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안식처(安息處) - JB / JB's 1st Episode


집에 머물러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던 저에게, 2년전 시작된 유학은 참으로 큰 변화였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가족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고된 시간들도 지나왔습니다. 좀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한 목회자가 되겠다는 작은 일념 하나를 붙들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학기 중 어느날 페이퍼를 쓰다가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단 하나의 페이퍼라도 잘 쓰지 못한다면, 과목을 FAIL할 것 같은 절박함, 유학을 실패하고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한국을 떠나 이곳에까지 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저의 죄악된 모습들이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까지라도, 저의 슬픔과 낙심, 절망과 한숨까지라도 받아주시는 주님의 품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야 말로 저의 유일한 안식처라는 것을 기억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지친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이라는 하루의 시간은 참으로 고됩니다. 생존의 절박함속에서,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치여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은, 고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때론 벅차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무겁고 각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로 이 시대야말로 진정한 안식처가, 우리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시고, 그 안에서 참된 쉼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품이 필요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 곡을 썼습니다.

부족하지만 정성으로 만든 저의 곡이, 들으시는 성도님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우리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지친 인생 가운데서도 그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이미 우리 인생을 끌어안고 계시는, 안식처 되시는 아버지를 매 순간 발견할 수 있다면, 성도 된 우리에게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어거스틴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주님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의 안식처를 얻을 때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을 얻지 못하나이다(You have made us for yourself,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rests in you)" 우리의 지친 인생이 참된 안식처 주님 안에 영원히 거하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아래의 링크에서 음원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음원의 상업적 사용은 불가합니다. :)

음원 Mp3 다운로드
https://www.box.com/s/bnhtbkx7yif8pou9mest

음원MR Mp3 다운로드
https://www.box.com/s/t8h4pp35p40ol6tvpwof


PS. 저처럼 아마추어로 음악을 만드는데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서 곡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입니다. 이 곡에 사용된 모든 악기와 플러그인은 웹상에서 찾을 수 있는 무료 악기와 플러그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 

1. DAW : REAPER 64bit - 리퍼의 장점은 평가판을 계속 쓸 수 있고(물론 구입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뜹니다. :)) 32bit 악기와 플러그인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노트북은 64bit 윈도우이기 때문에, 램을 충분히 쓰기 위해서는 64bit 리퍼와 플러그인들을 써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무료 플러그인들은 32bit입니다. 다른 DAW는, 32bit 플러그인을 64bit에서 사용하기위해서 J-BRIDGE라는 상용 프로그램으로 변환을 시켜야 하지만, 리퍼는 자체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줍니다. 물론 무료 플러그인들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오류가 많이 나는 편입니다.(모든 트랙을 다 완성하고서는 다섯번에 한번 정도만 성공적으로 프로젝트 파일이 로딩이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

2. 장비 : 홈레코딩을 위한 저가 장비들입니다. 모니터링 - TASCAM TH-O2, Fostex PM0.4n / 오디오 카드 - M-AUDIO Fast Track C400 / 건반 - M-AUDIO Keystation Mini 32 / 마이크 Audio-Technica AT2020 

3. 곡분석 - 이 곡에 사용된 모든 트랙의 vst와 vsti 및 간단한 설명을 추가합니다. 공통적으로 거의 모든 채널은, BUS채널을 만들어 리버브와 딜레이를 넣었습니다. 베이스 기타와 킥 드럼을 제외한 모든 트랙에 60hz 이하 소리는 EQ로 잘라냈습니다.(각 악기의 특성을 귀로 파악해 가급적 음색이 유지되는 한 저음역대를 잘라내야합니다) 제가 실제로 vst를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블로그는 두 군데입니다.http://bedroomproducersblog.com/ 에는 각 용도에 어떤 vst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친절한 추천이, http://atoragon.blogspot.com/ 에는 플러그인들이 어떤 식으로 순서를 배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노하우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두 곳다 무료 플러그인을 기반으로 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매우 유익합니다. 

기본적인 곡과 코드를 쓰고 편곡을 할 때,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먼저 머리속으로 상상을 하고 어울리는 악기를 고민해 봅니다. 그리고 각 악기에 대한 라인을 고민해서, 각 마디의 코드 안에서 가능한 범위를 시도해보면서 짜나가는데 이 곡은 건반 -> 드럼 -> 베이스 -> 신디(패드 계열) -> 오케스트라 순으로 조금씩 만들었습니다. 

1) Vocal Verse - 처음에 건조하게 들리는 보컬 트랙입니다. Baxxpandr -> Spitfish -> Molot03 -> ReaEQ -> Limiter6, 곡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트랙 자체에는 리버브와 딜레이는 넣지 않았지만, 마스터링단에서 리버브를 넣었기 때문에 약간의 울림이 있습니다.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초반부는 최대한 건조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짝 들리는 튀는 음들은, 방에 방음이 완전하지 않아서 마이크 녹음시 하울링이 약간씩 들어간 것입니다. 다시 녹음 하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잡음을 살려 두었습니다. :)

2) Vocal Main - 바로 이어지는 메인 보컬 트랙입니다. 모든 보컬에는 위에 것과 동일한 순서로 vst를 사용했습니다. 반주에 스며드는 적절한 리버브 느낌을 찾기 위해서, 따로 BUS단에 각기 다른 종류의 리버브 3가지를 설치해서 섞어서 사용했습니다.(마지막 리버브단 설명 참조) 이번에 저가형이지만 컨덴서 마이크로 소리를 받아 조절해보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eq를 많이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악기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eq를 조절했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았습니다. 무료 플러그인 중에 Gsanp이라는 피치 조절 프로그램이 있지만, 퀄리티가 낮아서 피치 보정은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3) Vocal Chorus - 곡 마지막 부분에 주고 받는 보컬 트랙들입니다. 세 가지 트랙으로 나누어서 주고 받는 느낌을 주었고, 메인 보컬과 다른 코러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리버브 가운데 hall 셋팅을 사용했습니다. 메인 보컬보다 훨씬 가벼운 소리로 eq를 맞추었습니다. 

4) Piano 1 - 곡 초반부에 사용된 일렉피아노 입니다. 약간 어두운 음색의 매력적인 피아노입니다. GlueReeds -> PSP PianoVerb -> ReaEQ -> TesslaPROmk2 순으로 vst를 사용했는데, 특히 PSP PianoVerb는 피아노 특유의 음색을 살려줍니다. 마지막으로 TesslaPROmk2는 부드러운 느낌을 더하기 위해서 추가했습니다. 

5) Piano 2 - 곡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후반부에 계속 사용되는 이쁜 음색의 일렉피아노입니다. 4Front E-Piano -> PSP PianoVerb -> ReaEQ

6) Synth - 총 4대의 신디사이저 트랙을 사용했습니다. 무료 플러그인 중에는 신디사이저가 가장 많은데, 그 중에 좋은 음색을 가진 것들을 찾아서 사용했습니다. 처음 두대는 화음 파트로 Crystal(아주 잔잔한 패드 음색), P8(곡 분위기 전환시 나오는 시원한 음색)이고, Synth1, FreeAlpha 두대는 후반부에 양념적인 효과로 벨소리 등에 오케스트라 소리들 사이에 섞어서 넣었습니다. 기본 음색에 ReaEQ 정도만 사용했습니다. 

7) Electric Guitar - 총 3대의 일렉기타 트랙을 사용했습니다. 무료 악기 부분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기타인데, 특별히 일렉기타 vsti는 아주 리얼한 악기가 거의 전무합니다. 곡을 만드는 중에 개인 개발자가 만든 Kriminal-LP-SGC라는 걸출한 vsti가 나와서 사용했습니다. 첫 트랙은 초반 도입부에 사용된 것으로 Kriminal-LP-SGC -> FA3 Full(기타 앰프 vst) -> ReaEQ -> SupaPhaser(기타 이펙터) -> BC Flanger 3(기타 이펙터) -> Backstage Vocal(보컬 이펙터이지만 다용도로 사용) -> TesslaPROmk2 순으로 사용했습니다. 독특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다양한 이펙터를 사용했습니다. 두번째 트랙은 건조한 보컬과 함께 나오는 기타 솔로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세번째 트랙은 곡 후반부에 기타 솔로입니다. 두 트랙 모두 Kriminal-LP-SGC -> Shred 1.06(기타 앰프 vst) -> ReaEQ -> TesslaPROmk2 순으로 사용했습니다. 결국 본인이 원하는 음색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셋팅을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8) Bass Guitar - 무료 가상 악기 중에 약한 것이 베이스 기타입니다. 그나마 가장 리얼감이 있는 것은 4Front Bass 입니다. 그리고 기타 앰프는 Guitar Amp 2.0 FE를 사용했습니다. 

9) 오케스트라 - 이 곡 후렴부분 부터는 오케스트라 음원이 들어갑니다. 샘플러는 Phenome이라는 단종되었지만 훌륭한 샘플러를 사용하였습니다. (참고로 Phenome의 Velocity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꼭 Velocity 레버를 돌려야 합니다) 음원은 무료로 구할 수 있는 음원 중 가장 리얼한 소리인 Sonatina Symphonic Orchestra 음원을 사용하였습니다. 음원 확장자는 Phenome에서 읽을 수 있는 sf2입니다. 

Phenome은 기본적으로 멀티트랙 샘플러입니다. 즉 하나의 vst에 몇개의 음원을 한꺼번에 불러들여 소리를 재생합니다. 쉬운 말로 멜로디 하나를 입히면, 몇가지 악기들이 동시에 그 음을 연주합니다. 일단 들어간 트랙은 단독으로는 Flute Solo, Clarinets Solo 각 두 트랙이고(후렴 부분부터 양념처럼 등장합니다), 멀티트랙으로 한꺼번에 한것은 스트링 계열과 브라스 계열입니다. 스트링 계열 사용 음원은 1st Violins Sustain, 2nd Violins Sustain, Violin Solo, Violas Sustain입니다. 브라스 계열은 다시 무거운 음색 계열과 가벼운 음색 계열을 나눠서 좌우 pan 조절로 적당히 배치했습니다. 무거운 계열은 왼쪽에 주로 나오는데 Bass Trombone, Tenor Trombone, Tuba Sustain 이고, 가벼운 계열은 오른쪽에 주로 나오는데 Tenor Trombone, Trumpet Solo, Trumpets Sustain 입니다. 브라스 계열에는 모두 Brass Instrument Equalizer라는 브라스 계열에 특화된 eq를 사용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사용된 트랙은 전체 12트랙이고, 전체를 리얼 음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사양이 좋아야 합니다. 

10) 드럼 - 드럼은 Drumcore 3 free 버전의 acustic 셋트를 사용했습니다. 무료 버전이라 드럼 셋트가 두개 밖에 없지만 소리 자체가 훌륭해서 별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멀티 채널을 지원하기 때문에 각 채널에 각 악기를 셋팅해서 (ex) 1채널에 킥드럼 2채널에 스내어) ReaEQ와 TesslaPromk2 그리고 Ferric TDS 등을 적절히 사용해 음색을 조금 조절했습니다. 킥과 스네어 탐 등에는 버스 채널에 컴프레서를 걸어서 더욱 타이트한 느낌을 만들었습니다. 사용한 컴프레서는 TDR Feedback Compressor 2입니다. 

11) 윈드차임 - 곡 전주가 끝나고 나오는 윈드차임은 구글링으로 mp3 파일을 적당한 것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

12) 리버브와 딜레이 - 이번에 곡을 만들면서 리버브와 딜레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기본적인 리버브는 Ambience 딜레이는 Tal-Dub3를 사용했습니다. 다만 보컬은 Ambience와 GlaceVerb, 그리고 epicVerb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상용 플러그인을 사용했다면 좀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정도가 저의 능력과 무료 플러그인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 

13) 마스터 채널 - 마스터링에 사용된 vst는 다음과 같습니다. GlaceVerb -> ReaXcomp(멀티컴프레서) ->Tube Amp -> UpStereo -> Limiter6, Limiter6 같은 경우 굉장히 독특한 컬러감을 가지고 있는데, 잘 사용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마스터링 리미터입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갑 그리고 을, 그 영원한 사슬/ 소원 - 이승철



근래에 한국에 있어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갑과 을 이라는 관계 입니다. 원래 계약을 맺을 때 편의상 사용하는 수평적인 단어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 갑과 을이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부리는 '갑'과, 그리고 그러한 갑의 횡포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하고 불합리하게 부림을 당하는 '을'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이러한 관계가 최근에 더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사회 전반에 '불합리한 갑과 을'의 관계가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 방송을 통해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기업들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을의 관계에 있는 단체와 개인들의 고혈(膏血,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기름과 피이지만, 몹시 고생해서 얻은 이익과 재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을 짜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부리는 갑의 횡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이미 그들은 법 따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기업이 그리고 사주가 이익을 가질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방법을 총 동원하여서, 을을 착취합니다. 

드러나는 그들의 횡포를 보면서 한가지 절실하게 얻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부패하여 있는가에 대한 가슴 서늘한 새로운 자각입니다. 언뜻 보면 법을 중심으로 세상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은 그래도 도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 같고, 고용되어 일하는 힘 없는 을들에게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감추어져 있는 세상의 이면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추악함이, 인간의 탐욕과 죄악이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이익' 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행해집니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 더욱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한계가 없는 탐욕이 그 원동력입니다. 가끔씩 뉴스에 전해지는, 어떤 기업이 몇백억, 몇천억, 몇조의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었다라는 소식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이들의 흘리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담아 얻은 그 이익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더 기억할 것은, 이러한 갑과 을의 관계는 비단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죄악된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 곧 어그러진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우리의 삶 모든 곳에 뿌리내려 있습니다. 

저만 경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자인 사람들이 가지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가지는 외모가 부족한 사람에 대한, 지위가 높은 사람의 지위가 낮은 사람에 대한, 영향력 있는 사람의 영향력 없는 사람에 대한 태도와 모습 말입니다. 자신보다 어떠한 조건에서든 약자의 입장에 놓인 사람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과 자신감, 그리고 상대방을 하찮게 대해도 된다는 확신, 더 나아가서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려고 하는 그 묘한 시도들을 말입니다. 

동성(同性) 사이에 예의없고 무례한 이상한 사람이지만, 이성(異性) 앞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고, 자기보다 연약한 사람에게는 한 없이 잔인하지만,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 앞에서는 한 없이 순종적이지만, 영향력 없는 한 사람 앞에서는 끊없이 폭력적인, 집 밖에서는 부드럽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억압적이고 무뚝뚝한 그런 사람을 그리고 심지어 그런 기독교인을, 저만 경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역을 쉬고 설교를 하지 않고 공부만 한지 이제 일년 정도가 되어 갑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러나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성경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성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가지 환경이 절박한 이곳에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세계에 뿌리 내려 있는 가슴 아픈 불평등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이 비단 경제 뿐 아니라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두가지 말씀이 다시 한번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마태복음 22:35-40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인생에 큰 모험이라는 유학을 떠나, 솔직한 지금의 저에게 가장 절박한 목표는 '졸업' 입니다. 그리고 더욱 치장된 그럴듯한 목표는, '훌륭한 목회자' 가 되는 것입니다. 더 그럴듯한 궁극적인 목표는 '미래의 목회를 준비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제가 진실로 가져야 할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가 그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를 포함한 우리는 늘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학위를 얻고, 더 많은 배움을 얻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욱 큰 능력을 가지고, 남보다 강자가 되고,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인생의 목적이라 여기고, 정말 최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우리의 진실한 목표가 그리고 인생의 완성과 기쁨이 그것이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은 '다른이가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 처럼, 나도 다른 이에게 행하는 것' 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저의 이 글을 보고, 이것이 매우 '진부'한 도덕적인 가르침이라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또 꺼내 놓느냐, 혹은 그럼 조금 더 착하게 살아가라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의 성격 혹은 본질을 함께 보고자 함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하고 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세상,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라면, 이것이 진부한 가르침에 불과하다면, 이제 너무 들어서 지긋지긋하다면, 왜 이렇게 세상은 고통스럽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질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이클 호튼의 복음이 이끄는 기독교 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에(아마도 그 책이라 기억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호튼은, 우리가 들어 보았던 도덕적인 가르침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이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하라' 라는 것을, 이미 우리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보통, 내가 평소에는 잘 모르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주일에 설교 시간에 듣고 그제서야 행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가르침을 이미 마음 가운데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저에게 깊은 생각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는 복음을 믿는 사람인데 말씀을 지키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말씀을 지키지 않는것이 아니라, 복음을 더욱 깊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성도로서 우리의 생각에 큰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물론 일반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지켜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열심히 반복해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 근원에서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자, 하나님의 자녀되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자, 오직 크리스천만이 실행하게 되는 신적인 계명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이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갑과 을의 관계를 단순히 비판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이며, 또한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부패한 세상의 단면이 아니라, 세상이 보여주는 전부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 없이는 깨어질 수 없는 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대해주기를 바라듯이, 나도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결코 진부한 도덕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적인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가 세상에서 주장하는 도덕이 아닌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의 죄인됨을 깨닫는 것, 그리스도의 전적인 용서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그분의 감동과 다스리심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한 경험되지 못할,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가르치는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감격시키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의 가장 작은 것 속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듯이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나보다 외모로, 재력으로, 영향력으로 못한 누군가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야 말로, 그러한 소박한 실천이 가장 절박한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거대한 영향력과 성공적인 삶은 우리의 결과는 될 수 있지만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의 최선이 성공과 영향력을 가져올 것인가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이며, 그것은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연약한 자, 을의 위치에 놓여 있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모습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서 보여집니다. 만약 오늘 당신이, 당신보다 연약한 누군가에게 자비와 긍휼과 인자함, 그리고 섬세한 선을 베풀었다면, 그것은 결코 작거나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며,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곳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존한다고 듣기는 했으나 세상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너무나 새롭고 황홀하여 차마 믿기 어려웠던, '그리스도의 향기'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

2013년 6월 8일 토요일

당신의 청사진을 보여주세요 / Blood So Beautiful - Jonathan Lewis


두번째 학기가 끝나고, 드디어 여름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계절학기는, 기대했던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배우고,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비록 힘들지만 인생에 있어 큰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혼자 이든이를 보느라 큰 고생을 했다는 점에서, 가급적 계절학기는 앞으로도 피하고 싶습니다.:)

칼빈 칼리지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킬리(Robert J. Keeley) 교수님은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분이었습니다. 교육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심리학 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주권적인 신앙에 근거한 교육을 가르치려는 그의 노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덕주의적인 교육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려는 스토리 텔링에 관한 가르침 역시,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자신의 논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반대하여도 넉넉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교류할 수 있는 그의 여유도 부러웠습니다. 한국보다 많은 부분에서 월등한 교육 자료, 건전한 신학을 바탕으로 잘 짜여진 커리큘럼 등도 놀라웠습니다. 

긴 방학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면서, 몇권의 책들을 책장에서 꺼냈습니다. 아직 마음이 조금은 지쳤는지 글이 아른거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근본적인 질문이고 고민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 내가 공부하는 이유, 내가 가야하는 최종 목적지,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역할, 그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답은, 우리 가까이 있는 듯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든 배우는 사람이든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신앙인으로서 걸어나가는 것' 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가 다를 수 밖에 없는 다양성 속에서, 그리고 수 많은 주장과 생각이 교차되어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성경으로 근거한 가치관과 태도로 소신있게 인생을 걸어가는 것', 그것을 저는 최종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것은 목회자 의존적이기보다는, 성경 의존적이고, 교회 집중적이기보다는 좀더 사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성숙하고 독립적이며 자립할 수 있는 신앙인을 향한 이상입니다. 그리고 저의 짧은 인생이, 성도님들의 이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미국 교육학계의 화두는 제가 이해할 때에는 'Intergenerational' 입니다. 사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대간 교류' 라고 번역하면 될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현재 연령별로 구분된 교회 혹은 가정의 시스템을, 다양한 세대들이 소통하는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장년과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들 등의 다양한 세대간의 소통입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신앙을 나누고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Intergenerational'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발견하고 다양한 분야(ex) Intergenerational Worship)에 적용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입니다. 많은 연구들은 한결같은 결과를 보여주는데,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공통 분모는, 바로 이 다세대간 교류를 통해서 자란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행정학을 전공한 저의 관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좋은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교회는 각 부서별로 분리되어 있고, 특별히 그러한 분리는 연령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기에, 우리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간 신앙의 앞선 분들에게 나타나는,삶 속에서 실천된 신앙의 깊은 경험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치 현재의 교회 교육의 상황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소그룹 모임을 가지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거울을 통해 나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록 다양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생이 경험하는 것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나보다 연장자이신 어른들에게 신앙을 배우는 것은, 가장 갚진 일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소통을 시스템적으로 만들어주고 열어주는 것이 바로 'Intergenerational' 입니다. 이것이 1년동안 배운 핵심 중 하나이고, 앞으로 저의 목회의 하나의 큰 Y축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해할 때에 이러한 접근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접근이, 이미 조직의 개인 개인들이 충분히 성숙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우리를 둘러싼 신앙의 연장자들 속에서, 우리가 존경할만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소그룹을 가지는데, 오히려 젊은이들의 마음이 연장자들을 보면서 더 민망해지는 상황이라면, 과연 이러한 시스템적인 접근이 득일까요? 아니면 치명적인 실이 될까요?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 가운데, 자신의 세대에 대한 독선과 오만만이 가득하다면, 다른 세대들이 그들을 위해 소통의 손길을 내민다고 하여도 그것이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요?

교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스템적인 접근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직적인 접근을 통해서 우리가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개인간의 소통이고, 그러한 개인간의 소통 속에서 선한 영향력은, 소통의 주체가 되는 '개인' 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합쳐져서 조직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결론은, 결국 개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또 다른 X 축입니다. 어떠한 Intergenerational 적인 접근이라도, 개인적인 성숙을 전제로 하고 추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인식은, 그렇다면 '무엇이' 개인의 성숙을 만들어내는가 라는 더욱 중요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저의 주된 관심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저렇게 훌륭한 신앙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근래들어 더욱 마음이 아파오는 것 중에 하나는, 많은 이들에게 결국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자본' 이라는 점입니다. 넉넉한 집안의 사람들은, 가장 앞선 교육을 찾아서 자신을 위해 투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높은 학위를 향한 추구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가장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것 조차 힘들어집니다. 단순히 성도님들을 향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라는 조언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 짙게 드리운 불황의 그늘이 마음을 누릅니다.

만약에 제가 목회자가 아니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영학적으로 말한다면, 소수의 뛰어난 리더들을 세워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쩌면 덜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체를 생각하고, 힘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가장 연약한 한 명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성숙까지 생각해야 한다면,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20대 초반 은사 배영진 목사님을 만나고, 좋은 책들을 접하게 된 것, 그리고 소그룹 독서 토론을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독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과거의 독서에 대한 이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급한 취미'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저에게 있어 독서는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길' 입니다. 그리고 독서야 말로, '가장 적은 자본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입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이지성씨가 표현하는대로 '천재의 두뇌에 직접 접속하는 것' 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지만, 좀더 소박한 표현으로는 '만남' 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독서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나보다 앞선 생각과 고민들을 가진 신앙인들 혹은 일반인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고민하면서 그들에게 배운 생각과 통찰들을 내 삶에 적용' 하는 것입니다.

유학을 떠나기전 존경하는 이유환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때 무엇을 마지막으로 성도님들에게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준비한 것이 '독서 간증' 입니다. 제가 그동안 읽은 책들을 정리해보고, 왜 그것을 읽었는가 이야기하고 또 얻은 유익들을 나누고, 그리고 책들을 왜 그러한 순서로 읽었는가를 설명하는 것, 그것이 독서 간증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작은 감동이라도 된다면, 그분들 역시 독서를 통한 신앙 성숙의 유익을 얻기를 바랬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좋은 책들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독서라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 순서와 흐름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배경이 전혀 없이 신앙 서적을 혹은 교리서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성경과 신앙에 대한 배경과 고민없이 세계관에 관한 책을 읽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양한 책들을 한꺼번에 보기는 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 본격 접근하기 전에 도와주는) 성경 개관, (신앙의 근본이자 기준과 목적이 되는) 성경 통독,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설교집과 교리 서적,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측면에서) 신앙 서적, (성경과 삶을 연결해주는 통찰을 주는) 기독교 세계관 정도의 순서로 보았고 그러한 순서가 어느 정도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서의 과정에 있어, 신앙인의 인생 가운데 그 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합니다. 자기 안에만 갇혀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교류하고, 자기보다 앞선 사람에게 지도를 받는 것은, 제가 이해할 때에 독서 과정 속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체적으로 분위기와 모임을 조성하고,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독서 과정과 방향에 개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독서 간증을 준비한 그때부터 조심스러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교회를 향한 소박한 꿈입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을 엄선해서 5년 정도의 커리큘럼으로 만들어 교회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소그룹으로 함께 모여 읽은 것을 나누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격려하는 그런 교회입니다. 자유로운 질문과 소통이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함께 신앙을 고민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길을 걸어가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목회자와 성도님들이 함께 성숙해 가는 그런 교회입니다. 언제쯤 좀더 주관을 가지고 담임으로서 교회를 섬길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X축과 Y축이 충분히 준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남은 1년이,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강의 했던 자료를 함께 나눕니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할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작은 노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으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rezi라는 프리젠테이션 툴로 만든 것이라 조금 어지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
아래 링크를 직접 클릭하시고, 화면이 로딩 된 이후에, 
발표 자료의 우측 하단에 화살표를 한번씩 누르시면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발표 자료가 진행되는 순서가, 
제가 책들을 보았던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공부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부쩍, 많은 부분에서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 유학의 기간은, 제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발견하고 그래서 더욱 겸손해지는 기간인 듯 합니다. 결국 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함을 알게 됩니다. 저는 연약하고 죄된 인간일 뿐입니다. 뛰어나고 우월하고 앞선 목회자이기 보다, 성도님들 곁에 서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걷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저를 인도하시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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