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를 읽으면서 항상 행복합니다. 그 행복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수준을 간결하게, 그러나 통찰력있게, 그리고 설득적으로 쓴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고, 루이스를 동경하고 그에게 배우고 그와 함께 걷는 것에 기뻐합니다.
아침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니체와 루이스를 같이 읽으면 어떨까?' 어떻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입니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신은 죽었다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니체와, 철저한 무신론자에서 아름다운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난 루이스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같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의 확고한 가치와 신앙이 부딪힐 때에, 저는 그 안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나며 그 사이에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성경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의 무게와 가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삶의 모든 걸음은, 막연한 방향성에서 시작했습니다. 유학도, 공부도,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고, 처음에 주신 그 마음 이상으로 가장 선하게 저를 풍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주저함이 있지만, 그러나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반년 동안의 순전한 기독교의 정독이 없었다면, 감히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동일하게 아주 조금씩 묵상하면서 읽을 예정입니다. 두분 사이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품고 싸우고 고민하는 길이기에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아마 다시 반년이 걸릴까요? 이 과정을 통해서 진리의 가치를 더욱 새롭게 발견하고,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에 더 깊이 다가가기를 소망하고 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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