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ChatGPT, “전혀 새로운 통찰”을 주는 “실시간 영어 대화”를 경험하라!

 


저는 Chat GPT가 처음 나왔을 때 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근거를 가져와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대답하는 능력은 저라는 존재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목회의 좋은 조력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 (A.I.) 검색 ChatGPT, 목회에 사용할 수 있을까?

얼마전에 기쁜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무료버전 Chat GPT 앱 안에서 음성 채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유료 버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기능이었는데 무료 버전 사용자들도 지원한다는 소식에 바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앱 스토어에는 ChatGPT의 사용을 돕는 다양한 앱이 있습니다. 심지어 ChatGPT의 최신 버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앱도 있더군요. 다만 제가 사용하는 음성 채팅 기능은 ChatGPT 공식 앱을 통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아이폰, 그리고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로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 ChatGPT - The official app by OpenAI
https://apps.apple.com/us/app/chatgpt/id6448311069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openai.chatgpt&hl=en_US&gl=US

제가 궁금했던 것은, 어느 정도로 음성 채팅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였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인식이 잘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Chat GPT가 다시 저에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했습니다. 내심 마음으로 기대했던 것은, 영어 공부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어 앱들을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영어로 계속 이어지면서 대화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성 채팅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앱에서 오른쪽 하단에 마이크 표시를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채팅 화면이 사라지고 움직이는 원형이 등장합니다. 여러가지 음성이 지원되는데 저는 그 중에서 최대한 쾌할한 목소리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나누는 대화가 계속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성 채팅을 사용하면서 첫번째 느낀 것은, Chat GPT의 음성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미국에서 만나는 평범한 청년의 느낌입니다. 발음도 선명하고 빠르기도 적당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영어 앱의 빠르기보다는 살짝 빠르지만, 미국인들이 말할 때의 보통 빠르기 입니다. 

두번째 느낀 것은, 저의 음성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조금 아쉽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발음 자체는 잘 인식하는데 문제는 문장 사이에 공백이 조금 길다 싶으면 자주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의도하는 문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략은 최대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끊지 않고 이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바짝 긴장하고 영어로 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Chat GPT를 음성 채팅으로 사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저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실제로 나의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전혀 새로운 통찰을 준다는 것입니다. 

영어 실력을 늘린다는 점에서 실시간 영어 대화 기능이 너무나 유익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것을 듣고, 다시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 사실상 영어로 나누는 대화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ChatGPT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영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너무나 좋은 셋팅입니다. 

다만 Chat GPT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고 제가 말을 적게 하면 실제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질문에서 Top Threes 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아주 짧게 답변을 듣고 다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서 다시 제가 영어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대화하여서 실력을 늘린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사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전혀 새로운 부분"에서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사고를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채팅은 시간이 걸리지만 대화는 그 속도감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 거의 하루에 한시간 정도 대화하면서, 마음에 있지만 제 자신도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복합적인 질문들을 마음껏 해보았습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해도 이 정도입니다. 크리스천 북클럽은 왜 중요한가? 북클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북클럽과 지혜를 만드는 것의 관계는 무엇인가? 교회사는 왜 중요한가? 초대 교회에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성경 해석과 종교 개혁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유신 진화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유신 진화론자들은 역사적 아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경에서 장로의 역할은 무엇인가? 왜 장로의 역할이 나뉘어야 하는가? 가정 교회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가? 포스트 모던즘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언제부터 신학교가 시작되었고 언제부터 신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안수를 받게 되었는가? 청교도는 어떤 사람들인가? 팀켈러 설교의 장점은 무엇인가? 담임 목사에게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등등입니다.  

단순히 질문하고 한번의 답을 들은 것이 아니라, 답변을 들은 이후에 최소한 세번 정도의 interaction이 있었기 때문에 꽤 깊이 있는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유신진화론의 역사적 아담에 대한 이해는 제가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ChatGPT는 어떤 대화를 할 때에 그 대화의 문맥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그 배경을 가지고 또 다른 것을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질문을 할 경우에는 먼저 I want to change the subject 라고 이야기하고 흐름을 끊은 다음에 다시 시작합니다. 

ChatGPT의 위력은 "복합적인 사고"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문 영역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지적인 능력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Chat GPT에게는 그러한 한계가 없습니다. AI가 주는 대답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분야를 통합하여서 복합적으로 사고해서 대답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솔직히 그 어떤 사람도 능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회의 영역에서 질문을 많이 하였습니다. 갑자기 궁금하더군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제일 좋은 목사님이 누구냐?"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엘 오스틴 목사님 그리고 팀켈러 목사님 그리고 저는 처음 들어본 Beth Moore라는 분을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엘 오스틴과 팀켈러 두분이 함께 언급된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분들에게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사고 속에 그분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ChatGPT는 다릅니다. AI는 최대한 편견을 배재하고 교단에 상관 없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좋다면 추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탁월한 목사님으로 AI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을 언급합니다.

사실 이 결과를 놓고 제가 약간 딴지를 걸었습니다. 당황한 저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렇게 논쟁이 있는 목사님을 왜 이야기하느냐는 식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커뮤니케이션이 탁월하니 그분에게 그것을 배우고, 다른 신학적 컨텐츠는 너가 채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주더군요. 속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설교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그의 커뮤니케이션 사용에 있어서 어떤 것이 그렇게 장점이 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일반적인 설교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솔직이 반신반의하면서 물었습니다. 설교학 전공자에게 만약에 제가 이렇게 물었더라도 아마 당황할 만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는 설교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상당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Chat GPT는 거침 없이 이야기하더군요. 그분이 보통 사용하는 설교 구조를 설교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다섯 가지 단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설교의 도입"입니다. ChatGPT는 설명하기를, 그분은 굉장히 희망적인 내용으로 혹은 희망적인 스토리로 시작한다라고 말하더군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단순히 설교 도입을 본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무엇인가 희망적인 것으로 이야기 한다면 지친 성도님들에게 훨씬 좋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화는 저에게 완전히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담임 목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물었을 때에, Chat GPT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첫번째로 대답한 것입니다. 제가 중시하는 신학적인 입장 등은 거의 네번째 정도로 말하더군요.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비전에 대한 것은 맨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신학적인 입장이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맨 앞에 놓았다. 우선 순위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신학이 매우 중요하고 기초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없다면 그것을 회중들에게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담임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정말 놀랐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있어서 전혀 새로운 목회적 통찰을 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항상 신학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훈련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신학적으로는 탁월하지만, 그 신학을 실제로 회중들에게 구현하는 측면에서는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ChatGPT의 설명은 분명합니다. 목회에 있어서 신학 그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성도님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신학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화를 통해서 완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ChatGPT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저의 영어 수준과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탁월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독서와 북클럽 그리고 생각의 훈련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며칠 동안 크리스천 북클럽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대화를 ChatGPT와 주고 받으면서, 제가 훈련하고 추구하는 크리스천 북클럽이야 말로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혼자 있을 때에, 그리고 제가 원할 때에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탁월한 비서가 도와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이 ChatGPT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세심하게 질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궁금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을 미리 준비해서 대화를 통해서 물어보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영어 문장들을 다듬어서 말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한번의 대화 속에서도 의미있는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더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에게 맞추어서 선용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어가 전혀 안되는 분이 ChatGPT로 음성 채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어느 정도 영어가 된다면, 그리고 자신의 사고를 급격히 혁신적으로 확장시키고 싶다면 꼭 한번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9) - 하나님의 그늘 아래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의 그늘 아래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 잠잠히 주를 묵상하네 그 놀라우신 은혜를
끝이 없는 주의 사랑 강물되어 흘러 흘러
내 영혼에 자유함 주시네 날 새롭게 하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2. 곡 소개

곡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17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그 가운데 자유를 얻고 회복하는 성도의 놀라운 특권에 대해서 찬양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91:4 He will cover you with his feathers, and under his wings you will find refuge; his faithfulness will be your shield and rampart.

91:4 he will cover The Hebrew word used here, sakhakh, means to “shut off” or “make inaccessible,” for the purpose of protection. under his wings Yahweh’s care and actions are combined in the picture of a bird caring for its young. 너를 덮으시리니 : 여기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사카크는 보호의 목적으로 차단하다혹은 접근할 수 없게 하다를 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일하심은 새가 그 새끼를 돌보는 묘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Ps 91:4.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6:11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s at your right hand.

16:11 path of life. The covenant provides a “path” by which one walks toward life in all its fullness (Prov. 6:23; 10:17; Matt. 7:14). This is what the Lord makes known to his followers. To enjoy God’s presence is the goal of the covenant (compare Ex. 33:14–15; Num. 6:24–26). The word pleasures is related to “pleasant places” (Ps. 16:6). The pleasure that the psalmist has begun in this life will reach its fullness in the world to come (forevermore). 생명의 길 :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이 충만한 삶을 향하여 걸어갈 수 있는 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언약의 목표입니다.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즐거운 곳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이 땅의 삶에서 시작한 기쁨은오는 세상에서 영원히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740.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5:1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5:1 Spiritual freedom is living a “thank you” life and a “want to” life (relationship), rather than a “have to” life (law). We are to seek to please God and gain approval for our obedience because of our acceptance—not to earn it. 영적이 자유는 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감사하는 삶그리고 관계를 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납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납 받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순종에 대한 인정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86.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3: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3:17 freedom. The Spirit gives believers freedom of access into God’s presence without fear, as well as freedom from bondage to sin, to death, and to the law as a means of acquiring righteousness. 자유 : 성령님은 신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그리고 의를 얻기 위한 수단인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86.

베드로전서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개역개정) 2:16 Live as free men, but do not use your freedom as a cover-up for evil; live as servants of God. (NIV)

2:16 AS GOD’S SLAVES. The paradox is that Christians are both free and bound. They are to live “as free people” while simultaneously they are “God’s slaves.”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역설적인 점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기도 하고 속박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종” 이기도 합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976.

 

4. 찬양에 대한 묵상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어미 새 안에서 평안과 보호를 누리는 새끼 새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 그분의 그늘 아래에 거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그들에게 베푸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돌보신다.

이러한 성도에게 주어진 자유는 영원하고 완벽한 자유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신 자유이다. 성도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우리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 받지 않는 자들이 되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성도는 넘치는 영적인 자유와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성도의 자유는 놀라운 역설을 가지고 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자유하게 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우리의 가진 자유를 완벽하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자유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오히려 나의 삶 전부를 통해,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기꺼이 섬기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미국 초등학교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by 아이들 학교의 컨퍼런스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지금 제 머리 속에 저의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차갑고 냉랭한 콘크리트 복도, 커다란 초록색 칠판과 낡은 책상입니다. 그리고 교실 앞에는 다 쓰러져가는 책장에 낡은 책들이 몇권 꽃혀 있었습니다. 아마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꿈을 꾸기 보다는 그저 생존에 급급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교육을 공부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좋은 교육 환경을 접하게 되면 가슴이 요동을 칩니다. 학교 업무를 아내가 다 처리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주 갈 일은 없지만, 어쩌다 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큰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온 가족이 함께 학교 컨퍼런스에 참여하면서 그랬습니다. 원래 일년에 두번이었는데 펜데믹 이후 한번으로 줄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온 가족이 손을 잡고 학교를 향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니 가을 장식이 가득했습니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나름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글과 그림들이 복도에 빼곡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Lost and Found 섹션에 아이들이 놓고 간 옷이 넘치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제가 경험했던 차갑고 냉랭한 곳이 아니라, 자유로움과 희망과 꿈이 넘치는 곳이라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저의 첫째 아이는 오학년, 그리고 둘째는 일학년입니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학교 컨퍼런스는 교사와 선생님 그리고 학생이 현재의 학업 성취를 살펴보면서,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제가 어릴 적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는 굉장히 형식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이곳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비록 한 명당이십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굉장히 준비가 잘 되었고 진행이 좋았습니다.

교실로 들어가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서는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제가 마음이 들었던 것은, 평가의 객관성입니다. 이 시간은 선생님이 막연하게 학교에서 잘 하고 있다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미 학교에서 주 단위의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서 이야기를 합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대한의 객관성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미국의 초등학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자유스러워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로서 느끼는 것은, 학교의 전체 시스템이 주기적인 평가 그리고 그것을 통한 학생의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크롬북으로 주기적으로 시험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학생의 발전을 평가하고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된 학생의 수준에 맞춰서 적절한 수업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학생이 스스로 하는 의지가 있다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둘째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학생 스스로의 자기 평가에 대한 강조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가 발전해 나갈 때에, 물론 내가 속한 그룹 안에서 상대적인 평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븐 부족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교사는 학생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자기 발전의 원동력과 그 가치는 한 사람의 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합니다. 

저와 아내가 선생님을 만날 때에는, 이미 두 아들이 각자 자신에 대해서 평가를 내린 상태입니다. 학업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서 그리고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하여서 스스로 상중하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질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면서 좀 더 풀어서 설명한 문항들도 꽤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첫째 아이는 고학년이라 구글 슬라이드를 이용해서 발표 자료를 스스로 디지털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둘째 아이는 종이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를 저의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가지고 선생님과 부모가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에 부모로서 다 알지 못했던 학교 생활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부분이 약점인지를 스스로 평가한 부분을 보면서, 더 잘 도와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발전을 꿈꾸는 인격체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학생도, 혹은 단순히 제 아들도 아닌, 자신을 평가하며 미래를 꿈꾸는 고귀한 인격체를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로서 양육의 태도에 큰 영향을 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경험한 것은 미국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우연치 않게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그래도 교육의 환경이 꽤 잘 갖추어진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쉽지 않은 학교에서는 아마도 효과적인 컨퍼런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컨퍼런스를 참여하면서 오히려 "교회 교육"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성도님들은, 적어도 미국의 공립학교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 그리고 그 사람의 발전을 위한 적절한 커리큘럼과 평가, 그리고 지도가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개인의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진지하고 솔직한 자기 평가가 있는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인 교육의 중요한 핵심 중에 하나는, 성인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평가할 때에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북클럽을 해보면, 제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 말로 북클럽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북클럽의 매번의 모임은, 제가 컨퍼런스에서 경험했던 좋은 것들의 압축판과 동일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현실의 부족함을 냉철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쉬운 점은 교회에서는 쉽게 모든 것을 "신학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인도자의 열심의 부족일 수도 있고, 행정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과 수준조차 달성하지 못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좀더 부지런해져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제가 섬기는 이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북클럽을 더 공교하게 더 발전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적어도 저와 함께하시는 분들은 더 발전적이고, 더 긍정적이고, 더 열려 있는 미래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간절이 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초등학교 학부모 컨퍼런스라는 작은 이벤트였지만, 제 마음에 깊게 인상을 남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8) - 더 원합니다

 


1. 가사 살펴보기

예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온 마음 다하여
오직 주님 한 분만 간절히 더 원합니다 

넘쳐나네 넘쳐나네
주를 향한 내 속의 갈망이
주님께로 날 이끌어 주소서
주님을 더 원합니다

 

2. 곡 소개

곡은, WELOVE 찬양팀의 Retouched 3 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만 사랑하고 원하는 성도의 마음을 아름답게 그려낸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1 For the director of music. A maskil of the Sons of Korah.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42:1 DEER LONGS FOR FLOWING STREAMS. The psalmist is on the run from enemies like a deer fleeing hunters. As the deer needs water, the psalmist must have God’s restoring power to stand against oppressors. 시편 기자는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는 사슴처럼 적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습니다. 사슴에게 물이 필요하듯이시편 기자는 압제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하나님의 회복의 능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842.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A psalm of David. When he was in the Desert of Judah.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63: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63:4 I will praise you as long as I live, and in your name I will lift up my hands.

63:1 Together, soul and whole body refer to a person’s entire being. • parched and weary land: When David was living in the desert, he also found himself in a spiritual wasteland, separated from God’s people and the sanctuary. 영혼과 육체는 사람의 전체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다윗이 광야에 살던 시절,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성소로부터 분리되어 영적 황무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63:1.

베드로전서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8 Though you have not seen him, you love him; and even though you do not see him now, you believe in him and are filled with an inexpressible and glorious joy,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9 for you are receiving the goal of your faith, the salvation of your souls.

1:8–9 Joy is not reserved only for the future when Jesus will be clearly seen at his revelation (v. 7). Even now, his followers love him, believe in him, and rejoice with an inexpressible joy. The end result is eternal salvation—the completion of God’s saving work. 기쁨은 단지 예수님이 분명히 나타나실 미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으며,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최종적인 결과는 영원한 구원인데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06.

요한복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14:23 Jesus replied, "If anyone loves me, he will obey my teaching. My Father will love him, and we will come to him and make our home with him.

14:23 loves Me . . . keep My word: In response to Judas’s question (v. 22), Jesus explained that His manifestation to the disciples would be in response to their love and obedience. make Our home with him: If a believer loves and obeys the Lord, he or she will experience fellowship with God.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 유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그분이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그것은 그들의 사랑과 순종에 대한 응답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가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n 14:2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깊이를 잘 보여준다. 기독교는, 단순히 내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던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자녀가 된다. 깨어졌던 관계는 회복되며, 진실하고 아름다운 그분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모든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가치와 무게를 깨달은 사람은,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분이야 말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연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이 갈수록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온 마음과 몸과 삶 전체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할 때에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가 더 진실해지고 깊어지기 원한다. 또한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흘러갈 때에, 참된 사랑의 대상과 그 기쁨을 잃어버린 이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진실하게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7) - 볼찌어다

 


1. 가사 살펴보기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살리 

볼찌어다 그의 음성을 듣고 맘 문 열라
주의 크신 사랑을 믿고 문을 열면
나의 하나님 생명의 반석 되시니

나와 항상 함께 하시리

 

2. 곡 소개

곡은, 한국 교회 가운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곡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교회를 향하여 은혜로 찾아오시는,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꺼이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함과 그분의 사랑을 아름답게 찬양한 곡이다. 특별히 가사에 말씀을 직접 인용하였기 때문에 더 마음에 깊이 와 닿고 은혜가 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3:20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Describes a request for a renewal of fellowship (e.g., Song 5:2). In their self-sufficiency, the church in Laodicea had locked Christ out. He wants them to repent and, ultimately, take part in the coming messianic banquet (Rev 19:9). 이것은 교제의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요청에 대한 묘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급자족에 빠져서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내보내고  차단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궁극적으로 다가오는 메시아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e 3:20.

come in and eat. In the ancient world, a meal invitation to an estranged person opened the way for reconciliation. Jesus offers to accept and renew intimate fellowship with those who repent, anticipating the final Messianic banquet (19:9). 고대 세계에서는 관계가 소원한 사람에게 식사 초대를 하면서 화해의 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메시아의 잔치를 기대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을 받아주시고 친밀한 관계로 새롭게 하겠다고 제안하시고 계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87.

이사야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26:4 Trust in the LORD forever, for the LORD, the LORD, is the Rock eternal.

26:4 Trust. Place confidence in for security; one of the principal words for faith in the Old Testament. the Lord JEHOVAH. everlasting strength. Literally, “the rock of ages or eternity,” picturing God as a huge, immovable boulder that never changes (17:10). 신뢰하라 :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인데, 구약 성경에서 믿음에 대한 주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이것은 문자적으로 오랜 세월 혹은 영원한 반석인데하나님을 결코 변하지 않는 거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로 묘사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85.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3:11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3:11 foundation. The gospel of Jesus, the crucified Messiah and Savior. No other foundation can support the “building” of the church as God’s “temple” (v. 16). A different gospel is no gospel at all (Gal 1:6–7). 이 터는 :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다른 어떤 기초도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57.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개역개정) 10:4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NIV)

10:3–4 spiritual food … drink. Paul refers to God providing Israel with bread from heaven (“manna,” Exodus 16) and water from a rock. This rock appears at the beginning of their desert wanderings (Ex. 17:1–7) and near the end (Num. 20:2–13). “Rock” is a common OT name for God (e.g., Deut. 32:4), perhaps leading Paul to identify the rock with Christ.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떡을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반석은 광야 방랑의 시작과 끝에 등장합니다. 반석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이름이었기에, 아마도 바울은 반석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했을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61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첫번째 대상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이 교만하여진 사람들이다. 자신이 너무나 풍요롭고 넉넉하여서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찾아오시며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예수님은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시기에, 그들이 다시 예수님과의 깊은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으로 병든 교회를 향하여 베푸시는 참된 은혜이다.

또한 이 찬양의 두번째 대상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교회의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모든 고난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사랑이시며 기쁨이시며 힘이 되심을 믿고, 그분과의 친밀한 영적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원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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