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메버릭을 열번 정도 본 이후에는, 몇번 더 보았는지 더 이상 세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볼 때 마다 저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목회적인 영감을 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석사로 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박사도 목회학이지만 사실상 교육에 모든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이라는 것은 "저의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머리 속에는 온통, 교육의 내용과 목적과 방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탑건은, 많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일종의 교회 교육에 대한 교과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주인공인 메버릭은, 특별한 미션을 위해서 조종사들을 교육시키는 교관이 됩니다. 그런데 메버릭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 위에 제독이 있고, 그 제독의 통제 아래에 조종사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메버릭의 교육은, 일반적인 비행 교육이 아닙니다. 탑건이라는 명예를 이미 가지고 있는 최고의 조종사들을 더욱 혹독하게 밀어 붙입니다. 제독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훈련을 지속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영화는, 메버릭과 제독 사이에 존재하는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혹은 철학적인 충돌"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제독은, 이 미션 자체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독의 관심은, "조종사들이 미션을 완수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그들은 이미 탑건 출신의 최고의 조종사이기 때문에, 혹시 그들이 생명을 잃고 돌아올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당연한 위험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독의 입장에서는, 메버릭이 하는 심한 훈련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메버릭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지나친 훈련이 마음에 들지가 않습니다. 쓸데 없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독은 그저 조종사들이 임무만 어떻게든 완수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조종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자신들의 관점을 붙들고 대화를 통해서 논쟁합니다.
(Admiral) What exactly do you suppose you were teaching, Captain?
(Maverick) That as good as they are, sir, they still have something to learn.
You are talking about the best fighter pilots on the planet, Captin.
The parameters of this mission call for something they have never encountered.
Okay, you have less than three weeks to teach them how to fight as a team. and how to strike the target.
And how to come home.
Every mission has its risks. These pilots accept that.
I don't, sir.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메버릭은 제독과는 전혀 다르게 접근합니다. 메버릭이 교관으로서 염려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이 훈련시키는 조종사들이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도전 (something they have never encountered)"에 맞닥뜨려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탑건 출신 조종사들입니다. 그런데 메버릭이 판단할 때에 그들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단순히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 자체"가 그들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평범한 교육"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훈련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버릭이 염려하는 또 다른 하나는, 그 미션을 완수한 이후에 그들은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come home)"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조종사도 있습니다. 메버릭은 그들을 "도구"로 보지 않고 "자신의 전우", 그리고 "자신의 가족"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살아돌아와야만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메버릭은, 더욱 자신의 교육 방법에 매진합니다. 왜냐하면 메버릭의 관심과 그의 목표는, 조종사들이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미션을 완수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그들이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히 교관이 아니라, 조종사들의 "how to come home" 까지 책임져야 하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번 보면서, 전율을 느낍니다. "교회 교육"이 마치 이런 것과 같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이런 시대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고물가 고유가 시대,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 진리가 더 이상 진리로 여김을 받지 않고, 모두가 각자 도생하며 살아가는 시대, 하나님과 교회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시대, 그리고 미래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 그 누구도 역사상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학자, 인문학자, 그리고 일반 대중까지 지금 시대를 바라보며 큰 위기감과 절박함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교회 교육은, "단순히 교육을 하는 것 자체"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어쩌면, "단순한 양육"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적당하게 설교합니다. 적당한 소그룹을 합니다. 적당한 교제를 구입해서, 적당하게 가르치고, 적당하게 박수치고 끝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교회 교육을 하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적당한 수준의 교육"들이 뭉쳐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우리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거야, 그러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꺼야"
그러나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에 중요한 것은, "목적" 입니다. 마치 메버릭이, 제독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조종사들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우리는 나 자신과 더 나아가서 교회를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과연 교회의 교육이, "그들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시대에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들이 삶에서 좌절하거나 영적으로 생명을 잃지 않고 과연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과연 교회 교육이 이 두가지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겠는가?" 입니다.
왜 제가 이렇게 "목적"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목적에서부터" 방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독은, 메버릭이 왜 그렇게 특이한 교육 방법에 집착하는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근본적"으로 "메버릭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도대체 성도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중요한 질문이지만,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로 바뀌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해야, 그 다음에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에서 방법이 나오는 것이지, 방법에서 목적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든 우리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막 살아도 어떻게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적" 입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만이, "그 목적에 맞는 방향과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방향과 방법"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도전하고 추구한 사람"만이, 인생의 종국에 있어서 "자신이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피상적이면서 멋져 보이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멋져 보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문장과 말은, 정말 헛된 것입니다.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글 안에서, "그래도 교회 교육이 중요하니, 그래도 당신의 신앙이 중요하니, 이제는 정신차리고 좀 더 노력해 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오셔서 이 글을 읽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만약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다면, 잠시 같이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눈"을 보면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당신과 저는, 흔들리지 않는 "교육의 목적" 혹은 "목회의 목적" 그리고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시대에 대한 절박함과 그 혼돈의 깊이"를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현실의 인식 안에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야 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숭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디서 들어본 좋다더라 라고 말하는 그런 그럴듯한 평범한 방법이 아니라, 당신이 정말 확고하게 붙들고 생명을 걸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아니 만약, 당신이 그 방법을 가지지 못했고 아직까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고 고민하고 절박하게 찾고 있습니까?
만약에, 이 질문들에 대해서 명쾌하게 혹은 확신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평범한 삶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질문들에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확신"으로 누군가에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그렇게 찾아 해매던 "어떻게 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에, 큰 한걸음을 내 딛은 것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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