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성도님들께 전화가 옵니다. 본인이 성경을 읽으시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을 때 연락을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점에서, 본인이 해석이 어려울 때에 목회자의 도움을 청하고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 중 한 분이 고린도전서 5장 5절 말씀에 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5:1 It is
actually reported that there is sexual immorality among you, and of a kind that
does not occur even among pagans: A man has his father's wife.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 5:5 hand this man over to Satan,
so that the sinful nature may be destroyed and his spirit saved on the day of
the Lord. (NIV)
항상 마음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얼만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적당한 것일까?” 물론 성경은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개인적으로 그것을 늘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정확함이라는 것이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실천적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보통의
성도님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설명할 때에 그렇습니다. 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수준은, 그저 한구절을 읽고 의미를 묵상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구절을 한
단어 한 단어 수준까지 들어가서 분석하고 작은 의미에서부터 큰 의미로 확대하여 하나로 종합해 냅니다.
예를 들어서, 헬라어 전치사 하나에, 쉼표 하나 등등에 의미가 나누어지며, 해석이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평생을 이런 일에 훈련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귀한 작업들을 학자들이 노력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보통의 사람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의 성도님들은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가?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읽으며 그 의미를 묵상하면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본인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스터디 바이블과 간단한 주석들을 참조해 나가면 됩니다.
특히 스터디
바이블들은 아주 어려운 논점들을, 성도님들의 필요한 수준에서 분석하고 때론 적당히 생략하면서 최대한
평이하게 설명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가급적 저의 글에는 성도님들도 함께 읽으실 수 있도록 스터디 바이블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몇 가지 스터디 바이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5:3–5 A very
difficult passage. Though Paul is physically absent from the Corinthian community,
he claims to pass authoritative judgment in their midst. The apostle is
commanding the church to expel the offender from their fellowship (“deliver
this man to Satan”). The purpose of this judgment is the reclamation of the
offender, but that can be achieved only if his sinful tendencies are overcome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According to one interpretation of 2 Cor.
2:5–11, this man did repent of his sin. See theological note “Excommunication”
on p. 1703. 매우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입니다. 비록 바울은
육신적으로 고린도의 공동체에게서 부재해 있으나, 그들 한가운데서 권위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 범죄를 지은 사람을 그들의 친교에서 내 좇으라고 명합니다(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런 심판의 목적은 죄를 범한
자를 교화하기 위함이지만, 오직 그의 악한 성향이 제거된 후 (육신은
멸하고)에야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22.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에서는, 이 본문이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세히 분석하여서 들어가기 보다는 적극적인 해석을 정리해서 잘 요약해 놓았습니다.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성도 간의 관계에서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은 멸한다는 것은 그의 악한 성향이 제거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악한 성향이 제거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The expelled sinner finds himself
in Satan’s realm, having been removed from the ordinary means of grace.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A
difficult phrase, either referring to the sinful corruption of man, or the
physical body, which often suffers from the consequences of sin. that the spirit may be saved. The goal
of discipline, even excommunication, is always repentance and restoration.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52.
이 스터디 바이블의 경우에는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것을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보다 좀 더 강하게 설명합니다. 즉, 교회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와 성찬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이 스터디
바이블은 육신을 멸한다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붙입니다. 즉, 육신을 멸한다는 것은 인간의 죄악 된 부패성 혹은 죄의 결과로 고통받는 육체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끝이 아님을 강조하는데, 심지어 교회에서 출교
된 자라 할지라도 항상 그 목적은 회개와 회복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5:5 Destruction of the flesh may refer to God’s turning the sexual offender over to Satan for physical affliction or even physical death. After being separated from the spiritual protection of the church, ideally the offender would recognize his sin, repent, and return to the church. All church discipline has restoration as its ultimate goal.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고전 5:5.
이 스터디 바이블의 경우는, 육신을 멸한다는 것을 사탄에게 넘겨 줌으로써 죄인이 육체적인 고통을 받게 되거나 혹은 죽음까지도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직 교회에서 완전히 쫓겨날 뿐만 아니라 그가 죄의 결과로 육신의 죽음까지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설명하는
것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임을 이해하면서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 교회의 모든 권징의 궁극적인 목표가 회복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5:4–5 Paul declared that the assembled corporate body was capable of judging the offender in the name of their Lord because he, as an apostle, had already rendered his legal decision as though he were present. Paul’s legal perspective on this case would have supported the church body that possessed the authority of the Lord Jesus to render a decision on this sin. They had the authority to remove him (2:2) from their midst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This may refer to physical judgments such as sickness or even death (11:30). If the person were a true believer, banishment to Satan’s domain would cause misery and possibly repentance. Paul expressed hope for the guilty person’s ultimate restoration with the legal phrase, so that his spirit may be saved on the appointed day of the Lord (Rm 2:6, 9).
Michael
J. Wilkins, “The Message and Lifestyle of the Apostle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18.
이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합니다. 다만 다른 스터디 바이블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언급하는데, 성도의 권징에 대한 권위를 교회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을
멸한다는 것은 질병과 죽음을 포함한 육체적인 심판으로 추측하고, 이러한 심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만약 그 사람이 참된 신자라면 사탄에게 내어 줌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회개로 그를 이끌 것임을 예상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궁극적으로 법적인 측면에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위의 내용들을 통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 사도의 맥락은, 심지어 이방인들 중에도 없는 심각한 음행을 행한 자는 교회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단순히 성도들과의 교제로부터 분리시킬 수도 있겠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몸을 통해서 공급되는 은혜의 방편들인 예배와 성찬으로부터 그리고 더 나아가 성도 간의 교제로부터 역시 완전히 배제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탄의 영역에 그 사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거나 혹은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권징을 당하여 심지어 교회에서
쫓겨나고 육체적인 질병을 얻고 고통 받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오히려
이 말씀 가운데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잠시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고통의 시간을 지날 수 있고
자신의 육체 가운데 큰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큰 은혜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는 비참한 것이고 권징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바울 사도가 원하는 목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랄 때가 많이 있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자주 넘어집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큰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
회복하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주의해야 합니다. 이방인들도 범하지 않는 심각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혹시라도 심각한 죄를 짓고 교회로부터 권징을 받는
이가 주변에 있다면,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어떤 형태이든지 죄로 인한 고통을 잘 이겨내고 오히려 그
시간이 회개의 기회가 되어서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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