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부러운 분들은, 온 가족이 미국에 사시는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양가의 부모님들과 떨어져서 살기 때문입니다. 2011년 미국에서 유학을 시작한 이후에 항상 그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더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첫째 아들이 태어난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추운 미시간의 겨울에, 눈이 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한 없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드디어 집을 향해 병원 문을 나설 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나에게도, 가족이 한명 더 생겼구나...
이제 십대로 들어간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물론 아기일 때의 귀여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소중한 저의 아들로, 그리고 주님께서 빚어가시는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말 수는 적지만, 예배 때에 저의 설교를 귀기울여 듣는 것도 너무 귀엽고, 이렇게 저렇게 저를 향해 여러 아이디어를 주는 것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송구 영신 예배 설교 본문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왜 물어보는지는 몰랐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 알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틀 정도 후에 찬송가 네 곡을 추천해서 저에게 적어 주었습니다. 비록 구겨진 페이퍼 타월이었지만 저에게는 너무 소중했습니다. 한글로 제목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또 뭔가 아들과 저의 인생이 더 견고하게 이어진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찬송가를 꿰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참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한 설교와 굉장히 근접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찬송가들을 유투브로 들려주고 싶다고 하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아빠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첫 소절들을 불러 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곡들을 다 알고 있는지 놀랍다며 동그랗게 뜬 그 눈도 너무 귀여웠습니다.
신앙은, 삶 속에서 드러나고 이어지는 듯 합니다. 저는 저와 아들의 관계가 항상 친근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장난이, 또 저의 진지함이 아들의 인격 속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최선을 다한 설교가 아들의 마음에까지 들어가고, 그것을 통해서 아이의 신앙이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설교후 찬양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예정입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활짝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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