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5일 월요일

일상으로의 초대 / 일상으로의 초대 - 신해철





사실 유학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탁월하게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는 저이기에, 누군가 주변에서 유학을 권유해 준 적도 없습니다. 집안 친척 중에서 유학을 나온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막연하게 그것이 매우 특별한 일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미국이란, 정말 멀고도 험한 마치 동화 속에서 존재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기적과 같은 은혜로,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믿음의 성도님들과 나눌 평범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마 2년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갈 듯 합니다. 아직도 영어를 쓴다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분명히 영어가 많이 늘었지만, 그러나 가장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한다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영어로 책을 본다는 것은 고역이라는 것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좀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는, 영어만으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독일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졌습니다. 아내가 인정할 만큼 열심히는 하지만, 그러나 제가 제 수준을 알기 때문에 현재 쓰고 있는 페이퍼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에게 가장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이곳에서 '삶의 의미' 입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유학의 본질' 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일년이 넘어가고 이곳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유학이라는 것도 '일상' 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곳에 있든지, 제가 무엇을 하든지, 저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남편으로, 학생으로, 아빠로, 아들로 할 몫은 언제든지 저와 함께 합니다. 유학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고 소중한 과정이지만, 그러나 결국 그것을 헤쳐나가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제 자신' 입니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갑니다. 요리하는 아내 옆에서 어설프게 설거지를 합니다. 함께 병원에 갑니다. 함께 TV 프로그램을 봅니다. 같이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일주일에 한번 청소기를 돌리고, 학교에 가서 책을 찾고 빌립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책과 씨름합니다. 가습기를 청소하고 집안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가끔씩 밥을 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대에 넙니다. 아내가 자기 전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일상'이 남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듯 합니다. 그것을 어렵게는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일상이 아닌 특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듯 합니다. 일년 중에 휴가가 그렇고, 주말에 여행이 그렇고, 인생 가운데 유학이 그렇고,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그렇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모습을 가지는 것은 물론 어렵지만, 실상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주일의 예배 시간에, 신앙인의 모습으로 손을 들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형태'를 가지는 것은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휴가 중에 휴양지에서 유쾌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말들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유학생으로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지만, 오히려 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특별한 것들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회복시키는 휴식과 충전 혹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우리에게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면, 그리고 '그것 자체' 만 추구하고 살아간다면, 어쩌면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마치 우리의 일상에서의 도피가 되어버려, 평범한 우리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채, 끊없는 강렬한 자극만 쫓아다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일상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있어 인생의 대부분은, 결국 일상임을 절실히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주님께서 저에게, 일상 속에서의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게 하라' 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쉬운 말로 바꾸면 '당신의 삶의 일상을 주님과 함께 하라' 라는 말인 듯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무엇이 일상 속으로 주님을 초대하는 것일까요? 물론, 당위적인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지금 제 자신이, 일상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라 라는 당위적인 요구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문턱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저도 답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일상이 다른 어떤 것'만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일상 속에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주의 복음의 역사가, 그리고 복음의 의미가, 단순히 예배 시간에만, 주일에만, 그리고 어떤 특별한 장소 시간에만 한정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에서 모든 순간에, 저의 일상 속에서, 저의 태도와 말과 행동과 반응과 생각과 영혼 속에 존재하고 동시에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의 일상이, 단순히 형태나 표면으로 한정되는 '신앙인' 혹은 '목사' 정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인간' 정진부로서, 이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주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 듯 합니다.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꺼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중

그래서 오늘도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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