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9일 목요일

왕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간다는 것 / 사무엘상 19장 1-24절 설교

 


사울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멀리 할 때에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탄식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참된 것의 구별을 잃어버리고, 잔인함과 위선으로 가득 채운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악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 가운데 마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 하셨고 앞으로도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은 좋은 설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으로 우리 삶 가우데 역사하시며, 또한 우리가 아주 예민하게 깨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이번 설교가 굉장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울의 무너진 모습이 새롭게 보이고, 다윗의 신실함이 새롭게 보이고, 또 하나님을 떠난 자를 철저하게 낮추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신앙의 길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고, 위선을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히쓰는 것입니다. 그 길을 정말 진지하게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 사무엘상 19 1-24절 설교문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에 그의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죽인 자가 만만이라면서 그를 칭찬했습니다. 사울은 자신보다 높아진 다윗을 심히 질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유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 하였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사위로 삼겠다는 것을 미끼로 그를 전쟁터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지혜로웠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면서 평생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전체적으로 부분으로 나눌 있겠습니다. 1절에서 7절까지는 “요나단의 변호”, 그리고 8절에서 17절까지는 “미갈의 변호” 그리고 18절에서 24절까지는 “사울의 옷을 벗기시는 하나님” 이라고 소제목을 잡을 있겠습니다. 내용으로 함께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19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사울이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적대감은 누가 봐도 분명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인격적으로 인격적으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사울의 모습은 사울로 부터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 때에 그의 인격과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게 추락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의 아들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상 옳고 그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명령을 듣고서 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숨어 있으라고 말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담대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4절에 하반절이 핵심입니다.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울 명령과 행동은 분명한 범죄라는 것을 요나단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행하는 일은 분명한 범죄이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범죄한 일이 없고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심히 선하게 대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울에게 말하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응이고 그리고 뜻밖의 반응입니다. 장면에만 집중해서 보자면 사울은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같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꾼 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이 이어지는 맥락에서 사울의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울의 상태라는 것은 사울로부터 하나님께서 떠나신 상태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로 살아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사람의 말을 믿을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그 사람의 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수가 있습니다.

 

역시나 사울이 하나님을 걸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성경은 바로 이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말씀 속에서 다윗의 신실함과 사울의 거짓이 계속 대조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다윗은 미련해 보일 만큼 사울을 믿고 있습니다. 그는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그를 떠나지 않고 그의 옆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블레셋으로 부터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집에 계실 때에손에 칼을 계속 들고 계신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은 사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광기와 살기가 넘치는 지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와중에 사울을 엄습한 악령으로 부터 그를 돕기 위해서 다윗은 수금을 타고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의 단창을 자신을 돕고 있는 다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급하게 자리를 피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사울은 사람을 능숙하게 속이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말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었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는 여호와의 뜻을 대적하는 자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여호와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자였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과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분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26 24절에서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것은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악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무섭고 철저한 악인이 어떤 악인인가? 그럴 듯한 신앙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겉으로만 그럴 하게 자신을 꾸미는 악인이 진짜 악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인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악을 회중 앞에 드러내겠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히브리서 10 2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를 믿고 그분의 보혈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 가운데 진실하고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셨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다른 이를 속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성으로 남아 있는 위선과 거짓을 날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다운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과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핵심은, 사울은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맹세를 뒤집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 사울이 끝까지 다윗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편이 얼마나 위급하고 긴박했던지, 다윗이 도피했다 도망했다 라는 표현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은 극도로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했지만, 오히려 사울의 아들과 그의 딸은 다윗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리더인 아버지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래도 가정에 영적으로 바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상을 침대에 뉘여 놓고 다윗처럼 꾸며서 다윗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서 다윗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사울은 분노하며 딸에게 책임을 추궁했지만, 미갈은 어쩔 없이 자신이 다윗을 도망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가 충성심을 최대한 발휘해서 장인의 옆을 지키려했지만, 사울의 죽음의 위협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니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갔다, 그리고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전하였다, 그리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욧이라는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8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자신의 위협을 피해서 도망을 갔지만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행방을 알리자, 바로 나욧으로 전령들을 보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울의 전령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대신하여서 그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엄한 왕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왕의 전령이기 때문에 사실상 왕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다윗을 찾아서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이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무리가 예언을 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리더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때에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감히 누구도 막을 없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때에 사울의 명령을 받고 다윗을 죽이려 하던 전령들이 모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게 것입니다

 

사울이 분노하여서 두번이나 전령들을 보냈지만, 모두가 동일한 현상에 사로잡혔습니다. 보다 못한 사울이 직접 다윗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22절에 보니, 마치 사울은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윗의 행방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울이 라마 나욧에 도착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사울조차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걸어가면서 예언을 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4절에는, 아주 충격적인 말씀이 등장합니다. 24 그가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금 사울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살아있는 이스라엘의 실세였습니다. 그는 질투에 눈이 멀고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조차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릴 있는 권세자였고, 아무도 그의 뜻을 막을 없는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서자, 사실은 사울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컨트롤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처음에 라마 나욧으로 때에 무슨 옷을 입고 갔겠습니까? 당연히 왕의 옷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갔을 것입니다. 왕복이라는 것은 왕의 신분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다다랐을 때에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에게 부으시고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옷을 벗겨 버리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위에 진짜 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땅에 왕을 세우고 다시 폐하는 모든 권세는 사울왕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살기 등등하여 다윗을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다윗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은오직 여호와 하나님 분이시라는 것을, 사울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명백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그것은"감히 여호와를 대적할 자가 없도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버린 사울은 끊임없이 살기를 품고 다윗을 죽이려합니다. 겉보기에 다윗의 처지는 너무나 처량한 것입니다. 그는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연 죽음이 그의 바로 앞에 있다고 말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그를 추적하고 있지만, 감히 사울 조차 여호와를 이길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강권적으로 그가 예언하게 하시며 그의 옷을 벗겨버리심으로서, 감히 여호와를 대적할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 상을 열어가는 중요한 기도인 사무엘상 2 10절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왕으로 삼으시며, 그를 대적하는 이를 철저하게 낮추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사울의 추락을 보이시면서 그것을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영원하신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인가?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며 이제는 자유롭게 하시는 그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들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역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백성은 진정한 자신의 왕을 마땅히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세상이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리 악인들이 횡횡하며 자신들이 왕인 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의인들을 핍박하고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모든 위에 계시며 온전한 왕이 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겠습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의 겸손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는 삶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며,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재력과 어떤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 앞에 없이 겸손하여지고 그분을 높이고 그분 앞에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다윗처럼 여호와를 따르고 여호와의 편에 선다면,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도 무한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편에 우리가 당당하게 있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지키신다는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도 주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없는 겸손한 마음으로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실 때에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저의 모든  속에서진실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삶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벗어 던지고하나님의 자녀다운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매일 저의 삶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아버지 하나님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인간도 감히 여호와의 뜻을 거스를  없음을 고백합니다 되신 주님의 신하로 종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자 되게 하시고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그리고 주님의 편에  자로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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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5일 일요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실함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익숙하고 또 성도님들이 익숙하신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본문을 놓고 씨름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면서 큰 은혜입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고민하고, 또 그 안에서 영적인 원리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단순히 주해의 작업이 아니라 성도님들을 위하여서 영적인 원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주해가 매우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목회적으로 그것을 넓게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한 듯 합니다.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것은,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전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현재 주어진 그의 삶에 대한 전념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큰 행복이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과 아픔이며 끊없는 도전과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한뼘도 자라지 않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 역시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약한 마음이 종종 듭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궁극적인 삶의 진정 의미이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했고 저에게 적용하였습니다.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문

오늘의 말씀은 어제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사울 왕 대신에 여호와를 향한 아름다운 중심을 가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가 막내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은 사울로부터 떠나고 악신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에 사울은 큰 회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어떤 스토리를 기대하시고 계십니까? 저는 16장부터 사실 이어지는 스토리 속에서, 다윗이 당당하게 왕으로 자리 잡는 스토리를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경우에는, 사무엘상 10장에서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바로 그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왕으로 추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바로 세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긴박한 전쟁의 스토리 속으로 다윗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골짜기를 중간에 놓고 서로 마주보고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가운데 거인인 골리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아마도 2미터를 훌쩍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엄청난 갑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방패든 사람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임에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마치 전차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명이 나와서 자기를 이기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사울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울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앞에 나가 싸울 사람으로 사울을 뽑았지만, 정작 온 나라의 가장 큰 위기가 닥쳤을 때에 사울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큰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사울에게 왜 두려움이 찾아왔을까? 사무엘상 11장으로 잠깐 돌아가보면 그가 왕으로 세워진 직후에 암몬 자손이 쳐들어와서 백성을 협박했습니다. 그때에도 오늘 본문과 매우 유사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백성이 힘이 없어서 소리 높여 울 때에 11장 6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라고 말씀하시지 

무슨 의미입니까? 방금 왕으로 세워진 사울왕이 그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되고 그분의 뜻이 사울의 뜻이 되었을 때에는, 사울왕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고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이 능히 대적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사울은 어떤 상태인가? 16장 1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상 다른 모든 조건들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왕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울의 앞에는 대적들이 동일하게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하였을 때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신이 떠났을 때에는 그는 도망치고 숨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과거로 돌아가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인도해야 했을 때에 여호수아가 염려하며 걱정하며 미래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8절 말씀입니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음의 담대함이라는 것은 혹은 용기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가진 조건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여호와의 편에서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으로 부터 진정한 용기와 담대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하여서 용기를 잃고 방황할 때 마다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기를 힘쓰면서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여호와의 편에서서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반부에서는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는 사울이 집중적으로 조명이 되었다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이어서 다윗이 등장합니다. 12절에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다" 그리고 14절에 보니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쫓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인간 왕인 사울 왕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고 사울의 병사였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방금 살펴본 그 골짜기 앞에서 대치 상황이 무려 40일 동안이나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군인들은 대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가져온 개인 물품으로 전쟁터에서 생활을 감당하곤 했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이 떨어지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다윗의 아버지가 다윗을 불렀어 형들에게 곡식을 가져다 주라고 다윗에게 시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 16장에 말씀에 보면 "다윗은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였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그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음식을 챙겨가서 형들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굳이 다윗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만약에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저 같으면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누구인데 이런 하찮은 일을 시키시는가? 내가 겨우 형들의 도시락이나 가져다 줄 사람인가? 이런 하찮은 일은 종에게 시켜서 해도 되지 않는가?" 저 같으면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20절에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놀라운 것은, 다윗은 여전히 양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소에 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그의 신분이나 그의 지위는 완전히 변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버리거나 혹은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놀라운 것은, 그가 일찍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라고 했을 때에 늦장을 부리거나 귀찮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일어났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다윗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태도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금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일로 알고 매우 성실하게 그것에 전념하여 감당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평범한 삶을 진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념"이라는 책의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전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꾸준하게 전념하면서, 결국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깊이와 긴밀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하나 인용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전념하는 것은, 큰 위험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은,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걸을 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지루함boredom이다. 오랫동안 전념하려면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둘째는 산만함distraction이다. 길을 가다 보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셋째, 불확실성uncertainty도 깊이를 위협한다. 내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넷째는 유혹temptation이다. 이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소년 다윗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 책 전념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현재 다윗의 상황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가 자신이 전념하던 삶을 내팽개치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왕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왕권을 위해서 그것만을 쳐다보면서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가 보여준 것은,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양을 치는데 전념하는 자로서, 그리고 아버지의 새로운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 사도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현재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과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평소의 생각과 성경의 말씀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의심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전념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과연 좋은 열매들을 허락하실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지금 전념해야 할 것을 너무나 쉽게 내팽개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전념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앙의 훈련과 반복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을 끊임없이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것에 힘을 쓰기 보다는, 허망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현재 맡겨진 일에 충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멋진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쳐다보면서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열매는 반드시 얻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오늘 이 시간에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가, 낙심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정진하고 있는가, 이것을 물으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다윗이 자신의 모든 상황에서 마땅히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한 것 처럼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삶에 대한 전념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귀한 것으로 부어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힘써 행하고 진실하게 하루를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삶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성령 충만을 구합니다. 저의 마음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오직 주의 말씀을 힘있게 붙들고 순종함으로 삶의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저에게 지금 맡기신 모든 것들을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땅히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에 오늘 하루를 전념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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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4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83) -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1. 가사 살펴보기

오래 전부터 날 누르는 내 안의 깊은 절망
아무 희망도 어떤 기대도 내겐 없는데
사람들의 외면과 날 거절하는 눈빛
아픈 상처로 짙은 어둠으로
깊이 빠져만 가는데 

어디선가 내게 들리는
하나님 아들 주님 이야기
그 분이라면 그의 옷자락이라도
내 마지막 소망이니 

주님을 만났네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내게 임한 주님의 능력
날 누르는 아픔의 근원을 고치셨네
날 바라보시네

나의 연약함 주님은 아시네
깊은 절망에서
날 자유케 하신 사랑 나 찬양해 


2. 곡 소개

이 곡은열두해를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믿음과 치유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찬양이다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주의 옷자락 만지며라는 찬양도 귀한 찬양이지만성경의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 곡은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곡은인간의 눈으로는 어떤 희망도 없는 곳에서오직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두고 오직 그분을 믿고 치유함을 받은 기적의 사건을너무나 아름답게 노래하는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8: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8:43 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but no one could heal her.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8:44 She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and immediately her bleeding stopped. 8: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8:45 "Who touched me?" Jesus asked. When they all denied it, Peter said, "Master, the people are crowding and pressing against you." 8: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8:46 But Jesus said, "Someone touched me; I know that power has gone out from me." 8: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8:47 Then the woman, seeing that she could not go unnoticed, came trembling and fell at his feet. In the presence of all the people, she told why she had touched him and how she had been instantly healed.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개역개정8:48 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NIV)

혈루증(血漏症bleeding 개의 헬라어가 사용되는데, ‘뤼시스 하이마토스 ‘피의 유출이란 뜻으로 만성 자궁 출혈병을 가리킨다 하나는 ‘하이모르로에오인데, ‘하이마’() ‘레오’(흐르다) 합성어로 한번 하혈하면 멈추지 않고 출혈이 지속되는 부인병을 말한다레위기 정결 규례에 의하면혈루증은 월경하는 여인의 부정함과동일하게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15:25–30). 성경에서는 12 동안 혈루병을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나음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9:20–22;  5:25–34;  8:43–48).

가스펠서브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1060.

8:43 a discharge of blood. Lit. “a flow of blood.” The woman’s condition makes her ceremonially unclean (Lev. 15:25, where the same phrase, “a flow blood,” occurs), cutting her off from many social relationships and excluding her from religious gatherings in synagogues and the temple혈루증은 문자적으로 피가 흐르는  의미합니다 여인의 상태는 그녀를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만들었고 그녀를 많은 사회적 관계에서 차단하고회당과 성전의 종교적인 모임에서부터 배제하게 하였습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02.

8:44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Even contact between an unclean person and another’s clothes rendered ritually impure the person whose clothes were thus contaminated (Lev 15:26–27). Here the effect is the opposite: she is cleansed. See note on Mk 5:27.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심지어 어떤 사람의 옷이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으로도 의복이 더렵혀진 사람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만듭니다여기서  효과는  반대로 일어납니다오히려 그녀가 깨끗해졌습니다

Craig S. Keener and John H. Walton, eds., 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Bringing to Life the Ancient World of Scriptur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6), 1763.

As a doctor, Luke was especially sensitive to the fact that this woman had spent all her resources on doctors and yet could not be healed. Even with the crowd pressing against Jesus from all sides, he was immediately aware of the touch of the woman who was instantly healed of her bleeding. No explanation is given for how he knew that healing power had gone out from him.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여인이 자신의 모든것을 의사에게 주었지만 고칠  없었다는 사실에 특히 민감했습니다군중이 사방에서 예수님을 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예수님은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은 여인의 손길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Craig A. Evans, “Messianic Expectatio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22–1623.

As Jesus travels to the leader’s house, a woman ill with uncontrolled bleeding touches the edge of his cloak. The description of the woman highlights her predicament and helplessness—for the past 12 years no one has been able to heal her. Once she touches Jesus, however, her hopelessness comes to an end. In front of the crowd the woman testifies at the feet of Jesus why she touched him and how she was immediately healed. Jesus’ statement explains what has taken place and identifies faith as the means by which his saving power is received (v. 48; cf. 7:50).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실 때에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묘사는 그녀의 곤경과 무력감을 강조합니다지난 12 동안 아무도 그녀를 고칠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지면서 절망은 끝이 납니다사람들 앞에서 여인은 예수님의  앞에서  예수님을 만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즉시 치유되었는지를 증언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일어난  일을 설명하시고구원의 능력을 받는 수단으로서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Alan J. Thompson, “Luke,”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404–140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이 정말 탁월한 이유는성경의 메시지의 핵심을 매우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여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그 어떤 의사도 능히 여인을 고칠 수 없었다.여인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무려 12년 동안 사람들과 제대로 접촉할 수도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다아마도 그녀의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마치 죽은 것과 방불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인이감히 예수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행동인데구약의 말씀에 따르면 부정한 사람이 누군가의 옷이라도 만지면 오히려 그 상대방이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놀랍게도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때에오히려 여인의 병이 기적적으로 온전히 치유되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된 여인은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행동의 이유와 회복을 떨며 말하였다예수님은 이 여인이 치유된 것은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치유 받았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또 이 찬양을 통해서 믿고 누릴 수 있는 진리는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치유자라는 사실이다우리의 삶이 어떤 절망의 상황이라 할지라도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주님의 때에 그분이 반드시 치유하실 것이며 그분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마땅히 우리는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오직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며치유하셨고 또 앞으로 치유하실 주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또 그분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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