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처치는, 오전은 classical 즉 전통적인 스타일의 예배로, 오후는 contemporary / jazz 즉 현대적인 재즈 분위기의 예배로 나뉘어집니다. 주목사님의 지혜 가운데, 감사하게도 두 번 다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예배 시작전에는, 지금 들으시는 이 곡을 재즈 분위기로 편곡해서 밴드가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평범하게 꾸준히 교회를 다닌 신자라면 한번쯤,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worship 은 원래 worth(가치) 와 ship(신분) 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존경 받을 대상을 향해서 그 신분에 합당한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모였다' 이러한 설명이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예배에 대한 정의 입니다. 저 역시 동감하고 좋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리디머 처치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던 저에게, 한가지 흥미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주보의 맨 앞면을 넘기자 짧은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아름다운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바로 그 때에, 'reflection' (반성 혹은 숙고 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요?) 이라는 제목으로, 성도가 예배를 준비하며 읽어 보도록 준비된 글이었습니다.
잠깐 내용을 살펴보자면,
- Reflection
- If you worship money and things-if they are where you tap real meaning in life-then you will never have enough... Worship your own body and beauty and sexual allure and you will always feel ugly, and when time and age start showing, you will die a million deaths before they finally plant you... Worship power-you will feel weak and afraid, and you will need ever more power over others to keep the fear at bay. Worship your intellect, being seen as smart-you will end up feeling stupid, a fraud, always on the verge of being found out.
- 만약 당신이 돈이나 물건들을 섬기고 있었다면 (예배하고 있었다면), 만약 그것들이 당신이 삶의 참된 의미들을 찾아가는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그것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몸이나 아름다움이나 성적인 매력을 섬겨보세요. 오히려 당신은 항상 추악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나이가 당신을 보여주기를 시작할 때에, 당신은 결국 그것들이 당신을 충분히 채워주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권력을 섬겨보세요. 당신은 오히려 약하고 두렵게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궁지에 몰렸을 때에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강한 힘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지혜롭게 보이기 위해서 당신의 지성을 섬기세요. 결국 당신은 어리석다고 그리고 당신에 의해 발견되는 것들의 변두리에서 사기꾼 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정목사 해석-이해를 돕기 위해, 부끄럽습니다)
- Look, the insidious thing about these forms of worship is not that they're evil or sinful; it is that they are unconscious. They are default-settings. They're the kind of worship you just gradually slip into... And the world will not discourage you from operating on your default-settings, because the world of men and money and power hums along quite nicely on the fuel of fear and contempt and frustration and craving and the worship of self. - David Foster Wallace, Kenyon College commencement address. - David Foster Wallace, Kenyon College commencement address.
- 보세요, 이러한 형태의 예배가 교활한 점은 그것들 자체가 악하거나 죄악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인 본성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점차 빠져들고야 마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당신의 기본적인 성품들이 움직이는 것에 대하여, 당신을 낙담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돈과 권력의 세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멸과 좌절과 갈망의 공급에 대하여, 꽤 잘 콧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짧은 글 속에서, 리디머 처치가 추구하는 예배에 대한 의미가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배 혹은 성도의 삶에 대한 통념들과는 큰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무엇인가를' 예배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오직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예배 드릴 뿐이다라는 통념에 반하여, 인간은 '하나님 외'에는 예배 하지 않는다는 통념에 반하여) 둘째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것들을 '그릇되게 예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자신이 즐겨하는 어떤 행위를 설명하며 '취미'라고 부르는 통념에 반하여, 자신의 삶은 '선을 행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기는 통념에 반하여) 그리고 셋째로, 이제부터 시작되는 예배는, 바로 그런 그릇된 예배에서 벗어나, 마땅히 예배 해야 하는 유일한 대상,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신 한 분만 예배하는 것입니다. '인생과 삶 전체'에 제대로 된 '질서'를 잡는 것을 목적을 가집니다. (예배란 단지 주일에 일어나는 '종교적인 헌신에 불과'하다는 통념에 반하여, 예배는 '그저 참석' 하는 것이지 삶 속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통념에 반하여)
이제 서론에 불과합니다. 아직 예배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울려퍼지고, 겨우 주보의 짧은 글 한 단락을 살펴보았을 뿐입니다. 하루 이틀은 더 묵상해볼만한, 아주 좋은 주제입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됩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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