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토요일

보금자리는 그렇게 소중했어라 - 시카고의 마지막 집을 떠나며

 



저 역시 다른 사람처럼 삶이 평탄하기를 늘 바랬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막내 아들의 병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흔들어 놓았습니다. 병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혹시 집이 문제일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급하게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의 너무나 추운 겨울, 그렇게 이사를 해야했습니다. 

겨울이라 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없이 멀어졌습니다. 좋은 학군을 위해서 이사를 가느냐는 질문들에 일일이 대답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웹페이지를 뒤지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절박한지 눈물이 다 났습니다. 힘든 아내를 더 힘들게 할 수 없어 홀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주님, 저희 가족은 도대체 어디로 이사를 가야하는 걸까요? 

드디어 한군데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작은 콘도이고 몇달동안 나가지 않았던 집이었습니다. 막상 가보니 그럴만했습니다. 겉보기는 그럴듯해 보이는데 많이 허술했습니다. 창문도 약해 보이고 찬 바람이 들어오는 집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계약을 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그해 겨울은 참 추웠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사한지 한달만에 막내의 약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소망만으로도, 저희에게는 충분했습니다.

왜 그렇게 멀리 사냐는 질문들에 대답하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중간에 교회에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다시 병이 악화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집이 멀어서 새벽에 교회로 나와 밤에 들어가기가 일쑤였지만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다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속히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 모레, 드디어 이 집을 떠나게 됩니다.

7년의 무게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많이 버렸지만 이사 준비가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짐을 싸다가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더군요. 여보, 나 사진 좀 찍고 올께, 때론 감상적이고 충동적인 저를 알기에 아내가 빙긋이 웃습니다. 이곳에 들어올 때에 아내는 참 힘들었지만, 떠나는 지금의 아내는 행복하기에 제 마음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선선한 시카고의 밤 바람이 좋았습니다. 계절로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와야 했던 집이지만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놀랍고, 우리의 작은 생각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아무것도 따질 겨를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서 행복하게 공부했습니다. 마트들이 가까워서 아내가 좋아했습니다. 순간 순간 많은 행복이 있었고, 온 가족 건강하게 지냈습니다. 

사실 이 집에 들어올 때에 너무 지저분해서 참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짐을 비우고는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들어올 때 보다 집이 더 좋아진 것 같아서 기분이 괜히 우쭐합니다. 다음에 누군가 들어와 살 때에도, 저희가 느꼈던 그 행복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분들은 깨끗한 집에서 기분 좋은 시작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권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정목사님, 여기서 집 사서 살던거 아니었어요? 깜짝 놀라서 웃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휴 권사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지금까지 렌트로만 살았어요. 글쎄요, 아마 모든 사람이 좋은 집에 살고 싶을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사는 공간으로 저의 존재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도 충분했습니다. 가족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저희 가족의 가치는,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공간과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욕심을 우리를 병들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허락하셨고 저를 겸손하게 만드셨으며, 바로 이곳에서 저희 가족을 친히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드디어 구름 기둥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광야의 장막을 걷고 움직일 때입니다. 시카고의 마지막 집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충만하였던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아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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