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깨어질 수 없는 약속 - 창세기 15장 12-21절 설교


신학교에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은 때입니다. 이단에 빠진 가까운 지인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그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과, 제가 이해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대답을 가지고 고민하며 이단에 들어갔지만, 그때의 저는 아직, 그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설교가, 그가 했던 질문들에 대한 저의, 그리고 참된 기독교의 대답입니다. 

어쩌면 저의 신학적인 고민의 여정은, 그때부터 출발한 듯 합니다. 신학이라는 것, 진리라는 것,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그저 추상적이고 우리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는 것임을 그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언제나 진지하게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약신학,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성도의 인생을 설명하는 그 내용들은, 언제나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아마 백금산 목사님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고, 저 역시 호튼 책을 보았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유학 나올 때에, 그 많은 짐들 속에서, 유학과 신앙의 길에서 저를 잡아줄 몇권의 책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권이 호튼의 언약신학입니다. 

오래전에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충분한 자료를 가지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제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전체적으로, 성도의 견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본문의 주해부터 시작하면서, 계속 준비해 놓은 창세기에 대한 주석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언약신학과의 연결성,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도로 중심을 맞추고 결국 성도의 견인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Boice의 칼빈주의 교리에 대한 설명들을 참고했고, 히브리서 안에서의 성도의 구원에 대한 해석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히브리서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책이었기 때문에, 설교에 다 넣지는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을때 까지 충분히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몇번의 해석상의 어려움 속에서, 신약의 부분에서는 역시 Carson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쉽사리 지나가거나 간과하는 부분에 대하여 언제나 도전을 하며, 어려운 부분들을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설교를 시작할 때에, 자꾸 숨이 막힙니다. 거의 30분에 가까운 시간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마음에 부담감이 굉장히 크게 다가옵니다. 백퍼센트 원고 설교이지만, 원고를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며, 원고를 준비하며, 더 기도를 하게 되는 듯 합니다. 

목회자의 큰 영광은,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40분에 가까운 원래 원고를, 고치고 수정하면서 25분 정도로 압축하였습니다. 설교가 30분을 넘어가면, 성도님들이 들으시기에 힘들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구도와 문장을 고치며,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설교를 몇시간 앞두고 드디어 마음에 감동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객관화 시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설교자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이야기를, 가장 확신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나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올 때 까지, 내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올 때 까지, 계속 읽고 수정하였습니다. 

원래 조용하고 차분하게 설교 하고 싶었지만, 준비하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본문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안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힘 있게 선포해야 하지 않겠냐고,

결국 이 설교는, 제 자신과, 저의 가족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과, 또 어려움 가운데 삶을 고군분투하시는 성도님들을 위한 설교입니다. 환경적인 그리고 내면적인 어려움들로 인하여,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설교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심하라' 라는 음성입니다.

첨부하는 파일들은,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참고하고 읽고 공부한 내용들입니다. 사실 이 내용들은,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특별히 더 보기 좋게 편집한다거나 하지 않았고, 참고한 내용들을 모두 넣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행복합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5년 10월 17일 토요일

기독교인의 우정,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따라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을 향해 자라는 이 성향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 연합하게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하게 됩니다. 물론 이 말은 항상, 꼭 모든 경우, 모든 사람에게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영적 연합이 이루어지고 자라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향이 더욱 많이 나타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영적 연합도 그것 못지않게 분명 자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비슷한 애정, 열심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 
하나님을 향한 참된 성향이 서로에게 많을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기꺼이 용납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깊이 아끼고 사랑할 것입니다. 존경하고 예우하며, 높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에 따라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아낌없이 자신과 자신의 것을 나눈 것 처럼 서로 그렇게 연합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또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그럼으로 하나님의 것들이 유일하게 우리 소망이 되며, 우리 삶의 원리임을 보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향이 이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 마음에 부패가 많고, 더럽고 사악한 것들, 즉 교만과 게으름과 악의 등이 많으면, 우리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바른 지식이나 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는다면, 역시나 다른 사람들과 연합할 수 없습니다. 참된 성향은 목적과 수단이나 방법에서 모두 영적이고 신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성향, 즉 게으르고, 이기적이며, 교만하고, 나의 유익을 위해 상대방과 대상을 고르고 제한하는 것(때로는 무지한 것까지) 등의 성향은 결과적으로 관계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 한재술, 독서 모임 "대답은 있다" 이야기, 196-198p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를 더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이를 더 긍휼히 여기게 하시고,
참된 우정과 사랑 가운데 살아가도록,
저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5년 10월 9일 금요일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며, 하나님 나라의 울타리는 카이사르 나라의 경계선을 초월하고, 교회의 주된 정치적 과제는 제자도에 따르는 희생을 분명히 알고 기꺼이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임을 다시 선언하는 교회,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교회다." 

- 스텐리하우어워스, 윌리엄 월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70p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하나님의 자녀, 낙담하다 - 시편 73편 1-9절 설교 & 로고스(Logos Bible Program)를 이용한 설교 준비 노하우 3


계속 도전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도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큰 유익들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도전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설교 스케쥴이 나오고, 제 순서가 언제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 3주 전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73편은, 잘 알려져 있는 본문이지만, 동시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본문입니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분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정말 시편 기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는, 저 개인적으로도 잘 모를 뿐더러 또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던 본문입니다.

목사의 큰 특권은, 성경 묵상에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최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또한 그 말씀을 알아가기 위해서 Logos 프로그램을 통해서 도움을 얻는 것은, 아마도 제 인생 중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아삽의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편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간절히 알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개인 묵상으로 부터 설교 준비를 시작합니다. 제 스스로 궁금하지 않고, 제 스스로 도전되지 않은 채로, 단지 몇 가지의 적용점 중심으로, 혹은 주석 등의 내용으로 채우는 것으로는, 성도님들의 마음을 끌어올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궁금해야 하고, 제가 먼저 도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을 향한 열정적인 궁금증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 제 설교의 전체적인 큰 구조 자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설교 가운데 그 구조는, 세상의 portion을 질투하던 위치에서, 하나님 자신을 portion으로 소유한 자로서의 변화 입니다.

사실 본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 능력 밖의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 구입한 WBC 시편 주석이 도움이 되었고, 또한 NET BIBLE 안에서 구약 각주가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어 사전과 신학 사전을 충분히 이용했습니다. 또한 로고스 프로그램의 자체적인 word study 기능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것들을 전체적으로 연결해 줄 통찰력은, 그리고 저의 핵심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지지해 줄 근거들은, 존경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로 부터 배워야만 했습니다.

설교의 큰 맥락이 되는, "하나님으로 만족한다" 라는 주제는, 존파이퍼 목사님의 전문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시편 73편에 관해서는 마음에 만족할 만한 내용을 찾지 못했습니다. Boice의 주석을 보았고, D. A. Carson의 고난에 대한 책 중에, 73편을 충실하게 해설한 내용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아삽의 마음을 설명하는 질투라는 단어는, 백과 사전의 학자적인 정의를 소화해서 인용했습니다. 아주 흥미롭게도, 이 시편 73편의 내용 가운데 24절이, 기독교 세계관 혹은 변증과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설교 중에 인용했습니다(ex) 하나님의 길은, 단순히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의롭고 또한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이다) 설교 후반부에 강조되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portion이 되신다는 것은, Gaffin의 책 내용 속에서 통찰을 얻었습니다. 또한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나님을 가진 자로서의 삶의 적용 부분에서 순종의 강조는, 박영선 목사님의 강의 어느 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물론 로고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검색 기능을 충분히 사용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많은 자료를 찾고 종합하는 것은 불가능했겠지요.

설교문을 다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많은 내용들을 모았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압축하고 생략했습니다. 단 30분 안에 최대한 신속한 흐름으로 주제를 살려야 했고, 성도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을 해야 했고,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목표는, 30분의 그 설교의 시간 동안, 숨막힐 듯한 긴장감과 집중력을 성도님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유지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그리고 감격스러운 아삽의 마음으로, 평소보다 더 톤을 높이고, 동작을 많이 사용했으며, 열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편의 설교를 한다는 것은, 굳이 비유하자면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언제나 넘치는 보상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한번 더 확인하고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고, 또한 저의 도전이, 제 스스로에게 많은 격려가 되고, 성도님들에게 위로가 되어서 또한 감사합니다.

최근의 모든 주해와 설교 원고는, Microsoft 의 OneNote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물론 실제 원고 작성은 Xmind 를 사용합니다). 제일 상단에 있는 그림 파일이, 실제로 원노트를 사용할 때의 화면입니다. 원노트의 장점은, 모든 내용들을 하나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정리가 가능하다는 것과, 전체 파일 안에서 내부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점점 설교가 더 많이 쌓인다면,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제 나름대로의 자료에 대한 링크와 노하우가 더 축적되리라고 생각합니다.

Microsoft Word 프로그램이나,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은, 로고스에서 자료를 카피할 경우에 각주가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하지만 OneNote 프로그램은, 각주가 아니라 복사한 내용 바로 밑에 출처가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각주가 만들어 지면 더 좋겠지만, 어짜피 무료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충분히 감사하고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해한 내용과, 로고스를 통해서 필요한 부분들을 가져온 것을 함께 나눕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각 그림 파일 속에서, 제가 각 구절마다 어떤 고민을 했고, 그 부분에서 어떤 자료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작은 도움들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죄인이며 부족한 저를,
주님께서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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