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수업에서 성경을 잠깐 강해하시는데, 거의 성경 한장을 다 읽으시더군요. 어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냥 몇구절 읽으시고 설명해 주시면 되지 왜 저렇게 거의 한장을 다 읽으시지? 수업 시간도 짧은데 굳이 저렇게 하셔야 되나?"
혹시 제 속 마음을 읽으셨는지, 성경을 다 읽고 한마디 하시더군요. :) "한국 교회는 성경 한구절 한구절을 주해하고 공부하는데에는 익숙하지만, 한장의 맥락에서 그리고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참 약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내용과 거의 비슷한 워딩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은 목사님의 큰 가르침입니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 우리가 깊은 주해 중심의 주석을 통해서 보는 것 처럼, 한구절 한구절, 그리고 더 세분화시켜서 한 단어와 한 단어,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서 전치사까지 들여다 보며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금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한 구절 중심 그리고 한 단어 중심으로 바라보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결국 언어라는 것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구조와 그 문맥 안에서 그 의미가 많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문맥이 왜 중요할까요? :)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저에게 "돼지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크게 상처를 받았죠. :) 저는 초등학교 이후로 날씬해 본적이 거의 없어서 돼지야 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말의 뉘앙스는 비난이 아니라 "애칭" 이었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제가 좋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각자가 다른 컨텍스트 속에서 "돼지야"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저는 언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문학 전공은 아닙니다. 하지만 "Literary"라는 말이 주는 중요성과 뉘앙스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Collins 사전에 보니 이렇게 표현하는 군요.
* Definition of 'literary' Literary means concerned with or connected with the
writing, study, or appreciation of literature.
https://www.collinsdictionary.com/dictionary/english/literary
영어에 영어가 더해지니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 하지만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영어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콜린스 사전과 같이 영어를 영어로 풀어내는 사전을 정복해야 합니다.
위에 내용을 읽어보니 분명한 것은, Literary라는 것이 결국에는 문학에 관련된 것인데, 문학의 작법, 연구, 그리고 이해에 대한 것과 연결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Literary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성경과 Literary는 관련이 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의 보전하심 가운데 오류 없이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인간의 특성이 반영이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림이 아니라 글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적인 특성이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늘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ESV Literary Study Bible"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자마자 프리 퍼브를 신청했고 나온 이후로 쭉 사용하고 있습니다.
* ESV Literary Study Bible Notes
https://www.logos.com/product/187629/esv-literary-study-bible-notes
이 스터디 바이블의 저자는 휘튼 칼리지의 총장인 Philip Graham Ryken 그리고 휘튼 칼리지에서 영어 교수로 섬기고 있는 Leland Ryken 입니다. 성이 같은 것은, 부자지간이기 때문입니다. Leland Ryken이 아버지이군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학문을 이뤄간다는 것은 정말 너무 엄청난 일입니다. :)
특별히 Philip Graham Ryken은 주석을 포함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저술했는데, 살펴보니 웨스트민스터에서 MDiv를 하셨네요.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역사 신학으로 PhD를 받았습니다. 일단 이분의 교육 배경을 보면, 보수적이며 칼빈주의적인 성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hilip_Ryken
여하튼, 제가 처음에 이 스터디 바이블을 보았을 때에 정말 엄청난 기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성경에 대해서 접근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구절 한구절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 성경을 각 권과 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피면서, 문학적인 구조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성경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경을 자세히 주해하는 능력과, 거시적인 이 문학적인 안목까지 갖춘다면, 가장 이상적인 성경 주해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용하면서 어땠을까요? :) 첫째로는, 아.. 영어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른 평범한 스터디 바이블과는 표현이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영어 영문학을 가르치는 분이 공저를 했기 때문에 제가 평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수준의 영어 구사를 보면서 많이 좌절을 했습니다. 일단 책을 보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둘째로는, 저자들께는 너무 죄송스러운 표현이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 왜냐하면, 뭔가 성경의 한 장 안에서 그 문맥을 종합적으로 살핀다기 보다는, 그저 성경의 내용을 요약 정리 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성경 본문의 문맥에 대한 혹은 문학 구조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의미있는 결론인데, 그저 성경 내용을 잘 정리한 수준에 머무를 때도 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늘 아쉬움만 있었을까요? :)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 저자나 한 책에 대해서 모든 기대를 걸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 학자도, 성경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통찰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스터디 바이블을 구입한 이후에 포기하지 않고 항상 살펴봤습니다.
특히 이번에 잠언 설교를 하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혹시 잠언을 읽으시면 어떤가요? 잠언은 사실 어떤 틀을 잡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저런 격언들로 가득찬 질서 없는 글의 모음으로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가 설교한 잠언 11장에 대해서 이 스터디 바이블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아래 내용을 한번 읽어 보시죠.
간단하게 내용을 살펴보자면, 결국에는 11장과 12장 안에는 끊임없이 대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적인 형국이, 인간의 삶의 감각과 세계관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접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장에 등장하는 통칭(epithet) 등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이 두 장을 보기 위해서는, 경제와 사회와 미래의 보상 등의 다양한 인간의 경험의 범주를 분석해 보면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잠언 11장 후반부를 혼자 묵상하면서 준비할 때에는, 대조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지만, 실제로 이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좀더 성경의 분명한 맥락과 문학적인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설교에서는, 해당 본문의 모든 구절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보다는 특징 되는 구절들 속에 나타는 의인과 악인의 대조, 그리고 위에서 설명하는 삶의 grid 중에 하나인 경제적인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보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의 중요한 논지들을 펼쳐 나갔습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한번 들어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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