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잠시 숨을 고른다는 것 by Getaway Tiny Cabin




생각지도 못한 가을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를 쓸 때 마다, 기분이 약간 이상합니다. 휴가를 쓴 적이 꽤 있는데도, 휴가라는 단어는 저와는 늘 멀리 있다고 느낍니다. 유학 나온 이후로부터 마음 편하게 쉬어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공부할 때에는 학업이 버거워서, 사역 할 때에는 사역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떤 성도님이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하는데 왜 목회자만 휴가를 그렇게 길게 받아야 하는 겁니까?"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할 때가 종종 있는 저이지만, 그래도 성도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누리지 못해도, 성도님들을 배려하는 편에 서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며칠 휴가를 받으면서 아내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여보, 이번 휴가의 top priority는 당신이야" 그런데 운전을 하려고 보니, 가방에 지갑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교회 양복에 넣어 두었더군요. 이번 만큼은 아내를 위하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되려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얻어타고 교회를 다시 갔습니다. "인생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말버릇처럼 이야기했는데, 그게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고 교회로 다시 가는 길에, "새로운 것들"이 보입니다. 5년을 직접 다닌 길인데, 운전하지 않고 옆에 타니 처음 방문한 듯 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아파트, 생전 처음 보는 넓은 숲들이 보입니다. 항상 앞만 보고 운전할 때에는 몰랐는데, 잠시 운전하는 자리에서 물러나니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이런 것이 휴가이구나" 

몇주 전에 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갈 곳을 특별히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내에게 "1박 2일 정도는 어디 다녀오면 좋지 않을까?"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입니다. 저의 능력 부족으로, 사역도 가정도 한꺼번에 살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저의 평소 모습을 아는 아내가, 가족이 갈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Getaway Tiny Cabin" 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너무 저렴하게 하루가 나와서 예약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운전이기 때문에, 떠나는 전날에 주소 정도만 확인했습니다. "그저 잠시 쉬면 좋겠다" 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 Getaway Starved Rock
https://getaway.house/starved-rock/

제가 사는 곳에서 두시간 정도 거리였습니다. 떠나는 날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모처럼 만에 나들이인데,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바꾸니 되려 좋더군요. 비가 오는 가을, 그리고 비에 젖은 단풍들을 보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신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가족이구나.."

도착하니, 정말 작은 캐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아마도 컨테이너를 개조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정말 작은데, 그 안에 머무르기 위한 필요한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위 아래로 나뉘어진 침대, 작은 부엌과 식탁과 싱크대,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들어 있습니다. 너무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예쁜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어서 음악을 틀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음악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요? 밥을 지어서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윷놀이를 했습니다. 막내는 언제나 이기려고 합니다. 본인이 이기지 않으면 너무 서러워하기 때문에 저는 왠만하면 져 줄려고 합니다.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군요. 소중한 막내이기 때문에, 막내의 요구 앞에서는 제 마음도 늘 약해집니다. 

저의 집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 가족들이 모여 있으면서, 무엇이 행복인가 생각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데, 무엇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는가 돌아보았습니다. 많은 것이 없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혹은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의지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서 즐겨 먹던 참깨라면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이상하게 맛이 없더군요. 넉넉하지 않은 이십대 때에, 삼각 김밥과 함께 먹으면서 늘 좋아했는데 의아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맛있고 좋은 것에 너무 익숙해졌을까?" 갑자기 울컥하더군요,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을 잊어버린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잠시 울적했습니다. 

두 아들도 이런 캐빈이 처음이지만, 저와 아내도 캐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서로 신이 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작은 안내 종이를 보고서는 내일은 State Park에 가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평소 제 성향은 왠만하면 가지 않는데, 아들이 원하니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룻밤 자고나니 날이 참 맑았습니다.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하는데 저의 마음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처럼 맑은 날도 참 좋지만, 어제 비오는 날도 좋았다고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30분 정도를 달려서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압도적인 자연, 단풍, 가을, 내년에도 꼭 한번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 STARVED ROCK STATE PARK
https://www.starvedrocklodge.com/starved-rock-state-park/

트레일을 꼭 해야겠다고 큰 아들이 제안했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작은 협곡들이 많이 있더군요. 가장 짧은 트레일이 왕복 40분 정도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들들이 체력이 안될 것 같았지만, 섣불리 안된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입장에서는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30분 정도를 트레일을 했는데, 막내는 이미 지쳐버렸습니다. 이미 제 등에 업혔습니다. 협곡 하나 정도를 보았기 때문에 더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옥신각신하다가, 저와 큰 아들만 좀 더 나아가보기로 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서, 산의 계단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는 편인데도, 저도 숨이 차는 수준이었습니다. 최소 100개 이상의 나무 계단을 오르고 나니, 목표로 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큰 아들의 얼굴에서 만족한 표정을 봅니다. 앞으로 아들의 삶 속에서, 오늘처럼 도전과 성취가 계속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자신은 완전 지쳤다고 아들이 말합니다. 제 다리도 뻐근한데, 겨우 열살에 불과한 아들이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안아주거나 업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자기가 control 할 수 있다고 약속하고 시작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들은 주차장까지 혼자서 걸어왔습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다한 아들에게, 온 가족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좋았습니다. 가을은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화가도, 이것보다 더 완벽하게 그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자연을 보면, 하나님을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삶이 더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데, 의문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하기 때문에 삶을 견디고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아직 며칠 남은 휴가는, 저의 내면을 살피면서, 조금 더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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