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을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입니다. :) 아마 중학생 정도로 기억합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마음에 크게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읽은 천로 역정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필립 얀시나 혹은 C.S. 루이스의 책들 역시 감동을 주지만, 천로역정이 주는 감동은 질적으로 어떤 다른 것입니다. 마치 성경을 읽는데, 또 다른 버전의 성경을 읽는 듯한 느낌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천로 역정을 읽고 좋아하던 차에, 또 청년들과 천로 역정을 읽으면서 크게 은혜를 받았던 차에 드라마 천로 역정을 만드는데 동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함께 섬기는 교회에 권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저에게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권사님은 참 귀한 분입니다. 한국에 계실 때 부터 구연 동화 협회에서 활동하시고 오랫동안 그쪽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오신 분이십니다. 직접 기독교 혹은 일반 동화를 쓰시고 그것에 대한 열정을 오랫동안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직접 쓰신 글들을 보면서 그리고 녹음하신 파일들을 들으면서 탁월한 실력과 신앙의 귀한 열정을 겸비하셨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권사님께서 어느날 천로 역정을 구연 동화로 녹음하고자 하는 비전을 나눠주셨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참 귀한 일이구나 라는 생각만 했지 제가 직접 함께 작업하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맡겨진 목회의 일이 있고 또 제가 매주 만들어야 하는 찬양으로도 이미 벅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권사님의 비전이 참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 음향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현재 펜데믹 상황은 외부 스튜디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리고 최소 한시간 반 이상의 작업을 엔지니어와 소통하면서 녹음 작업을 한다면, 추가적으로 시간이 얼만큼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음향 파트를 돕는 것으로 결정하고 함께 작업을 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권사님께서 집에서 녹음해오셔서 그것을 제가 후편집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권사님은 최선을 다하셨지만,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쉽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운드의 소스의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한 마이크는Rode VideoMic Me 였습니다. 현재 아마존에서 50불 정도에 판매되는 셀폰형 소형 컨덴서 마이크입니다.
실제로 작업을 해보니, 가장 큰 문제는 입력 감도 문제입니다. 권사님 입장에서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녹음하시기 때문에, 마이크와 입 사이의 거리가 너무 짧았습니다. 당연히 숨 소리 때문에 들어오는 바람으로 들어오는 퍽 사운드와 립 노이즈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이크 기본 퀄리티가 좋지 않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권사님이 녹음때 사용하시는 셀폰 어플은 삼성 기본 녹음 어플인데 AUTO GAIN 기능이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컴프레싱과 리미팅을 같이 해줍니다. :) 처음에는 끄고 녹음을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습관으로 그것을 키고 녹음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로데 마이크에 오토 게인을 크고 그냥 입을 가까이 대고 녹음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다른 것들을 부탁드려서 권사님의 천로역정 구연을 방해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사운드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드라마 천로역정을 완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챕터 3개 정도를 녹음해서 유투브에 업로드 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녹음을 권사님에게 오리지널 소스로 받고 제가 후처리를 하였습니다. 아래는 제 리퍼 프로젝트 파일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 처럼 기본적으로 음성 트랙이 정말 꽉 차서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량 자체는 특별히 많이 올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너무 답답하고 먹먹한 사운드를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먼저 보컬입니다. 보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팝 노이즈를 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구연이라는 것이 권사님 한분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구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사람마다 트랙을 달리해서 따로 따로 처리하는 것이지만 시간적인 면에서 도저히 불가능이라 여겨서 한 트랙으로 처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C4로 시작해서 50hz 정도 아래를 잡아주고, 채널 스트립으로 컴프레서를 걸어서 기본적인 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TDR Nova로 넓은 범위들을 잡아주고, 나머지 남아있는 레조넌스들은 모두 다인 이큐로 처리했습니다. 아래는 보컬 채널의 다인 이큐입니다.
아마 보시면서 깜짝 놀라시리라 생각합니다. :) 맞습니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의 다인 이큐를 사용했습니다. 얼마전에 한준수 엔지니어님의 영상을 보니, 우아하게 이큐 하나에 두 채널로 피아노 레조넌스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너무 부럽더군요.
하지만 저는 전투적으로 이큐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워낙 다양한 인물들을 드라마 안에서 구연하게 되고, 각각 특색 있는 음색이 있고, 그리고 곳곳에 레조넌스가 나타났기 때문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없어질 때 까지 다인 이큐를 사용했습니다.
마치 소설에 나오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한땀 한땀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많은 이큐를 써서 소리가 어색해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다인 이큐 하나에 3db 정도만 깎아내는 정도로만 사용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과물은 꽤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다음은 간단합니다. 이미 채널 스트립에서 디에서를 사용했지만, 추가로 디에서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Vocal Enhancer는 아주 살짝 걸었습니다. 그리고 NLS를 통해서 좀 더 앞으로 소리를 튀어나오도록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뮤즈 이큐를 통해서 부족한 저음을 충분히 살리고 하이를 조금 더 넣어서 선명도를 올렸습니다.
리버브는 렉시콘 리버브를 사용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NIV Dramatized Bible의 경우에는 홀 리버브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천로역정의 벤치마킹으로 삼은 드라마 바이블은, 리버브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굉장히 매트한 소리입니다. 그래서 렉시콘 리버브에서 NICE STUDIO 프리셋에서 WET을 2퍼센트 정도만 넣었습니다.
그리고 음압을 적절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C4에서 낮추었던 음압을 적절히 올렸습니다. The Wall을 사용해서 12-13lufs 정도로 음압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배경음악입니다. 천로역정에는 어떤 배경 음악이 잘 어울릴까요? 권사님께서 찬송가 두 곡이 꼭 들어가면 좋겠다고 제안하셔서, 제 아내가 녹음해서 두 곡을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가 문제입니다.
제가 직접 만들기 보다는 유투브 뮤직 라이브러리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충분히 찾아보았습니다. 특히 중세 쪽 느낌이 나는 웅장한 음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곡을 찾아서 그 곡의 아티스트가 만든 곡들을 다 받아서, 드라마의 상황에 맞추어서 제가 적절하게 넣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바로 보컬과 배경 음악의 밸런스입니다. :) 이건 정말 오래 고민한 부분입니다. 테스트 파일을 여러차례 만들어서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 역시 이어폰으로 헤드폰으로 차에서 번갈아가면서 들으면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일단 배경 음악과 보컬의 밸런스에서는 몇가지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첫째는 볼륨, 둘째는 사운드의 선명도, 셋째는 음량의 다이나믹 입니다.
일단 배경 음악의 목표는, 들리기는 들려서 분위기를 잡아 주어야하지만, 너무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아야 합니다. 음량이 커질 때도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커져서 보컬을 막으면 안됩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입니다. "들리지만 들리지 않게", "감동적이지만 보컬을 방해하지 않게" 이렇게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믹싱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C4로 저음을 잡고, 그 다음에 포커스라이트 채널 스트립으로 사운드를 충분히 조절했습니다. 보컬 채널은 아니지만 디에서를 최대한 걸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다 깎아 냈습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5kz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로우 패스 필터를 12khz까지 걸었습니다. 컴프레서는 4db 정도까지로 걸었고 그리고 THD는 아예 따 빼버렸습니다. 이정도만 해도 꽤나 먹먹한 소리가 됩니다. 하지만 추가로 다인 이큐로 귀에 날카롭게 들린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다 깎아 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드라마 바이블의 아쉬운 점 때문입니다. 사실 드라마 바이블을 들을 때에, 배경 음악이 거슬린다고 생각한 적이 자주 있습니다. 어플에 평가에도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몇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경 음악이 들리도록 해야겠지만,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모두 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다인 이큐로 소리를 매우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한번 더 마스터 데스크로 살짝 날카로운 부분들을 한번 더 깎아 냈습니다. 여기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스테레오 이미지를 30 퍼센트로 과하게 벌렸다는 것입니다. 제 머리속 드라마 천로역정의 이미지에서는, 음악이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뭔가 보컬보다 들리게 하려면 스테레오 이미지를 넓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기껏해야 10퍼센트 정도만 넣지만, 이번 경우에는 30퍼센트로 과감하게 벌렸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리미터로 음압을 어느 정도로 올릴 것인가 입니다. 드라마 바이블의 경우에는 제가 판단할 때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1:2 정도입니다. 배경음악 1에 보컬이 2입니다. 하지만 권사님과 상의할 때에 그것보다는 더 작은 것이 좋겠다고 판단이 들었습니다. 보컬이 12-13lufs 정도였다면, 배경 음악은 28-30lufs 정도로 맞추었습니다. 절반이 좀 안되는 수준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들었을 때에, 딱 이정도가 좋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스터단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이미 각 채널에서 리미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추가로 리미터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elysia alpha compressor를 걸었습니다. 이 컴프레서가 핵심입니다. 다른 컴프레서를 사용하면서 글루감을 아주 강하게 느낀적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알파 컴프레서는 완벽하게 글루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약간은 따로 존재하는 듯한 보컬과 배경 음악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매번 커버곡들을 만들다가 드라마 천로역정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고 느껴졌습니다. 상상력도 많이 발휘해야했고 또 도전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한 분이 탁월하게 녹음하신 천로역정을 편집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들으면서 넋을 놓고 완전히 빠져든 적이 여러번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소중하게 천로 역정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유투브 영상의 표지는, 미국 최고의 디자인 스쿨인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 다니고 있는 교현 자매가 준비해주었습니다. 마지막 학년이라 굉장히 바쁠텐데 기꺼이 시간을 내어서 멋진 표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유투브 표지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천로 역정의 삽화 중에서 권사님께서 하나를 고르시고 교현 자매가 영감을 받아서 와이드 비율로 처리하고 색채를 넣었습니다. 밝게 빛나는 좁은 문을 가리키는 전도자와 성경을 들고 그곳을 바라보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들어가시면 교현 자매의 포트 폴리오를 보실 수 있고 작업을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천로 역정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가장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이러한 탁월한 명작이 이권사님을 통해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바라기는 많은 분들이 들으시고 누리시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시는 하늘의 힘과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유투브 영상 링크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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