을 찾기를 권하면서, 독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당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078.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40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25:40 the least of these Jesus’ remarks here call for Christian care to reach all the way to the bottom of the social structure, thus inverting earthly values. Jesus might be referring to the same people He earlier calls “little ones” (10:42; 18:6, 10, 14). It is unclear whether Jesus is speaking specifically about His followers or about anyone in need. Another option suggests that He is describing judgment on the nations and the “least of these” refers to Israel. 지극히 작은 하나 :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성도의 돌봄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도달하여서, 세속적인 가치를 뒤집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작은 자들이라고 부르셨던 바로 사람들을 언급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지, 혹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그가 열방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25:40.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15:58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15:58 The hope of resurrection makes all the efforts and sacrifices in the Lord’s work worth it. No work done in His name is wasted in light of eternal glory and reward. 부활의 소망은, 주님이 이루신 안에서 모든 노력과 희생을 가치 있게 만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일도, 영원한 영광과 상급에 비추어서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고전 15:58.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개역개정)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NIV)

2:20 Union with Christ means that He represented us in His death and resurrection. But it means more, for it is a living union. Jesus is present with the believer; by the Spirit, the Lord lives in inward fellowship with His own. Paul does not mean that the individuality of a person is suppressed or absorbed; he lives “in the flesh” by “faith.” The union is a spiritual relationship of the utmost intimacy.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대표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연합은 살아 있는 생명의 연합이기 때문에, 이상의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신자들과 함께 실재하십니다. 성령으로, 우리 주님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과 내적인 친교 안에서 살아 계십니다. 바울은 사람의 인격이 억눌리거나 주님께 흡수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육체 가운데오직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연합은 가장 친밀한 영적인 관계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7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삶의 허망함으로 인하여 절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찬양이다. 살아가다 보면, 마치 우리의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섬기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열매가 전혀 없어 보이고, 도대체 이런 일을 해서 무엇에 쓸모가 있는가, 참으로 헛되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낙심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바로 그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세상이 볼 때에는 의미가 없고 헛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행한 모든 것을 주님께서는 귀히 여기시며, 너무나 놀랍게도 그것이 바로 주님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 여기시며 칭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밖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성령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우리를 다스리신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사랑으로 주님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친히 다스리시고 이끌어가신다.

주님께서 친히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다. 때론 우리의 마음이 낙심할지라도, 성경은 우리가 흔들리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주님의 영적인 다스림을 통하여 이루어낸 우리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를 위하여 섬긴 모든 노력과 수고를 반드시 칭찬하시며, 넉넉하게 갚아 주신다. 이 찬양을 통하여, 희망과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모든 순간에 빛나는 성도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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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어디까지 해봤니? (10) - 미국 도서관 "북클럽"에 들어가다

 


* "내 사랑", 북클럽을 찾아서

저는 소위 말해서, "집돌이" 입니다. 집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라면을 끓여서 먹으면서 가만히 앉아서 터미네이터2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제 마음 깊숙이 들어 있는, 저라는 존재의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씩, "내가 어쩌다 여기에 와 있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인생은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항상 뛰어 넘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사랑합니다. 저의 삶의 전부입니다. 인간의 성숙의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제가 인도할 수 있는 북클럽을 오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잠시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방식은, 저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유학을 시작하고 제가 경험한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가만히 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내가 사는 동네"에도 북클럽이 있지 않을까? 먼저 주변의 교회들을 다 찾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주변 교회 중에서 북클럽에 포커스를 맞춰서 양육하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최소한 차로 한시간 정도 거리에는 없더군요, 그저 소그룹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모임들만 있었습니다. 

갈급한 저를 불쌍히 여긴 아내가, 라이브러리를 찾아보라고 해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 adult bookclub 모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기다가 줌으로 하는 모임이 아니라 in person 모임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아, 여기라도 가야하나?" (원래 제가 참석한 모임은 라이브러리 달력에서 지워져서, 다음 모임 스크린 샷을 넣었습니다) 

* 꼭 가야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일단 "누가 이런 자리에 올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전혀 낯선 사람들, 교회와 전혀 상관 없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부담은, "영어"입니다. 아, 영어.. 저는 한국어가 좋습니다. 내 나라 내 언어입니다. 물론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려고 부지런히 노력하지만, 영어는 역시나 부담입니다. 거기다가 북클럽이라는 셋팅은, "가장 고급스럽게 혹은 정신 없게" 영어를 써야 합니다. 어떤 모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의 언어를 맥락을 살려서 듣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가 과연 거기서 적응할 수 있을까?" 

* 그래도 나는 "도전"한다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나는 그래도 도전한다" 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이 그렇습니다. 누가 간 길이 아니라 항상 저의 길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본성은, "너 이미 충분히 바쁘잖아, 괜히 사서 고생하지마, 거기 가면 넌 너무 힘들고 불편할꺼야" 라고 줄기차게 말합니다. 그런데 저의 이성과 저의 꿈은 저를 흔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진부야, 넌 거기 반드시 가야해, 거기에 너의 길이 있어, 너는 너가 해야할 일을 마땅히 해야해, 절대로 포기하지마" 저의 꿈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로젤 도서관은, 저의 집에서 겨우 5분 정도에 있는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차를 몰고 가는 그 길이 참 멀게 느껴집니다. 이미 몇번 가본 곳인데도, 주차장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데스크에서 컨퍼런스 룸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도서관 안에 방을 찾아갔습니다.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 좀 민망하긴 했어도

들어갔더니 오십대 정도 되는 여자분들이 앉아 계십니다. 나이가 있는 분들이 계셔서 저도 약간 당황했습니다. 그분들 중에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약간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물어봅니다. "혹시 북클럽 하러 왔니?" Yes, 엉거주춤 중간에 자리에 대충 앉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사람들이 다 들어옵니다. 약 여덞명 정도가 북클럽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처음에 놀란 것은, "전부 다 여성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라이브러리언 한명이 남자, 그리고 제가 남자입니다. 나이대를 보니 제가 제일 어려 보입니다. 그리고 동양인은 저 밖에 없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은 오십대부터 칠십대 할머니까지 계십니다. 역시 모임 시작 전에 이야기는, "동네 가게 베이컨 가격이 엄청 싸다"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긴장 됩니다. 왜냐하면, 베이컨 가격은 제 분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진짜 Book Lover 들을 만나다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위에 책에 대한 내용만 있고, 어떻게 읽어오라 등등의 가이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알고보니 한달에 한권을 읽고 모인 그날에 그 한권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이 북클럽은 거의 다섯달 전부터 시작이 되었더군요.

모임 진행 형식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담당 사서는, 책에 대해서 약 열다섯개의 질문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질문 하나를 던질때 마다, 참여하는 분들이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겨우 챕터 두개 정도를 읽어 갔기 때문에 특별히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위의 책은 일종의 미스터리 장르인데, 저한테 물어보더군요, "Sam, 너는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니?" "어,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오늘 처음이라 책을 다 읽어야하는지는 몰랐어요." 모두가 웃으면서 저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책을 다 읽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모인 분들이 진짜 북러버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분위기"를 말입니다. 쓸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책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그 분위기입니다. 

책 속에 흠뻑 들어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서로 주고 받으면서 "내용을 확인" 받기도 혹은 "교정"하기도 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거의 한시간 이십 분 동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구나"

미국에 온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저의 영어는 얼만큼 늘었을까요? 사실 영어 실력 자체를 논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영어는 너무 어렵습니다. 뭐 제대로 문법적으로 말하는 것도 언제나 힘듭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이번 모임에 가서 느낀 것은, 제가 영어가 꽤 늘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최근에 집중적으로 말해보카를 하면서, 확실히 "리스닝 파트"가 늘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외국인과의 대화로 들어가면, 정말 "물흐르듯이" 영어가 흘러가면서 들립니다.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스피킹보다 "리스닝"이 훨씬 중요합니다. 제대로 들을 수 없다면, 어설픈 반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 뉘앙스들과 발음과 단어와 문장들이 들립니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해석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이미 지나가는 문장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해보카를 통해서 꾸준하게 리스닝을 연습하고, 또 안들리는 단어와 문장 구조들을 계속 연습한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그 모임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어라는 장벽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 아쉬움, 그리고 벅찬 감격

저는 이미 북클럽으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공부한 관점"으로 이 북클럽을 평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문헌에서 이미 본 것처럼, 미국에서 북클럽은 여성 중심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는 다르게 연세가 있으셔도 얼마든지 북크럽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크리스천 북클럽이 아니라서, "책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간접적으로는, 배경 인물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나누면서 배움이 있지만, "정말 내 삶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도하는 사서도 그저 질문을 잘 준비해서 제공할 뿐, 그것에 대한 "가치 평가"나 혹은 "적극적인 적용의 가이드" 등은 주지 않았습니다. 약간 "방관자의 입장"에서, 모임을 소극적으로 인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저 개인의 "작은 도전의 한 걸음"을 내딛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아마 예전의 저 같았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전혀 다른 인종들 사이에서, 북클럽 모임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 스스로가 리더가 되어서, 전혀 다른 인종들과 한 마음으로 크리스천 북클럽을 인도할 날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동양인 남자 혼자서, 그것도 제일 어린 사람이 와서 앉아 있으니 조금은 안쓰러워보였는지 헤어지면서 한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Sam, 우리를 두려워하지마, 다음에도 꼭 올거지", Yes,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저에게는 두렵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북클럽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데, 이미 사서가 다음 책을 준비해서 가져왔습니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대출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아이들 책을 빌린 적은 많은데, 제가 제 손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것은 처음인 듯 합니다.


분위기를 보니, "최근에 쓰여진 책 중에 베스트셀러"를 읽는 듯 합니다. 책이 굉장히 두껍습니다. 이걸 과연 다음달까지 읽을 수 있을까? 종이책 보다는 아무래도 이북으로 사는 것이 훨씬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을 집중적으로 읽고, 단어를 찾고 단어장에 저장하고 공부하면서 책에 대한 이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북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 구글 북스 & 네이버 사전 

저의 삶의 중요한 화두는, "효율" 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효율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급적,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서 삶을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별 차이가 안나 보이지만, 1년 5년, 그리고 10년 정도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만큼의 격차를 가져옵니다. 

한동안 영어 단어장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북클럽 책을 읽고 영어 공부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적절한 단어장"을 찾아 보았습니다. 목표는, "웹, 셀폰, 아이패드의 연동", 그리고 "편리한 단어장 기능" 등이 목표입니다. 

처음에는 "Quizlet"을 조금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한계가 있더군요, 그것은 단어장 자체에 "발음기호"가 지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영어 공부를 할 때부터 절감한 것이 "발음의 중요성"입니다. 내가 어떤 단어를 공부할 때에 정확한 발음을 익혀 놓지 않으면, 절대로 "제대로 알아듣거나 제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네이버 사전"에 정착했습니다. 웹에서 사용하면서 "풍부한 뜻"과 "정확한 발음기호"를 볼 수 있습니다. 웹에서 저장하면, "셀폰과 아이패드"에도 "동일한 내용"이 뜹니다. 구글 북스는 "구글 번역"을 지원하기 때문에, 만약에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구글 번역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위의 화면은, 제 아이패드에 창 두개를 띄워 놓고, 영어를 소리내어 읽으면서 네이버 사전으로 모르는 단어를 찾는 화면입니다. 찾은 단어는 "바로" 단어장에 저장해 놓을 수 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그리고 틈나는대로 외우면서 공부하기 좋습니다.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 부지런히 공부하면 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이패드에서 구글 번역을 사용할 경우 "창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창 이동"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패드 기본형에서 사용하는 것이, 저의 안드로이드 폰에서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구글 입장에서는 애플이 경쟁사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모든 편의성을 넣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 "내 도전"은 멈추지 않아

"다음 모임"이, 약 삼주 정도 남았습니다. 제 목표는, 책을 "완전히 소화"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임에 들어가보니, 사서가 던지는 질문이 복합적이고 심지어 두개를 한꺼번에 물어보기 때문에 바로 따라가기가 벅찼습니다. 그래서 모임 마지막에 이미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혹시 이 질문들 미리 받아볼 수 있을까?" Yes, 큰 어려움이 하나 해결이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 모임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첫 모임을 끝나고 나오니, 밤이 깊었습니다. 그날 따라, 어두운 밤 거리에 가로 등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군시절이 생각이 나더군요. 여전히 제대가 전혀 보이지 않은 힘든 시간에, 소대로 돌아가는 밤 트럭에 앉아서 바라보던 가로등이 참 예뻤습니다. 마치 그것처럼, 삶이 어렵고 답답할 수록, 아름다운 것은 더욱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제 인생의 가장 어려운 첫 발을 내 딛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앞 길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저, 주님께서 부어 주신 마음에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오늘도 다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앞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영어 어디까지 해봤니?" 모음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80 - 프레소너스 Revelator io24 사용기 / 작고 저렴하지만 모든 걸 다 가졌구나!

 

* STUDIO 2I4

원래 사용하던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프레소너스 STUDIO 2I4' 입니다. 입력 2개 출력 2개인 아주 단촐한 모델입니다. 그래도 외국 포럼 등을 살펴보면 평이 꽤 좋았기 때문에, 더 이상 큰 불만 없이 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이상하게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보컬의 게인 값"이 너무 적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게인을 거의 1시 이상 올려도 실제로 녹음하면 보컬이 너무 작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더 올릴 수도 없는 것이 프리앰프 노이즈가 올라옵니다. 그래서 노이즈가 항상 크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노이즈 억제 플러그인을 또 사용했습니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다른 모델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말 필요한 기능이 뭘까?" 사실 좀 더 근사한 모델로 확 업그레이드 하고 싶었습니다. 헤드폰 2개 정도에 입력도 4개가 동시에 가능하고, 모니터도 두조 정도는 쓸 수 있는 아웃 풋을 원했습니다. 

* Revelator io24

그런데, 제가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니, 결론은, "보컬에 컴프레서" 정도 더군요. :) 혹시 가능하다면 외장이 아니라 내장 dsp로 컴프레서를 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찾아 보았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모델이 있었습니다. Revelator io24, STUDIO 2I4 동일하게 똑같이 프레소너스 모델입니다. 이미 출시된지 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흥미가 생겼습니다. 

* 디지털 믹서처럼?

대부분의 저가형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디지털로 볼륨등을 처리하지 않고 아날로그 적으로 처리합니다. 인터페이스에 붙은 노브를 돌려서 헤드폰과 메인 볼륨 등을 조절하고, 또 마이크 게인 값을 조절합니다.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상당히 불편합니다. 그런데  Revelator io24는 살펴보니 "거의 디지털 믹서와 유사"합니다. 노브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내부 설정 창에 따라서, 모든 값은 이 노브 하나로 조절합니다. 

심지어 리뷰를 찾아보니, "자체 dsp"가 달려 있습니다. 보컬 녹음을 할 때에 컴퓨터의 cpu 자원을 소모하지 않고 오디오 인터페이스 자체 dsp를 사용해서 이큐, 컴프, 게이트, 리버브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프레소너스 라인 안에서도 "저가형 중에 유일하게" 이 기능을 지원합니다. 아마 다른 브랜드를 포함해도, 이정도 기능은 최소 500불 정도 이상은 줘야하는 모델입니다. 그런데 정가가 200불입니다. 그리고 마침 가까운 기타 센터에 used 모델이 들어왔습니다. 99불!

* 처음 들어본 소감

마음은 더 좋은 것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냥 중고로 적당하게 샀습니다. 그런데 2년 pro coverage를 권유하더군요, 결국 140불 정도 들었습니다. 왠지 뭔가 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여하튼 설레는 마음으로 연결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일단 "비쥬얼"이 정말 예쁩니다. 까만색 외관이 꽤 단단해 보이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모델의 "전면에 달린 작은 LCD"에 많은 정보들이 뜹니다. 크진 않아도 굉장히 아기자기하게 예쁩니다. 헤드폰과 메인 볼륨도 노브를 누르면 돌아가면서 값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서 처음에 딱 들은 소감"은, "STUDIO 2I4 과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킥이 들어가는 곡에서, 그리고 베이스의 초저음이 아주 약간 약한 것 같은데 글쎄요, 겨우 하루 정도 들어보았기 때문에 평가는 좀 더 나중에 해봐야 할 듯 합니다. 

헤드폰을 통해서 들은 소감은, "스피커로 들은 것과 비슷"합니다.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음향이라는 것이 바로 그날의 컨디션 따라도 다르게 들리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저음이 아주 약간 더" 약합니다. 그래서 헤드폰으로 들을 때에 조금 더 심심하게 들립니다. 그래도 다행히 STUDIO 2I4에 크게 밀린다라는 느낌은 없습니다. 고음쪽 느낌이나 전체 해상도나 그런 느낌은, 전혀 문제 없이 깨끗하게 잘 들립니다.

계속 들으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STUDIO 2I4로 들을 때보다, 앞뒤의 소리 분리도가 좀 더 나은 듯 합니다. 초저음은 살짝 약한 느낌인데, 음원의 사운드가 앞에서 뒤까지 가는 레이어가 좀 더 분리가 되어서 들립니다. 아주 흥미롭네요.

* 보컬 레코딩을 해보자

자 이제 실전입니다. 연결해서 바로 "보컬 레코딩"에 사용해 보았습니다. 제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역시나 "자체 dsp" 입니다. 제 맥북이 올드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할 만큼 플러그인을 걸고 보컬 녹음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퍼를 128 정도에 넣고 항상 했습니다. 

그런데 Revelator io24의 경우는 자체 dsp가 있기 때문에 "완전 편리"합니다. daw 채널에 걸린 모든 플러그인을 다 끄고, Revelator io24의 자체 프로세서로만 들으면서 녹음을 했습니다. 버퍼는 64에 놓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기본적인 셋팅 창에 들어가니, 바로 감동이 오더군요. :) 저음이 살짝 약하게 들렸던 아쉬움이,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아니 이건 너무 좋잖아? 

"모든 것이 디지털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터페이스 자체에는 손을 델 일이 별로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스트리밍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스트리밍 믹스 쪽은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프로세서를 한번에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더군요.

원래는 기본 프리셋이, "보컬 프리셋"을 포함해서 여러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셋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값을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아마 스튜디오 원에서는 팻 채널이라고 불렀던 기능으로 기억합니다. 일단 보컬 프리셋을 불러와서 조금 조절을 했습니다. 게이트는 너무 강하게 걸리는 것 같아서 끄고 사용했습니다. 


이큐 같은 경우는, 적당하게 제가 좋아하는 성향대로 걸어서 불렀습니다. "리버브"의 경우에는, 마치 디지털 믹서의 버스 채널로 보내는 것 처럼 그런 형식입니다. 마이크 채널에서 리버브 값을 게인처럼 올리면서 적당하게 조절하면 됩니다. 아주 고급스러운 느낌은 안들었지만, 그래도 "보컬에 느낌을 주면서 부르기"에는 충분히 차고 넘쳤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앱을 통해서 이 설정창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조절이 가능한데 왠지 앱이 작동이 안됩니다. :) 뭐 매뉴얼도 제대로 한번 읽어보지 않고 녹음부터 하는 상황이라 일단 넘어갔습니다. 

테스트로 만들어본 곡은, 보컬 두 트랙에 피아노 하나라는 아주 단촐한 구성입니다. 어떤 리뷰에서 어뜻 본 내용인데, 일단 "자체 dsp는 모니터링에 사용되는 것"이지 실제로 그것이 녹음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셋팅입니다. 리버브 값까지 녹음되어 버리면 후처리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언뜻 봐도, 지금 아래에 보컬 파형은 "컴프레서"가 확실히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녹음할 때 부터 보컬에 컴프레서를 이용하려고 했던 저의 첫째 목적은 달성이 되었습니다. 외국 리뷰에서 본 제 기억으로는 이 셋팅을 끄는 방법도 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리 앰프"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란 것은, "보컬 웨이브의 파형의 크기"입니다. 평소에 하던 것 처럼 게인은 약 1시 방향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잡음"이 거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소리가 "엄청 크게 깨끗하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예전 daw 템플릿에서 그대로 적용했더니 소리가 너무 커서 따로 다시 조절을 해야 할 정도 입니다. 녹음하고 보니, "보컬 소리 자체"가 너무 잘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보컬에다가, 별로 플러그인을 많이 사용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뭐 이큐를 크게 많이 만진 것도 없습니다. 프리앰프 플러그인을 걸고, 채널 스트립으로 컴프레서 약간 걸고, 1k 정도를 살짝 빼고, 10k 이상 살짝 넣고, 다시 컴프레서 하나 넣고, 마지막으로 고음과 저음을 bettermaker로 다듬은 정도입니다. 이렇게 만든 아래 곡을 한번 들어보시죠.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럼 원래 사용하던 STUDIO 2I4는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결론은, "그건 처음부터 고장이었다!" 입니다. :) 이런! 갑자기, 보컬 사운드 때문에 괴로워하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낸 이유는, 도저히 "같은 회사의 같은 프리앰프"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가격대가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프리앰프일텐데, Revelator io24 는 "완전 준수하게" 사운드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동안에 베링거 마이크를 굉장히 의심하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역시 넌 베링거구나 라고 하면서), 결국 오인페 문제였다는 것이 밝혀 졌네요. 

* 결론 - 작고 저렴하지만 모든 걸 다 가졌구나!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이 가격"에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자체 믹서창을 띄우고 "거의 모든 것을 디지털로 조절"하는 것은 너무 편리했습니다. 자체 dsp를 가지고 "거의 제로 레이턴시"로 보컬을 녹음할 수 있어서 녹음 자체가 훨씬 편하고 좋았습니다. 이 dsp가 있고 없고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거기다가 프리앰프도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정말 사운드가 잘 들어와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채널이 두채널 뿐"이라 아쉽고, 해드폰도 스피커 출력도 한조 정도씩은 더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기능에 이정도 편리성에 이정도 가격이라면, 홈레코딩 유저에게 있어서 최적의 모델이 아닐까 싶네요. 혹시라도 홈레코딩에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 쟁쟁한 저가형 모델 속에서 한번 고려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봤니?"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0/blog-post_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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