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의 기쁨 by 8개월 주일 설교의 대장정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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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평생 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단순히 학위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입니다. 더 발전하고 더 깊어지고 세상의 본질을 향해서 다가가는 행위 혹은 결과가 바로 공부입니다. 저도 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20대 때에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주었다면, 나의 인생이 더 의미있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장로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라면 당연히 칼빈을 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고 강의도 듣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학위를 위한 공부에 급급한 상황에서 그를 깊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페이퍼를 쓰기 위해서 그의 저작들의 부분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를 정말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결심하고 기독교 강요를 “천천히” 읽기 시작한 것이 20일이 되었습니다. 핵심은 “천천히”입니다. 그리고 “꾸준히”입니다. 매일 한챕터를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없습니다. 이것을 다 읽어야만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성숙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깊이를 더 만들어내기 위해서 칼빈을 만나고 칼빈의 그 말투, 논리, 느낌, 그리고 그가 가진 그 생각의 본질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얼만큼 읽었는가도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생각보다 꽤 읽어냈습니다. 읽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마음에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도 꽤 보수적인 신학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지나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이 아니라면 인간이 그 어떤 것이라도 깨닫거나 이룰 수 없음을 진심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칼빈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심지어 믿지 않는 자들의 탁월함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볼 때에 그는 마치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를 음미하고 읽어나가면서 결국 그의 마음에 저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칼빈이 주장하는 것은 선명하며 확고합니다. 세상의 그 모든 좋은 것들이 심지어 믿지 않는 자들의 탁월함과 재능이 모두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을 진지하게 만나면서 감사하게도 제 마음이 더 겸손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경험하는 모든 깨달음과 지혜와 결과들이 하나님이 주시고 허락하신 것임을 저의 마음 깊이 드디어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칼빈이 변화시킨 저의 마음이 저의 삶과 사역에 결정적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란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께서 이루시지 않는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이 이루시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간절하게 절실하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저에게 참된 영적인 겸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저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깊이 있는 눈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 강요는 거대한 주석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구절들에 대한 그의 이해를 아름답게 엮어 놓았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성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신학적인 이슈에 대해서 학자들이 논쟁을 할 때에 그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견고하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학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신학적 논쟁이 있는 본문들을 볼 때에 과연 누가 성경적인가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논리를 끌어내어서 신학적 논증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합리성이 아닙니다. 핵심은, 그 근본 원리와 내용이 성경적인가 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야 하고, 성경에 근거해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칼빈으로 부터 큰 유익을 얻습니다.
물론 그는 고대의 철학가들의 논지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경의 권위에 호소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순환 논리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칼빈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추가가 지극히 옳은 것임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성경만이 최종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칼빈은 탁월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강요를 읽는 것 자체가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행복합니다. 그분의 손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의 삶의 결과와 모양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저는 여전히 전진하고, 칼빈을 벗 삼아 하나님과 동행하면 됩니다. 제가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읽어내고 적용하는 그 모든 것이 칼빈과 같기를 원하니다. 그것이 앞으로 제가 가야 할 길임을 기뻐하며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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