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침 일찍 학교로 떠나 저녁 늦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너무나 사랑하는 저로서는,
따뜻하고 안락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밖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얼마되지 않아,
아내가 유학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빠 우리 꼭 유학 가자 ^-^'
'응? 오빤 집이 너무 좋은데? 도저히 자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ㅜ.ㅡ'
집을 사랑하는 저에게,
늘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저에게,
유학이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벌써 이곳 CFNI 에서
두번째 학기를 거의 마쳐 갑니다.
그리고 이틀 전, 주님 은혜로,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칼빈신학교의 공식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Th.M. educational ministry 과정입니다.
학구적인 교육학 석사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잘했다는 생각은 사실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결혼한 이후로, 아내에게서 가장 기뻐하는 모습을 본 듯 합니다. 부족한 저와 기꺼히 결혼해주고, 지금까지 저의 인생을 지탱해주고 지지하고 이끌어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저와 아내를 위해서, 늘 눈물로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장인어른 장모님과, 그리고 저의 부모님께 감사했습니다. 늘 투덜대는 저의 전화를 기꺼히 받아준, 사랑하는 아우 봄이에게 감사했습니다. 저에게 신학하는 기초를 가르쳐주시고, 책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저를 위해 기꺼히 모든 것을 쏟아부어주신 존경하는 멘토 배영진 목사님께 감사했습니다. 인격적인 목회의 참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저에게 주님의 목회를 가르쳐주신, 추천서를 써 주신 이유환 목사님께 감사했습니다. 진정 참된 개혁주의자로서 삶과 강의로 모범을 보여주신, 추천서를 써 주신 한성진 교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지만, 찬양 인도자로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추천서를 써준 조나단에게 감사했습니다. 목회 가운데 늘 저에게 배움과 도전과 은혜를 주셨던, 진실한 목회자 노승수 목사님께 감사했습니다. 늘 저의 가장 가까운 멘토와 친구가 되어주고, 깊은 신학의 세계로 인도해준, 친형과 같은 사랑하는 주재형 목사님과 성희 사모님께 감사했습니다. 늘 저에게 신학적 지원과 격려와 인생의 조언으로 도와주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승현 목사님, 은주 전도사님, 종일 목사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미국에 온 저와 아내를, 동생처럼 돌봐주시고 아껴주신, 친형과 같은 탁병진 목사님과 연홍 사모님께 감사했습니다. 같이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프고 외로울 때 마다 따뜻하게 보살펴준, 사랑하는 동기 형종 목사님과 경숙 사모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 고백서와 자기 소개서 교정을 봐 주었고, 늘 저의 일을 발 벗고 도와준 스티븐에게 감사했습니다. 함께 어려운 처지이지만, 늘 은혜를 베푸시고 저와 아내를 먹이신 대현 목사님과 다영 사모님께 감사했습니다. 토플 시험장에 새벽부터 저를 데려다주시고, 정말 물심 양면으로 저와 아내를 도와주신 승록 전도사님과 태순 사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저의 추천서를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도와주신, 뚝심의 목회자 사랑하는 동기 이동석 목사님과, 최고의 베이시스트이고, 진정한 멋을 가진 사랑하는 친구인 하종이에게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포옹하고 싶은 진정한 벗, 영전이에게도 감사했습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 자리를 마련해 위로해 주고 격려해준, 혹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동기 회장 상진이를 비롯하여, 사랑하는 98기 동기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가장 앞서서 언제나 찬양으로 섬기고, 영어로 된 음향 관련 서적을 기꺼히 빌려준, 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 성일 형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삶의 최전선에서, 늘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저를 지지하시고 이끌어준, 현정 누나에게 감사했습니다. 늘 따뜻한 조언과, 진실한 저를 향한 관심과 기도로 힘을 주신 정말 너무나 사랑하는 형원 형님과, 누가 뭐래도 주님이 가장 아끼시는 자녀, 사랑하는 친구 지환이에게 감사했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기 전에도, 그리고 사임한 후에도 잊지 않으시고 기도해주시고 크게 격려해주신 윤동현 목사님을 비롯한 열린비전교회 목회자분들과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떠나기전 어려운 시간들을 내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시고 사랑으로 격려해주신, 정유 형님과 윤의 누님과 신혼가정부 식구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귀한 주님의 은혜로, 저는 지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은혜롭고 행복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온누리침례교회 안상희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늘 힘이 되어주시는, 함께 섬기는 목회자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토플로 긴장했던 저에게, 조언과 여유를 넉넉히 안겨 주신 은준 목사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곳 CFNI에서 저를 과분하게 격려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신 동기 분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함께 소그룹 모임 속에서, 도너츠를 나누며, 기도로 조언으로 도와주신 석재목사님, 박영진 목사님, 유진 형님, 왕전도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힘든 상황 때 마다 썼던 저의 글들에,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사실 은혜를 입은 분들은 더 많지만, 모든 분들의 이름을 적을 수 없어 진심으로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저와 아내의 이름과 상황을 기억하시고, 위해서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20대 초반에 좌우명을 정하게 되었을 때에,
The one for the truth, only my God 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때 솔직한 제 마음은,
주님을 위해서 사용될 The one,
절대적인 유일한 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5년 전쯤 전에,
왠지 스스로 계면쩍어 졌습니다.
마음이 조금은 겸손해져서,
왠지 The one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뭔가 특별한 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슬쩍 The를 빼고 One을 대문자로 바꿔서 넣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쯤에,
one이라는 글자를,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의 좌우명은,
one for the truth, only my God 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살아갈,
그런 믿음의 사람들 중에 한명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중한 마음을 주님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주님의 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진실로 많은 훌륭한 분들,
정말 기라성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점점 보게 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속에는,
어리고 연약하고 교만한 저 혼자만이 아니라,
구름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의 교회 가운데
제가 속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비록,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기다린
합격이라는 큰 기쁨을 나누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저의 혼자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 속에서, 함께 이룬 아름다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교회'는,
서로의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서로 힘을 주는 공동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합격의 소식을 접하고서,
이 큰 기쁨과 감격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넓은 이곳에서,
저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기에
또 다시 두려움이 밀려 옵니다.
걱정, 걱정, 걱정, 걱정, 염려, 염려, 염려, 염려..
20대 초반에 군대 가기 전, 이미 제대한 교회 형들에게 두려움으로 물어보았습니다. '형! 군대가면 어때요?' 돌아온 대답은 '야, 그거 별거 아냐 그냥 잘 버티면 되! ㅋㅋ' 아.. 진실로 그러한 줄 알았습니다. 군대는 그냥 별 것 아니고 버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힘든 공군 사병으로 다녀왔지만, 제가 느낀 군대는, 예상했던 것 보다 열배 정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간증(?) 은 그런 위험이 있습니다. 이미 이룬(?) 누군가의 이야기는, 그 사람이 겪었던 괴로움과 고통보다는, 이미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기보다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가져다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에게는, 은혜로 성공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보다는,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눈물과 고통의 때를 지나가야했다는 솔직한 진실함이 더 공감이 되는 듯 합니다.
이지성씨가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그의 성공의 결과보다는, 그가 태백산맥을 필사했다는 것과, 최소 10년을 매일 새벽부터 정기적으로 도서관을 다녔다는 것과, 눈물로 수 많은 책들을 읽어야 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의 성공은 주님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그의 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독서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절대로 지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절박하고 또 절박해서였습니다. 성경을 좀더 잘 알고 싶었고, 설교 시간에 졸고 싶지 않았고, 나도 뭔가 성경적인 지혜를 가지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는 주로 '성경 공부 열심히 하라' 는 이야기였습니다. 아.. 이렇게 답답할 수가, 누가 그런 대답을 못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정말 어떻게 그것을 잘 해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되었다구요? 맞습니다. 물론 그것은 백프로 성경적인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 인 대답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적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가 그런 '간증' 중에 하나입니다. 지극히 다분히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의 영어 점수는 은혜로 되었다 라는 그런 이야기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필요한 누군가에게 정리할 때가 된 듯하여 적어봅니다.
제일 처음 영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마도 '영어 공부 XXX 하지마라' 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면 알겠지만, 핵심은 '들을 때 까지 들어라, 그러면 들릴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 아름다운 꿈의 경지, 저절로 영어가 들리고 이해가 되는 그 꿈의 경지를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추천하는, 아버지께서 사 주신 단파 라디오를 붇들고(외국 방송을 늘 듣기 위해서) 한 2년 정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리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빠르기만 하고 아무런 내용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9.11 사태가 난 그날도 영어 방송을 들었지만, 뭔가 긴장되는 상황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시도는 시들시들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도서관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영어로 유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읽으면서 정리해 본 결과,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선에게 우리 나라의 영어 고수들은 두가지 길로 나뉘어졌습니다. 한쪽은 '문법파' 한쪽은 '리스닝파', 문법파는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영어 정복의 길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인 리스닝파는 열심히 듣는 것만이 그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의 결론은, 그래 그럼 나는 그 둘을 결합할 꺼야.
그때 쯤 한창 한국에서 뜨던 것이 '영어 일기' 쓰기 혹은 영어 작문에 관한 붐이었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참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 문법 파의 조언에 따라, 작문 연습이 장차 큰 도움이 될 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키보드가 달린 PDA를 사서(요즘의 넷북과 비슷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 영어로 바로 받아 적기. 목사님이 앞에서 설교를 하시면, 저는 그 내용을 나름 영어로 정리해서 작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단순한 형식의 반복적인 라이팅이었지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1년 반 정도 계속 했습니다. 비록 고된 과정이었지만, 영어의 기본적인 문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하던 중에, 우연히 영어 성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NIV dramatized Bible 이라는 오디오 바이블이었는데, 여러명이 드라마처럼 성경을 녹음해서, 굉장히 듣기에 좋은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어머니께 성경을 사달라고 조르고(그 당시 15만원이란 거금에 크게 놀라신 어머니!) CD 60장 정도를 일주일 동안 MP3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3년 정도 NIV 성경을 듣고 다녔습니다.
별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든지 착각하면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 한장을 들으면, 그 중에 내가 아는 것은 들리고 모르는 것은 안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원래 영어는 그런거겠거니 하고 듣고 다녔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이 때가 위험한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냥 아는 것을 대충 끼워맞추면서, 내가 듣고 있다고 충분히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문법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것은, 우연한 대학교 토익 특강 때 였습니다. 그 시간이 소중했던 이유는, 처음으로 '분사' 에 대해서 제대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배운 것이 토마X라는 토익 책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문법에 대한 간략하고 좋은 설명들이 있었고, 그것을 진지하게 읽음으로써 영어라는 것에 문법적으로 좀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름의 작문'을 했지만, 그저 단순한 수준의 영어였다면, 분사에 눈을 뜨면서 영어의 오묘한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때 쯤 교회 영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RG라는 모임이었는데 영국인 선교사 Steve와 박윤곤 형님이 이끄시는 모임이었는데, 두시간 정도 자유로운 토킹과 성경 공부의 모임이었습니다. 아직도 처음에 스티브를 만났을 때 God (갓) 을 '곳' 이라고 영국식으로 발음하던 것에 놀라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 영어라는 것이 미국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그 때에도 어느 정도 영어로 듣고, 떠듬떠듬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제 영어는 거기서 정체를 겪게 됩니다. 실생활에 영어를 쓸 일도 없을 뿐더러, 더 이상 배울 이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법적으로 말하면, 아주 간단하게 작문을 하고, 어느 정도 문법의 중요성을 알고, 떠듬 떠듬 이야기도 하고, 듣기로 말하자면, 그냥 내가 아는 문법 선에서 아는 단어를 듣고 반응하는, 특별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것이, 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영어에 대해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유학을 준비하면서 였습니다. 아마도 IBT 시험을 한번이라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물론, '군대 까짓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제대자들, 이미 토플을 고득점한 분들은 몇개월만에 점수를 얻었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 저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듣기 였습니다. 일단 IBT는 듣기가 안되면 정말 아무것도 안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리스닝은 듣기 지문이 실제 강의 처럼 7-8분을 듣게 되고, 지문당 거의 10문제를 풀게 됩니다. 정말 안들리면, 정말 못 풉니다. 스피킹도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대해서 듣고 정리하고, 가급적 정확한 예를 캐치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되기 때문에, 못들으면 못 풉니다. 라이팅도 둘 중 한 문제는 결국 또 어떤 강의를 듣고, 지문과 비교해서 풀어야 되기 때문에, 못들으면 못 풉니다. 아.. 듣기여..
보통, 미국의 신학교는 석사 과정에서 IBT 80점을 요구하고, 일반 석사 과정은 100점을 요구합니다. 적어도 최소한 저에게 있어서 80점이 필요했고, 처음 IBT 점수는 63점이었습니다.
영어.. 넌 도대체 누구냐?..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토플로 유명하다는 강남의 해커X, 새벽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학원, 종합반 한달(문법부터 전 영역) 단과 리스닝을 두달 다녔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이미 노하우가 많은 선생님들로 부터 기출 문제도 받았고, 적어도 토플 시험 자체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유사한 문제를 많이 풀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영어'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시험'에 관한 이야기는 있었고, 열심히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 열심히 들으면서 따라 읽으라는 이야기(쉐도잉), 듣고 받아 쓰라는 이야기(딕테이션)도 있었지만, 영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뭔가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단과 중에 연태흠 선생님의 '종합청취'라는 수업은 좀 달랐는데, 계속 발음을 강조하고 따라 읽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은 좀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원이 저의 영어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이 후에, 웹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영어를 정말 잘한 사람들은 어떻게 영어를 하는 것일까? 진지하게 영어의 본질을 접근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참으로 캄캄하고 희미하던 저의 영어의 세계에, 은혜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기초적인 영어 실력으로는, 본질적인 접근 없이는, 도저히 원하는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찾기 시작한 영어의 세계에, 희망이 아주 조금씩 보였습니다.
첫째로 저에게 유익했던 것은, "펜과 그리고" 라는 영어 사이트였습니다. 영어라는 것을 문법을 분석하기 보다는, 하나의 큰 원리를 전체적으로 이어주는 설명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도와주는 차근차근의 설명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문제를 풀고 문법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보다 훨씬 설득력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주문하고 열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영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기 수준에 합당한 쉬운 영어 책' 을 '열심히 소리 내어서 읽어야만 영어에 발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와 책들을 본 이후에, 영어 책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로 제가 집중했던 것은, 결국 '발음' 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면서 놀란 것은, 영어 고수(뉴욕에서 의사되기 블로그의 저자 포함 - 꼭 한번 책을 사서 읽어 보시길, 영어가 생업이 아닌 분이라 설명이 상업적이지 않습니다) 들은 모두가 발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기가 발음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은 들린다' 였습니다. 그러므로 발음을 익히는 것인 필수이고, 그 발음을 부지런히 말로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중요한 것은 제가 20대 초반에 알았더라면..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거의 5년 이상을 영어를 그저 '듣기' 와 '문법' 이렇게 두가지로 이해하고 있던 저에게, '발음'이 되어야만 결국 영어가 된다라는 이야기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발음 기호' 부터. 근데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의외로 한글로 된 웹상에 영어 발음 기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별로 없다는 것이없습니다. 그저 한국어 자음과 모음에 비교하는 간단한 표들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찾고 찾은 끝에 은혜로 좋은 사이트를 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음성 파일을 다 다운 받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영어라는 세계가, 사실은 발음의 세계이며,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내 마음대로 발음하던 것이 전부다 잘못된 것이고(아.. 이것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새롭게 모든 발음 기호를 하나하나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g와 dg(발음 기호 표기가 안되서) 의 발음법이 다르다는 것, 앞에 것은 그냥 '쥐' 발음이고 뒤에것은 혀가 윗 이빨 뒤에 마찰을 일으키며 '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충격 중에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발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모두 참조하는 중요한 사이트가 하나 있는데, 바로 Rachel's English 여기였습니다. 외국인이 발음의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 주고, 그 차이점을 알려주는, 영어 발음의 근원과 같은 사이트였습니다. (물론 단어 강세, 문장 강세가 다 포함 됩니다)
영어를 소리내어 읽는 것, 그리고 발음 이라는, 이 두가지 방향에서 영어를 이해하면서, 저의 영어에 대한 공부와 접근이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IBT 토플은, 단순히 점수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라는 본질을 이해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변화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이때 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오늘 영어 책을 보다가 Helmet 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헬멧'이라고 발음 합니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발음 기호는 '헬밋' 으로 발음 됩니다. 완전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확인은, 기초 중에 기초이고, 기본 중에 기본인데, 지난 20대의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관심이 없었는데, 드디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참 관심을 가졌던 연음이니, 축음이니 이런 것들은, 이것이 기초가 된 다음에 있어야 하는 과정인데, 기초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접근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 매달리고 사활을 걸었던 것은, '영어를 소리내어서 읽는 것', 그리고 '그 하나의 모든 단어들의 정확한 발음과 강세를 익히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문장 안에서 '강세(기능어라고 부릅니다)'를 찾고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토플 리스닝 지문을 하든지, 리딩 지문을 하든지, 영어를 한다는 것은 저에게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지독하게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습니다.(심지어 저 자신에게조차) 왜냐하면 언제나 영어 사전에는, 중고등학교 수준의 단어들이 몇백 단어씩 들어가 있고, 꼭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것을 반복하고 읽어야 하니 여간 고되지 않았습니다. opportunity, universe 같은 단어들을 만족스럽게 발음하고 익히는데도 몇개월이 걸렸습니다. 똑같은 단어를 수십번씩 사전에 기록하고 외우고.. 하지만 저에게 대안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이러한 부분이 결국 영어 본질로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영어가 조금씩 올랐습니다. 물론 절대로 학원에서 배운 것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스킬들을 배웠고, 템플릿이라 부르는 모범 답안을 외웠습니다. 사실 이번에 받은 22점은 아내가 학원에서 받은 모범 답안을 외워서 응용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라이팅에 있어서는 이정도 선에서는 그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을 응용하기 위해서도, 영어 자체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없었다면, 도저히 못했겠지요.
한국에서 받은 토플 점수는 최고가 78점,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본 것은 73점 입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더 이상 한국에서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저에게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수 많은 단어들을 다시 익히고, 수십번씩 발음하고 읽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 했고, 이곳 CFNI 가 그런 공부의 장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곳 CFNI의 워십 과정은 학구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레포트를 내는 것이 학업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수업을 하루에 4시간을 듣는다는 것, 영어로 그것을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수준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에(최소한 신학교 교양 수준은 됩니다.) 상당히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이곳은, 제가 익히는 영어를 사용하는 최고의 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얼마전에 게스트 스피커가 와서 강의하는 중에 egocentric 이라는 단어를 발음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그 전에 한 20번은 발음하고 신경써서 익힌 단어였습니다.
ou 부분에서 발음을 익히고(저에게는 그냥 '오' 와 '오우' 를 익히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단어마다 다 다르니까요.) 엑센트가 뒤쪽에 들어간다는 것도 신경써서 발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끝나는 r 발음도 신경썼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egocentric을 발음했을 때에, 그것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그 감격은.. 아.. 그것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처음부터 목표를 다르게 잡았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토플 시험 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접근 자체는 영어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었습니다. 수업은 그것을 적용하는 곳이었고, 공부는 집에서 했습니다.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라고 하는 책도 영어책으로 사서 크게 읽었습니다. protools라는 사운드 소프트웨어 교본도, 소리내서 읽었습니다. 단어를 익히고 연습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일 단순한, 그러나 적어도 본질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이 저에게 유효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변수는 따릅니다. 물론 저는 영어의 본질이, 위의 설명 속에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하지만, 사실 여기서 부터 우리가 영어라는 것에 추가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몇가지가 생깁니다.
첫째로 바로 '배경 지식' 입니다. 물론 단순히 생활 영어 정도를 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강의 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78점을 맞을 때에 리스닝 지문 가운데,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우주 여행 가운데 우주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이 주제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과학 만화책에서 본 내용이 기억나, 듣고 푼 것이 아니라 배경 지식으로 풀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플은 일종의 '영어 수능' 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멜기세덱' 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성막' 대한 강의를 하는데, 전혀 배경 지식이나 관련 단어를 모른다면,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이곳은 성경 학교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수입니다. 또 이것은 다르게도 적용 됩니다. 예를 들어 조별 모임을 하는데, 외국인 아이들이 '24' 라고 이야기하고 한참을 농담하고 웃으며 이야기하길래 혼돈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알고보니 미국 드라마 '24'를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발음' 이라는 것이 '한가지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한국에서 듣는 것은, 표준적인 미국 발음이지만, 실제로 외국에서는 영국 사람, 호주 사람, 흑인, 백인 연세드신 분 등등 너무나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도 다 다릅니다. 영국 발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고, 호주 발음이 강한 사람 약한 사람, 흑인이지만 발음이 좋은 사람 다른 사람 등등, 정말 천차 만별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학기 때 강의를 들은 John은 너무나 호주 발음이 강해 거의 수업을 놓쳤습니다. soundboard를 샌드보드라고 발음하니, 도저히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상황' 입니다. 강의식 영어는 어떻게 보면 쉬운 편입니다. 그러나 내가 외국인과 일대일로 혹은 다대일로 토론이나 이야기를 할 경우, 상황이 완전 달라집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은 몇마디로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고, 몇배로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수준 높은 듣기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귀의 상태' 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음악을 큰 볼륨으로 너무 많이 듣었고, 공군 헌병 출신이라 전투기 엔진 소음에 시달렸기에, 사실 한국 사람이 한국 말로 하는 것도 많이 못 듣습니다. 청력이 약한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소리보다 주변의 소음에 민감해 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영어를 듣는 다는 것은 여러가지 변수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연음' 입니다. 저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연음이 무엇이다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지만, 빠른 발음 속에서 약해지거나 연결되면서 변형되는 발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과거 연음에 연연했던 것은, 마치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신학 책을 보려고 했던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정도 기초적인 발음들을 익히고 익숙해지고, 강의에 익숙해지니, 제가 잘 안들리는 부분들이 연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토플 문제 풀면서 잘 안들리는 부분들을 체크 했더니 대부분 연음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받은 점수는 총점 86점, 리딩 24, 스피킹 20, 리스닝 20, 라이팅 22 입니다. 스피킹은 한문제 정도를 놓치고 최선을 다했지만, 이정도 나온 것을 볼 때에, 앞으로 1년 안에 더 이상 높은 점수는 어려울 듯 합니다. 리스닝은 상당히 어려웠고 찍은 문제도 많기 때문에 은혜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거처럼 다 찍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의 목표는 석사이기 때문에 더 이상 토플은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혹 다른 분들이 제가 영어를 굉장히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위에 정리한 것처럼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저에 대해서 가장 좋게 이야기한다면, 제가 아는 주제가 나오고, 강의자가 비교적 클리어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할 경우에는, 강의 전체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농담이 나오면 90퍼센트는 놓치고 혼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가장 나쁘게 이야기한다면, 소그룹 셋팅에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거의 못 들을 때가 많고, 심지어 어떤 분이 week 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두번이나 물어볼 정도입니다.(연세가 좀 드시고, 말을 약간 우물 우물 하는 스타일의 미국인)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일 무서운 것은, 마켓의 점원입니다. (아내가 다 이야기하고 해결해 줍니다)
이곳 워십 과정에서, 영어를 정말 잘 하시는 분들은, 이미 수 많은 학습의 고통을 지나고,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들이 대부분임을 기억할 때에, 영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토플 점수를 받았지만, 저의 영어 실력을 놓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 참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황하게 적어본 것은, 저 처럼 평범하지만, 그러나 유학의 꿈을 가지고 있고 영어에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적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여전히 단순합니다. 오늘도 간단히 영어 큐티를 하고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단어들을 저장하고 발음을 익히고 신경쓰면서, 문장의 구조들을 음미했습니다. 좀더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음을 배워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조금 도전해 보다가 실패했던 딕테이션의 과정으로 들어가보려고 합니다.(제가 생각할 때 딕테이션은 , 결국 연음과 다양한 발음의 경우의 수를 최대한 많이 접하고 익히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지금까지처럼, 가급적 앞으로 보는 모든 영어 책은 계속 소리내어서 읽을 작정입니다.(시간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5년 정도까지는 더 소리내어서 읽고, 그 다음부터는 소리내서 읽지 않는 묵독으로(마치 우리가 한글로 된 책을 읽듯이) 들어갈 계획입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무모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영어를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실 영어가 스트레스가 되고, 한국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주님 은혜로 왔음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대합니다. 모든 과정과 오류와 실패와 도전 속에서, 주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경험이, 비단 저에게만이 아니라, 저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마음에 소망은 있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한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번의 공식 거절 메일을 받고, 바로 그날 낙심된 마음을 억누르고 토플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리고 3주 정도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습니다. 사실 토플 공부라고 해야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영역별 문제를 풀어보고, 열심히 듣고 말하고, 암기했습니다. 토플은 마치 수능과 같아서,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막막한 것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 하루하루가 그만큼 소중한 한걸음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약한 과학 영역 쪽으로,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쪽으로 좀더 신경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승록 전도사님 부부가, 시험 당일 감사하게도 시험장까지 태워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저의 실수로 여권을 챙겨오지 않아, 다시 두분과 아내가 저의 여권을 가지러 집으로 다녀와야했습니다. 두분과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시험장까지 달려온 아내로부터 여권을 넘겨받고, 저는 거의 마지막으로 입실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토플 시험에서는 늘 가장 처음으로 들어가 시험을 봤던 저였기에, 적잖이 당황하고 낙심하였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시험장은 지금까지 본 시험장 중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쾌적하고 넉넉한 환경 속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토플 시험 장에서 시험을 늦게 시작하면 제가 리스닝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스피킹을 하게 되어서 사실 시험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은 감사하게도, 교묘하게 타이밍이 비켜가서, 저의 리스닝이 큰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거의 1년만에 보는 토플 시험이었지만, 난이도가 전체적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리스닝과 통합형 문제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모든 지문이,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쪽 내용이었습니다. 비록 듣기는 어려웠지만, 집중적으로 단어를 외웠던 분야였기에,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풀면서도 놀랐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피킹도 제가 생각할 때에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잘 봤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3일전, 기다리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성적을 확인하는 순간, 아내와 저는 환호성을 지르며 동시에 낙심하였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칼빈에서 요구하는 전체 점수를 넘는, 지금까지 토플 중에 가장 고득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아쉽게도, 칼빈이 요구하는 라이팅 영역의 점수가 23점인데, 저는 22점을 받았습니다.
하루 정도 멍하게 있었습니다. 그 아쉬움이란.. 계속 이 생각만 들었습니다. '왜 하필 22점일까? 충분히 잘 쓴것 같은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는 생각은 사실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총점에 대해서는 '내가 잘한 것'이라는 생각만, 그리고 '아쉬운 라이팅의 1점'에 대해서만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서 드디어 정신이 조금씩 들면서, 총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토플 처음 시작할 때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마의 80점의 벽을 처음으로 넘고서, 이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를 조금씩 조금씩 저의 마음 가운데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학교의 기도처로 기도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에게 주님께서 라이팅 22점을 주신 것은, 기도하라고 하신 사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마치 점수 1점이 합격을 주는 것처럼, 그 1점에 믿음을 걸고 있는 저 자신을 주님께서 보게하셨습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저의 점수 1점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 23점이면 무조건 합격이야..'
토플 시험 보기 전에, 공부로 힘들어하는 저를 격려하기 위해, 지혜로운 아내가 맛있는 것을 사주었습니다. 학교에 있는 치킨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데, 바로 이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짧은 몇 소절만에, 이 노래가 아주 오랫동안 찾아왔던 그 어떤 곡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순간마다, 그것이 토플이든, 그 어떤 것이든, 결국 모든 것은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영혼의 본질인, 인과응보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토플 시험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결국 제 마음에 쌓은 것이,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교만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설교하고 노력하고 책을 보았지만, 여전히 저는 저 자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은 아내를 통해,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저에게 다시 한번 알게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어쩌면 유학의 과정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러므로 저는 그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할 뿐이고, 높아진 마음이 아니라, 겸손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기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Less of me, more of you is what I need' 이 찬양에서 가장 제가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칼빈에 다시 한번 심사를 요청했습니다. 앞으로 2-3주 안에 연락이 오고 결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학교도 한곳 접수할 예정입니다. 제 마음 가운데 여전히, 탈락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가득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제가 무엇에 좀더 마음을 쏟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리스도의 은혜와 절대적인 사랑,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나를 겸손히 낮추는 것, 하나님의 뜻을 더 귀히 여기고 나를 낮추는 것,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 그리고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한치도 오차가 없는 절대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제가 할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비록 두려움 가운데, 마음이 벅차게 행복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생각 나실 때, 계속 기도해주세요. 다음 학교로의 순탄한 진학을 위해서, 그리고 좀더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