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크리스천 북클럽 논문 연구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with Google Scholar Labs & Gemini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몇시간만 있으면 새로운 2026년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막연하게 크리스천 북클럽이 좋아서 시작한 유학이고, 연구와 논문과 목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달려 왔습니다. 

신학교 도서관을 누비면서 책들을 들춰보던 것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웹을 서치 하면서 지구 끝까지라도 필요한 자료를 찾아야겠다고 노력하던 것이 엇그제 같습니다. 그때에는 필요한 자료들을 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아티클 하나라도 찾은 날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습니다. 

유학을 시작한 그 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구글 검색에서 Google Scholar Labs으로 발전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인 Gemini가 바로 옆에서 저의 연구를 돕고 있습니다.

구글 스칼라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얼마전에 Google Scholar Labs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한번 사용해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저의 관심사는 '크리스천 북클럽의 장점'입니다. 웹사이트에 접속한 다음에, 'The Merits of Christian Bookclub' 이라고 검색어를 넣었습니다. 

* Google Scholar Labs
https://scholar.google.com/scholar_labs/search?hl=en


그랬더니 아래의 화면처럼 검색을 해줍니다. 구글 스칼라와 비슷하지만, 좀더 주제에 맞춰서 큐레이팅을 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면을 보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이런 아티클이나 논문을 가지고 누구나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쉬운 글을 써 보면 어떨까? 

물론 모든 논문들의 원문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급 학술지들은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비용이 듭니다. 이미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미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그 중에 하나의 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Where do you put Jesus in your thinking?" Negotiating Belief in Book Clubs, 크리스천 북클럽을 하면서 언제나 마음에 들어오던 내용입니다. 나와 다른 색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면서 교류하는 것에 대한 북클럽의 특징을 잘 드러낸 아티클입니다. 

빠르게 글을 스캔하고 Gemini에게 분석과 글 쓰기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최종적으로 검수하면서 시리즈의 첫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 크리스천 북클럽 논문 연구 (01) 소설을 읽으며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단단해지는가?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12/01.html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AI에게 작업을 맡긴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괜찮습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면서 글쓰기와 생산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중입니다. 적극적으로 저의 글을 쓰지만, 또 한편으로는 AI를 곁에 두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이런 논문 연구의 장점은 결국 자신의 수준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북클럽 혹은 북클럽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북클럽 자체에 대한 통찰과 운영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의 논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준비하는 책이 그러한 것처럼, 저는 크리스천 북클럽이 조금 더 본질로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단순히 해보니까 좋더라가 아니라, 아카데믹한 수준에서 그 깊이를 경험하고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크리스천 북클럽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분들은 조금 더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인생, 그러나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부분에 제 자신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의 작은 시도와 도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좋은 열매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3) - 당신과 안식합니다



1. 가사 살펴보기

깊은 숨을 마시며 당신을 느껴요 
잠잠히 찾아오시는 당신을 느껴요 

내 영혼을 당신의 빛으로 비추시면 나는 이제야 

나와 눈을 맞추며 바라보시는 
당신의 곁에서 울고 웃으며 

기대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며 
당신과 안식합니다 


2. 곡 소개

이 곡은, 제이어스의 자작곡이다. 이 곡은, 자신의 자녀를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고백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창세기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행동 중심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항상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고, 정작 쉴 시간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식'이 합당하고 옳은 것임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일을 마치고 쉬셨다면, 우리에게 안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9.

안식일의 안식은 궁극적으로 죄인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는 '영적인 안식'입니다. 또한 이 안식은 종말론적 실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최종적인 안식을 즐거워하고 기대하는 특권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직무와 속죄의 은혜로운 결과임을 성경을 통해 배웁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과 희생 제물로서 더 크고 영원한 영적 안식의 길을 여셨습니다. 

Willem VanGemeren, “Genesi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6–7.

시편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 말씀의 이미지는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대신, 위로를 주고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곁에 있는 어머니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어머니를 온전히 신뢰하는 아이의 상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s 131:2–3.

히브리서 4: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안식은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이 땅의 안식'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이 안식은 '지금'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이며, '나중에' 새 땅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 다음 생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매일의 삶 속에서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806.


4. 찬양에 대한 묵상

안식이라는 것은 한자로 풀어내면, 편안하게 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찬양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하나님의 호흡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이것은, 그분의 창조가 완전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행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분을 떠나면서 영원한 어두움과 불안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죽으시며 죄의 모든 댓가를 치르시고,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함으로 안식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의 안식은 완전하지 않지만, 주님 앞에 나와 예배 할 때에 우리는 안식을 누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자녀된 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진 그분의 의로움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그분과 동행할 때에 우리의 마음과 삶에 안식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안식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다시 크리스마스를 감사드리며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잠깐 시간을 보내고, 내일 새벽과 장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지나간 오늘 하루를 가늠해 봅니다. 저만의 크리스마스를 기록해 놓기 위함입니다. 사라지는 하루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 그리고 어디엔가 기록되는 소중한 하루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게 조금 어려운 것은, 성탄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평온하게 예배를 기다리며 회중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분주하게 예배를 위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 속에 있지만 예배 밖에서 세심하게 모든 것을 살펴야 하기에, 온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있지만 동시에 관찰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 크리스마스는 많이 분주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수요 예배 설교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주일 이상 전부터 본문을 정하고 머리로 구도를 잡고 묵상하지만, 주일 설교, 화요일 새벽 설교, 수요일 저녁 설교, 그리고 성탄 절 설교로 이어지는 맥락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설교를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분주했지만 그래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에 대해서 작년에 비해서는 훨씬 더 개인적으로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설교가 제 마음에는 참 많이 와 닿았습니다. 요즘에 설교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설교자 자신이 은혜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볼티모어교회의 좋은 전통은, 성도님들께서 크리스마스 예배도 열심으로 드리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귀한 믿음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목사로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 예전에는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를 최선을 다해서 섬길 수 있다는 것으로 더 큰 만족을 누립니다. 제가 어떤 것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오는 크리스마스이지만, 그 매 순간을 감사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평온함을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도님들의 행복 속에서 저의 행복을 찾고 싶습니다. 물론 잠깐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아마 은퇴한 이후에 크리스마스가 가장 평온할 듯 하구나, 그래도 지금이 감사합니다. 매번 오는 크리스마스이지만, 다시 크리스마스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2) - 사랑이 오셨다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네
그 사랑 한 번도 우릴 버리신 적 없네  

그 사랑의 증표로 한 아기가 태어났네
그 이름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어느 누구나 하나님 사랑 알도록
어느 누구나 값없이 구원받도록

이토록 낮은 곳 마구간 구유 위에
사람의 몸을 입고 약속대로 사랑이 오셨다

모두 마구간 구유 앞에 나오시오
와서 놀라운 이 소식을 들으시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려 약속대로 사랑이 오셨다

 

2. 곡 소개

곡은 히즈윌의 임마누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실체인 뱀을 저주하신 후에, 영적 존재인 뱀, 곧 거짓으로 유혹하는 자인 사탄을 향해 그를 저주하셨습니다. 첫 번째 복음은 네 후손’(사탄과 불신자들)여자의 후손’(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하와-의 후손인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 있는 자들) 사이의 투쟁과 그 결과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주의 말씀이 선포되는 한가운데서 소망의 메시지가 빛나고 있는데, 그라고 불리는 여자의 후손은 바로 언젠가 사탄을 패배시킬 그리스도이십니다. 사탄은 단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며 치명적인 타격으로 그를 파멸 시키실 것입니다.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Ge 3:15.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에 대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또한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원한 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진실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놓친다면, 요점을 놓친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095.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높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반역하고 비열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 약속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97.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수를 담고 있는 찬양이다. 가장 중요한 것,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오랜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고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대로 독생자이신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녀가 임신하게 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의 유전을 끊어내시고 죄없는 순수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셨다. 그분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신성을 가지고 계시며 단 한번의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죄인을 대신해서 그들의 죄의 댓가를 치르신 것이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낙심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약속하시며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기 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심을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언제나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기회 속에서의 충성'이다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돌이켜보면 가슴 벅찬 순간이 많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속앓이를 한 부분도 있고 심한 육체적인 압박과 영적인 압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저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 있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담이기도 하고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목회자의 삶은, 그 내면에 치열한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앞에는 주어진 설교와 목회의 퀄리티를 유지해야만 하는 압박이 있고, 교회의 영적인 부분 재정적인 부분 또 정서적인 부분까지 늘 마음에 두고 살펴야 합니다. 

두주 정도 독서 노트를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군데 접어 놓은 리처드 마우의 책을 가방에 넣고만 다녔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쉬움과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독서를 하고 정리를 하고 그것을 저의 내면에 쌓아가야만 저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방심이 수준을 현격하게 떨어트립니다. 당연히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실제로 반드시 수행해 내야 하고 그것은 참으로 고된 작업입니다. 

오늘에서야 마우의 책에 대한 정리를 마칩니다. 인상적이었던 여러 부분들을 다시 음미하면서 옵시디언에 정리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을 성도님들께 혹은 지인들에게 말씀드리거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와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은 자신의 삶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탁월한 수준으로 가꿔 가시기를 늘 바라곤 있습니다. 

*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는 것에 대하여
- 옵시디언에 독서 명언을 모으기 시작하다

마우의 글을  정리하면서, '주신 기회에 반응하며 충성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라는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담임 목회는 정말 많은 권한이 있고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목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또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영적인 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순간에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마음이 은근히 들어옵니다. 그러나 마우의 말처럼 '이 세계 전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당회는 참 좋았습니다. 장로님들과 굉장히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시는 많은 기회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오직 주님께 의지할 따름입니다. 올 한해를 여기까지 이끄신 주님, 오늘 하루도, 또 다가올 한해도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고 이병욱 장로님을 기억하며

 


목회는 '관계'입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라는 딱딱한 표현 보다는, 그저 나의 가족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삼촌과 형님들이시며, 또 저의 어머니와 누이들이십니다. 

고 이병욱 장로님은 참 귀한 분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또 성도님들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시던 따뜻한 분이십니다. 얼마나 노방 전도를 열심히 하셨는지 온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또 사시던 아파트에서도 모르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시기 한주 전에 장로님 댁에 방문해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나누셨고 참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소천하시기 하루 전에는 주일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어느 분 옆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장로님 옆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지만, 그래서 본인은 무엇이든지 맛있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몇개월 전에는 장로님과 함께 기도회를 참석했습니다. 교회 연합 기도회인데 다른 성도님들은 스케쥴이 여의치 않으셔서 아무도 못 오셨지만, 장로님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사별한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천하시는 날은 평소처럼 운동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참 마음 아파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요일이 장례를 치뤘지만 그래도 주일에 왠지 장로님이 교회로 나오실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교회 전도지가 준비되면 꼭 노방 전도 같이 나가자고 장로님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장로님과의 좋은 추억을 쌓도록 해주셨습니다. 저의 셀폰에서 함께 기도회 가던 길에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께서 보내주신 장로님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도 함께 저장해 놓습니다. 아름다운 길과 트리가 십자가 처럼 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전하기를 위해 애를 쓰신 장로님의 귀한 인생에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추모 예배의 설교 제목은 '모범적인 믿음을 본 받으라' 였습니다. 고심하며 지었는데, 고인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면 참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또 실제로 설교하면서 장로님의 믿음, 감사, 헌신, 복음에 대한 열정, 그 모든 것을 제 마음에 담았습니다. 

마지막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언젠가 주님 나라에서 다시 뵐 때에, 사실 그때 필요는 없겠지만 준비한 전도지를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못 다 들은 장로님의 이야기들을 이어 들으며 영원히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