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아마도 Harry
John Bollback의 작곡과 John Willard Peterson의 작사로 보인다. 두 분다 1920년대 출생한 분들이며 정확하게 언제 곡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제목은 영어 가사의 첫 줄인 In These
Dark Days Lift Up Your Eyes이다.
영어권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찬양이다. 크리스천이 가져야 하는 성경적인 영적인 태도와, 그것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영적인 복을 탁월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2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여기서 바라보자 라는 것은, '신뢰함으로 시선을 고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앞에 놓여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자 모델이 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십자가의 고뇌가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이었으며, 고통이
아니라 보상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개역개정) 5:7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NIV)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 이 구절은 시편 55편 22절의 부분적인 인용과 해석입니다. '맡기라' 라는 것은 '던지라' 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누가복음 19장 35절에서 당나귀에게 겉옷을 걸친 것처럼, '무엇인가에 무엇을 던지다'라는 의미입니다. 크리스천은 모든 자신의
불만, 낙담, 절망, 그리고
고통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 일하심을 알며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순종과 겸손과 더불어 크리스천의 승리의
삶을 위한 태도입니다.
삶이 괴롭고 마음이 낙담하게 되면, 우리의 영적인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 내가 현재 당하는 고난과 괴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 만을 바라보면서, 수렁에 빠지듯이 반복적으로 나의 신세만 한탄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영적인 시선이 '오직 예수님'에게 계속적으로
고정하라고 명령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 '이미 완성' 되었다.
'예수님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은혜의 복음의 내용 안에서, 우리는 낙심 가운데에서도 새롭게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신앙의 모델이 되신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받으실 영광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기대하셨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하여 온전하게 이루어짐으로, 죄인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 놀라운 결과를 바라보셨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당장의
고난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짐을 기대해야 한다.
염려와 근심은 '내 안에'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그것들을 맡겨야 한다. 나의 노력으로는 안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실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내 근심을 던지며 그분께 맡길 때에, 마음에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거친 주의 십자가 흐르는 보혈 강물 되어 내 영혼 깨끗하게 하시고 하늘과 땅을 이으신 주님의 보혈 내 평생의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곡 소개
이 곡은, ‘프뉴마 워십’ 찬양팀의
리더로 섬기시고 있는 정유성 목사님의 곡이다. 정유성 목사님은 현재 덴버에 있는 북부한인 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계신다. 이 곡은, 아주 심플한 가사이지만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복음의 정수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가사 자체가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에, 함께 찬양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좋은 곡이다. 멜로디
역시 어렵지 않아서, 예배 중에 회중곡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갈라디아서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개역개정) 6:14 May I never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NIV)
십자가의 형벌은, 잘못된 삶의 수치스러운 끝으로 여겨졌습니다. 메시아의 구속의 사역이 십자가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모욕적인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에게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효력을 나타내었고, 그 자체가 그의 자랑과 기쁨의 대상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 모든 스스로의 영광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체계가, 바울 자신을 매혹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는, 죽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은 바울에게 있어서 어떤 영향이나 능력도 가지지 못하며, 그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바울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욕망과 매력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새로운 주인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곡에서 십자가는, ‘거칠다’라고
표현되었다. 십자가는 그 겉 모습을 볼 때에는, 세상의 부끄러움과
수치 그리고 망한 인생의 표시이다. 그러나, 가장 거칠고
잔인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고, 완전히 단절되었던 아버지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이어준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것으로 자랑을 삼는다. 그러나, 참된 성도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뿐이다. '그 어떤 것도'십자가와 비교할 수 없다. 십자가의 능력과 그 가치에 비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초라할
뿐이다. 오직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적인 유익들을 얻게 하셨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신앙의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자랑하고 사랑하고
찬양할 대상은, 오직 삼위 하나님 한 분 이시다.
‘믿고 뛰어간다’라는
가사의 표현은, 매우 역동적인 표현이다. 믿고 뛰어간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우리의 마음이 죄로 낙심하고 절망할
때에, 그리고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는 마땅히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우리를 위하여 이미 흘리신
십자가 보혈을 향해 힘껏 달려가야 한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8:9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so
that you through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NIV)
‘부요하신 자로써’ 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원 가운데 계신 것 그리고 성육신 하시기 전에 계셨던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 일체의 성자로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부요하신 것처럼 부요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가지셨고, 모든 힘과 권세와 주권과 영광과 존귀와
위엄을 소유하셨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성한 특권의 독립적인 행사를 제쳐 두고,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그의 자리를 떠나 인간의 형상을 취하시고, 일반 범죄자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가난을 통해 영적으로 부요 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원, 용서, 기쁨, 평화, 영광, 존귀함과 위엄에서 부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성도가 부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께서 주시는 영적인 부를 의미합니다. 그분은 용서와, 의와,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영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값으로 사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주십니다.
이 곡은, 성경의 핵심을 가장 함축적으로 또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곡이다.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스스로 배반하고 떠난 죄인을 포기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꺼이 모든 희생을 감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요함을 포기하심으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적인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리는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찬양 받기 합당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강함과 부요하게 하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의 판단 속에서 살아간다. 나의 외모, 재산, 학력 등등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나
자신의 시선을 통해 계속적으로, 이러한 기준으로 내가 부요한 자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누리는 복만이’영원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부요함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일들을 끊임없이 묵상하고 그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예배와 찬양과 묵상과 기도라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계속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연약한 영혼 가운데, 현재의 영적인 풍요함을 끊임없이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