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제가 합신을 다니던 시절, 김남준 목사님은 학교를 방문하셔서 학생들을 많이 위로해주셨습니다. 본인의 책을 선물로 주시고 가난한 신학생들 위해서 학생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메뉴로 먹여주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목사님의 깊은 신학적 사상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철부지에 불과했지만, 그분이 가진 교회와 신학교를 향한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책을 읽어볼 기회는 꽤 있었지만, 강의를 직접 들을 기회는 거의없었습니다. 마침 가까운 트리니티 신학교에 한번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열렸습니다. 제 기억 속에 목사님보다 많이 마르셔서 놀랐지만 눈에서 나오는 열정만은 그대로라고 느꼈습니다. 원래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과감히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목사님의 눈을 보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하수는 고수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영역에서든 하수는 고수의 사고와 생각과 언어와 방향을 결코 제대로 이해하거나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를 강의하셨지만 전혀 부담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저 배우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남준 목사님의 언어가 참 좋았습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별것 아닌 내용을 늘여서 말합니다. 아무 의미를 담지 못하고 문장과 문장을 낭비합니다. 그것은 듣는 이에게 고통을 줍니다. 단어와 단어가 연결을 잃어버리고, 문장과 문장이 그 방향을 잃어버릴 때에, 저는 마치 우주에 버려진 미아와 같은 막막함과 아픔을 느낍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강의는 정말 꽉 차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 한 문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어내야 했을까? 그래서 그 언어가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깊은 신학적 사고의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핵심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저작들이 완벽히 성경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의 논리와 수사의 방법들은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적절히 받아들이면서 수정하고 융화시킨 교회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눈여겨 볼 사람들, 그 천재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강의 자체가 환상적이었습니다. 교회사와 일반 역사를 넘나드는 탁월함, 방대한 신학을 일관된 하나의 관점으로 뚫어내는 깊이는 목사님께서는 이미 신학의 정점에 서 있고, 또 그것을 완숙과 예술의 경지로 빚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도 너무 좋지만, 강의는 몇배는 더 좋다고 느꼈습니다.
탁월한 강의도 좋았지만, 저는 한 인간에 대한 존경이 정말 컸습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30년 동안 공부했다라는 그 말씀이 감격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을 공부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이루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마음에 꿈은 있지만, 그것을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자신의 삶 가운데 빛나는 실제로 만드는 사람은 말 그대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길을 고난 가운데 애써 걸어, 자신의 그 지혜의 정점을 후배들을 위하여 나누어주고 길을 인도해주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한 남자로서, 한 목회자로서, 한 신학자로서 앞에 당당히 서 있는 분에 대하여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전 교회를 휩쓸고 그 파도가 닥쳐올 때에, 그것을 극복한 교회의 모습을 정리하시면서 마무리는 질문으로 끝났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에서 과연 어떻게 이것을 해쳐나갈지는 여러분에게 달렸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린 질문이라 좋았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평생에 힘있게 달려오셨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걸어간 그 길을 새롭게 시대 속에서 걸어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아마 어제의 강의는 평생 잊지 못할 듯 합니다. 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과 어거스틴의 저작과, 그리고 이후에는 아퀴나스의 저작까지 조금씩 읽어나갈 예정입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요즘 더 생각합니다. "나의 삶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새로운 발걸음을 또 용기를 내어 디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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