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 Earnest Pugh - God want to heal you


언젠가 어머니께서, 서울에서 원거리로 사역하시던 시골에 내려가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갑자기 주중에 내려가시겠다는 말씀에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네시간 이상 가고, 다시 시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만 하기에, 내려가실 때 마다 늘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오십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께서 가시기에는, 그리고 젊은이가 가기에도, 그곳은 보통 먼길이 아닙니다.

"동내에 혼자 사는 아저씨가 계시는데, 이번에 갈비뼈를 다쳐서 병원에 누워계신다고 하네, 거기서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주변 교회서도 아무도 안온다고 해서 엄마가 가보려고 한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제일 처음에 제 머리 속에 든 생각은, 왜 하필 우리 엄마가? 였습니다. 벌써 내려갈 채비를 머리속으로 다 마치시고 분주히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가 사서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보통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한번 마음 먹으시면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에, 그리고 목회자이신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저 묵묵히 잘 다녀 오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아는 것이 많지만, 자신의 직업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그리고 목회자가 많은 현실 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중에 저도 늘 포함된다는 것이 늘 괴로웠습니다.

한동안 제 관점은, 그들은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관을 좀더 공부하고, 복음을 좀더 깊이 알아가다 보면 결국에는 저들도 변하리라는 논리였습니다.

세번째 학기가 시작되고, 교육학 첫 페이퍼의 주제는 What is the purpose of Christian life? 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물어보는, 아주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그러나 아주 복잡한 질문 앞에서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글 자체의 형식은 학술적인 형식이 되어야 하지만, 그 내용 만큼은 저의 신앙의 고백이자 삶의 방향을 나타내야 했기 때문에, 진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칼빈 칼리지의 철학과 교수로 있는 James K. A. Smith의 책을 보면서 한가지 단서를 찾았습니다. 복잡하고도 섬세한 논증 끝에 주장하는 그의 논지는, 결국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적인 것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기독교가, 사상이나 아이디어나 지적인 것의 집합체인 것 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상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식' 이 아니라, '사랑 혹은 열망' 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 그의 책 'Desiring the Kingdom'의 핵심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한국 교회의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되는 '세계관 운동'을 아주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결국 교회의 교육 혹은 예배의 목표는, 그 사람의 지식 '뿐' 아니라, 그의 삶의 원동력과 방향을 만들어주는 '사랑 혹은 열망' 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 저의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왜 지식이 많아도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지를, 왜 지식이 많아도, 차갑고 냉정하고 무정한지를,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남의 아픔에 무감각할 수 있는지를.. 그것은 우리 안에 '사랑' 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서야 그 반대의 경우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참으로 아는 것이 적지만, 소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해도, 기독교 세계관이 뭔지 들어본 적도 없다 하더라도, 혹은 유명한 기독교 저자의 책을 접해본 적이 없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힘이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이 늘 그를 가까이 하고 싶고 마치 예수님을 뵙는 것과 같은 착각과 향기에 빠지는 것은, 그에게 '사랑' 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저의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겠다, 유학을 성공하겠다, 성적을 잘 받겠다, 좋은 가장이 되겠다 라는 등등의 거창한 목표는 있었지만, 정작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그 목표가, 정작 마음에서 너무 흐려졌던 것 같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대로 생각이나 한번 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포장하기는 너무 쉽습니다. 남을 이용하면서도, 마치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말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 처럼, 혹은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인 것 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자기 자신만이, 그리고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행동의 '본질'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행위의 크기나 위대함이 아닌, 우리의 '동기' 로 하나님께 판단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남들이 다 쳐다보는 부자의 엄청난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이 더 클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독교 안에서만 가능한 엄청난 일입니다. 세상의 차갑고 냉정한 관점으로는, 도무지 상대할 가치가 없기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가장 연약한 자에게,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간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표입니다.

좀더 사랑해야겠습니다. 좀더 나를 희생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기도해야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 이웃을 더 사랑하게 해 달라고.. 유학의 과정을 지나고, 그리고 또한 내 인생을 열심히 경주하고,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습니다. 하나님.. 다 보고 계셨지요? 저 잘했지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주님의 성도님들 가운데, 동일한 마음의 결심과 뜻이 있을 수 있기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우리들 덕분에, 어둡고 차가운 세상이 그래도 소망과 희망을 발견하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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