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입고 있던 GAP 후드티가 조금 낡아 보였습니다. 짙은 남색이어서 때도 별로 안타고 좋았지만, 이제 남색에 물이 빠져서 색이 바랜 붉은 색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나 옷을 좀 사도 될것 같은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런 후드티 또 하나 사줄수 있어? 10불이면 더 좋고"
물론 농담이었습니다. 아내가 또 그런 이야기하냐고 웃습니다.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10불짜리 후드티가 어디 있냐고합니다. 그러더니 마침 세일 기간이라고 합니다. 무슨 색을 원하냐고 물어봐서 혹시 밝은 색이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합니다.
받아서 입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오빠 그거 입으니까 이제 흑곰이 아니라 백곰 같은데?" 서로 킥킥대고 웃었습니다.
이상하게 옷이 잘 맞고 가볍습니다. "여보, 혹시 이거 나 얼마만에 후드티 산거야?" "응, 아마 10년 정도 된거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옷이 가벼워?" "아 그거? 예전에 세일할 때 XL 잘못 시킨거 사이즈 없어서 그대로 입고 있다가 이제 오빠 몸에 맞는 사이즈 입어서 그런거야" 또 아내가 킥킥대고 웃습니다.
잠시 멍했습니다. 아 그랬구나,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몸에 맞지도 않던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줄기차게 열심히 입고 다녔다는 것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사실 많이 불편했을텐데, 지나온 10년동안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더 소중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전자 기계에 빠져서,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가지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삶의 어떤 지혜를 깨달아서인지 없어도 괜찮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더 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더 가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흑곰을 벗어나 백곰이 되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렇게 옷에 신경을 안쓰지만 저도 사람이라 새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합니다. 10년이 한순간처럼 지나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렇게 입고 다녀도 별 문제 없었다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10년도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기를 은근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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