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8일 토요일

하나님 의지하기 (부제 : 완벽주의를 넘어서) / Hope's Anthem - Bethel Church (Feat. William Mathews)




때론 다른 학과를 공부하신 분들이 너무 부럽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행정학과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상황을 판단하고 대안을 발견하고 분석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희열을 넘어서서 일종의 종교적인 열심을 저에게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언제나 치명적인 것은, 이 일련의 프로세서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 인간의 분석, 인간의 대안, 인간의 결정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계실 장소는 논리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는 온데간데 없고, 온갖 옵션들과 선택과 대안과 손실을 놓고 머릿속으로 열심히 분석과 계산만하는 저를 수도 없이 발견하면서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난 두 주간 정도가 그랬습니다. 특별히 행정적인 실수가 많고, 제가 일일이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하는 미국적인 환경에서,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영어로 이메일 쓰는 것도 더 이상 하기 싫고, 계획을 짜고 생각하고 고민할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 거의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잘못될 경우를 고민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완전히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단순히 제가 영어를 지나치게 많이 써서, 혹은 피곤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능력과 섭리를 기대하고 의지한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보다 높으시고, 그분은 언제나 능력이십니다. 그분은 계획과 지혜는 끊이 없고, 그분의 계획과 인도하심많이 최고의 은혜와 소망이 됩니다. 저의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러나 그분께서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소망해봅니다. 변명인 것 같지만, 그러나 더욱 확실하게, 나의 실수와 나의 잘못과 오류조차도 그분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인도해가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확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분을 묵상합니다. 좀더 그렇게 마음을 쏟아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성령의 체험 / Oh, I Want to Know You More - Steve Green



돌이켜 보면, 제가 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는 별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행정학과를 들어가고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지만, 한번 살아갈 인생이라면 그것이 제 길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방향을 틀어 교직 이수를 했습니다. 교육학을 배우고 교생 실습을 나가면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한번의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제 평생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때 정말 간절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청년부 멤버로써 마지막 수련회에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 강사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4장 23절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에게 그분의 모든 말씀이 온갖 보석으로 보였습니다.

글쎄요, 지금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목사님께서 입을 열어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제 주먹만큼 큰 온갖 아름다운 수 많은 보석의 모습으로 가시화 되어, 저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제가 목회자의 길로 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저에게 있어 그 사건은, 주님의 살아계심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이곳 CFNI가 행복한 이유는, 마음껏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함께 수업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합니다. 어쩌면 이곳의 커리큘럼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더라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큰 은헤를 누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 중심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장로교 목사,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기도와 예배 혹은 영적인 그 자체(물론 말씀과 영적인 것을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게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에 대해서 어색해했던 저에게, 그저 기도와 예배가 삶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소중한 경험을 이곳에서 하는 듯 합니다.

며칠 전 수업 중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마음이 많이 간절해졌습니다. 늘 주님과 많이 떨어져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저를 보면서, 정말 제가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이 역사하신다면,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기 원하고 사랑하기 원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저에게 주님께서 주셨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벅차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한참을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분이 제 옆으로 와 함께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 등쪽으로 손을 대고 함께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 몸 가운데 굉장히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묘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치 뜨거운 열기와 비슷한 것과 같았습니다. 텍사스의 여름의 열기와는 또 달랐고, 매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뜨거움이 등에서 부터 시작해서 제 몸 전체를 채웠습니다. 물론 그 순간 마음이 이미 벅차 있었고 몸이 뜨거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난 순간, 제 머리 한편으로는 이것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 스스로가 만들어낸 어떤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습니다. 특별히 인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고, 혹은 특별히 지적이라고도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오랜시간동안 설교를 준비한 후에 그것이 깨달아졌을 때의 그 감격과 기쁨을, 불 혹은 뜨거움이라는 육체적인 언어로 표현했을 때에 아마도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저처럼 지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제가 지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늘 얼마나 부끄러운지..)이 얼마든지 빠질 수 이는 오류는, 지적인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주지주의 인 듯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와 그분의 능력을 나의 지적인 영역에 국한시키는 그 어떤 것이, 어쩌면 주지주의 인 듯 합니다.

며칠 전 아주 오랜 만에 새벽 설교를 하면서, 비록 피곤하고 쉽지는 않았지만 제 마음에 한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 그것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 속에, 부족한 저의 입술 가운데, 주님께서 진실로 역사하시고, 닫혀 있던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새벽이었지만, 다른 어떤 날보다 더욱 힘차게, 그리고 더욱 간절하게 설교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어쩌면 저의 인생 가운데,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슨 광신자가 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어느때보다 더욱 더, 주님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힘과 지성을 다해 성경을 보고, 가장 훌륭한 책들을 힘써 읽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의 실제로 역사하심을 믿고 바라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그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런 성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2년 4월 7일 토요일

물댄 동산을 후원해 주세요 / You - 브라운 아이드 소울





초등학교 어린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머니께서 카스테라 빵을 해 주시는 날이었습니다.

제 몸통만한 커다란 빵틀 속에서,
노랗고 예쁜 카스테라가 무럭무럭 김을 내는 모습은,
그 어린 마음을 가득채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미소 지으시며 커다란 빵 틀을 열 때에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커다란 빵을 늘 절반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아랫집에 이웃들에게 가져다주라고 시키셨습니다.

글쎄요..
그 순간의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하.. 이건 다 내것인데..'

그러나 언제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열심히 빵을 만든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빵을 절반으로 나누었고,
저는 언제나 억울하고 못마땅한 마음으로 그렇게 빵을 배달했습니다.
아 물론, 나머지 절반의 거의 대부분은, 제가 먹었습니다. ^-^

저의 20대의 가장 큰 화두는, 음악이었습니다.
거의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와 스피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시작해서 cd 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어까지,
늘 저를 행복하게 해 주는 기계들이었습니다.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좋은 기계를 듣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모았고,
그래서 사고 팔기를 계속했습니다.

아마도 30가지 이상의 기계를 사고 팔았던 것 같습니다.
밤새서 중고 장터에 매복(?)하기도 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의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의 인생의 시간은 참으로 빨리 흘러갔지만,
어떤 의미에서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야 말겠다'는 그 강렬한 마음이
저를 사로잡은 저의 전부였습니다.

카스테라를 다 먹고 싶었던 그 마음과,
기계를 사고 팔며 오직 나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 마음은,
나이가 들고 몸은 커졌지만, 변하지 않은 저의 정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신학을 하면서, 책을 보면서,
결국 죄라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중심성'이며,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나 중심적으로 살아온 저의 인생의 비참함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조차,
그 마음이 이기심과 탐욕으로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산처럼 많은 물건들과 다양한 브랜드들,
화려한 디스플레이 속에 놓여진 명품들 속에서,
'신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으시는 자존감으로 마음이 차 있지 않으면,
세상이 자랑하는 부와 외모와 가진 것으로 자신을 채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으시는 행복이 마음에 채워지지 않으면,
여전히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일 뿐이며,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언제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저를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의 설교와 글 속에,
'사랑하자라' 는 화려한 수식어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나 중심적인 모습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어쩌면 저의 '사랑하자' 라는 말 앞에는
'나를' 이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발을 더 좋은 것을 한켤레 사고 싶습니다.
노트북을 너무 오래 써서 바꿀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지를 두벌 정도 더 사면 마음이 훈훈해 질 것 같습니다.
차에 싼 것이라도 가죽 시트를 씌우면 좀더 편안할 것 같습니다.
내 입에 감칠 맛 나는 맛있는 것을 매일 먹으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저 좀더 좋은 것으로 화려한 것으로 갖추고 싶습니다.
그러면 내가 좀더 남들 앞에 당당하고 멋져질 것 같습니다.
늘 이런 생각이 저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물질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마땅히 채워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노동의 댓가로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권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것 처럼,
그렇게 나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쏟아 넣는 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한성진 교수님의 글을 통해,
섬기시는 '물댄 동산'이 어렵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그 아이디어가 처음 시작한 그날 그 커피숍에 함께 있었습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차상위 계층'의 자녀들이
최소한의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졌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그 테이블에서 가장 어린 제 마음에는
모든 것이 그저 먼나라 이야기같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상 속의 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물댄동산이 현실이 되었고,
어느 다른 기관보다 정직하고 효율성 있는 복지교육기관으로,
그리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꿈의 실현의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유학의 과정 속에서 언제나 물질이 큰 비중을 차지함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부쩍 우리 인생 속에서, 돈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실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곰곰히 생각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계산하고,
나 중심성의 소비에서 조금은 벗어나 좀더 마음을 넓혀 봅니다.

사실 요즘 제 마음에는,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주님이 정말 함께하심을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고,
저의 앞날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인 듯 합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봅니다.
주님이 선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가장 연약한 믿음의 끈이라도 굳게 잡아보고자 합니다.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작은 힘이 모여,
더욱 연약한 사람들의 큰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의 마음 가운데,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작은 마음이 있으시다면,
조금은 나로부터 벗어나 남을 생각하는,
하나님이 친히 채우시는 여유가 있다면,
기도로 물질로 물댄 동산을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mulden.co.kr/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59

그래서 오늘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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